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76화 (76/441)

# 76

힐통령 076화

32장. 될성부른 떡잎(2)

-그런데 언노운은 공격을 피하는 것밖에 못하나?

└레이드 보스 몬스터 상대로 맞대결을 누가 어떻게 해? 게다가 쟨 혼자라고. 절대 못 하지.

└되는데요?

└되는데요22.

└10:23부터 봐봐. 언노운이 하는데요33.

연신 도망만 다니던 언노운.

복싱으로 비유하자면 가드를 올린 채 연신 두드려 맞던 그가, 다짜고짜 스트레이트를 질렀다.

심지어 그 공격은 오크 로드에게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 사실 만으로도 언노운과 오크 로드의 결투를 볼 가치는 충분했다.

물론, 설은영처럼 게임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이들의 눈조차 피해갈 수는 없었다.

‘검술 공격은 통하지 않고 있어. 기껏해야 잘 만든 연출…… 하지만 그것을 고려해도. 제법.’

언노운이 오크 로드와 정면 승부를 펼친 것이 보여주기 위한 쇼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배짱과 그 와중에 모든 공격을 피하는 순발력, 판단력, 움직임.

그것들은 박수를 받아도 수백 번은 족히 받아야 마땅할 움직임이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건, 이 모든 것들이 고작해야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검은 벌이랑 붙었다!

-역시 언노운이다! 미쳐도 이렇게 제대로 미쳐야지!

-저번에는 붉은 주먹인지 뭔지 듣보잡이었는데ㅋㅋㅋ 갑자기 10대 길드ㅋㅋㅋㅋㅋ

└첫판이 이지 난이도인데 뜬금없이 둘째 판이 헬 난이도인 수준ㅋㅋㅋㅋㅋㅋ

-이거 근데 이길 자신은 있어서 달려드는 건가?

└보면 알겠지.

└뛰어든 걸 보니 안전장치쯤은 해뒀겠지.

오크 주술사와 검은 벌 길드 사이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예고 없이 그들 사이에 난입한 언노운.

그는 마치 양 떼 사이에 섞인 맹수처럼 난입한 즉시 뾰족한 발톱을 드러냈다.

-어! 놀 스켈레톤들이다!

-해골들 떴다! 너무 귀여웡!

놀 언데들에게 발목이 잡힌 검은 벌 길드원들.

그들이 다급히 쏘아 올린 마법 주문들은 허공을 수놓았고, 동시에 언노운의 두 발이 어지러이 움직였다.

펑, 퍼펑, 펑!

한 발,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모든 주문을 피해가며 여유롭게 진격해나가는 언노운의 포스는 가히 절대자와 비견될 만했다.

세계 10대 길드의 마법사들을 고작해야 조연, 혹은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압도적인 존재감!

-와…… 무빙 실화냐?

-진짜 매드무비 미쳤다…… 지금 저 구간만 무한 돌려보기 하는 중.

-제가 현직 랭커인데 저 무빙은 말이 안 됩니다. 이건 무조건 핵입니다.

└핵이었으면 영상을 이렇게 당당하게 공개하겠냐ㅋㅋㅋㅋ 운영자가 바로 확인할 텐데.

└방금 문의 메일 보낸 거 공지에 떴음ㅋㅋㅋ 페가수스가 해당 영상은 핵과 무관하다고 함.

└네 다음 입랭커.

전반부 오크 로드와의 싸움이 느릿느릿한 그라베(Grave) 템포였다면,

검은 벌, 오크 주술사와의 전투는 광속과도 같은 포르티시모(Prestissimo) 템포.

두 전투의 속도감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났다.

순식간에 검은 벌 길드원들이 모두 사망하고, 본격적으로 이어진 건 영상의 클라이맥스.

다름 아닌 오크 주술사와 서로의 공격을 주고받으며 이어지는 난타전!

-우오오오! 언노운 이 녀석, 뭔가 치졸한 놈인 줄 알았는데 상남자였잖아?

└이 말 하자마자 스킬 피함ㅋㅋㅋㅋㅋ

-저 칼날이 회전하는 스킬은 뭐지? 저번 영상에선 보여주지 않았던건데.

└오늘 보고 확신함. 저번에 실력을 전부 드러낸 게 아님. 단기간에 실력이 이렇게 늘어날 리가.

└그 말은 아직도 숨겨놓은 밑천이 있을 수 있다는 소리네?

└듣고 보니 좀 소름이다. 얼마 전에 쥐들의 왕국 랭킹 갱신됐을 때 언노운 레벨은 68이었음.

└그때랑 글렌데일 토벌대랑 날짜가 크게 차이 나지 않으니…… 이 영상 찍을 때도 비슷하겠네?

└60레벨 후반에 보스 레이드 몬스터 두 마리랑 검은 벌까지 몰살! 트리플 킬 달성!ㅋㅋ

영상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커뮤니티와 채팅창은 언노운의 이야기로 도배가 되었다.

심지어 영상을 2회, 3회차까지 보며 언노운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난 상황!

“어떠십니까?”

보이드는 마치 시험에서 100점을 맞고 부모님의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물었다.

