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94화 (94/441)

# 94

힐통령 094화

39장. 거래(4)

“예? 무슨 문제라도?”

카이의 멍청한 신음에 강민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 아뇨. 아무것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상황을 모면한 카이는 눈앞의 인터페이스창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협상 스킬? 이건 분명…….’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기억!

그것은 바로 며칠 전 고서점에서 수수께끼의 스킬 북을 구매할 때의 기억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협상 스킬 레벨이 올랐지.’

게다가 협상을 시도할 때 상대방의 기분을 약간 파악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함께 떠올랐었다.

‘그래. 거기까지는 이해가 돼. 하지만 그건 플레이어를 상대로는 발동이 안 될 텐데……?’

하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눈앞의 인터페이스창은 이 상황이 현실임을 증명했다.

‘그렇다는 말은…… 강민구 사장은 플레이어 캐릭터가 아니구나!’

물론 이런 사례가 처음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현금 거래소의 NPC 중 일부는 운영자들이 플레이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눈앞의 강민구 사장은 NPC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플레이어블 캐릭터구나.’

카이의 추측은 사실과 근접했다.

현재 그의 눈앞에 있는 건, 평소 게임을 할 시간이 여유가 없었던 강민구 사장이 이번 거래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낸 NPC 캐릭터였으니까.

‘나한텐 기회잖아?’

물론 강민구 사장도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현실에서 약속을 잡거나 개인 캐릭터를 만들어서 거래를 추진했을 터.

‘설마 자신을 NPC로 인식하고 스킬이 발동할 줄은 누가 알았겠어.’

결과적으로 이 상황은 카이에게는 큰 호재로 다가왔다.

‘아직 협상 스킬의 레벨이 낮아서 강민구 사장의 기분이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강민구가 느끼는 초조와 불안하다는 감정.

이것들을 알아챈 것만으로도 카이는 주사위를 굴릴지 말지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으음…… 이벤트에 대한 정보라. 글쎄요.”

무언가가 찜찜한 듯한 카이의 표정을 확인한 강민구 사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희 쪽에서 제시한 조건이 마음에 안 드시는지……?”

“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

카이의 직설적인 언사에 강민구 사장이 입을 꾹 다물었다.

‘플레이 영상과는 다르군. 원래 이렇게 과감한 성격이었나?’

설마 이 상황에서 밀당을 시전할 줄이야!

카이는 살짝 당황한 강민구 사장이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않았다.

“사실 얻고 싶은 정보가 하나 있습니다. 그거 하나만 더 얹어주시죠.”

“들어보고 판단하겠습니다.”

“그리 어려운 건 아닐 겁니다. 영지전 콘텐츠, 계획하고 계시죠?”

“으음?”

전혀 예상치 못한 요구에 강민구가 말을 아꼈다.

‘그야 물론 영지전 콘텐츠도 계획하고는 있지만…… 갑자기 왜 저런 질문을?’

강민구 입장에서는 당연히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질 만한 의문이다.

영지전은 애초에 길드들, 그것도 덩치가 크고 이름 좀 날리는 길드들을 위한 것이다.

당연히 혈혈단신인 카이와는 그 어떤 접점도 없을 만한 콘텐츠!

“확실히 계획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혹시 그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연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대략적인 날짜라도 알고 있어야 대비를 할 수 있으니까요.”

“대비라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드러낸 강민구는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곤 황급히 표정을 지워냈다.

‘지금 설마 영지전 콘텐츠에 참가하겠다는 소리인가? 그것도 혼자서?’

강민구는 피어오르려는 웃음을 노련하게 참아냈다.

‘나이에 비해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좋았지만…… 마무리가 조금 아쉽군.’

벌써부터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영지전 업데이트에 대한 사실을 알려줘도, 카이는 그 어떤 성과도 올리지 못한다.

‘그것은 개인의 한계지. 게임은 하나의 사회다.’

게다가 미드 온라인은 전 세계를 하나로 잇는, 전무후무한 초거대 사회!

물론 강민구는 카이의 심정을 이해했다.

자신 또한 성공한 사람으로서 그의 기분을 모르지는 않았으니까.

‘한참 자신감에 차올라 있을 때지. 모든 것들이 자신의 발밑으로 보일 테고.’

태양의 사제로 전직한 이후, 카이의 행보는 승승장구 그 자체였다.

그는 언노운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지만 인터넷의 일약 스타가 되었고, 세계 10대 길드조차 무서워하지 않는다.

당연히 중소 규모의 길드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이번에 깨닫겠지. 어쩌면 이번 기회로 더 성숙한 어른이 될지도.’

강민구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이벤트 일정과 영지전 업데이트 날짜. 그 조건으로 영상을 넘겨받겠습니다.”

몇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가 웃을 수 있는 거래였다.

***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카이는 페가수스사에서 공개될 영상에서 자신의 스킬이나 존재를 유추할 만한 모든 부분을 철저하게 삭제시켰고, 페가수스 사는 그의 말을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벤트에 관한 정보와 영지전에 대한 정보까지. 완벽해.’

페가수스 사에서 조만간 개최할 이벤트의 정식 명칭은 ‘침공’.

대륙 전역에서 이벤트 몬스터와 이벤트 보스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고, 그들을 잡아 포인트를 모으는 형식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오크 토벌대랑 방식이 비슷해. 하지만…….’

그때는 200명 남짓한 유저들이 경쟁자였지만 이번에는 무려 7억 명!

