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71화 (71/441)

# 71

힐통령 071화

31장. 해저왕국, 아쿠아베라(2)

우웅. 우웅.

허공에 떠오른 반지는 카이의 심장 박동에 맞춰 진동했다.

왜 이제야 왔냐고, 기다렸다고.

반지의 울림이 전하는 소리에 카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쿠아베라에 잠들어 있던 성물은 성환(聖環) 페트라였구나.’

패트릭이 말했던 세 개의 성물.

그중 하나인 반지를 찾게 된 카이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일이 쉽게 풀리네. 성물은 찾았으니 이제 비늘만 구해서 돌아가면 되겠어.’

그때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반지와 카이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던 사이러스가 입을 열었다.

“잠깐, 잠깐. 수백 년 동안 잠들어있던 반지가 반응을 한다는 건…… 혹시?”

“예.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는 태양의 사제에 걸맞은 기품 있는 움직임으로 고개를 숙였다.

“과분하지만 패트릭 님의 뒤를 이어 태양의 사제직을 맡고 있는 모험가, 카이라고 합니다.”

“역시!”

사이러스는 희열에 가득 찬 표정을 짓더니 카이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사도시여, 마침 잘 와주셨습니다!”

“예, 예?”

사이러스의 급변한 태도에 당황한 카이가 슬며시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의 거력(巨力)을 벗어날 순 없었다.

‘뭐, 뭐야. 왜 이래, 불길하게…….’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카이에게, 사이러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제발 저희 왕국을…… 아쿠아베라를 구해주십시오!”

“……예?”

무언가 일이 꼬였다.

그 생각이 카이의 머리를 강타했다.

***

“그러니까…… 나가들의 공격이 매섭다고요?”

“나가들의 새끼들입니다. 부끄럽지만 저희의 힘으로는 그들조차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사이러스의 얼굴 위로 짙은 자괴감이 떠올랐다.

“혹시 알고 계십니까? 나가들이 저희 머메이드의 천적이라는 것을.”

“예, 그건 알고 있습니다.”

인어들의 고향에서 그와 관련된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던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인어들은 육체의 힘이 약하고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나가들은 자체적인 마법 저항력이 높고 육탄전에 뛰어나다고 했지.’

마법사 유저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들도 다름 아닌 마법 저항력이 높은 근접 클래스 유저였다.

데미지도 잘 박히지 않는 녀석들이 돌진 기술을 통해 접근을 하면 답이 없으니까.

“하지만 엘레느에게 듣기로는 도시 전체에 공간인식저해 마법 결계가 씌워져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실 그 부분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사이러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대로부터 계속 전승되며 발전한 저희 인어족의 마법은 대단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심해에 이렇게 밝은 도시 문명을 유지할 정도의 마법 수준이라면 절대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나가족이 크게 변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사실 여태까지는 나가족이 천적이라고 해도, 저희의 마법 실력으로 어떻게든 따돌리면서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맞붙었을 때 진다는 것이지, 도망을 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최근의 나가족은 뭔가가 이상합니다. 갑자기 성격이 포악해진 것도 그렇고, 힘이 말도 안 되게 강해졌으니까요.”

‘갑자기 성격이 포악해지고 힘이 강해졌다고?’

카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찌 된 일인지 카이가 거미의 숲에서 겪었던 일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만약 나가족 놈들이 정말 어둠의 정수에 물들어버린 것이라면…….’

성격이 포악해지고, 힘이 강해진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혹시 그들이 강해지면서 공간인식저해 마법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된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사실 그 부분이 제일 골치 아픈 부분이긴 한데…….”

사이러스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고, 꾸르륵. 입에서는 물거품들이 새어 나왔다.

“잠시 여길 봐주시겠습니까?”

사이러스의 손 위로 입체적인 지도가 펼쳐졌다.

그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던 카이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 설마 이게 아쿠아베라인 겁니까?”

“맞습니다. 아쿠아베라를 입체적으로 나타낸 것이죠. 혹시 이 부분이 보이십니까?”

사이러스가 가리키는 곳은 도시에서 제법 떨어진 절벽에 위치한 동굴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연신 조그마한 연기가 아쿠아베라 쪽으로 연결되는 중이었다.

“예, 보이네요. 그런데 저 연기 같은 건 뭡니까?”

