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64화 (64/441)

# 64

힐통령 064화

29장 물의 현자, 타르달

인스턴스 던전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오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드디어 나왔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다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로브가 흠뻑 젖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사냥을 끝낸 그림즈였다.

응원의 한 마디를 보내는 유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그는 후련한 감정을 느꼈다.

‘이제 이곳에 오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마지막 도전.

그림즈는 조금 전의 도전을 끝으로 레벨이 86이 되었다.

한마디로 이 던전을 완벽하게 졸업했다는 뜻이고, 그 말은 레벨을 다운시키지 않는 이상 기록 경쟁에 두 번 다시 참가할 수 없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근처의 바위에 다가간 그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끈질기다 못해 지독하기까지 한 노력파.

주변인들은 모두 그를 그렇게 불렀다.

그는 새로운 스킬을 배우면 그 자리에서 마나가 바닥날 때까지 스킬을 연구했다.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는 스킬인지, 사정거리나 위력은 얼마나 되고 컨트롤을 통해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 하다못해 개발자가 이 스킬을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했으며 뭘 먹고 있었는지까지 고민할 정도였다.

그런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그는 남들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었다.

“후우, 시원하다.”

땀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을 맞던 그림즈가 흘깃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곧 정각…….’

게임 시간으로 매시 정각.

그때마다 인던 랭킹은 새롭게 갱신되었다.

그 사실이 그림즈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정말 느낌이 좋아.’

단순한 바람이나 느낌 따위가 아니었다.

실제로 클리어 타임을 크게 단축시켰고, 피격 횟수도 많이 줄였기 때문이다.

‘오늘에야말로…….’

매번 락타샤를 뛰어넘지 못해서 생긴 만년 2등이라는 타이틀.

그 누명을 벗고 유종의 미를 거둘 때가 되었다!

그림즈는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갱신됐다!”

“그림즈 몇 등이냐?”

“와, 내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리지?”

그림즈의 마지막 기록 도전.

그에 대한 유저들의 관심도 제법 높았다.

과연 노력은 재능을 넘을 수 있는지, 없는지.

이번 기록이 그에 대한 답을 내놓을 것이 분명하니까.

“어…….”

“음…….”

“헐…….”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그림즈는 순위표를 향해 다가갔다.

동시에 그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다.

‘반응들이 왜 저러지?’

가장 먼저 불안한 생각부터 들었다.

‘혹시…… 넘지 못한 건가?’

재능이라는 높디높은 벽을.

불안감이 엄습한 그는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수백 번이나 겪어본 좌절이다. 고작 한 번 더 추가된다고 해서 다를 건…… 없어.’

다르다.

지난 수백 번의 도전들은 모두 오늘의 한 번을 위해 뿌려놓은 씨앗이었으니까.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림즈는 떨리는 마음으로 기록판 앞으로 다가갔다.

“흐흠.”

“어흐흠.”

“저…… 힘내세요.”

“운이 좀 없으셨을 뿐이에요.”

불쌍해서 어떡하냐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는 유저들!

안타까움과 씁쓸함, 심지어는 황당하다는 표정까지 보인다.

주변 유저들의 반응을 살피던 그림자의 입가로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결국…… 넘지 못했나.’

응원을 받는 순간 일말의 기대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락타샤를 넘어서서 1등을 했다면 응원 대신 축하를 받았을 테니까.

‘운이 없었다고? 아니, 단순히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난 그런 변명에 기대지 않아.’

자신의 계산대로라면 락타샤를 넘었어야 한다.

하지만 넘지 못했다는 건,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였다는 소리일 터.

그림즈는 아쉬운 마음을 억지로 삼키며 순위표를 확인했다.

[쥐들의 왕국 - 1인 파티 순위표]

…….

2.그림즈 LV.85 3시간 41분 54초. 종합 점수 A+

3.락타샤 LV.85 3시간 42분 16초. 종합 점수 A+

…….

“어!”

락타샤라는 이름이 자신의 밑에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그림즈의 입술을 비집고 갈라지는 비명이 튀어나왔다.

“이, 이겼다!”

다른 유저들이 응원을 하는 목소리가 너무나 서글펐기에 당연히 넘지 못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해냈다! 드디어 2등 탈출이야! 내가 이겼다고!’

