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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통령 태양의 사제-81화 (81/441)

# 81

힐통령 081화

35장. 인어족의 친구

“이런……!”

일어나서 시계를 쳐다본 한정우는 기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쿵!

“끄아악……!”

캡슐에 머리를 부딪쳤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머리를 싸매고 화장실로 뛰어간 한정우는 지난 이틀 동안 씻지 못한 몸부터 씻었다.

‘그리고 먹는다!’

빠르게 빵 하나를 구워 고소한 크림치즈를 바른 뒤 입안에 쑤셔 넣는다.

일련의 행동을 바쁘게 수행하는 한정우의 머릿속을 채운 생각은 단 하나였다.

‘난 대체 몇 시간이나 잔 거야?!’

타르달의 퀘스트.

그 제한시간은 바로 오늘 오후까지.

설마하니 이틀 동안 잠들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알람을 맞춰놓지 않은 게 실수였다.

‘아, 아니지. 당황하지 말자.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으니까.’

초조하게 움직이면 될 일도 안 되는 법!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인지한 한정우는 여유를 되찾고 우선 게임에 접속부터 했다.

‘우선 바로 아쿠아베라로 간다.’

그곳에 가서 나가들의 산란장을 정리했음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그리고 겸사겸사…….’

카이가 슬쩍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는 마법의 소라고둥을 쳐다봤다.

만약 이 아이템을 영구히 소유할 수만 있다면, 자신은 한 달에 한 번 절대자가 될 수도 있다.

“귀환.”

사이러스가 챙겨줬던 귀환 구슬을 사용하자 카이는 순식간에 아쿠아베라로 이동되었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하카스의 비늘을 꺼내 가방에 액세서리처럼 매달아 놓은 뒤,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당당하게 길거리를 헤엄쳐 나갔다.

그런 카이를 쳐다본 인어들이 쑥덕쑥덕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 인간은 갑자기 왜 어깨에 저렇게 힘이 들어가 있지?”

“글쎄…… 어? 잠깐만, 저 가방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비늘은 설마……?”

“허억! 부, 분명히 전장에서 본 적이 있어! 저 크고 단단한 녹색 비늘은 하카스의 것이다!”

“뭐? 하카스라고?!”

거리 인어들의 눈빛이 확 돌변했다. 존경심과 감탄이 한데 어우러진 눈빛!

하지만 그들이 드러내는 가장 거대한 감정은 다름 아닌 감사였다.

‘후후, 역시 홍보 효과는 확실하군.’

주변을 둘러보던 카이가 남들 모르게 진한 웃음을 흘렸다.

일부러 하카스의 비늘 몇 개를 가방에 달아놓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알아보라고 달아놓는 거지!’

실제로 그는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인어 하나가 카이를 향해 빠르게 헤엄쳐왔다.

카이는 다급하게 몸을 움직이며 그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음? 그건 또 무슨…… 혹시 반갑다, 라는 인간식 표현인 건가?”

꼬르륵, 꼬륵…….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카이!

그의 입과 코에서 연신 물거품이 새어나가자, 인어가 부랴부랴 마법을 걸었다.

“이 사람아! 숨을 못 쉬면 마법을 걸어달라고 말을 했어야지!”

“허억, 허억. 그게 물 속이라서…… 마법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막힌 숨을 토해낸 카이는 자신에게 다가온 인어를 쳐다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무기점은 어쩌시고 이 시간에 거리에 계세요?”

그렇다.

그는 바로 무기점 주인인 카울!

지난날 카이에게 30골드를 받고 블루 스틸 방어구를 판매한 인어였다.

“커엄, 컴.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네. 자네…… 정말로 하카스를 해치운 건가?”

흥정을 할 때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진지한 눈빛과 표정.

이에 짓눌린 카이는 저도 모르게 대꾸했다.

“예, 보시다시피요.”

가방에 달린 비늘이 잘 보이게끔 어깨를 내미는 카이.

