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힐통령 069화
30장. 기사를 사랑한 인어(4)
부르파와 도베르는 자신들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모험가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기사를 상대로 근접전이라고?”
“미쳤나 보군.”
이는 명백하게 기사인 자신들을 무시한 처사!
머리끝까지 화가 난 그들은 오만한 모험가를 단숨에 요절낼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일반적인 병사나 모험가들이 배우는 검과는 차원이 다른, 난해한 검술!
서걱, 서걱, 서걱!
제아무리 눈이 좋고 반사신경이 뛰어난 카이라지만, 처음 보는 상승 검술을 완벽하게 피해내는 건 불가능했다.
카이의 방어구 내구도가 순식간에 깎여나가고, 몸에는 생채기가 늘어났다.
‘하지만 버틴다!’
두 팔을 올려 급소를 방어한 카이는 가만히 서서 얻어맞으면서도 그들을 도발했다.
“잘난 기사의 검술이 고작 이 정도라니, 실망이군!”
“죽고 나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지켜보지!”
“그리고 그쪽은 몇 대 얻어맞더니, 검 휘두르는 법도 까먹었나?”
“흥, 내 검술에 반응도 못 하고 연신 두들겨 맞는 놈이 입만 살았구나!”
부르파와 도베르의 검이 한층 더 빨라졌다.
이 정도 속도는 사실 그들로서도 무리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모험가가 상처를 입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걸 보자 오기가 치솟았다.
“더럽게 간지럽네! 좀 시원하게 긁어봐라!”
게다가 중간중간 예고 없이 훅 들어오는 근본 없는 도발까지!
“후욱, 후욱.”
“허억, 허억.”
10분 동안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른 그들은 그제야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이 모험가 녀석, 대체 왜 쓰러지지 않는 거지?’
‘이미 공격을 수십 번이나 적중 시켰는데?’
그들의 공격은 정확히 들어간 것만 따져도 세 자릿수!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죽어도 몇 번은 죽어야 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들이 알 수 없는 위험을 느낄 때, 연신 방어만 해오던 카이가 두 팔을 슬그머니 내렸다.
“벌써 지쳤어?”
“웃기는 소리. 고작 이 정도로 지칠 리…….”
“없…… 을 텐데?”
코웃음을 치려던 부르파와 도베르는 몸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모, 몸이 왜 이렇게 무겁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있어!’
평소에 연무장에서 훈련을 하면 1시간을 내리 검을 휘둘러야 숨이 찰 정도였다.
물론 조금 전에는 다소 무리를 해서 검을 휘둘렀다지만, 그래 봐야 고작 10분이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들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카이를 노려봤다.
“대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내가 하긴 뭘 해.”
태연스럽게 대꾸한 카이는 자신의 옆에 원기 회복의 샘을 설치했다.
[1초마다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1초마다 스테미너가 회복됩니다.]
카이는 조금씩 차오르는 체력과 스테미너를 확인하고는 그들을 쳐다봤다.
“검만 줄곧 휘두른 건 너희들이잖아. 그것도 발이 푹푹 빠지는 이 모래사장에서.”
“뭐? 이곳이 모래사장이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
“아니, 몰랐을걸?”
카이가 씨익 웃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만약 자신이 저들과 함께 신나게 뛰어다니면서 싸웠다면, 그들은 이곳이 모래사장임을 인지하고 체력을 비축하며 조심스럽게 싸웠을 것이다.
‘그래서 난 아예 제자리에서 공격을 맞아주고만 있었지.’
그것도 계속해서 도발을 하면서 그들의 이성을 절묘하게 끊어놓기까지!
부르파와 도베르는 공격에 반응조차 못 하는 카이를 비웃었지만, 그 부분이 오히려 그들의 목을 조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도 까먹을 정도로 말이지.’
두 다리를 멈춘 채 카이만 후드려 패던 녀석들은,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신경조차 쓰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밟고 있는 곳이 단단한 땅이 아닌 모래라는 사실은 뒤바뀌지 않는다.
‘아마 검을 한 번 휘두르는 데도 힘이 몇 배는 더 들었을 테지.’
게다가 결정적으로 카이에게는 체력을 채울 수 있는 회복 스킬이 있었다.
결국 기사들은 체력만 잔뜩 낭비한 셈!
검을 늘어뜨린 카이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신성 폭발. 칼날 쇄도.”
맹수가 감춰놓았던 송곳니를 드러내며 순식간에 모래사장을 박찼다.
파아아악!
하늘을 수놓는 모래더미!
그 모래들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카이의 검은 기사들을 훑고 지나갔다.
까앙, 까앙!
“역시 단단하네. 풀 플레이트 메일.”
“……!”