이 한순간을 위해 바쳐온 노력과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 그림즈가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들도 참, 나 하나 놀래켜 주겠다고 준비를 많이 했나 보군.’

그 사실이 재미있어 큭큭 웃음을 흘린 그림즈는 주변의 유저들을 입을 열었다.

“다들 연기력 실화십니까? 무슨 배우들도 아니시고, 하마터면 깜빡 속아 넘어…….”

“…….”

“…….”

주변 유저들의 얼굴을 쳐다본 그림즈의 눈이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뭐지, 이 분위기?’

도저히 원상 복구될 줄을 모르는 분위기!

게다가 자신을 향한 동정의 눈빛은 여전했다.

‘대체 왜?’

납득이 되지를 않았다.

자신은 각고의 노력 끝에 락타샤를 넘어 만년 2등이라는 타이틀도 떼 버렸…….

‘아니, 잠깐만?’

그림즈의 고개가 번개처럼 획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1위인 락타샤를 넘었다면 자신이 1위여야 할 터인데…….

멍청한 표정을 지은 그의 눈에 다시 한번 순위표가 들어왔다.

1. Unknown LV.68 1시간 12분 34초. 종합 점수 S-

2. 그림즈 LV.85 3시간 41분 54초. 종합 점수 A+

3. 락타샤 LV.85 3시간 42분 16초. 종합 점수 A+

“…….”

파사삭!

뭔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림즈의 신형이 그대로 무너졌다.

‘내, 내가 2등이라니…… 2등이라니……! 락타샤를 이겼는데도 2등이라니……!’

그림즈도 울고, 유저들도 울고, 하수구의 쥐들마저 울었다.

***

“호오.”

카이는 도감에 새롭게 등록된 칭호를 쳐다보며 입을 벌렸다.

[인스턴스 던전의 일인자]

등급 : 스페셜

내용 : 인스턴스 던전의 솔로 랭크에서 1위를 한 플레이어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던전 랭크에서 1위를 한 기록 하나당 모든 스탯 5 상승.

(이 효과는 칭호를 착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칭호를 이런 식으로 주는구나.”

인스턴스 던전의 순위는 하루마다, 아니. 치열한 곳은 1시간마다 싹 다 바뀐다.

‘인던 1위가 분명 대단한 업적인 건 맞아. 하지만 스페셜 칭호의 대단한 효과를 1위를 찍은 모든 사람에게 주는 건 힘들겠지.’

그래서야 스페셜 칭호라는 의미 자체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이런 방식의 칭호인가.”

스페셜 칭호를 주긴 주되, 1위에서 밀려나는 순간 그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는 방식!

“잠깐만, 그럼…….”

카이는 자신의 기록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내 기록은 영원히 안 깨지는 거 아니야? 그건 나보고 다시 하라고 해도 힘들 텐데?’

자신처럼 던전을 리모델링 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 낼 수 없는 기록!

“오호라…….”

그렇게 된다면 모든 스탯이 다섯 개씩 영원히 상승한다는 뜻이다.

‘무려 5레벨이나 오른 셈이로군.’

뿌듯한 미소를 지은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기회가 된다면 인스턴스 던전도 가끔씩 들러야겠어.’

만약 쥐들의 왕국처럼 자신이 기록을 내기 좋은 장소라면 도전을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말도 안 되는 기록이 세워지면…….’

1위에는 Unknown이라는 세 글자가 영원히 고정될 것이다.

그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 카이는 시야에 들어오는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음? 자네 또 왔나?”

“거참…… 온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또 오나?”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끈질기군.”

당연한 말이지만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드는 병사들!

하지만 친근한 형제들 효과를 믿은 카이는 그들에게 살갑게 말을 걸었다.

“에이, 저희 사이에 왜 그러세요.”

“우리 사이?”

“우리가 대체 어떤 사이지?”

“웃기는 놈이군.”

투구 너머로 느껴지는 싸늘한 시선에 카이가 당황했다.

‘뭐, 뭐야.’

황급히 확인을 해봤지만, 친근한 형제 스킬은 여전히 활성화된 상태!

‘그런데 왜 저렇게 반응이 차갑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던 카이는 우선 뒤로 물러났다.

