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88화 (88/441)

# 88

힐통령 088화

38장. 도박은 ○○○○의 지름길(2)

도박을 하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는 과연 어디일까.

물론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당장 카이만 하더라도 평소였다면 어디 마을 구석에 위치한 골목에 처박혀서 스킬 북을 깠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이란 큰돈이 걸리면 가장 먼저 귀부터 얇아지는 법!

‘그러니까 여기 이 장소가 명당이라는 거지?’

아쿠에리아의 마을 광장.

정면으로는 푸른 숲의 쉼터 여관이 보이면서 한쪽 손잡이가 고장 난 벤치.

심지어는 시간대까지 쨍쨍한 햇살이 내리쬐는 점심 무렵으로 맞추었다.

‘조건은 똑같아.’

바로 수수께끼 스킬 북 유행을 불러일으켰던 랭커가 유니크 스킬 북을 깠던 장소와 시간!

그것을 똑같이 따라 한 카이는 온갖 행운 아이템을 장비하고, 행운의 물약까지 복용했다.

이어서 두 눈을 감은 그가 기도했다.

‘천지신명이시여…… 부디 저에게 유니크…… 아니, 하다 못 해 레어 스킬 북 열 개만 주십시오.’

새하얀 사제복을 입고 있던 카이는 마치 성지를 순례하는 사제처럼 경건하고 거룩한 표정을 지으며 감겨있던 눈을 스르르 풀었다.

“그럼 간다.”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수수께끼의 스킬 북 한 권을 꺼내 그대로 펼쳤다.

[수수께끼의 스킬 북이 잿빛 광휘를 터뜨리며 정체를 드러냅니다.]

[축하드립니다. 스킬 북 - 골드 펀치(노말)를 획득하셨습니다.]

“골드 펀치?”

들어본 적도 없는 스킬!

비록 등급은 노말이라지만,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브론즈나 실버도 아니고 골드잖아! 대박은 아니더라도, 중박 정도는 친 거 아닐까?’

원래 도박이란 첫 끗발이 개 끗발인 법!

기대감에 차오른 카이의 눈앞에, 스킬 설명이 떠올랐다.

[스킬 북 - 골드 펀치]

등급 : 노말

황금빛으로 물든 주먹으로 적을 때린다. 1% 확률로 1골드가 떨어진다.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

망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쓰레기 중에서도 상 쓰레기 스킬 북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카이는 분노하기는커녕,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그거 전부 개소리야. 도박에 그딴 게 어딨어? 모든 건 확률 싸움이지.’

교과서에 실릴 법한 자기 합리화의 표본!

마음을 진정시킨 카이는 곧장 두 번째 스킬 북을 깠다.

[수수께끼의 스킬 북이 잿빛 광휘를 터뜨리며 정체를 드러냅니다.]

[축하드립니다. 스킬 북 - 골드 펀치(노말)를 획득하셨습니다.]

“아니, 진짜!”

카이가 소리를 지르자 광장을 지나다니던 유저들이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이에 민망함을 느낀 카이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속으로 분노를 삭였다.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적당히 해라, 진짜.’

누군가에게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느끼는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경고!

경고가 먹힌 것일까. 떨리는 손으로 펼친 세 번째 스킬 북은 확실히 지난 두 번과는 달랐다.

[수수께끼의 스킬 북이 보랏빛 광휘를 터뜨리며 정체를 드러냅니다.]

[축하드립니다. 스킬 북 - 신성 사슬(레어)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렇지!”

비명과 함께 입이 귀까지 걸린 카이!

그는 마치 절대반지를 바라보는 골룸처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스킬 북을 쳐다봤다.

‘신성 사슬이라니, 이건 돈 주고도 매물 없어서 못 구하는 거잖아?’

주로 성기사 클래스의 유저들이 배우지 못해 안달이 난 스킬이다.

신성력을 소모해 사슬을 만들어 전투에서 사용하는 다재다능한 기술!

교단에서 스킬을 배우는 방법도 있었지만, 아주 귀찮고 까다로운 퀘스트들을 해결해야 하는 건 물론, 교단과의 공헌도와 친밀도도 높이 쌓아야 하기에 대다수의 유저들은 마음 편히 스킬 북이 매물로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일단 시작은 좋아. 이제 골드 펀치 따위는 잊어버리자고.’

세 개를 까서 하나가 득템이니 당연히 대박!

최소 300골드짜리의 스킬 북을 획득한 카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네 번재 스킬 북을 오픈했다.

