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85화 (85/441)

# 85

힐통령 085화

37장. 블랙 리자드맨(2)

카이는 조금 전 자신이 봤던 광경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도끼가 날아드는 그 짧은 순간 이루어진 동작은 총 세 가지.’

눈을 감는 순간 머릿속에서 녀석이 선보였던 움직임이 재생되었다.

순식간에 등 뒤의 곡도 두 자루를 뽑아 도끼를 막아내는 모습.

동시에 꼬리를 상대방의 종아리에 휘감으며 잡아당기고, 발을 차올려 야만전사의 가슴을 짓누른다.

그야말로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동작이었기에, 야만전사가 뒤로 넘어간 것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질 정도!

“이, 이게 대체?”

카이의 옆에서 함께 전투를 지켜보던 네일이 당황한 신음을 흘렸다.

동시에 추적자들이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속도다!”

“젠장, 제프 녀석이 당했어.”

“나와 레나가 놈의 시선을 끌 테니 제프부터 구해!”

동료가 당했지만 분노에 사로잡혀 움직이지 않고, 철저히 호흡을 맞춰 움직이는 추적자들.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들의 공격은 가히 맹공이라 칭할 만큼 매서웠다.

하지만, 그 어떤 강력한 공격일지라도 적에게 닿지 않으면 의미는 없다.

콰드득, 콰드득.

야만전사의 가슴과 머리를 짓밟으며 천천히 걸어 나오는 블랙 리자드맨.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공격을 끝까지 쳐다보며 기형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방위를 점하는, 최소한의 움직임.

그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녀석을 향해 쏘아지던 맹공은 덧없는 일격으로 전락했다.

“무, 무슨 놈의 움직임이……!”

“레나, 우선 녀석을 가둬.”

“알겠어. 어스 월!”

다시 한번 땅을 진동하며 솟아오르는 흙의 벽!

하지만 이미 한 번 겪어본 탓일까, 블랙 리자드맨의 대처는 신속했다.

탁, 타탓!

솟아오르는 벽을 지그재그로 밟으며 흙의 감옥이 닫히기 전에 위로 솟구친 리자드맨!

허공에 떠오른 녀석은 주변에 돋아난 나뭇가지를 밟으며 여자 마법사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레나!”

“걱정 마! 에어 봄!”

퍼어어엉!

주변의 마나가 소용돌이처럼 모이더니, 레나의 코앞에서 공기의 폭탄이 되어 터져 나갔다.

당연히 가까운 거리에서 공격을 얻어맞은 블랙 리자드맨은…….

“피해가 없어!?”

찢어지는 레나의 비명과 함께 방패처럼 교차되어 있던 두 자루의 곡도가 풀린다.

그 뒤로 드러나는 건 블랙 리자드맨의 사나운 눈초리.

쇄애애액!

마치 가위질을 하듯, 좌우에서 날아들며 레나의 목을 노리는 곡도!

챙, 채앵!

순식간에 레나를 지원한 두 명의 전사가 곡도를 쳐내며 그녀를 뒤로 끌어냈다.

하지만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즉시 몸을 회전한 블랙 리자드맨!

가시가 박혀있는 녀석의 꼬리는 그들의 후퇴를 허락하지 않았다.

콰드드드득!

“꺼억……!”

“우우웁!”

“꺄악!”

두꺼운 꼬리에 사이좋게 얻어맞은 추적자들은 뼈와 장기가 파괴되며 뒤로 날아갔다.

이 상황을 보다 못한 네일이 무기를 뽑아 들면서 카이를 돌아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판단 오류입니다! 설마 어둠의 정수를 통해 리자드맨이 저렇게까지 강해질 줄이야……! 전 저들을 지원할 테니 카이 님은 지금 당장 타르달 님께 돌아가서 추가적인 지원을…….”

가만히 서서 말을 듣고 있던 카이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잘랐다.

“저 녀석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요.”

“예? 그게 무슨…….”

쇄애애애액!

다음 순간, 한 자루의 도끼가 두 사람에게 날아들었다.

“숙여요.”

“어억!”

순식간에 네일의 머리를 짓눌러 공격을 무위로 돌린 카이는 리자드맨을 쳐다봤다.

한 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탐욕스러운 눈을 번들거리는 블랙 리자드맨.

그는 바닥에서 주워 던진 도끼가 허공을 가르자 아쉬운 표정으로 혀를 날름거렸다.

그와 동시에.

콰드득!

“아악!”

녀석은 큼지막한 발로 레나의 머리를 가볍게 짓밟았다.

마치 도망을 치고 싶으면 치라고, 하지만 이 녀석들은 확실하게 죽는다고 말하는 듯한 모습!

몬스터에게 도발을 당한 카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네일을 돌아봤다.

“아아, 어쩌죠. 엄청 도망치고 싶은데, 보내주지를 않네.”

