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96화 (96/441)

# 96

힐통령 096화

40장. 사냥꾼의 밤(2)

어쩌면 사람이란 예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미처 공부하지 못한 부분이 시험에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은 귀신처럼 들어맞거나,

몸이 무겁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거짓말처럼 넘어지거나.

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막연하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드는 날이 있다.

카이에게는 오늘이 딱 그런 상태였다.

‘몸 좀 사리자.’

이럴 때는 지나가는 나뭇잎 한 장조차 조심해야 하는 법!

침묵의 숲을 걷고 있던 카이는 맞은 편에서 유저들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는 즉시 옆으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누구에게든 시비가 걸릴 여지 자체를 주지 말아야지.’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대처는 안일했다.

툭.

“아!”

가볍게 부딪친 어깨.

현실의 길거리였다면 서로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며 지나갔을 만한 사소한 일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문턱에 새끼발가락이라도 부딪힌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았다.

그의 동료들이 순식간에 인상을 팍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악. 내 어깨…… 저 새끼가 쳤어!”

“뭐? 당신 뭐야?”

“사람을 이렇게 쳐놓고 사과 한 마디 안 해도 되는 거야?”

단숨에 카이를 몰아붙이는 녀석의 동료들.

그 행태는 분명 어이가 가출할 정도였지만 어깨가 부딪힌건 사실이다.

‘저 정도로 아플 리는 없는데……?’

하지만 상대방의 힘 스탯이 낮았다면 아픈 건 둘째 치고 체력에 피해가 갔을 수도 있는 일.

카이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제가 앞을 못 봤네요.”

“미안하면 다야?”

“사과 한마디로 일이 다 해결될 것 같으면 세상에 경찰은 왜 있고, 법은 왜 있나?”

“……아.”

카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건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시비를 거는 상황.

입술을 꾹 다문 카이의 눈빛이 그들을 훑었다.

‘이 녀석들, 뭐지?’

입으로는 제 동료들을 걱정하는 척하지만, 정작 그를 부축하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퍼지며 자신의 도주 경로를 막아내는 중!

이유는 모르겠지만 서로의 어깨가 부딪힌 것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카이의 입에서도 고운 말은 나가지 않았다.

“사과를 했는데도 이러네. 그럼 뭐, 어떻게 금전적 보상, 깽값이라도 드려?”

“뭐? 이게 누굴 거지로 아나…….”

“말하는 싸가지 보소!”

“가만, 이 녀석 이제 보니 언노운 아니야?”

“어, 맞네? 이야. 유명인들은 이렇게 일반인들 상대로 막 나가도 되는 거야?”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또 다른 파티가 건들거리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멜트, 마침 잘 왔어. 아 글쎄 저 새끼가 사람 쳐놓고 얼마면 되냐 그러네.”

“지가 뭐 재벌이야?”

“그럼 피해보상금으로 한 10억 정도 달라고 해봐?”

“크크큭. 그거 주면 진짜 넘어가 줄 수도 있는데.”

순식간에 8명으로 불어난 상대들.

당연한 말이지만 카이를 둘러싼 그들의 포위망은 조금 전보다 정확히 2배 더 촘촘해졌다.

‘어디 소속이지?’

우선 검은 벌 쪽은 아니었다.

그곳은 길드원으로 마법사만 받아들이는 또라이 집단.

눈앞의 녀석들처럼 주먹이나 검, 창 따위를 들고 설칠 리는 없었다.

‘뭐야. 그쪽이 아니라면 난 딱히 미움받을 만한 곳이 없는…… 아?’

불현듯 생각나는 한 존재.

‘잠깐만. 혹시 골리앗은 아니겠지?’

말 그대로 설마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자신이 그에게 한 일이라고 해봤자, 고작 채팅방에서 추방한 일밖에 없으니까.

‘설마 쪼잔하게 그거 하나 때문에 이러겠어?’

자신이 생각하고서도 피식 웃음이 나오는 가정이다.

‘……에이 설마.’

하지만 돌다리도 두드려봐야 하는 법!

카이는 혹시나 하는 심정을 꾹꾹 눌러 담아 질문했다.

“타이탄에서 나한텐 무슨 볼일이지?”

움찔!

단체로 감전이라도 된 듯, 동시에 몸을 움찔거리는 녀석들!

그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돌아봤다.

‘뭐야, 쟤가 우릴 어떻게 알아?’

‘너희가 우리 오기 전에 입 털었냐?’

‘개소리. 길드 엠블렘까지 떼놓은 우리의 철두철미함이 안 보여?’

‘근데 저 새끼가 우릴 어떻게 알아?’

‘……글쎄?’

눈빛과 눈빛 사이로 오고 가는 수많은 의문!