비늘을 확인한 카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정말이구만.”

“이게 모두 카울 님이 판매해 주신 훌륭한 무기…… 어?”

말을 잇던 카이가 돌연 당황했다.

그는 인어도 눈물을 흘리면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크흑, 흐윽…….”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지, 나이도 잊은 채 끅끅거리며 울음을 토해내는 카울!

그가 울음을 그친 것은 10여 분이 흐른 뒤였다.

“하아…….”

마음속 응어리를 모두 토해낸 듯.

상쾌하다는 표정을 지은 카울.

흥정할 때 그렇게 깐깐했던 그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미소를 선보였다.

“자네는 혹시 내가 무기점을 운영하는 이유를 아는가?”

“……모르겠습니다.”

“아들을 잃었네. 하카스 녀석이 이끌던 군대와 부딪치던 날이었지…….”

그는 카이의 어깨춤에 매달린 블루 스틸 검의 손잡이를 뽑더니 검날을 어루만졌다.

“싸우던 도중, 무기가 부러져서 그대로 나가의 삼지창이 심장에 박혔다고 하더군.”

“그, 그런…….”

“물론 나도 알고 있네. 내 아들이 절세의 보검을 들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장에서 살아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걸. 하지만 말일세. 만약, 만약 내 아들이 좋은 무기를 지니고 있었더라면, 더 내구력이 뛰어난 검을, 방어구를 입고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살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더군.”

“그럼 혹시 무기점을 운영하시는 이유가…….”

“내 아들 같은 인어가 나오지 않기 위함일세.”

카울은 카이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인어족의 무기가 나가족에게 부러지지 않도록 품질을 검사하기 위함이지.”

어느새 주변에 몰려든 인어들이 카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를 전했다.

“나뿐만이 아닐세. 여기 이 사람들 전부 마찬가지야. 가족, 연인, 친구들을 나가족에게 잃어버린 이들이지. 우리 모두가 같은 종류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어.”

카이는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수백이나 모여든 인어들.

촉촉한 눈시울은 마치 전염이라도 되듯, 주변으로 계속해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꾸벅!

고개를 푹 숙인 카울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내 아들의 원수를 갚아줘서 고맙네!”

“제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남편의 복수에…… 흐윽…… 감사드려요.”

…….

여기저기서 귀를 왱왱 울릴 정도의 감사 인사가 질서 없이 터져 나온다.

평소라면 인상을 찡그렸겠지만, 카이는 자그마한 소리조차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인어들이 밝은 미소 아래 숨겨 두었던 그들의 아픔과 상처가 언어를 통해 카이에게 전해졌다.

‘……다들 마음고생이 이렇게 심했구나.’

왜 안 그렇겠는가.

나가라는 주적이 항시 자신들의 일족을 죽이기 위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위험천만한 상황.

게다가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고통은 종족을 떠나 엄청난 슬픔이다.

‘하지만 난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영웅은 아니야.’

애초에 카이가 남을 돕기 시작한 건 딱히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

남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는 몰라도,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의 상처를 치료해 준다면.

지금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시원하게 날려줄 수만 있다면.

‘뭐라고 불리든 딱히 상관은 없어.’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렇군.”

웅장한 목소리가 바다를 뒤엎자 순식간에 지느러미를 굽히는 인어들.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던 카이의 시야로 익숙한 존재가 들어왔다.

‘사이러스랑 흰 수염 사범. 그리고…….’

거대한 상어의 지느러미와 체구를 지닌 인어.

머리 위로는 화이트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왕관을 쓰고, 화려한 의복을 입고 있다.

카이는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유추해낼 수 있었다.

‘아쿠아베라의 국왕, 카리우스다.’

높은 곳에 떠 있던 그는 천천히 헤엄을 치며 카이에게 다가왔다.

그가 내려오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인어들이 쫙 갈라지며 길을 만들었다.

