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83화 (83/441)

# 83

힐통령 083화

36장. 어둠 추적자(2)

재차 방문한 타르달의 저택.

타르달은 마치 카이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잠겨있던 눈을 떴다.

“왔군.”

입을 열면서 시계를 흘깃 쳐다보는 타르달.

그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시간은 아슬아슬하게 합격이군. 그럼 가져온 비늘부터 확인하지.”

“예.”

카이가 인벤토리에서 꺼내든 것은 나가족의 왕자인 하카스의 비늘!

테이블 위에 올려진 녹색빛의 비늘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타르달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항상 무표정을 고수하던 그가 이례적으로 놀랐다는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황급히 고개를 들어 카이를 주시한 타르달이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을 열었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다…… 저번에 분명히 그리 말했었지.”

“예.”

“좋군.”

타르달의 입에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칭찬이 흘러나왔다.

“어둠의 정수. 그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었나.”

“맞습니다.”

어둠의 정수.

몬스터들을 어둠에 물들이고 성정을 포악하게 만들며, 지닌 바 힘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구슬!

카이의 짐작에 따르면 이것은 절대 일개 서브 퀘스트와 연관된 물건이 아니었다.

‘최소 메인 에피소드와 관련된 물건이다.’

이미 카이가 확인한 어둠의 정수만 두 개.

나가족과 연관된 어둠의 정수는 실제로 메인 에피소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앉게.”

타르달이 처음으로 카이에게 의자를 권했다.

자리에 앉자 타르달이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법 무거운 이야기가 될 것이네. 만약 자네가 대의보다는 자유로움과 낭만을 즐기는 모험가라면,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해줄 테니 이쯤에서 물러가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카이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물건 하나로 글렌데일의 주민들과 인어족들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태양신을 받드는 사제의 몸. 어둠의 정수에 관련된 비밀을 밝혀내고, 나아가 이것을 사용한 이들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리고 싶습니다.”

“……용기와 뜻은 가상하군. 하지만 이 구슬 뒤에는 지금 자네의 실력으로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강대한 적들이 도사리고 있네. 그럼에도 자네는 주저하지 않고 철퇴를 휘두를 자신이 있는가.”

“쳐다볼 수 없는 강대한 적들. 그들과 눈높이를 맞출 때까지 아득바득 노력하며 올라가겠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기회만 주신다면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실망시키지 않겠다.

카이가 이미 한 번 선언했고, 실제로 하카스의 비늘이라는 훌륭한 결과를 내놓은 상태였다.

“흐음.”

카이의 입에서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말에 타르달이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물론 카이가 이토록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상황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의 정수는 무조건 메인 에피소드 퀘스트랑 관련이 있어. 그러니…… 아마 난 거절당하겠지.’

레벨 제한.

단순히 숫자가 좀 차이 나는 것뿐이지만, 게임에서는 그 숫자야말로 모든 것을 대변한다.

하물며 카이는 메인 에피소드 퀘스트의 진행도 40레벨 이후로 멈춰놓은 상태!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미드 온라인에는 지름길과 다른 길은 있을지언정, 틀린 길은 없어.’

왼쪽으로 가든, 오른쪽으로 가든 목적지에만 도착하면 된다.

결국 퀘스트를 주는 것은 이 세계의 실질적 권력자들인 NPC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능력만 있으면 선행 퀘스트쯤이야 건너뛸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우선…… 배경을 좀 설명해 줘야겠군.”

긴 침묵 끝에 입을 연 타르달이 말을 이었다.

“마침 자네도 사제이니 묻겠네. 이 땅에서 가장 강대한 성세를 펼치고 있는 교단이 어디인가.”

“당연히 태양신 헬릭을 받드는 태양교입니다.”

이것은 소속감이나 자부심 따위가 아닌 팩트였다.

실제로 사제로 전직한 유저의 86%가 태양교에 소속되었을 정도니까.

“그렇지. 작금에 와서는 태양교의 성세가 대륙을 진동시키고 있다. 하지만 천 년 전, 그때는 어땠을 것 같나.”

