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72화 (72/441)

# 72

힐통령 072화

31장. 해저왕국, 아쿠아베라(3)

사이러스와 이야기를 마친 카이는 집을 나섰다.

한 발자국 뒤에서 그를 따라오던 크라포드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이제 어쩔 텐가?”

“저야 뭐…….”

카이는 꼬인 실타래처럼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수중에서의 움직임은 어느 정도 해결했다지만, 아직 나가들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우선 강해져야 할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졌다.

게다가 타르달의 비늘 찾기 퀘스트에는 30일이라는 시간제한까지 붙어있는 상태.

시간이 자신의 편이 아닌 이상, 철저하게 계획을 바탕으로 움직여야 했다.

‘우선 도시를 둘러보면서 정보들을 수집하자.’

아쿠아베라는 카이가 최초로 발견했으니 다른 유저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도시다.

당연히 주변의 던전이나 퀘스트, 상점의 물건까지 혼자서 독차지를 할 수 있다는 소리!

“우선 도시를 좀 둘러볼 생각입니다. 크라포드는요?”

“엘레느의 집에 가서 쉴 생각이네. 오늘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그런지, 제법 지치는군.”

말로는 지쳤다고 하지만, 크라포드의 얼굴은 어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밝아 보였다.

그 이유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재회 때문임을 알고 있는 카이는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고맙네. 하지만 언제라도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찾아와주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줄 테니까.”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하루가 지나기 전에 저에게 찾아와 주세요. 숨을 쉬기 위해서는 마법을 연장해야 하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해저 도시까지 와서 익사 엔딩을 맞이할 수는 없는 법!

고개를 끄덕거린 카이는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길거리로 들어섰다.

‘그나저나 확실히…….’

세 개의 보석 세트 때문인지 몸이 가볍다.

그 사실을 자각한 카이는 가볍게 바닥을 차고 위로 솟구쳤다.

어렸을 때 배웠던 자유형을 펼치자,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몸이 위로 쏘아졌다.

‘이거, 미드 온라인에서 수영 대회라도 열리면 1등은 따놓은 당상이겠어.’

수영 스킬도 없는데 이 정도의 속도라니!

반복적으로 수영을 해서 스킬이라도 생성되는 날에는 그야말로 물개가 따로 없을 것이다.

수영을 통해 높은 곳으로 올라간 카이는 한눈에 보이는 도시의 건물들을 쭉 훑어봤다.

‘외견만 봐서는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 그럼 우선…….’

순식간에 몸을 회전한 카이는 광장으로 보이는 공터로 내려갔다.

“음? 인간 아닌가?”

“인간을 보는 것도 몇백 년만이군.”

카이가 나타나자마자 사소한 관심을 보이는 인어들!

그들 중 한 무리에게 다가간 카이는 밝은 미소를 선보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탐험 중인 모험가, 카이라고 합니다.”

“험험, 아쿠아베라가 아름답기는 하지.”

“세계 어디에도 이 도시보다 아름다운 도시는 없을 거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인어들이 춤추지 않을 리가!

순식간에 그들의 경계심을 허문 카이는 난처한 표정으로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제가 인어들의 도시를 방문한 게 처음이라 그런지 길을 잘 모르겠네요. 실례가 안 된다면 설명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인어들은 독자적인 문자를 사용했기에, 건물들의 간판만 봐서는 도저히 뭐 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확인하는 건 비효율적이야.’

미드 온라인은 미지로 가득 찬 곳이다.

아무리 똑똑한 유저라고 해도 관련 스킬을 배우지 않은 이상,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다.

‘모르면 질문하라고 있는 것이 NPC지.’

얼굴에 철판을 깔고 NPC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면서 돌아다니는 것!

그것이 새로운 도시를 방문했을 때 유저가 취해야 할 기본적인 자세였다.

다행히 친절한 인어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나누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뭘, 외부인의 방문은 수백 년 만이라 오히려 반가웠네.”

“나중에 시간 나면 주점으로 오게! 인간 세상의 이야기도 듣고 싶으니 말이야.”

“시간이 나면 꼭 들리겠습니다.”

인어들과 헤어진 카이는 빠르게 헤엄쳐 무기점부터 방문했다.

“어서 오게.”

“물건들을 좀 둘러봐도 될까요?”

“마음대로 하게.”

무뚝뚝한 주인의 말을 뒤로한 카이는 무기점의 무기들을 살폈다.

‘흠, 대부분의 무기는 뼈로 만들어져있어. 아무래도 해저 도시라서 그런 거겠지.’