“인사가 늦어진 점, 미안하게 생각하네. 도시의 위치가 드러나지 않게끔 계속 마법을 펼치고 있어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네.”

“아…… 그러셨군요.”

왜 그동안 그를 볼 수 없었는지 납득한 카이는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위엄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조각해 넣은 듯한 단단한 얼굴.

그는 절대 타협이라는 것을 하지 않을 것 같은 무거운 인상을 풍겼다.

“아쿠아베라의 국왕인 카리우스라고 하네. 그대가 당대의 사도이자 이번에 우리 일족을 위험에서 구해낸 모험가, 카이가 맞는가.”

“맞습니다.”

“…….”

그 말을 듣는 즉시, 카리우스는 다른 인어들과 마찬가지로 지느러미를 굽혔다.

동시에 3미터에 가까워서 올려봐야 했던 그의 눈이 카이와 비슷한 위치까지 내려왔다.

“폐, 폐하!”

“아버님!”

“조용.”

손을 들어 주변 인어들의 반발을 물린 카리우스가 담담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일족의 은인이자, 숙원을 이뤄주신 영웅이시다. 이 정도 인사는 당연한 것. 소란피우지 말거라.”

부담스러울 정도로 정중한 인사를 보낸 카리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어들을 둘러봤다.

동시에 성악가를 부르듯, 웅장하면서도 낮은 중저음이 바다로 울려 퍼졌다.

“짐의 백성들이여, 지금 이 시간부로 모험가 카이는 인어족의 친우임과 동시에 형제요, 가족임을 밝힌다. 비록 종족은 다르지만 그는 우리가 위기를 겪을 때 두말없이 도와준 고마운 은인, 이에 우리 인어들도 그가 위험에 빠졌을 때 두 손을 거들 것임을 지금 이 자리에서 선언하노라.”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

카이가 입술만 뻐끔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 자리의 모든 인어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왕의 명령을 따르겠나이다!”

“왕의 명령을 따르겠나이다!”

“갑자기가 아닐세.”

카리우스가 카이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자네는 그만한 대우를 받을 만한 모험가일세. 자네가 아니었다면 우리 인어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겠지.”

“그건…….”

카이는 그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만약 카이가 나가 족의 장치를 파괴하지 못했다면, 결국 아쿠아베라의 위치는 발각되었을 터.

그 뒤에 일어날 일은 뻔했다.

‘일방적인 학살이 이어지겠지.’

하카스와 다른 왕자들, 그리고 나가족의 왕이 이끄는 군대들이 아쿠아베라를 침범한다.

이어지는 것은 일방적인 학살.

카이가 나서지 않았다면 그것이 인어족이 맞이했을 결말이다.

“인어족을 대표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네. 자네 덕분에 이제 나가들은 우리의 위치를 알아차리지 못하네. 덕분에 이동을 해도 우리 뒤를 쫓아오지는 못하겠지. 이제는…… 안전한 곳으로 갈 생각이네.”

“기왕이면 인간들의 나라와 가까운 곳으로 가죠. 카이 님이 위험하면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잖습니까.”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

카리우스와 사이러스.

그들의 입가로 판박이처럼 닮은 미소가 떠오른 순간,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메인 에피소드 : 멸망한 인어들의 왕국 퀘스트 발동 조건이 파괴되었습니다.]

[멸망한 인어들의 왕국 에피소드가 소멸됩니다.]

[이에 관련된 하위 퀘스트 1,524개가 함께 소멸됩니다.]

[태양신 헬릭이 당신을 크게 치하합니다.]

[선행 스탯이 +10만큼 증가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10개 획득했습니다.]

[태양교의 공헌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뮬딘 교와의 관계가 적대 상태로 변경됩니다.]

[인어들이 인간과의 교류를 시작합니다.]

[인어들의 도시, 아쿠아베라가 인간들에게 개방됩니다.]

“……으응?”

난생처음 보는 메시지에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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