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63화 (63/441)

# 63

힐통령 063화

28장 인스턴스 던전(3)

촤자자작!

회전력이 실린 검은 마치 자유이용권을 구매한 아이처럼 트레빈저의 내부를 신나게 휘젓고 다녔다.

“찌지직, 찌지짓, 크아아앙!”

그 말도 안 되는 고통에 녀석이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비틀자, 카이가 눈을 반짝였다.

‘지금이다.’

카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뽑아버렸다.

남아 있는 녀석의 체력은 94%.

낙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크게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어차피 내가 노리는 건 이런 자잘한 것들이 아니니까.’

카이가 갑자기 검을 뽑으며 물러나자, 오히려 경계심을 품은 트레빈저가 거리를 벌렸다.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카이의 왼손이 꿈틀거렸다.

‘기선제압은 해놨으니 당분간 덤비지 않겠지. 그럼 슬슬 시작할까.’

거대 쥐들을 따돌릴 만한 속도, 거대 쥐들이 보스방에 늦게 도착하기 위한 함정, 마지막으로 트레빈저를 혼자서 사냥할 수 있는 실력.

그 모든 것들을 갖춘 수준 높은 유저들도 줄기차게 실패해나간 전략이 바로 보스 런이다.

‘그야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트레빈저와 거대 쥐를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고레벨 유저라면 가능하겠지만, 85레벨을 넘어가는 순간 그 기록에는 의미가 사라진다.

결국 보스 런의 핵심은 거대 쥐들이 도착하기 전에 트레빈저를 처치하는 것이다.

수많은 유저들은 쥐들의 왕국에서 보스 런을 성공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리고 내놓은 결론이 5분 이론이었지.’

5분 이내에 트레빈저를 처치하지 못하면 거대 쥐들이 도착한다는 이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유저들의 머릿속에서는 보스 런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

‘그야 5분 안에 보스를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85레벨에 모든 장비를 레어로 맞춘 유저조차 5분 안에 트레빈저를 사냥하는 건 불가능했다.

‘5분은 트레빈저와 싸우는 시간이 아니야.’

카이는 이 금쪽같은 5분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5분, 10분이 지나도 트레빈저와 1대 1로 싸울 수 있는 무대를 준비하는 시간.

무대를 만들기 위해 카이의 왼손이 높이 올라갔다.

“홀리 익스플로젼!”

쿠르릉!

강렬한 소음과 함께 천정의 일부가 무너져내렸다.

낙석들이 깔린 곳은 다름 아닌 보스방의 입구!

보스방으로 들어오는 단 하나의 통로가 막혀 버린 것이었다.

“역시 강력하다니까.”

홀리 익스플로젼의 파괴력은 던전의 천장을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했다.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

천장을 붕괴시켜서 페르메를 잡아봤던 카이였기에 세울 수 있는 작전이었다.

“크르륵!”

붉은색 눈동자 가득히 살기를 담은 트레빈저가 분노했다.

자신의 거처를 망가뜨린 침입자를 향한 적의가 시시각각 넘실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조심해야 할 건 단 하나.’

트레빈저는 오크 로드와 달리 즉사 기술을 가지고 있다.

앞니로 대상을 찍으면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계속해서 갉아버리는 무서운 기술이다.

‘동료가 없는 내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기술이지.’

동시에 지금의 카이가 유용하게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기술이기도 했다.

“크르릉.”

트레빈저는 곧장 카이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빠르게 돌았다.

‘빈틈을 찾고 있는 건가.’

카이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한 번 허용한 후로 급격하게 조심스러워진 녀석.

‘그렇다면 빈틈을 만들어주면 되지.’

카이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트레빈저가 보기에는 일순 자신의 움직임을 놓친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연기!

“크아앙!”

일전의 아픔을 떠올린 트레빈저는 아까보다 훨씬 매서운 몸놀림으로 카이에게 달려들었다.

‘근접전이라면 환영이지!’

아무리 이족보행을 한다지만 거대 쥐들은 기본적으로 팔과 다리가 짧다.

결국 그들이 근접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거대한 앞니와 손톱, 그리고 꼬리뿐!

‘지금의 나에겐 이 정도 거리가 가장 편해!’

카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거리를 찾아냈다.

딱 칼 한 자루가 들어가면 끝날 정도의 애매한 거리!

둘이서 싸우는데 한 명에게 유리해지면 다른 한 명의 입장은 곤란해진다.

“찌짓!”

