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힐통령 080화
34장. 짜투리 시간의 활용법
[나가족의 왕자, 하카스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1,472,000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15개 획득했습니다.]
[나가족의 왕자인 하카스를 단독으로 처치했습니다. 명성이 17,000 증가합니다.]
[스페셜 칭호, ‘나가족의 원수’를 획득했습니다.]
“후우.”
이제는 제법 자주 봤기에 꽤 무덤덤한, 하지만 여전히 가슴 한편을 설레게 만드는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경험치 바가 초반이었는데 레벨이 세 개나 더 오르다니…… 하카스. 당신은 대체……!’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카이의 신형은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쏴아아아아.
공략이 완료되는 순간 던전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물이 어디론가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후아.”
게임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호흡이라는 것을 해본 카이는 상쾌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데, 그쪽은 뭘 남기셨을까나?’
비록 지금은 폴리곤 덩어리가 되었다지만 하카스는 생전에 나가족의 둘째 왕자였던 몸!
지니고 있는 아이템도 대단할 것이 분명했다.
깡!
바닥에 소환된 상자를 발로 힘껏 차자 뚜껑이 열렸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 안쪽을 들여다본 카이의 표정이 환해졌다.
녹색으로 반짝이는 커다란 비늘 뭉치와 삼지창, 그리고 금으로 만들어진 액세서리들!
“비늘을 남기셨네.”
[하카스의 비늘x100]
등급 : 유니크
나가 왕족만이 지니고 있는 단단하고 아름다운 비늘입니다. 장비로 가공할 시 높은 마법저항력이 부여된 장비가 제작됩니다.
‘이 정도면…….’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던 하카스가 지니고 있던 비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충분하다.
잠시 견적을 뽑아본 카이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럭저럭 만들 수 있겠어. 세트 아이템.’
안 그래도 슬슬 방어구를 바꿔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칠흑의 원한은 분명 좋은 세트 아이템이지만, 착용 제한 50레벨의 방어구.
‘이제 내 레벨도 88이니 슬슬 방어구 물갈이를 해줄 때가 되긴 했어.’
미드 온라인에서 방어구란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장비의 등급이나 종류에 따라서는 플레이어의 실력을 100%,
혹은 그 너머까지 이끌어내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높은 성능의 장비는 플레이어의 실력을 이끌어내지만, 반대로 낮은 성능의 장비는 플레이어의 발목을 잡는다.’
카이 같은 경우가 후자에 속했다.
지금까지는 압도적으로 뛰어난 칠흑의 원한 세트에 힘입어 아슬아슬하게 버텨왔다.
하지만 이제 90레벨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카이는 새로운 장비가 필요함을 느꼈다.
‘사람들이 괜히 수백, 수천만 원씩 지르는 게 아니지.’
더 강해지기 위해서, 자신의 실력을 더 높이기 위해서 고급 장비를 구매하는 것이다.
카이는 자신이 입고 있는 블루스틸 장비를 흘깃 쳐다봤다.
‘그렇다고 블루스틸 장비를 지상에서 사용하기는 좀 그렇고.’
블루 스틸 장비는 온전히 수중에서의 전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태.
물론 세 개의 보석 장신구 세트는 지상에서도 계속 사용하겠지만, 방어구는 아니었다.
‘이 비늘을 들고 오랜만에 솔리드에게 찾아가야겠어.’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대장장이는 다름 아닌 그였으니까.
게다가 자신에 대한 호감도도 높은 상태이니 좋은 품질의 장비를 만들어 줄 것이 분명했다.
“다음 물건은 삼지창인가.”
하카스가 사용하던 삼지창은 적당한 레어 아이템이었다.
‘삼지창이면 창술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사용하는 무기이니 적당한 값에 팔리겠어.’
다음으로 살펴본 건 금으로 만들어진 장신구들.
하나같이 예술품의 일종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들뿐이었다.
‘그렇군. 이곳은 깊은 심해니까 골드 주화 대신 이걸 보상으로 넣어준 거구나.’