불을 사용할 수 없는 해저 도시의 특성상, 강철을 가공할 수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철제 무기는 바닷물에 금세 부식이 되어버리니 오랜 기간 사용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

그런 카이의 눈에 독특한 소재의 무기가 보였다.

마치 달빛을 머금은 것처럼 푸른색을 띠는 금속이었는데, 부식은커녕 지상의 강철 무기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만큼의 완성도와 예기를 지니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이 검은 무슨 금속으로 만든 겁니까?”

“음? 그야 물론 블루스틸일세.”

“블루…… 스틸이요?”

“심해에서만 채굴되는 금속 중 하나이지. 부식될 염려도 없으며, 물의 저항도 잘 받지 않아 무기로는 안성맞춤이네.”

“하지만 이 형태는 어떻게 잡은 겁니까? 불이 없으니 가공을 할 수 없었을 텐데요.”

“대장장이들이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육지에 나가서 몇 개씩 만들어오네.”

무기점 주인은 멍청한 사람이라도 보듯 카이의 위아래를 훑었다.

‘그, 그렇지. 그러고 보니 인어들은 마법에 능숙하다고 했지.’

당장 엘레느만 봐도 공간이동 마법을 통해 순식간에 이동을 하는 것을 보면, 무기를 만드는 이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터!

“한 번 휘둘러봐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게.”

주인의 허락을 맡은 검을 가볍게 좌우로 그었다.

“확실히…….”

물속에서 검을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물의 저항을 받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럼 깨우친 자의 롱소드라면?’

허리춤의 검을 꺼낸 카이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검을 휘둘렀다.

“으음…….”

인상이 찌푸려지며 절로 터져 나오는 신음!

카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물속에서 사용할 수 없겠어.’

검을 휘두르자 손목 쪽에 힘이 가해지며 강력한 물의 저항이 느껴졌다.

수중에서의 움직임이 보정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카이의 몸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장비한 칠흑의 원한 세트나 깨우친 자의 롱소드까지 물의 저항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결국 수중 전투를 위한 장비들을 새로 맞춰야 한다는 건데…….’

그것이 또 모두 돈이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카이는 눈 앞을 가리는 물거품들을 걷어내며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화폐는 어떤 걸로…….”

“그야 금일세.”

‘그나마 다행인가.’

인어들은 독자적인 화폐를 사용할까 싶어 걱정했지만 이들도 골드를 사용하는 모양!

적당히 가게를 둘러본 카이는 마음에 드는 검을 집으며 물었다.

“이건 얼마죠?”

“금 한 움큼일세.”

“……?”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독특한 방식의 가격에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 한 움큼이라고? 그게 대체 얼만데……?’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골드 하나를 꺼내 그에게 보여줬다.

“그럼 이 동전을 몇 개나 드려야 하나요?”

“거참, 자꾸 귀찮게 이것저것 물어보…… 음?”

귀찮다는 표정을 역력하게 드러내던 가게 주인이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카이가 들고 있던 골드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게 뭔가?”

“예? 그야 골드인데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이 정교한 세공은 대체 뭐냐고 묻는 것일세!”

가게 주인은 몽롱한 시선으로 골드를 들어 올리더니 이리저리 돌려봤다.

“오오, 이렇게 정교한 금 동전은 왕실에도 몇 개 없다고 들었는데…….”

‘아! 설마……?’

그의 반응을 보고 무언가를 깨달은 카이가 눈을 반짝였다.

‘그래. 이곳은 해저 도시. 불을 항상 피울 수는 없는 곳이야.’

무기야 종족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니 대장장이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육지에 나가서 만들어 온다고는 하지만, 과연 화폐는 어떨까?

‘지상의 국가들은 각자의 왕실 공방에서 골드를 찍어내지.’

그들이 자신들의 국가 상징이 달려 있는 골드를 생산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화폐란 거래를 더 편리하게 하도록 도와주고, 가치를 명확하게 매겨주기 때문이다.

‘인어들의 거래 방법은 너무 주먹구구식이야.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거래하진 않지.’

그건 인어들이 순수하기도 하지만, 아쿠아베라가 유일한 해저 왕국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래할 대상이 많지 않으니 자신들끼리만 거래를 하면 되었고, 자연스럽게 화폐를 주조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물속에서 화폐를 주조하는 건 어렵기도 하고.’

그렇다고 육지에 따로 골드 주조를 위한 공방을 만드는 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결국…….’

지금 이 도시에 이렇게 멋들어진 모양의 골드를 보유한 것은 카이 혼자라는 뜻!