당연히 이벤트의 보상도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할 것이다.

‘영지전 업데이트는 아직 몇 달 남았으니 이건 천천히 준비하면 되겠어.’

카이가 굳이 영지전 업데이트에 대한 날짜를 건네받은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날짜를 알아둬야 슬슬 대비를 하지.”

영지전이 업데이트되면 평소에 조용히 지내던 길드들조차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전쟁이란 곧 기회다.

돈과 명예를 모두 거머쥘 수 있는 기회!

‘게다가 여차하면 이번에 건네받은 정보를 거래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고.’

아직 추측만 난무하는 영지전 업데이트의 날짜.

그것을 아는 건 오직 카이뿐이다.

독점화된 정보의 가치는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들을 생각하기보다 성장이 우선이야.’

그 생각대로였다.

김칫국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사람치고 결말이 좋은 법은 없는 법!

실제로 강민구는 침공 이벤트가 열리는 시기를 대략 1~2달 뒤로 예상하고 있었다.

추후 정확한 날짜를 알려주겠다고 했으니 자신은 차분히 준비만 하면 될 터.

‘당분간 사냥터에 틀어박혀서 레벨 좀 올려야겠어.’

원래대로라면 카이는 평범하게, 남들처럼 여유롭게 사냥을 하려고 했다.

지금 자신의 스펙이면 여유롭게 사냥을 해도 남들보다 빨리 성장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한데 상황을 보니 여유 부릴 시간은 크게 없을 것 같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100%, 120% 끌어올릴 수 있는 사냥터로 가야 하는 법!

최소 100레벨까지 무리 없이 올릴 수 있는 사냥터.

동시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레벨업 할 수 있는 장소.

“아무리 생각해도 두 군데밖에 없는데?”

하나는 자신이 얼마 전까지 있었던 심해.

남들의 시선을 100% 차단할 수 있으며, 인어 족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심해의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레벨이 높다는 것이 유일한 흠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스켈레톤이나 좀비, 레이스들이 활개 치는 묘지!

미드 온라인 자체에 성직자들이 많지 않은 관계로, 이 사냥터들 또한 다른 유저들이 즐겨 찾는 장소는 아니었다.

‘음. 아무래도 나 혼자였다면 심해로 들어갔을 테지만…….’

지금은 블리자드도 키워야 하는 상황.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릴 녀석을 떠올린 카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묘지 쪽이 좋겠어.”

그곳은 사제인 자신의 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장소니까.

***

멜베른의 공동묘지.

110레벨의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곳으로, 보통은 스켈레톤들이 나온다.

스켈레톤의 특성상 드랍하는 재료 아이템은 냄새나는 해골뿐.

심지어는 득템조차 잘 뜨지 않고 이따금씩 필드 보스인 블랙 스켈레톤 나이트가 등장한다.

한 마디로 사제나 성기사 클래스가 아니라면 딱히 메리트가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실제로 아무도 없는 공동묘지는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황량했다.

“블리자드 소환.”

위치를 지정하자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그 위로 블리자드가 소환되었다.

녀석이 소환되자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창.

[강화 소환의 효과로 ‘공격력 상승’ 버프를 부여받았습니다.]

“오.”

카이의 안색이 밝아졌다.

강화 소환에 대해 다양한 시험을 해본 결과, 공격력 증가 버프는 상당히 좋은 축에 속했으니까.

“크루오오오!”

소환과 동시에 포효를 내지르는 블리자드!

녀석에게는 아직 방어구를 입혀주지 않았다.

장비를 입히려면 꼬리 부분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대장간에 들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빠르게 100레벨 찍고, 칠흑의 원한 세트에 구멍 뚫어서 입혀줘야지.’

카이는 스윽, 검지를 이용해 자신의 앞을 세로로 갈랐다.

“넌 왼쪽 사냥해. 내가 오른쪽 사냥할 테니까. 죽을 것 같으면 나한테 말하고.”

“끄루욱!”

이런 데서 죽을 일은 없다는 듯, 꼬리로 바닥을 꿍꿍 내려치는 블리자드!

버프를 걸어주자 녀석은 신이 난 듯 빠르게 사냥을 하러 떠났다.

“그럼 나도 일해볼까. 예전 생각나고 좋네.”

놀의 무덤을 공략할 때도 이런 식으로 스켈레톤을 한가득 상대했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바로 자신이 성장했다는 것.

‘그때는 홀리 익스플로젼밖에 사용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카이는 더 다양한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이번 사냥의 목적은 그 스킬들을 더 잘 사용할 수 있게끔 연습하는 것!

‘최고의 데미지를 뽑을 수 있는 딜 싸이클을 연구해야 돼.’

카이가 다가가자 터벅터벅, 묘지를 배회하던 스켈레톤 나이트가 안광을 터뜨렸다.

[인간…… 너의…… 뼈와 살을…… 파괴할 것이다…….]

턱뼈를 딱딱거리며 다짜고짜 시비부터 거는 몰상식한 스켈레톤 나이트!

터르르륵.

녀석의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은 심하게 녹슬어 있었다.

물론, 한 대 얻어맞는 순간 아! 보기엔 저래도 공격력은 더럽게 높구나!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일단…….’

예전의 카이라면 조심스럽게, 방어에 전념하며 녀석의 패턴부터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카이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저런 잡몹 뼈다귀의 패턴 따위는 무시할 정도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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