그야말로 눈뜨고 코가 베이는 기분!
당연하지만 카이는 이 한 번으로 공격을 끝낼 생각이 없다는 듯, 재차 검을 빼 들었다.
“다시 한번, 칼날 쇄도.”
까앙, 까앙, 까앙, 까앙!
카이의 검이 미친 듯이 부르파와 도베르를 두드렸다.
그들은 저항을 해보려고 했지만,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신성 폭발을 사용한 카이를 상대하는 건 힘들다.
하물며 체력이 방전된 지금에서야, 그들은 카이의 손끝에서 놀아나는 인형밖에 되지 않았다.
‘급소, 급소, 급소!’
카이는 집요하게 그들의 급소만을 노렸다.
그곳을 때리는 것이 데미지가 훨씬 잘 들어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
[치명타가 발동했습니다. 1.5배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치명타가 발동했습니다. 1.5배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치명타가…….]
…….
전투에 푹 빠진 카이는 그 메시지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계속해서 검만 휘둘렀다.
그때였다.
띠링!
[뛰어난 집중력을 바탕으로 전투 중에 적의 급소를 50번 이상 찌르셨습니다.]
[여명의 검법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여명의 검법 스킬의 랭크가 중급으로 상승했습니다.]
‘음?’
카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여명의 검법이 중급 랭크로 올랐다고?’
기존에 초급 9레벨이었던 검술 스킬의 갑작스러운 변화!
순식간에 두 기사와 거리를 벌린 카이는 스킬 정보를 확인했다.
[중급 여명의 검법 LV.1. Passive.]
검으로 공격할 시 적에게 공격력의 200% 데미지를 준다.
적을 공격할 시 신성 스탯에 비례한 추가 신성 피해를 준다.
숙련도 0/100
“……!”
검술 스킬이 중급 랭크로 올라오며 개방된 추가 능력치!
그것을 확인한 카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성 스탯에 비례한 추가 신성 피해라고? 만약 이게 효율이 좋다면…….’
앞으로 힘과 신성 스탯을 병행해서 찍어야 할 수도 있다.
카이는 부웅부웅, 한층 부드러워진 움직임으로 검을 휘두르더니 눈앞의 기사들을 쳐다봤다.
‘우선 시험부터 해보자.’
결투 상대에서 순식간에 시험 상대로 전락한 부르파와 도베르!
하지만 그들도 어느 정도 체력을 비축했기에 얌전히 당할 생각은 없었다.
‘대충 저 녀석의 공격 패턴은 파악했다.’
‘공격도 생각보다 날카롭지는 않아.’
카이가 달려들자 두 명의 기사가 검을 빼 들었다.
“흐읍!”
두 명의 기사가 내지른 검은 각각 카이의 심장과 머리를 노렸다.
그 공격의 궤적을 끝까지 주시하던 카이의 신형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꺼졌다.
뽀드드득!
꺼진 몸이 모래사장의 울퉁불퉁한 지면을 밟는 순간, 몸의 무게 중심이 절묘하게 뒤흔들렸다.
반사적으로 몸의 밸런스를 완벽하게 맞춘 괴물 같은 솜씨!
낮은 자세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카이의 자세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완벽한 자세에서 뿜어져 나오는 완벽한 검술!
서걱!
카이의 검날이 눈 깜짝할 사이에 도베르의 목젖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상황을 믿을 수 없던 도베르는 눈을 크게 뜨며 피를 토해냈다.
“쿠웨엑!”
도베르는 물론이고 카이도 크게 놀란 상태였다.
‘자, 잠깐만. 노말 등급 검술이 랭크 업 한 번 했다고 이렇게 강해지나?’
체감상 1.5배는 강해진 것 같은 공격력!
카이는 황급히 스킬창을 펼쳐 검술의 정보를 상세한 곳까지 확인했다.
[중급 여명의 검법 LV.1 Passive.]
등급 : 레어
…….
“……레어 등급!?”
카이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내가 스킬을 처음 배울 때는 분명히 노말 등급이었어.’
후이 관장에게 받았던 책은 너덜너덜했고, 은은한 잿빛을 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몇 번이나 꼼꼼하게 살펴봤던 스킬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중급 랭크로 올라오면서 등급도 함께 상승한 거야.’
등급이 함께 성장하는 스킬!
카이로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기괴한 스킬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납득이 되었다.
“그래…… 패트릭이 남긴 검술이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멋있는 이름에 비해 능력치가 너무 구려서 솔직히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기는 했다.
그런데 설마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안 그래도 괴물 같던 녀석이 더욱 날카로운 발톱을 손에 넣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부르파와 도베르의 얼굴은 시꺼멓게 죽었다.