하지만 언노운의 신작은 그가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조금, 아니 많이 부족했다.

“재미있네.”

“……그게 답니까?”

“흥미롭고.”

“아니, 그런 단촐한 감상 말고요.”

“뭐가 더 필요해?”

설은영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보이드를 지그시 노려봤다.

이에 어이가 없어진 보이드는 제 볼을 꼬집어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아야, 아픈 거 보니 꿈은 아닌데…… 저기 마스터. 얘 영입 안 하세요?”

“영입?”

눈을 몇 차례 깜빡인 설은영은 영상이 끝나 흑색으로 가득 찬 화면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언노운의 영입은 없어.”

“……대체 왜죠?”

보이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인재를 좋아하는 설은영이 이 정도의 원석을 지나치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으니까.

“저번에 언제였지? 아! 세계 10대 길드에서 유망주 프로젝트 돌리고 있다는 거 확인하셨을 때! 그때 말씀하셨잖아요? 저희도 유망주 팀 꾸리겠다고. 언노운 정도면 유망주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원석인데요?”

“물론 언노운의 센스는 인정해. 쇼맨십도 강하고. 스타성도 있어.”

“그런데요?”

“천화의 이름을 달기에는 부족해.”

단호한 설은영의 말투에 보이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혹시 레벨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마스터, 혹시 처음 유하린을 만났을 때 기억나십니까? 그때 유하린의 레벨은 15였거든요? 그런데 영입 못 해서 안달 나셨었잖아요?”

“말 똑바로 해. 난 안달 내지 않아. 그리고 유하린이라고?”

영입에 실패한 대상 중 가장 아끼는 대상을 거론당한 설은영은 약간 화난 음성으로 보이드를 꾸짖었다.

“비교할 걸 비교해. 유하린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마스터피스였어. 이미 완성되어있는 상태였다고. 그녀가 랭커가 될 거라는 건 어차피 기정사실이었고. 중요한 건 몇 위까지 올라가느냐가 문제였지.”

잘될 줄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1위까지 올라갈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그녀가 초보자 필드에서 두각을 나타냈을 때 좀 더 크게 배팅해 볼걸…….

그 생각은 항상 설은영의 머릿속을 맴돌며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언노운의 플레이에 명확한 한계점이 보인다는 거야.”

“아…… 역시 전투 스타일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

그에 대한 바는 보이드 또한 느끼고 있는지, 그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설명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공격이 너무 단순해요. 상대의 공격을 읽고 피하는 재능은 압도적이지만…….”

“공격력도 빈약해. 척 보기에도 기사 클래스 같은데, 60레벨 후반에 겨우 저 정도 실력을 쌓았다? 재능은 있을지 몰라도 노력은 안 하는 스타일이겠지. 본인의 재능에 삼켜진 전형적인 케이스야. 저대로는 잘돼 봐야 랭킹 1,000위 전후에서 놀 거야.”

“윽…….”

설은영의 쓰디쓴 혹평에 보이드가 찔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가 보기에도 언노운의 재능은 상당했지만, 그건 루키의 기준으로 봤을 때였다.

‘60레벨 후반이면…… 솔직히 초보자 티는 벗었다고 봐야지.’

언노운이 게임 플레이를 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정도 레벨에 저 정도 재능이라면…….

‘음, 그래도 내 기준에서는 여전히 상위권이지만.’

슬쩍.

보이드는 바늘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설은영의 새하얀 피부를 쳐다봤다.

‘마스터의 성에 찰 정도는 아닌가 보군.’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보이드의 눈빛을 읽은 설은영은 대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할 말 있으면 해.”

“아뇨. 뭐 할 말이라기보다는…… 그래도 미래는 모르지 않습니까? 저만해도 게으르잖아요?”

“넌 재능이 압도적이잖아.”

“그, 그렇게 칭찬하셔도 나오는 건 없는데요, 아가씨…….”

“마스터.”

보이드의 입꼬리가 순식간에 씰룩거렸다.

그의 말도 맞고, 설은영의 말도 맞았다.

기본적으로 보이드라는 사람은 빈둥대기를 좋아하는 글러 먹은 인간이었지만, 게임에 대한 재능은 압도적이었고, 특히 마법이라는 개념과 놀랍도록 잘 어우러졌으니까.

“크흠. 마스터. 그래도 언노운의 경우는 뭐랄까…… 성장폭이 되게 크단 말이죠. 첫 번째 영상이랑 두 번째 영상에서의 실력 차이도 정말 말도 안 되거든요.”

“첫 번째 영상 내놔.”

“잠시만요…… 여깄네요. 저장해 놓은 거.”

곧장 보이드가 띄운 첫 번째 영상을 시청한 설은영이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늘었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았지.”

“만약 다음번 신작이 올라왔을 때 그 단점을 극복한다면요?”

보이드의 질문에 골똘히 고민을 하던 설은영이 입을 열었다.

“언노운과 검은 벌. 지금 이 두 개를 저울 위에 올리면 무게 추는 한쪽으로 기울어.”

“당연히 검은 벌 쪽이겠죠?”

“그래. 검은 벌 길드와 전면전을 벌이는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품을만한 가치? 없어.”