[수수께끼의 스킬 북이 잿빛 광휘를 터뜨리며 정체를 드러냅니다.]

[축하드립니다. 스킬 북 - 골드 펀치(노말)를 획득하셨습니다.]

“에이 씨!”

***

만약 지난 30분 동안 카이를 관찰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이 순간 확신할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도박에 실패하는 것이라고.

실제로 카이는 지난 30분간 얼굴이 반쪽이 된 상태였다.

그리고 지나가는 유저들은 그런 카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휴, 스킬 북 까고 있네. 저거 유행 지난 지가 언젠데.’

‘어디 재벌 2세? 금수저? 뭐 그런 건가?’

‘쟤는 무슨 스킬 북을 30분째 까고 있냐, 대체 몇 개나 산 거야?’

카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말, 지금은 약간이지만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신성 사슬을 뽑은 뒤로 오픈한 43개의 스킬 북은 모두 꽝이었으니까.

물론 아무리 꽝이라고는 하지만, 개중에는 경매장에 팔 법한 스킬들도 제법 나왔다.

문제는 자신이 원하는 펫 소환/역소환 스킬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신성 사슬 이후로 자신이 쓸 만한 스킬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것이었다.

[깜짝 파티. Passive.]

등급 : 노말

‘여자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성형 몬스터를 공격하면 무기가 꽃으로 변합니다.

남성형 몬스터를 공격하면 무기 공격력이 30% 증가합니다.

다만, 남성형 몬스터를 공격할 시 1% 확률로 무기가 사라집니다.

“이런 개 쓰레기 같은 스킬이나 나오고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미친 아이템을 만들었는지, 개발자 멱살을 흔들며 묻고 싶은 기분!

“후우…….”

카이는 인벤토리에 남아 있는, 3개의 수수께끼 스킬 북을 쳐다봤다.

‘47개를 까서 대박이 하나 떴는데…… 저거 세 개 깐다고 뭐가 달라질까?’

부정적인 생각부터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스킬 북은 구매한 상태!

마음을 내려놓은 카이는 남아 있는 스킬 북 중 하나를 펼쳤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보라색 광휘!

[수수께끼의 스킬 북이 보랏빛 광휘를 터뜨리며 정체를 드러냅니다.]

[축하드립니다. 스킬 북 - 강화 소환(레어)을 획득하셨습니다.]

“어?”

사람은 한껏 기대를 하고 있을 때보다는 그 반대.

그러니까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을 때 좋은 걸 안겨줘야 더 감격을 하는 법이다.

카이는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만 깜빡였다.

‘잠깐만, 강화 소환이라면?’

카이가 빠르게 스킬 북을 감정했다.

[스킬 북 - 강화 소환]

등급 : 레어

길들인 펫과 소환수를 등록하여 시전자가 원할 때 소환/역소환 할 수 있다.(최대 5마리)

펫과 소환수가 소환될 때, 시전자와 해당 펫에게 랜덤으로 버프 하나가 부여된다.

(재사용 대기시간 10분)

“대, 대박이다.”

카이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기분 같아서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상모돌리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참고 있는 카이!

‘완벽하게 내가 원하던…… 아니, 내가 원하던 것보다 상위의 스킬이다.’

단순히 펫을 소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환할 때마다 시전자와 펫에게 버프를 준다.

이 말은 10분마다 자신에게 랜덤한 버프를 부여할 수 있다는 뜻!

‘어떤 버프가 걸리느냐에 따라 우리 둘이서 전장을 쓸어버릴 수도 있겠어.’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전제 조건이 존재한다.

‘블리자드. 녀석이 제 몫을 해줄 때의 이야기지만.’

지금은 카이 혼자서도 웬만한 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개인.

한 손으로 두 손, 세 손을 막는 건 가능하지만, 그 손이 두 자릿수를 넘어가면 불가능하다.

당장에라도 검은 벌 녀석들이 그의 정체를 알아내고 쫓아온다면, 그는 숨어다니면서 게임을 플레이해야 한다.

‘그러면 블리자드는 당분간 영상으로 공개를 안 하는 것이 더 낫겠어.’

톡톡.

제 무릎을 두드리는 카이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응,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아. 블리자드는 회심의 한 수로 놔두자.’

눈앞의 보이는 매서운 공격보다는, 인식조차 못 하고 있던 등 뒤의 평범한 공격이 무서운 법.

블리자드는 충분한 성장을 이뤄내기 전까지 존재 자체를 비밀에 부치는 게 나아 보였다.