“자,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서둘러 도시의 시가지로 돌아온 카이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 가지 가설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스킬…… 설마 일회용인 건가?’

만약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앞으로는 스킬을 사용할 때도 더욱더 조심을 해야 했다.

“궁금하니까 시험해 보자.”

카이는 스킬을 사용한 채 빵집에 들러 빵과 우유를 할인된 가격에 구매했다.

냠냠, 우걱우걱, 꿀꺽꿀꺽!

달달한 팥과 고소한 깨가 들어있는 빵과 시원한 우유를 단번에 들이켠 카이!

그는 30분 정도가 지난 후, 빵집을 다시 방문했다.

물론 친근한 형제 스킬은 활성화가 된 상태였다.

“빵이랑 우유 가격 좀 깎아주시면 안 되나요? 아까는 해주셨는데.”

“뭐? 가격을 깎아? 아까 한 번 해줬더니 정도를 모르는 사람이군!”

인상을 팍 찡그리며 화를 내는 빵집 주인!

그 반응을 지켜보던 카이는 아무 말 없이 빵집을 나왔다.

‘친근한 형제 스킬. 일회용이 확실하구나.’

물론 따로 쿨타임이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데에는 긴 시간과 귀찮음이 동반될 터.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많은 그로서는 굳이 알아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앞으로 조심을 하는 게 낫겠어.’

언제, 어떤 NPC의 호감도가 필요하게 될지 몰랐다.

그러니 앞으로는 한 번을 사용해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할 터.

‘후우, 신화 등급 직업이라고 만능은 아니구나.’

애초에 친근한 형제 스킬은 추가 보상으로 획득했었다.

추가 보상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감지덕지해야 할 수준!

“아, 그럼…… 병사들한테 호감도부터 사야 되잖아.”

울상을 지은 카이는 다시 한번 빵집에 들어갔다.

***

“음?”

“하아.”

물의 현자, 타르달의 저택을 지키는 병사들이 눈을 찌푸렸다.

하루에 세 번이나 같은 사람을, 그것도 이미 두 차례나 돌려보낸 사람이 또 시야에 들어오면 짜증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네 진짜…… 혼쭐이 나봐야겠나?”

“우린 힘이 없어서 참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고, 누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병사님들 일단 노여움부터 푸세요.”

이전과는 달리 살갑게 웃은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따끈따끈한 빵과 병에 살얼음이 낀 시원한 우유를 꺼냈다.

“어후, 날이 이렇게 더운데 근무 서신다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출출하실 텐데 이것들 좀 드시고 일하시죠?”

“음식은 받지 않는다. 무슨 짓을 해놓은 줄 알고.”

“게다가 이 음식들은 부정청탁의 일종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군.”

‘크으…….’

미드 온라인의 병사들조차 김영란법을 이리 잘 지키다니!

어쩔 수 없이 음식들을 다시 집어넣은 카이는 고개를 숙였다.

“병사님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 실력을 입증할 기회를 주십시오.”

“뭐?”

“자네 지금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건가! 실력을 입증하겠다고 떠난 게 고작 몇 시간 전…….”

버럭 소리를 지르던 병사의 목소리가 점점 흩어졌다.

“잠깐 있어 보게.”

병사는 카이의 몸을 빠르게 훑더니 눈을 크게 떴다.

카이는 그가 말을 흐리던 순간부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NPC는 이런 부분이 편하다니까.’

그들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플레이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자신이 무엇을 해왔는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제가 안쪽으로 들어가시는 걸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질문은 공손했지만 카이에게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었다.

‘설마 이 정도 성적을 내왔는데 튕기진 않겠지.’

그 예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병사들은 뻘쭘한 기색으로 서로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대단한 실력을 지닌 모험가인 줄은 몰랐군.”

“게다가 그 짧은 시간에…… 정말 놀랍네.”

“지금 바로 타르달 님에게 기별을 넣도록 하지.”

[아쿠에리아 병사 ‘유릭’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아쿠에리아 병사 ‘헤센’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아쿠에리아 병사 ‘레딘’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능력 있고 예의 바른 자를 좋아하는 법!

호감도가 올라간 병사들의 비위를 맞추며 열심히 대화를 하고 있자, 저택의 시종이 다가왔다.

“타르달 님께서 접견을 허락하셨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타르달의 저택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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