“음…… 그때도 태양교 아니었겠습니까?”

1대, 2대 태양의 사제가 활동하던 시기도 천 년 정도 전의 과거였으니까.

하지만 타르달은 고개를 내저었다.

“틀렸네. 천 년 전에 이 땅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던 건 뮬딘 교단이었지.”

‘뮬딘 교단!’

카이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끼며 눈을 크게 떴다.

‘뮬딘 교라면 분명…….’

이번에 멸망한 인어들의 도시 에피소드를 본의 아니게 증발(?)시키면서, 적대 관계가 된 이들!

‘그런데 녀석들이 천 년 전 최고의 성세를 자랑하던 교단이었다고?’

그야말로 금시초문!

당황한 카이를 표정을 엿본 타르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보니 몰랐다는 표정이군. 그럴 수밖에. 뮬딘 교는 대륙 전체가 부정한 이들. 왕실과 황실 깊숙한 서고의 역사서에서나 그 존재를 찾아볼 수 있지.”

“대체…… 그들이 무슨 짓을 했습니까?”

“악신 뮬딘. 그를 섬기며 이 땅에 마왕과 마족, 끝내는 악신인 뮬딘 본인을 소환하려고 했지.”

“……!”

“그 과정에서 인신 공양의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다. 그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낀 세계의 모든 세력은 연합군을 꾸려 그들과 대적했고.”

‘연합군…….’

도서관의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고,

커뮤니티의 누구도 말해준 적이 없는, 미드 온라인의 사라진 역사!

“전쟁은 백 년 동안이나 이어졌지.”

“배, 백 년이나 말입니까?”

카이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단일 세력과 세계 연합군.

힘의 차이는 당연히 후자가 압도적으로 월등해야 한다.

‘그런데…… 그걸 버텨? 심지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백 년을?’

지금 당장 종합선물세트라도 들고 사과하러 가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

타르달이 여유로운 목소리로 카이를 진정시켰다.

“너무 겁먹지는 말게. 당시의 전황은 연합군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으니까. 말이 전쟁이지 실제로 그들이 전면전을 펼친 건 딱 일 년. 그 뒤의 백 년은 사실은 잔당 소탕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

“그, 그렇군요.”

“역사는 뮬딘 교와 관련된 존재는 개미 하나 남기지 않고 박멸했다…… 고 말하고 있네.”

“하지만 그들이 틀렸군요.”

타르달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은 빛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빛이 강해질수록 어둠은 더욱 짙어지는 법이지. 그들은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빛을 피해 꼭꼭 숨었네.”

“그럼 어둠의 정수는…….”

“그들이 지난 전쟁에서 즐겨 쓰던 악랄한 방법 중 하나일세.”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어둠의 정수가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뮬딘 교. 그들이 돌아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 번 패배한 녀석들이 믿는 구석도 없이 돌아왔을 리는 없다.

‘그러고 보니…….’

이미 뮬딘 교는 인어족을 궤멸시키기 직전의 상태였다.

만약 카이가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인어족은 반드시 멸망했을 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움직이고 있구나.’

비록 수면 위에 떠오르지는 않더라도, 그들은 깊은 수면 아래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이었다.

“어둠의 정수는 이렇게 대단한 단체와 관련되어 있네. 그럼에도 자네의 생각은 여전한가?”

“예.”

두말하면 잔소리.

이렇게 거대한 떡밥을 던져줬는데 그것을 제 발로 걷어차는 건 바보나 멍청이.

그 둘 정도밖에는 없다.

카이의 단단한 눈빛을 쳐다보던 타르달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의 서랍장으로 이동했다.

“그렇다면 자네를 이 시간부로 어둠 추적자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네.”

띠링!

[단체 : 어둠 추적자의 일원이 되셨습니다.]

[어둠 추적자는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뮬딘 교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당신은 이곳에 가입한 1,258번째 플레이어로, 앞으로는 타르달을 통해 뮬딘 교에 관련된 임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메인 에피소드 퀘스트, 약탈자들에 대한 소문이 삭제되었습니다.]