타고난 눈치로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카이는 다분히 영업적인 미소를 지었다.

“어떠십니까?”

“크, 크흠. 제법 멋있군.”

“실례가 안 된다면 이 골드의 가치에 대해서 제가 제대로 설명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골드의 가치?”

눈을 깜빡이던 가게 주인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해보게나.”

“우선 이 골드의 앞면을 봐주십시오. 하늘을 상징하는 정교한 독수리가 조각되어 있지요?”

“오오, 이것이 독수리라는 새인가? 책에서 읽어 본 적 있네!”

인어들은 미드 온라인의 내륙 지방에만 서식하는 독수리를 볼 기회가 평생 없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가게 주인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흥분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뒷면에는 라시온 왕실의 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아! 이 건물이 인간들의 왕이 기거하는 장소였나?”

“예, 웬만한 마을과도 맞먹는 거대한 크기의 궁전이지요.”

“허어…….”

입을 헤 벌린 가게 주인은 이미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앞면에는 저 드높은 창공을 비상하는 독수리가! 뒷면에는 거대한 왕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일종의 예술품으로 치부해야 할 정도이지요.”

“동의하네. 확실히 아름답기는 해. 하지만…… 그래도 검의 가격은 깎아줄 수 없네. 그 동전 하나로는 절대 금 한 움큼의 값어치가 나오지 않아. 이 동전을 최소한 20개는 가져오게.”

‘20개면…… 20골드!’

고작 매직 등급의 검이 200만 원이라니!

카이는 말도 안 되는 바가지에 비명을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마음을 가라앉혔다.

‘저 돈을 곧이곧대로 낼 수는 없어.’

물론 카이의 지갑이 근래에 통통해진 건 사실이었지만, 고작 매직 등급의 아이템들을 세트로 맞추자고 수천만 원을 쓰는 미련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생각을 하자, 생각을…….’

머리가 뜨거워질 정도로 계산기를 두드린 카이는 돌연 여유로운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후우, 안타깝네요. 인어들은 모두 지적인 줄 알았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분이 계셨다니…….”

“뭐라고?”

가게 주인이 인상을 찡그리자, 카이가 손가락으로 동전을 튕겼다.

물의 저항을 받은 동전은 천천히 떠오르더니, 다시 천천히 떨어지며 손바닥에 떨어졌다.

그 행위로 무거운 분위기를 약간 해소시킨 카이가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카울이네.”

“그렇군요. 같은 카 씨로서 제가 좋은 정보를 하나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카이는 남들이 들으면 안 되는 정보라도 되는 듯, 주변을 훑어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은 제가 이 골드를 들고 있다지만, 제가 이 도시를 떠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야…… 아무도 들고 있지 않겠지?”

“아니죠.”

씨익 웃은 카이가 검지로 카울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바로 카울 씨가 이 골드를 들고 있으실 것 아닙니까?”

“그, 그렇군. 물론 거래가 성사되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자, 그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시겠지만 아쿠아베라에서는 절대 이렇게 정교한 동전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크흐흠, 인어들의 손재주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닌가?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만들 수 있네.”

카울이 살짝 불편한 심정을 내비쳤지만, 카이는 오히려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이거, 정말 실망이네요. 카울 씨야말로 드워프들의 손재주를 너무 무시하시는 것 아닙니까?”

“드, 드워프라니?”

카울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드워프들의 타고난 손재주는 모르는 종족이 없을 만큼 유명했으니까.

“설마 이 정도 되는 예술 작품을 인간들끼리 만들었다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죠? 왕실의 공방에서 근무하는 드워프들이 관리, 감독한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작품들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드워프들은 골드를 찍어내듯 주조하는 거푸집들을 관리, 감독하니까.

물론 골드는 24시간 자동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 그렇군…… 처음 봤을 때부터 아름답다는 생각은 했네.”

여기서 부정을 하면 자신의 안목이 낮음을 시인하는 꼴!

카울은 얼굴을 붉히더니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자, 그럼 드워프가 만든 이 예술 작품의 값어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끄응.”

한참을 고민하던 카울은 결국 체념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두 개만 주게나.”

‘됐다!’

말 몇 마디와 기발한 생각으로 가격을 무려 90%나 깎아버린 카이!

주먹을 불끈 쥔 그의 눈앞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깐깐하기로 유명한 아쿠아베라의 무기점 주인, 카울을 설득시켰습니다.]

[화술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재치있는 이야기와 말솜씨로 물건의 가격을 90%나 깎으셨습니다.]

[협상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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