“어느 날 갑자기 나가족이 손에 넣은 이상한 장치입니다. 저 장치에서 흘러나오는 파장이 저희 왕국에 씌워진 마법의 힘을 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물론 저희도 매일 마법의 강화에 힘을 쏟아붓고 있기에 도시의 위치는 그리 쉽게 발각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시간 문제다, 이 말씀이십니까?”

“정확합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카이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며 재차 질문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기로 아쿠아베라는 24시간 동안 이동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나가들을 무시하고 이동하는 건 불가능하나요?”

“물론 평소에는 계속해서 위치를 옮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5년에 한 번씩은 이동을 멈추고 힘을 보충해줘야 다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악재가 겹쳤군요.”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사이러스는 간절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선조들의 기록을 보면 태양신 헬릭의 사도들은 모두 강력한 힘을 갖춘 존재들이라고 했습니다. 부디 저 장치를 파괴하고 나가들을 쫓아주어 저희를 구원해 주십시오.”

“아…… 그게…….”

답답한 마음을 느낀 카이가 연신 뒷머리만 긁적였다.

‘손을 마주 잡았을 때 봤지만 사이러스의 레벨은 210이야.’

그가 인어족의 왕자인 것을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는 제법 강한 존재일 것이다.

물론 상대방은 나가족의 새끼들이라고 하지만, 못해도 레벨이 150은 될 터.

‘이건 내가 어쩔 수 있는 수준이 아니잖아.’

레벨 차이가 너무 높게 나면 데미지가 아예 들어가지 않거나, 몬스터가 모든 공격을 회피해 버린다.

한 마디로 카이는 도움을 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역시 성물을 모으는 건 200레벨이 넘고 나서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건가.’

패트릭이 엘프의 숲에 대해 언급했을 때 그 사실을 깨우쳤어야 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카이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인어 족은 크나큰 피해를 입을 터.

몰랐다면 모를까, 알면서도 이 상황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잠시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을 하던 카이가 입을 열었다.

“우선 성물을 먼저 받아도 될까요?”

“아, 물론입니다. 저희는 맡아놓았던 것뿐, 주인이 오셨으니 돌려드려야죠.”

자리에서 일어난 사이러스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성환 페트라를 카이에게 가져왔다.

가까이서 본 페트라는 연신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으며, 반지 한가운데에 정교한 태양이 조각되어 있었다.

고작 조각일 뿐이지만, 엄청난 장인이 조각을 했는지 정말로 태양을 마주한 것처럼 뜨겁다는 감정을 받을 정도였다.

“너무 아름다워요.”

“엘레느, 내가 언젠가 이처럼 비싼 반지도 꼭 사주리다.”

“어머, 크라포드. 분명 이 반지가 아름답긴 하지만, 전 크라포드가 준 청혼 반지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카이는 옆에서 꽁냥거리는 중년 커플을 무시한 채, 떨리는 손으로 페트라를 집어 들었다.

“아이템 감정.”

[아이템을 감정하기에 안목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봉인된 아이템입니다. 상급 레벨 이상의 감정 스킬이 필요합니다.]

‘쯧, 역시.’

혹시 이렇게 되지는 않을까 라고 생각 정도는 했었다.

자신의 예상에 따르면 성물들은 못해도 레전더리 이상의 아이템일 것이고, 착용 레벨도 높을 것이 분명하니까.

감정 스킬이 초급 4레벨인 카이가 건질 수 있는 정보는 정말 빈약했다.

[봉인된 태양의 반지, 페트라]

등급 : ???

착용 제한 : 레벨 200 이상, 태양의 사제 클래스 전용.

“으음……!”

정말이지 너무나도 빈약한 정보에 카이의 입에서는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적어도 등급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무리인가.’

게다가 성환 페트라가 요구하는 것은 중급도 아닌, 상급 감정 스킬이다.

‘상급 감정 스킬이 필요하다니…… 이건 제법 노가다를 좀 해야겠어.’

물론 대도시에 가면 돈을 받고 감정을 해주는 NPC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서 아이템을 감정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건 보통 물건이 아니야. 만에 하나라도 소문이 나는 일이 있으면…….’

거창하거나 자세한 소문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미드 온라인에는 조그마한 단서나 추측만 있어도 PK를 저지르는 미친놈들도 있으니까.

‘아마 마음 놓고 사냥도 하지 못하겠지.’

결국 자신이 감정 스킬 레벨을 올려서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다.