[메인 에피소드 퀘스트, 휠렛 산의 도적단이 삭제되었습니다.]

[메인 에피소드 퀘스트, 발파렌 남작의 제보가 삭제되었습니다.]

…….

[메인 에피소드 퀘스트, 어둠 추적자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40레벨 때 진행을 멈춰놓은 메인 에피소드 퀘스트인 약탈자들에 대한 소문.

본래라면 차근차근 진행을 하면서 약탈자 베이거스까지 진행을 해야 하지만…….

‘모두 삭제되었다.’

그리고 곧장 어둠 추적자 퀘스트로 이어지는 환상의 시나리오.

만약 메인 에피소드 퀘스트를 순서대로 차근차근 진행했다면 못해도 두 달은 걸렸을 것이다.

애초에 메인 에피소드 퀘스트는 하루아침에 깨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달이 뭐야. 재수 없으면 서너 달이 걸렸을 수도 있지.’

카이에게는 정보가 없다.

물론 커뮤니티에는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가 떠돌아다니지만, 그 정보들에는 실속이 없다.

‘정작 중요한 건 자기들끼리 다 해먹으니까 말이지.’

미드 온라인에서 길드라는 존재가 괜히 중요시되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개개인이 약할지라도, 길드는 단체라는 이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기에 중요하다.

우선 손과 발의 개수부터 다르다.

‘가령 나는 혼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재료들을 모으고, 지도를 밝히고, 싸우고, NPC들에게 퀘스트들을 받아야 하지만…….’

길드는 그 모든 일을 분담할 수 있다.

정보 수집, 퀘스트 진행, 전투요원까지.

모든 일을 체계적으로 나누는 것이야말로 상위 길드의 기본 조건!

그런 지원을 기대하지 못하는 카이는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야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딱히 슬프지는 않았다.

‘성공만 하면, 그 녀석들보다 먹을 수 있는 조각은 많아.’

쿠키 하나를 나눠 먹어야 하는 녀석들과는 달리, 자신은 혼자서 독차지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카이가 태양의 사제라는 직업을 얻은 뒤 솔플을 고집했던 이유임과 동시에, 앞으로도 솔플을 해나갈 생각을 하는 이유였다.

“스스로의 실력이 다른 이들보다 많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물론입니다. 대신 그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하겠습니다.”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네. 사실 이번에도…… 가져온 비늘이 이런 것만 아니었다면 자네를 받아들이는 일은 없었을 거야.”

타르달이 하카스의 비늘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실력을 계속해서 입증하게.”

“예.”

카이는 본능적으로 타르달이 새로운 임무를 내려줄 것이라고 느꼈다.

‘말은 임무지만 사실 이것도 시험의 연장선이다.’

아마 카이의 실력이 다른 이들을 따라잡을 때까지는 임무라 불리는 시험이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불만은 없다. 아니, 오히려 이런 종류의 시험은 대환영이었다.

스윽.

타르달이 서랍에서 꺼낸 지도 한 장을 책상 위로 내밀었다.

곧장 지도를 확인한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콘데른 영지……?”

“다른 어둠 추적자들에게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네.”

“지원 요청이라, 제가 뭘 해야 합니까.”

“그곳으로 가서 다른 어둠 추적자들을 돕게.”

“기간은요?”

“삼 일 안에 도착해 줬으면 좋겠군.”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카이를 타르달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아, 그리고 임무가 완료되면 곧장 돌아오게.”

톡톡.

하카스의 비늘을 두드린 타르달이 말했다.

“어둠 추적자들이 입단 시험으로 비늘을 구해오는 이유를 그때 알려주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허리를 꾸벅 숙인 카이는 저택을 나서며 미니맵을 활성화시켰다.

‘삼 일이라…… 시간은 넉넉하네.’

가방 안의 비늘을 흘깃 쳐다본 카이는 곧장 글렌데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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