그나마 빠르게 정신을 차린 사내 하나가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착각을 해도 단단히 했군. 우린 타이탄이 어딘지도 모른다.”

“장비 보니 레벨이 최소 120은 넘어 보이는데, 세계 10대 길드 중 한 곳인 타이탄을 모른다고?”

“아니, 물론 알긴 아는데…… 우리랑은 상관이 없는 곳이라는 말이다.”

“음…… 아니야. 내가 볼 때 너희는 딱 봐도 골리앗이 보냈어.”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럼 골리앗 개새끼라고 해봐.”

“하! 골리앗 개새…….”

“야, 야!”

툭툭.

동료의 팔꿈치가 자신을 거칠게 때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사내.

카이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쉽네. 바보 하나 낚는 줄 알았는데.”

“아, 진짜. 우리 타이탄 길드원 아니라니까 그러네!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아니 진짜로 너희 타이탄 길드원 맞다니까 그러네? 내 말은 왜 못 믿는데?”

수많은 작업을 쳐봤지만,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또라이는 처음이다!

그렇게 판단한 타이탄 길드원들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그들이 각자의 무기를 뽑았다.

“살다 살다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미친놈은 처음이군.”

“우와, 이렇게 시비 거는데 말이 통하는 상대가 있었다고? 뭐, 부처님한테 시비 걸었냐?”

“……아무튼 내 동료에게 부상을 입혔으니 그 죗값을 달게 받아라.”

“부상 같은 소리 하네. 네 동료 지금 뒤에서 겁나 멀쩡하게 검 들고 있거든? 나 쥐어패려고.”

“혀가 길구나!”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것 같은 새끼!”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드는 타이탄 길드원들!

짜증을 한가득 받았을지언정, 그들의 공격은 매서웠다.

‘타이탄 길드. 합격진이 뛰어나다고 소문난 길드지.’

타이탄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봤다.

우선 길드에 가입하는 순간, 조를 편성하여 같은 조원들끼리 특수한 훈련을 받는다고.

그 특수한 훈련이란, 현재 카이가 상대하는 합격진이었다.

캉, 카가가강!

카이의 검이 날아드는 두 개의 무기를 번개처럼 빠르게 튕겨냈다.

그리고 곧장 왼손에서 튀어나가는 신성 사슬!

“어억?”

난생처음 보는 스킬에 당황한 타이탄 길드원들이 당혹성을 뱉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로 만들어진 약간의 빈틈.

신성 사슬은 그곳을 정확히 질주했다.

촤르르르륵.

“어? 어어?”

사슬은 가장 뒤에 있던 녀석의 목에 휘감겼다.

24번 조의 조장인 멜트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뜨는 순간,

그의 몸은 모터보트에 묶인 수상 스키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커어어억!”

“멜트!”

바닥을 퉁퉁 튕기면서 순식간에 카이에게 납치된 멜트!

카이는 자신의 발 밑에서 버둥거리는 멜트의 가슴을 그대로 짓밟았다.

콰드드득!

“크악!”

‘다수를 상대할 때는 머리부터 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카이는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 적들의 위치부터 파악했다.

‘당장 전투에 뛰어들지 않고 뒤쪽에서 상황을 관전하는 녀석이 둘.’

한 놈은 창술사, 다른 한 놈은 마법사였다.

아마 이 중에서는 직급이 가장 높은 녀석들일 터.

그래서 카이는 그중 한 명을 납치해 왔다.

그가 바로 지금 자신의 발 밑에 깔려 있는 마법사, 멜트였다.

‘일단 정신부터 쏙 빼놔야겠지.’

카이가 검을 배운 뒤 치른 전투 경험은 이제 그리 적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항상 솔플을 해왔기에 다수를 상대로 하는 전투는 이골이 난 상태.

조직의 머리를 쳐부숴야 한다는 건 몬스터를 상대할 때도 적용되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합격진을 위주로 펼치는 녀석들이잖아.’

합격진은 각자의 공격이 서로의 빈틈을 보완해 주고, 적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데 의미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설픈 합격진은 안 하는 것만 못하다.

‘하지만 이 녀석들의 합격진은 전혀 어설프지 않지.’

타이탄 길드의 레이드 영상은 공개될 때마다 꾸준한 박수를 받았다.

이유는 그들의 합격진이 항상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매끄럽게 회전하기 때문이다.

전투가 아니라 일종의 군무를 보는 듯한 움직임!

길드원 모두가 하나의 생물이 된 것처럼 움직이는 아름다움이란 영상미가 있었다.

‘그렇다면 톱니바퀴가 못 돌아가게 만들어야지. 아주 끽끽 소리가 날 정도로 말이야.’

지금 카이가 하는 일은 톱니바퀴와 톱니바퀴 사이에 이물질을 끼워 넣는 행위였다.