“하지만 만약 새로운 영상에서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면요?”

“자세한 건 영상을 봐야겠지만, 내 마음에 들 정도의 재능을 보여준다면…….”

설은영이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리며 보이드를 노려봤다.

결국 자신이 이 말을 해야 하냐고, 그런 눈빛을 보낸 그녀는 마침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때는 데려와야지. 천화의 이름을 달 수 있는 건 최고뿐이니까.”

“그 최고라는 천화는 세계 10대 길드에 들지도 못했는데…….”

“뭐?”

“아뇨. 혼잣말입니다. 혼잣말.”

어색한 웃음을 남긴 보이드는 묘한 기대가 섞인 눈빛으로 흑색 화면을 쳐다봤다.

‘난 최선을 다했다. 언노운.’

한 번쯤은 같이 일해보고 싶은 재미있는 사람.

보이드는 언노운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와, 이번 영상 대체 뭐냐?

-빨았다. 언노운이 약 한 사발 거하게 빨고 사고 쳤다!

-레이드 보스 몬스터, 무려 1+1 행사 중!

└거기다가 검은 벌 녀석들은 특별 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커뮤니티의 유저들은 폭발했다.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지금 온갖 게시판과 채팅창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유저들을 쳐다보던 카이가 중얼거렸다.

“……진짜 화끈하게 터지네.”

멍한 표정으로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후원금 항목의 숫자가 십만 단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업로드한 지 고작 두 시간 만에 대체 얼마가 들어온 거야?’

카이가 이번 영상을 편집하기 위해 지불한 비용은 무려 500만 원.

하지만 그 비용은 업로드 개시 후 23분 만에 모두 회수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두 배에 달하는 1,000만 원이라는 돈이 23분.

그러니까 사람들이 영상을 한 번 시청한 이후에 즉각적으로 들어온 것이다.

‘참교육 영상 때의 데이터를 토대로 계산해 보면…….’

첫 작품은 볼품없는 편집 실력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900만 원이라는 돈을 그의 손에 안겨주었다.

심지어 오늘 아침까지도 후원금이 몇만 원씩 계속 들어오던 중이었고.

그렇다면 이번 죽음의 술래잡기 영상은?

‘못해도 수천, 아니, 억까지는 넘볼 수 있겠어.’

이쯤 되니 카이에게도 살짝 욕심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스폰서 제안이 쪽지도 굉장히 많은데…….’

참교육 영상 때 이후로 쌓인 쪽지만 무려 2천 통이 넘었다.

개중에는 대장장이나 재봉사들이 보낸 쪽지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장비를 후원해 줄 테니 그것들을 입고 영상을 찍어줄 것을 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카이는 그 쪽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금 내 장비도 꿇리지는 않거든.’

굳이 그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애초에 연락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정체가 발각될 위험도 커져.’

지금 언노운인 자신과 다이렉트로 연락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바로 아리스라 불리는, 인터넷 방송인 하나만이 자신의 가상 메시지 아이디를 알고 있다.

다행히 그녀는 인터뷰 날짜를 정하면 말해달라는 말 이후로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다.

카이로서는 정말 다행인 셈.

‘귀찮게 하지 않아서 좋아.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녀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접촉은 피한다.’

고개를 돌린 카이의 시야로는 길드 쪽에서 온 쪽지들도 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언노운의 길드 가입 권유가 주목적이었다.

개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국내 길드들도 있었다.

‘물론 아직 10대 길드처럼 덩치 큰 곳에서는 없지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쪽지들은 바로 스폰서 제안을 하는 곳들이었다.

주로 발신자는 기업이나 스트리밍 사이트였다.

개중에는 아메리카TV나 티위치, 뮤튜브 같은 곳도 있었다.

‘이 중에서 한 곳과 계약을 하면 벌어들이는 돈은 더 많아질 거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주기적으로 영상을 공급해줘야 한다.

잠시 고민을 하던 카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관두자. 돈이 그리 급한 것도 아니니까.’

강압적으로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분이 자신의 목을 조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편하게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자신이 생각해도 영상이 잘 뽑혔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야말로 언노운이 신작을 들고 나타나는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 취재도 더 들어왔네.’

[안녕하세요, TBM방송국입니다.]

[BJ아리랑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언노운 님과의 인터뷰를…….]

[게이머들의 채널, 온게임즈입니다…….]

…….

이번에는 개인 방송인뿐만 아니라, 케이블 방송국에서도 쪽지를 보낸 상태!

그것들을 주욱 훑어보던 카이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나 자신을 과시할 때가 아니야.’

지난번에 참교육 영상을 올린 후에도 느낀 감정이다.

더욱더 발톱을 감추고 힘을 키워야 할 때.

하지만 그때보다는 더.

고지가 가까워졌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하지만 조금 더…… 아직은 부족해.’

카이는 갑자기 타오르는 갈증을 느꼈다.

단순히 목이 마르다는 것이 아니었다.

이건 강함에 대한 욕구였다.

게임의 정상에 선 이들과 나란히 경쟁할 수 있는, 압도적인 솔로 플레이어.

카이는 그러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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