***
[아쿠에리아 기사 ‘부르파’를 처치하셨습니다.]
[아쿠에리아 기사 ‘도베르’를 처치하셨습니다.]
[바리탄 남작이 이 사실을 알게 될 시 적대 상태가 되며, 현상금이 붙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10개 획득했습니다.]
“좋아.”
드디어 앞자리가 7로 시작하는 레벨이 되었다.
카이는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생각보다 여명의 검법 효율이 너무 좋아졌다. 어떻게 하지?’
현재 카이는 선행 스탯이 5개 감소하여 신성 스탯이 총 259개!
솔직히 카이가 힘을 찍으면서 포기하던 부분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우선 힐의 양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홀리 익스플로젼의 파괴력이 그대로라는 점이었지.’
게다가 신성 폭발의 유지 시간이 항상 똑같다는 것도 제법 답답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여명의 검법이 중급 랭크로 상승하면서 신성 스탯을 찍어도 데미지가 올라가는 길이 닦여졌다.
‘그렇다면 신성 스탯을 찍는 게 무조건 이득이긴 한데…… 비율을 어떻게 맞출까?’
공격력 상승 면만을 보면 사실 힘을 찍는 게 신성 스탯을 찍는 것보다 더 나았다.
하지만 신성 스탯을 찍으면 잡다한 부가 효과가 따라온다.
두 가지 스탯들의 장점을 따져보던 카이는 결론을 내렸다.
‘레벨을 올릴 때마다 힘 3, 신성 2. 당분간 이런 식으로 찍자.’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힘에 약간 더 무게를 실어주자는 것이었다.
신성 스탯은 당장 몇 개 더 찍어봤자 눈에 띄는 활약을 기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견습 기사의 롱소드]
등급 : 매직
공격력 82~115
힘 +5
민첩 +3
기사 서임을 받은 견습 기사들에게 지원되는 라시온 왕국 공방의 롱소드이다.
착용 제한 : 레벨 100 이상, 기사 클래스, 힘 130 이상.
내구도 81/100
아이템 파밍까지 끝낸 카이는 크라포드에게 다가갔다.
피리를 한참이나 부른 그는 모래사장에 우두커니 서서 바다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엘레느가 결국 찾아오지 않은 건가?’
카이의 얼굴 위로 안타까운 감정이 스쳐 지나갈 때였다.
“엘…… 레느…….”
크라포드의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 사이에서 물기 젖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동시에 저 멀리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바다를 가르며 다가왔다.
적당히 햇빛에 그을려서 건강해 보이는 갈색 피부, 가슴 부근을 가린 거대한 조개!
무엇보다 인상에 남는 건 명치 아래로 두 다리 대신, 지느러미가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아아, 크라포드, 크라포드, 크라포드!”
순식간에 바다를 헤엄쳐온 엘레느는 싱싱한 날치처럼 튀어 오르며 크라포드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가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지느러미는 순식간에 사람의 다리처럼 변하더니 미역으로 만들어진 듯한 반바지가 입혀졌다.
“엘레느……!”
20년간 그리워하던 연인을 품속에 가둔 크라포드가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올려다보던 엘레느는 자신도 울음을 터뜨리면서 그를 탓했다.
“뭐예요. 못 보는 사이에 울보가 다 되셨잖아요.”
“……그대는 못 보는 사이에도 더 예뻐졌군.”
“그러는 크라포드 님도 더 잘생겨지셨는걸요.”
서로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들의 입이 천천히 포개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이의 입가로 흐뭇한 미소가 찾아들었다.
‘그래.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엔딩은 이래야 제맛이지.’
정말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카이가 두 눈을 지그시 감는 순간, 폭포수처럼 메시지가 쏟아졌다.
띠링!
[20년 동안 서로를 단 한시도 잊지 않던 엘레느와 크라포드가 드디어 재회했습니다. 당신의 선행은 두 사람을 기다리는 비극적인 결말을 행복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종족을 초월한 아름다운 사랑을 목도한 태양신 헬릭은 눈물을 흘리며 당신을 치하합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음유시인들이 엘레느와 크라포드, 그리고 그들을 이어준 모험가 카이의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명성이 3,000 상승했습니다.]
[태양교의 공헌도가 800 상승했습니다.]
[태양교의 전파 속도가 10% 빨라집니다. 서로의 영원한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이들은 지금부터 태양교 사제의 주례 아래에서 결혼식을 올릴 것입니다.]
[선행 스탯이 30 상승하셨습니다.]
‘……거, 신이라는 작자가 이런 일로 눈물까지 흘리나?’
피식 웃은 카이는 푸른 바다와 따스한 햇살이 축복하는 두 남녀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