생각을 마친 카이는 마지막으로 상자 안의 조그마한 구슬을 집어 들었다.
“역시 있구나. 어둠의 정수 조각.”
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물의 현자 타르달이 설명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 퀘스트의 제한 시간은 아직 일주일도 더 남은 상태.
불사 상태인 지금 퀘스트를 완료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 우선 장치부터 파괴할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카이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이건가?”
보스방의 한쪽 벽면을 모두 차지한 거대한 마법진!
방에 물이 가득 차 있을 때는 미처 눈치를 채지 못했다.
하지만 물이 모두 빠져나간 지금, 마법진이 새겨진 벽면은 누구도 지나칠 수 없을 만한 인상을 강렬하게 내뿜고 있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이것이 아쿠아베라의 위치를 파악하는 장치겠지.’
예상이 맞는지, 아닌지는 확인해 보면 될 일!
벽 앞으로 다가간 카이는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았다.
콰드득!
벽이 절반으로 갈라지자 빛을 잃어버리는 마법진.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쿠아베라의 위치를 탐색하던 마법진이 파괴되었습니다.]
‘맞구나.’
이걸로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카이는 새롭게 얻은 칭호의 효과를 살펴봤다.
[나가족의 원수]
등급 : 스페셜
내용 : 고귀한 혈통을 지닌 나가를 처치한 모험가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탯 +5.
나가족들로부터 항상 최상급의 어그로 수치를 획득.
나가족들을 상대할 때 공격력 5% 상승.
수중에서의 움직임 보정 +50%.
(이 효과는 칭호를 착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좋네.’
역시 165레벨의 보스 몬스터가 뱉어낸 스페셜 칭호!
나가족들과 원수가 되었다지만, 그건 하카스를 해치운 순간 예견된 미래였다.
‘나가들은 이제 나만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든다는 소리인가.’
큰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곧 아쿠아베라를 떠나면 나가들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몬스터니까.
“그럼 바로 움직일까.”
카이가 향한 곳은 아쿠아베라가 아닌, 육지였다.
***
남은 불사 상태는 사흘하고 한나절 정도.
카이는 던전을 돌면서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대체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카이는 먼저 시간을 투자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했다.
그것이 각각 레벨과 돈, 명성, 그리고 스탯이었다.
‘하지만 레벨은 언제든지 올릴 수 있고 돈은 충분해.’
그러한 이유로 그 두 가지는 탈락.
남은 것은 명성과 스탯의 결승전이었다.
‘사실 검은 벌 녀석들 기를 한 번 눌러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카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노운의 명성은 올라가겠지. 하지만 동시에 다른 곳의 경계심도 올라간다.’
세계 10대 길드의 저력은 절대 개인이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카이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마찬가지.
유저 하나가 수백, 수천 명의 플레이어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게임 따위는 없다.
카이는 훗날 자신이 검은 벌을 상대하게 될 때도, 정면에서 전면전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유리한 건 개인이야. 난 그들이 쌓아 놓은 명성에 금이 가게만 하면 성공이니까.’
철저한 소규모 게릴라전.
그것이 개인이 길드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발악이자 전쟁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검은 벌 놈들은 지금 당장 날 찾을 수도 없어. 괜히 명성 좀 챙겨보겠다고 녀석들을 건드리면…….’
오히려 도화선에 불을 지피는 격!
게다가 자신이 위험하다는 걸 다른 길드들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검은 벌이 언노운에게 털렸을 때는 모두 웃음을 터뜨리던 길드들.
그들은 그 사건을 단순 해프닝으로 여겼고 검은 벌의 무능과 방심을 손가락질했다.
그런데 만약 같은 일이 다시 한번 일어나고, 불사 상태를 앞세운 언노운이 검은 벌을 힘으로 찍어누른다면?
‘똘똘 뭉치겠지. 그게 집단의 속성이니까.’
그렇게 견고하게 모인 철옹성 같은 길드는, 바늘이 들어갈 틈조차 남겨놓지 않을 것이다.
결국 장기적으로 봤을 땐 카이에게 독이 되는 셈!