영혼이라고는 1g도 포함되지 않은 무감정한 음성!

아직까지 서늘한 제 목덜미를 더듬거리며 식은땀을 줄줄 흘리던 네일은 카이를 올려다봤다.

‘그런데…… 카이 씨는 사제인데 대체 어떻게 방금 공격을 피했지?’

단순한 우연일까?

네일이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카이가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군요. 우선 제가 녀석을 상대할 테니 저기 저 녀석들부터 좀 챙기세요. 태양의 축복, 태양의 갑옷…….”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모험가들이 부활의 권능을 지니고 있다지만, 첫 임무에 파견된 단원이 전투를 치르는 건 이상합니다!”

“그럼 자칭 선배라는 녀석들이 저렇게 누워 있는 건 정상입니까?”

“그, 그건…….”

얼굴을 붉게 물들인 네일은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차마 변명을 하지는 못했다.

“이걸로 저 녀석들 치료부터 해주세요.”

붉은 포션을 몇 병 꺼내 네일에게 던진 카이가 언덕길을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육상 선수처럼 깔끔한 자세로 뛰어가는 카이.

그의 눈에는 오로지 블랙 리자드맨만이 들어왔다.

‘저 녀석, 엄청 강하다.’

그 기분을 느낀 건 혼자만이 아니었는지, 블랙 리자드맨도 혀를 날름거리며 곧 다가올 격돌에 흥분하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꼬리로 레나를 휘감더니, 카이에게 던지는 녀석!

“크윽!”

허공에서 그녀를 낚아챈 카이는 그대로 늪에 던져버렸다.

“꺄악!”

늪이라서 다칠 일이 없으니까 가능한 과감한 행동!

“케르르륵.”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던 블랙 리자드맨은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진 순간, 꼬리를 매섭게 휘둘러졌다.

‘꼬리 공격은 강하지만 느려. 그래서 이 녀석은 항상 꼬리를 견제용으로만 사용한다.’

전투를 지켜보면서 녀석을 분석한 카이의 몸이 딱 보폭 하나만큼 왼쪽으로 이동했다.

촤아아아악!

그 약간의 이동은 완벽하게 공격을 피해냈고, 꼬리는 애꿎은 늪을 강타했다.

마치 늪 속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하늘을 향해 비산하는 물방울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블랙 리자드맨이 고른 선택지는 곡도를 휘두르는 것이었다.

부우우우욱! 부욱!

두 자루의 곡도는 분명히 뭔가를 찢어발겼다.

하지만 자신이 예상하던 인간의 살점은 아니었기에, 블랙 리자드맨의 눈이 크게 뜨였다.

“크륵!?”

곡도가 잘라낸 것은 카이의 몸이 아닌, 나풀거리는 사제복!

황급히 뒷걸음치며 고개를 들어 올리는 리자드맨의 얼굴로 카이의 손바닥이 가볍게 얹혀졌다.

“홀리 익스플로젼!”

콰아아아앙!

아무리 녀석의 반응속도가 괴물 같다지만 제로 거리에서 쏘아지는 공격을 피할 수단은 없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녀석은 마치 프레셔 기계에 넣은 박스처럼 찌그러지며 늪에 처박혔다.

‘이 정도면 우선 기선 제압 정도는…… 안 되었나.’

상처 입은 맹수가 그러하듯, 자신이 분노했다는 것을 두 눈동자에 가감 없이 담은 녀석!

녀석의 입에서 우렁찬 표효가 흘러나오며 늪지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키르아아아아아악!”

[블랙 리자드맨의 피어가 당신을 위축시킵니다.]

[위엄 스탯으로 인해 피어의 효과가 줄어듭니다.]

[높은 마법 저항력으로 인해 피어의 효과가 대폭 줄어듭니다.]

[위축 상태를 저항했습니다.]

“오호?”

최근 들어 급상승한 마법 저항력의 위력을 톡톡히 보는 카이!

블랙 리자드맨은 카이가 위축 상태에 걸리지 않자,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옛날 같았으면 저 모습을 보고 살짝 겁먹었겠지만…….’

지금은?

누가 웃기지도 않았건만, 카이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며칠 전 하카스와의 전투에서도 겁먹지 않았던 자신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레벨 110짜리의, 그것도 늪에 엎어져 있는 리자드맨 따위에게 겁을 먹을 이유는 없었다.

“인벤토리 오픈, 칠흑의 원한 세트로 장비 변경.”

카이의 전신을 칠흑의 갑옷이 덧칠하는 것과 동시에 리자드맨이 늪에서 빠져나왔다.

“캬아아아아악!”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 포효!

녀석은 바닥에 떨어진 곡도들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카이에게 달려들었다.

리자드맨은 평상시에는 인간처럼 이족보행을 하지만, 가장 빨리 달려야 하는 순간에는 도마뱀처럼 사족보행을 한다.