앞니로 공격하기에는 조금 멀고, 꼬리를 사용하자니 너무 가깝다.

그렇다고 손톱을 이용하자니, 그건 자신의 공격 수단 중 가장 공격력이 떨어졌다.

결국 녀석이 선택한 것은 일단 뒤로 물러나서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몸을 뒤로 물린 순간, 트레빈저의 조그마한 눈이 순식간에 두 배로 커졌다.

“크르릇!?”

바로 카이 때문이었다.

그는 트레빈저가 물러설 때마다 그와 같은 속도로 따라붙으며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찌지짓!”

트레빈저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카이도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앞니에 당하고, 그렇다고 거리를 너무 벌리면 저 채찍 같은 꼬리가 날아오겠지.’

카이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녀석이 손톱만 사용하는 것이었다.

결국 전투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기 위해서는 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 과제!

확실히 거리를 한 번 잡기 시작하자, 전투는 카이의 뜻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흐읍!”

카앙, 카앙! 서걱!

녀석의 손톱과 맞부딪치며 연신 불똥을 튀기는 검은 한 번씩 트레빈저의 급소를 공격했다.

여명의 검법이 아무리 쓰레기 스킬이지만, 초급 7레벨이나 올린 지금은 제 몫을 하고 있었다.

[88%…… 87%…… 86%…….]

페르메의 독과 시종일관 급소로 날아드는 검!

그 두 가지 공격은 꾸준히 트레빈저의 체력을 갉아먹었다.

‘후우, 후우. 된다, 이길 수 있다!’

전투의 리듬에 완전히 몸을 맡긴 카이는 트레빈저를 계속해서 압박해나갔다.

“크르, 크르륵!”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지척, 손톱과 검이 다시 한 번 강하게 부딪쳤다.

그리고 무언가가 뚝 부러지는 소리가 고막을 강하게 때렸다.

“어……!?”

“크르릇!?”

카이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반면, 트레빈저의 앞니는 부들부들 떨렸다.

[트레빈저의 왼쪽 손톱이 파괴되었습니다.]

전투 중에 들린 난데없는 호재!

그 소식에 힘입은 카이의 몸놀림은 더욱 기민해졌다.

‘왼쪽만 집중적으로 노린다!’

서걱, 서걱, 서걱!

한쪽의 방어 수단을 상실한 트레빈저가 순식간에 궁지에 물렸다.

결국 체력이 50%까지 떨어진 녀석은 몸을 납작하게 숙이며 네 발로 땅을 짚었다.

“크지짓!”

‘가만, 저 자세는?’

카이의 눈이 반짝였다.

저것은 트레빈저가 필살기인 앞니 찍기를 하기 전에 선보이는 모습!

‘드디어 오는 건가!’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던 카이는 바닥을 박차고 뒤로 훌쩍 물러나더니 벽을 등졌다.

‘딱 한 번만 피하면 돼.’

카이의 얼굴 위로 비장함이 떠올랐다.

트레빈저의 필살기는 자신에게도 위험하지만, 녀석에게도 마찬가지다.

성공하면 무조건 한 명은 죽일 수 있지만, 기술을 시전하는 동안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저 필살기에 걸리는 파티도 있었지.’

단단한 탱커가 일부러 앞니 공격에 당한 뒤, 힐러들이 연신 탱커를 치료하고 딜러들이 트레빈저를 처치하는 방식은 제법 유명했다.

다만 이 방법을 사용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하나는 트레빈저의 말도 안 되는 공격력을 버틸 수 있는 체력과 방어력.

나머지 하나는 트레빈저가 누군가를 물어뜯는 사이 치료와 공격을 해줄 동료들이었다.

‘아쉽게도 지금의 나는 탱커에 비해 체력과 방어력도 떨어지고, 동료도 없어.’

놀 언데드 소환의 쿨타임인 30분은 이미 지난 지 오래였지만, 녀석들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50레벨의 뼈다귀들은 물리는 순간 역소환 당한다.’

그럼 자신이 구상한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카이는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처럼 자세를 낮추며 중얼거렸다.

“……와라.”

그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네 발로 지탱하던 몸을 뒤로 쭉 빼낸 트레빈저의 몸이 탄환처럼 빠르게 튀어나왔다.

쌔애앵!

바람을 가르며 쇄도하는 녀석의 거체!

‘아직 아니야.’

위기를 감지한 카이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찔거렸지만, 그는 감정을 억누르며 기다렸다.

‘아직…….’