‘그렇다면 나는 이 시간 동안 스탯이나 벌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스탯을 얻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다름 아닌 스페셜 칭호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확실한 방법이 아니다.
‘만약 내가 대단한 업적을 세운다고 해도, 먼저 선수 친 놈이 있으면 말짱 꽝이지.’
결국 카이에게는 100% 스탯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만약 누군가 인생에 그렇게 편한 길이 있겠냐고 다그친다면, 카이는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있는데요.”
라고.
***
“후욱, 후욱.”
가쁜 숨을 몰아쉰 카이는 주변에 널브러진 폴리곤 덩어리들을 발로 차며 자리에 누웠다.
그런 그의 시야로 떠오르는 알림창.
[순위표에 기록될 이름을 입력해 주십시오.]
“……Unknown.”
지친 음성으로 대꾸한 그는 거친 숨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뱉어냈다.
동시에 다시 한번 알림창이 주르륵 떠올랐다.
[불사(不死)스킬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더 이상 불사의 가호가 당신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휴우, 까딱하면 죽을 뻔했네.”
마치 팽팽하게 당기던 한쪽 고무줄을 놓은 것처럼, 긴장감이 탁하고 풀려버렸다.
지난 사흘 동안 인스턴트 던전 5개를 쉬지도 않고 주파한 카이.
그는 시야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사냥이고 뭐고 일단은 잠부터 푹 자야겠어.’
아무리 카이가 게임 폐인이라지만, 사흘 연속 19시간 이상씩 게임을 하는 건 무리였다.
더군다나 미드 온라인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이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플레이어가 직접 몸을 움직이고 사고해야 하는 게임.
카이가 이렇게 극심한 피로를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옛말에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했던가.
카이는 현실의 건강을 제물로 바치는 대신, 게임 캐릭터의 스탯은 큰 폭으로 올릴 수 있었다.
[인스턴트 던전의 일인자]
등급 : 스페셜
내용 : 인스턴트 던전의 솔로 랭크에서 1위를 한 플레이어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던전 랭크에서 1위를 한 기록 하나당 모든 스탯 5 상승.
(이 효과는 칭호를 착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그 비밀은 바로 쥐들의 왕국 솔로 랭크 1위를 기록하고 획득했던 스페셜 칭호!
각종 인던 1위를 할 때마다 모든 스탯이 다섯 개씩 상승하는 효과를 지닌 칭호다.
당연한 말이지만, 카이는 이 칭호로 인해 지난 사흘간 모든 스탯을 25개씩 상승시킬 수 있었다.
‘저번에도 이렇게 쉬웠으면 좋았을 텐데…….’
쥐들의 왕국을 클리어할 때는 카이도 커다란 리스크를 지고 있었다.
보스 런이 동반하는 죽음의 위협은 그조차도 두려웠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그 양상이 많이 달랐다.
그저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보스 방에 도착한 뒤 보스를 때린다!
그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을 통해 카이는 대기록을 만들어냈다.
‘미드 온라인 서비스가 종료될 때까지 아무도 못 깰 거 같은데?’
2위와의 기록 차이를 적게는 2시간에서 많게는 3~4시간까지 단축시킨 카이!
그는 이 기록이 절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제 곧 힘이 신성 스탯과 비슷해진다.’
불사의 가호가 끝난 지금, 스탯의 총량은 10%나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의 힘 스탯은 316. 신성 스탯이 330으로 제법 높았다.
‘이제 근접 클래스와의 전면전도 두렵지않겠어.’
신성 폭발을 사용하지 않고도 동 레벨 전사와 힘 스탯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카이는 각종 사기 스킬로 무장을 한 상태!
올힘 사제를 육성한 이후, 가장 거대한 자신감이 카이에게 깃들었다.
“그럼 우선…….”
말을 이으려던 카이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사용자의 수면 상태를 확인하였습니다.]
[사용자의 접속을 안정적으로 종료합니다.]
카이는 그대로 이틀을 쉬지 않고 내리 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