지금 녀석이 딱 그러했다.

타다닥, 타닥, 타다닥!

눈 깜짝할 사이 접근한 녀석은 바닥을 박차고 튀어 오르면서 곡도를 아래에서 위로 그었다.

까강! 까가강!

두 사람의 거리가 서로의 콧김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훅 가까워졌다가,

채앵!

다시 멀찍이 떨어졌다.

카이는 아직까지 저릿저릿한 충격이 느껴지는 손아귀를 슬쩍 쳐다봤다.

‘속도만 빠른 게 아니야. 공격도 정확하고, 강력하다.’

멀리서 볼 때는 제법 빠르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검을 부딪쳐보니 제법 정도가 아니다.

체감 속도가 못해도 배 이상은 올라간 것 같은 기분!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치명상을 입을 것이 확실한 위험천만한 상대인 것이다.

‘오히려 안전하기로 따지면 하카스 때가 더 안전했지.’

그때는 불사의 의지 스킬 덕분에 적어도 죽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재사용 대기 시간이 30일이나 되는 그 스킬은 아쉽게도 현재 비활성화 상태.

“후우, 요즘 꿀 좀 빠나 했는데…….”

아쉬운 마음으로 투덜거리는 카이의 주변을, 블랙 리자드맨이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파바밧, 파바바밧!

도마뱀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며 카이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녀석!

카이의 눈으로도 완전히 따라잡기 힘든 이동속도를 선보이던 녀석의 모습은 갑자기 사라졌다.

“뭐, 뭐야?”

깜짝 놀란 카이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없다?’

전후좌우, 혹시나 싶어 살펴본 나무 위까지!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고개가 갸웃거려지던 찰나, 바닥에서 갑자기 곡도가 솟구쳤다.

서걱!

“크윽!”

한 박자 느리게 반응한 탓에 처음으로 공격을 허용한 카이!

그 사이 블랙 리자드맨은 다시 바닥에 납작 엎드리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저건…… 은신 스킬인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기묘한 스킬!

당황한 카이가 연신 주변을 경계하자, 뒤쪽에서 네일이 소리쳤다.

“누, 눈을 믿지 마십시오!”

“……예?”

“저건 일부 리자드맨들이 사용하는 카모플라쥬(Camouflage)입니다!”

“카모…… 플라쥬라고요? 이게?”

카모플라쥬란 프랑스어로 위장, 속임수를 뜻한다.

한마디로 블랙 리자드맨은 마치 카멜레온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변의 환경과 자신의 피부색을 동기화하고 있다는 뜻!

그 사실을 깨우친 카이가 버럭 소리쳤다.

“이런 젠장! 당장 이름 바꿔요! 그럼 블랙 리자드맨이 아니잖아요!”

“그, 그건 말씀드렸다시피 아직 정식 명칭이 아니라…….”

우물쭈물 말을 잇는 네일을 뒤로한 카이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바닥의 나뭇잎과 나무, 바위와 일체화한 녀석을 눈으로 구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젠장, 곡도도 들고 있는 녀석을 찾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카모플라쥬 스킬은 추적이나 적군 탐지 스킬이 없는 이상 발견이 불가능할 정도!

‘내 눈으로는 녀석을 찾아낼 수가 없어.’

그것을 깨닫는 순간, 카이는 몸의 힘을 풀어버렸다.

동시에 꼿꼿하게 세워져 있던 목과 어깨는 새벽 두 시에 독서실을 나서는 고3 학생처럼 축 늘어졌다.

“……?”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기회를 포착하던 블랙 리자드맨조차 당황스럽게 만드는 태도!

그의 행동은 리자드맨은 물론이고 같은 종족인 인간들조차 이해시키지 못했다.

“카, 카이 씨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위험하다구요!”

“이길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하고 전투를 포기한 건가…… 이래서 모험가 놈들이란!”

“저 녀석, 가만히 서서 포션이나 마시고 있잖아?”

걱정과 불만을 토로하는 NPC들의 말을 한 귀로 흘린 카이는 며칠 전을 떠올랐다.

‘아쿠에리아. 그곳에서 강철 거북이를 잡기 위해 낚시를 했었지.’

낚시를 할 때 물고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직접 물속에 뛰어드는 멍청이는 없다.

몇 시간이 걸릴지라도 한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대개 낚시의 승자는…….’

바스락.

축축한 나뭇잎이 짓밟히는 소리와 함께 리자드맨이 등 뒤에서 카이를 덮쳤다.

동시에, 카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항상 더 오래 기다리는 쪽이지.”

쨍그랑!

들고 있던 붉은 포션 병을 그대로 던진 카이!

블랙 리자드맨과 부딪친 병은 그대로 깨지면서 녀석의 피부에 붉은색 얼룩을 만들어냈다.

“혹은, 잔머리가 좀 더 뛰어난 녀석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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