“크아아아아!”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트레빈저가 입을 쩍 벌리며 커다란 앞니를 자랑했다.

카이가 몸을 움직이며 손을 빠르게 놀린 것도 그때였다.

‘지금이다!’

아그작!

까아아앙!

트레빈저의 눈이 반짝였다.

자신의 앞니가 상대의 무기를 물었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녀석은 두 손으로 대상을 꽉 붙든 뒤 그것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동시에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가 방을 가득 메웠다.

끼기긱, 끼긱, 끼기기긱!

“크으윽!”

저도 모르게 고막을 막은 카이는 슬며시 눈을 떴다.

끼긱, 끼기긱, 끼기긱!

그는 열심히 자신의 검을 물어뜯고 있는 트레빈저를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공이다!’

카이의 안도하는 표정을 쳐다본 트레빈저의 눈매가 비열하게 휘었다.

자신의 앞니에 걸린 이상, 장비의 내구도는 순식간에 바닥까지 떨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

“……?”

하지만 연신 검을 갉아먹던 트레빈저는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트레빈저의 앞니로 인해 강인한 의지의 롱소드 내구도가 하락하였습니다.]

[해당 장비는 내구도가 닳지 않는 장비입니다.]

[효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

아무리 갉아먹어도 반짝반짝 빛나면서 특유의 매끈함을 잃지 않는 검!

당황한 트레빈저를 쳐다보던 카이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아직 착용 제한에 걸려서 직접 사용할 수는 없는데, 아이템 드랍하는 건 되거든?”

빵야.

카이는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더니 어쩔 줄 모르는 트레빈저의 얼굴을 향해 쐈다.

“네놈은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야.”

***

[더러운 쥐들의 왕, 트레빈저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가 100,000 상승하셨습니다.]

[32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후우…….”

역시 비공개 던전.

들인 노력에 비해 보상은 허탈할 정도였다.

하지만 애초에 기대치가 낮았기에 카이는 별다른 실망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침을 꿀꺽 삼킨 카이는 조심스럽게 눈앞에 떠오른 인터페이스 창을 쳐다봤다.

‘던전 결과창.’

자신의 플레이에 어떤 부분이 좋았고,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성적표나 다름없었다.

“던전 결과창 확인.”

띠링!

[플레이어의 레벨 : 68.]

[피격 횟수 : 75회.]

[공격 횟수 : 234회.]

[급소를 공격한 횟수 : 122회.]

[남아있는 몬스터 : 102마리.]

[클리어 시간 : 1시간 12분 34초.]

[최종 종합 점수를 계산 중…….]

‘확실히 이렇게 정리가 되니 이해가 잘되네.’

정신없이 싸우는 도중에는 몇 대를 때렸는지, 몇 대를 맞았는지 알 턱이 없다.

카이가 두 눈을 감고 종합 점수를 기다리기를 잠시, 친숙한 알림이 귓가를 울렸다.

띠링!

[종합 점수 결과. S-]

[솔로 랭크 1위.]

[스페셜 칭호, ‘인스턴스 던전의 일인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어……?”

멍한 표정을 짓던 카이가 다시 한번 눈을 비볐다.

하지만 재차 확인해도 결과가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1위라고?’

물론 카이 스스로가 봐도 클리어 타임이 혁신적으로 줄어들긴 했다.

이전에 솔로 랭크 1위였던 락타샤의 클리어 시간은 무려 3시간 42분 16초였으니까.

‘그야 나는 거대 쥐들을 단 한 마리도 사냥하지 않았으니 시간은 줄었지만…….’

애초에 그들도 거대 쥐들을 모두 무시하고 트레빈저만 잡을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트레빈저의 패턴 중에는 거대 쥐들을 보스 방으로 불러내는 것도 있으니까.’

카이처럼 입구 자체를 없애버리지 않는 이상 거대 쥐들에게 둘러싸여 죽는 것이 보스 런의 일반적인 엔딩이다.

“그렇다는 건…….”

결국 남아 있는 몬스터들로 인한 감점보다, 레벨이 68이라는 점과 클리어 시간이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빠르다는 부분의 가산점이 더 크다는 뜻!

‘이건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겠는데.’

버그가 아니냐고 난리 칠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훤히 보였다.

하지만 카이는 이내 밝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 나랑은 별 상관없는 일인가?”

[순위표에 기록될 이름을 입력해 주십시오.]

“Unknown.”

어차피 모든 관심은 언노운에게 쏠리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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