게다가 카이는 자신이 100레벨을 찍는 순간, 칠흑의 원한 세트를 녀석에게 물려줄 생각이었다.

‘그럼 블리자드의 공격력도 더 높아지겠지. 그러고 보니 곡도 두 자루도 레어 등급으로 맞춰줘야 하고…… 너프된 스킬 숙련도도 다시 복구해줘야겠어. 레벨도 올려줘야 하고. 바빠지겠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지만 카이는 이 순간마저 즐거웠다.

단순히 머리만 아픈 시간이 아니라, 어떻게 강해져야 할지를 궁리하는 시간이었으니까.

“자, 그럼 남은 스킬 북 두 개도 후딱 열자.”

생각 없이 한 권을 여는 순간, 카이는 물론이고 그를 구경하던 주변 유저들도 깜짝 놀랐다.

“자, 잠깐만. 저거…… 마, 맞지? 그거 맞지?”

“붉은색 광휘면…….”

“유니크다!”

“이런 미친! 운빨개망겜!”

부러움과 질시, 그리고 욕설!

그 모든 것들의 대상이 된 카이는 입만 멍하니 벌린 체 메시지창을 쳐다봤다.

[수수께끼의 스킬 북이 붉은색 광휘를 터뜨리며 정체를 드러냅니다.]

[축하드립니다. 스킬 북 - 영체화(유니크)를 획득하셨습니다.]

“뭐, 뭐야 이게.”

포기하면 편하다고 했던가.

카이는 그 말을 남긴 사람에게 포옹과 함께 뽀뽀를 해준 뒤, 밥까지 사주고픈 충동을 느꼈다.

‘게다가 영체화라니.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경매장에서 본 적 없는 스킬이다.’

애초에 유니크 등급 스킬 북이 그렇다.

일찍이 수수께끼 스킬 북에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랭커도 등급만 스크린샷을 찍어서 공개했을 뿐, 그 효과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물론 카이는 그에 대해서 전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게 당연한 거야. 좋은 건 혼자만 알아야지, 내 전력을 굳이 왜 공개해?’

얼마나 고였는지 침을 삼키는데 목이 따끔거릴 정도!

카이는 천천히 영체화 스킬의 내용을 살펴봤다.

[스킬 북 - 영체화(靈體化)]

등급 : 유니크

10분 동안 신체를 영체화합니다.

시전 시간 동안 모든 물리 피해에 면역이 되지만, 마법 피해에는 2배의 데미지를 입습니다.

시전 시간 동안에는 모든 공격력이 50%로 감소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좋다. 확실히 좋아. 하지만…….’

전투력을 올려주는 스킬은 아니다.

분명히 스펙 업인 것은 맞지만, 아직 이론을 잘 모르겠다고나 할까.

‘모든 물리 피해에 면역이 된다는 건 확실히 좋아. 그런데 마법 피해에 2배 데미지를 입고 모든 공격력은 50% 감소라…….’

굳이 사용할 일이 있을까 라는 기분?

‘뭐, 내 마법 저항력 자체가 높으니까 2배 데미지라고 해도 큰 피해는 없겠어.’

카이는 각종 칭호 효과와 유니크 패시브 스킬인 주문 저항의 피부 덕분에 마법 저항력이 매우 높았다.

덕분에 영체화 스킬의 유일한 단점인 마법에 2배 피해라는 것이 큰 단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뭐, 쓸 만한지에 대해서는 미뤄두더라도, 일단 기분은 좋다.’

카이가 실실 헤픈 웃음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다른 유저들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저…… 혹시 무슨 스킬인지 공유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판매할 의사는 없으십니까? 저 돈 많습니다. 제가 사겠습니다.”

“길드 마크가 안 보이시는데, 혹시 길드가 없으시다면 저희 용맹 길드에서…….”

“제가.”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는 그들을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급한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아! 그 전에 잠깐.”

다시 자리에 앉은 카이는 마지막 남은 스킬 북을 오픈했다.

[수수께끼의 스킬 북이 잿빛 광휘를 터뜨리며 정체를 드러냅니다.]

[축하드립니다. 스킬 북 - 골드 펀치(노말)를 획득하셨습니다.]

‘그래. 왜 안 나오나 했다, 이 새끼야.’

짤막한 분노를 터뜨린 카이는 서둘러 광장을 떠났다.

역시 도박은 쾌속 성장의 지름길이라는 교훈을 되새김질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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