감정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려면 많은 아이템을 감정해 봐야 하는 법!

사이러스에게 고개를 돌린 카이가 입을 열었다.

“혹시 나가들의 새끼를 처치하는 데 시간제한이라도 있습니까?”

“음…… 사실 아직까지는 버틸 만합니다. 하지만 가능한 빨랐으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들을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물 속이라 그런지 움직일 때 너무 불편하기도 하고…….”

“아, 그 문제라면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이러스는 시종에게 무언가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시종이 가져온 것은 푸른 진주로 만들어진 장신구 세트였다.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엘레느였다.

“어머, 사이러스 님. 이건 혹시?”

“역시 엘레느는 알아보는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카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사이러스 님, 이 물건들은?”

“저희 왕실에서 보물처럼 여겨지는 물건입니다.”

“그, 그런 것을 제가 받아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천적으로부터 저희 백성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이 정도 가격은 싼 편이죠. 확인해 보십시오.”

사이러스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쳐다보던 카이는 조심스레 아이템들을 감정했다.

[인어의 사파이어 목걸이]

등급 : 레어(세트)

방어력 201

마법 저항력 187

수중에서의 움직임 보정 +20%

착용 제한 : 레벨 70 이상, 지능 100 이상.

내구도 37/100

[인어의 루비 팔찌]

등급 : 레어(세트)

방어력 174

마법 저항력 157

수중에서의 움직임 보정 +20%

착용 제한 : 레벨 70 이상, 힘 100 이상.

내구도 45/100

[인어의 에메랄드 반지]

등급 : 레어(세트)

방어력 152

마법 저항력 129

수중에서의 움직임 보정 +20%

착용 제한 : 레벨 70 이상, 민첩 100 이상.

내구도 28/100

“이건……!”

정보를 확인한 카이의 눈이 휘둥그렇게 뜨여졌다.

‘세트 아이템, 그것도 수중에서의 움직임 보정이 달려 있는 아이템이다!’

돌려 말하면 그것만이 유일한 장점이다.

하지만 물속에서의 움직임에 답답함을 느끼던 카이에게는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

게다가 세트 아이템은 아이템의 효과만 확인하고 섣부른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되었다.

칠흑의 놀 세트도 그랬지만, 진정한 가치는 바로 세트 효과에 있기 때문이다.

[세트 : 세 개의 보석]

인어의 보석 장신구 한 개를 장착할 때마다 모든 스탯 +5만큼 상승.

인어의 보석 장신구 한 개를 장착할 때마다 수중에서의 움직임 보정 5% 상승.

인어의 보석 장신구 한 개를 장착할 때마다 수중에서의 공격력 5% 상승.

‘대, 대체 뭐야, 이 사랑스러운 옵션들은!’

카이의 안색은 깊은 바닷속에서 환하게 빛날 정도로 밝아졌다.

착용 제한이 까다로운 만큼 세트 효과가 몹시 좋았기 때문!

이 말도 안 되는 세트 효과를 떠올리는 카이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과연. 일반적으로 이 세트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일반적으로 힘과 민첩, 지능을 동시에 올리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단언컨대 전체 유저의 1%도 안 될 것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카이처럼 선행 스탯을 통해 모든 스탯이 오르지 않는 이상, 이 아이템들의 진정한 효과를 모두 누리진 못한다는 소리다.

기껏해야 자신이 주력으로 올리는 스탯과 관련된 아이템만 착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난 세 개의 장신구를 모두 착용할 수 있지.’

엘레느와 크라포드를 이어주고, 선행 스탯 30개가 추가적으로 오른 카이의 스탯은 위엄을 제외하고 모두 100이 넘은 상태!

지금의 카이는 세 개의 보석 세트의 진정한 효과를 모두 끌어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모든 스탯 15개, 수중에서의 움직임 보정 15% 상승, 그리고 수중에서의 공격력 15% 상승이라…….’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카이에게 사이러스가 물었다.

“어떻게, 도움이 좀 된 것 같습니까? 인간분들이 사용하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아니요.”

세 개의 장신구를 공손하게 받아든 카이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드러냈다.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그것도 흘러넘칠 정도로요.”

현재 카이가 지닌 수중에서의 움직임 보정은 아쿠아베라를 발견한 자 칭호와 더불어 무려 105%!

정말 웃기지도 않지만, 이것으로 카이는 육지에 있을 때보다도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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