푹, 푹, 푹!

카이는 사슬을 뒤로 당기면서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마다 멜트가 질질 끌려왔고, 카이는 다른 녀석들을 견제하며 녀석의 심장을 계속해서 찔러댔다.

“커억, 이, 이거 놔라……!”

“젠장! 멜트, 복수는 해줄게!”

“뭐해 이 새끼들아! 무시하고 공격해!”

37번 조장인 하비르의 명령에 다시 정신을 수습한 타이탄 길드원들.

순식간에 여러 갈래로 찢어진 그들이 스킬들을 소나기처럼 쏟아냈다.

하지만 위기를 코앞에 둔 카이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거렸다.

‘확실히 아까보다는 느슨해졌어.’

앞서도 말했지만 합격진의 생명은 타이밍과 부드러운 연계다.

이를 위해서는 수백, 수천 번을 함께 손을 맞추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수백, 수천 번을 연습한 것과 아예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면?’

카이가 주입한 것은 아주 약간의 생소함과 불안감이었다.

평소와는 상황이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사소한 생각.

그것이 저들의 움직임을 굼뜨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특히 저 녀석이랑 저 녀석의 몸이 눈에 띄게 무거워졌어.’

불량품이 된 톱니바퀴와 여전히 멀쩡한 톱니바퀴.

순식간에 적들을 두 종류로 구분 지은 카이가 공격을 개시했다.

목표는 아직까지 멀쩡한 톱니바퀴들이었다.

그들마저 확실하게 부숴버려야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킬 테니까.

촤르르르륵!

“크윽, 이거 대체 무슨 스킬이냐고!”

전사 하나가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신성 사슬을 쳐냈다.

물론 이에 카이가 준비한 것은 친절한 설명이 아닌 우악스러운 검격이었다.

콰드드득!

전사의 견고한 갑옷 어깨 부분에 존재하는 조그마한 이음새.

그곳에 정확히 검을 쑤셔 넣은 카이는 곧장 신성 사슬을 녀석의 목에 둘렀다.

“어어?”

그리고 어두운 숲을 내달렸다.

“이런 미친! 잡아!”

“쫓아!”

“근데 무슨 속도가…….”

허둥지둥 카이의 뒤를 쫓는 타이탄 길드원들!

전사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달리던 카이는 신성 사슬 하나를 더 소환해 오른손에 둘둘 말았다.

“지, 지금 뭐 하으아아아아악!”

불안함을 느낀 전사의 질문은 중간에 비명이 되며 덧없이 흩어졌다.

이유는 카이의 주먹이 검 손잡이를 강타했기 때문!

콰앙, 콰앙, 콰앙!

신성 사슬을 너클처럼 주먹에 둘러놨기에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없었다.

카이의 주먹은 마치 못을 박아넣는 망치처럼 검을 녀석의 어깨 깊숙한 곳으로 박아넣었다.

“커, 커어억……!”

무언가가 자신의 몸 깊숙한 곳으로 파고드는 소름 끼치는 이질감.

게임이라 고통은 없다지만, 그 더러운 기분은 저절로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콰앙! 콰앙!

전사는 단단하다.

그 이유는 높은 방어력의 갑옷을 장비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지금 카이의 공격은 갑옷을 무시하고 몸 내부를 헤집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됐나.’

카이는 검이 손잡이 부근까지 깊숙하게 박히자, 이를 잡으며 스킬을 시전했다.

“칼날 쇄도!”

기이이잉!

빠르게 돌아가는 검.

그리고 빠르게 터져 나오는 전사의 비명!

“끄아아아아악!”

전사가 몸을 격렬하게 뒤틀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숲속을 떠돌며 나뭇잎을 흔들던 비명은 그가 폴리곤 덩어리가 되고 나서야 그쳤다.

꿀꺽.

순식간에 적막에 사로잡힌 숲속.

카이의 뒤를 바짝 쫓아오던 타이탄 길드원들은, 강렬한 폭력 앞에 숨죽였다.

“헨슨이 당했어…….”

“우, 우리는 그래도 계획대로 움직인다. 당장 시작해!”

누가 듣기에도 전의가 꺾였다고 느껴지는 목소리들!

하지만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뒤로 물러나 그들과 거리를 벌리려던 카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건 또 언제 만들어놨어……?’

등 뒤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벽의 감촉은 분명 어스 월.

방금까지만 분명히 없었던 벽이다.

‘역시 제법이야. 타이탄.’

마법사의 실력에 감탄할 사이도 없이 온갖 공격이 그를 향해 쏘아졌다.

전투 시작 이래 처음으로 느껴지는 위기감!

“쯧…….”

결국 가볍게 혀를 찬 카이가 신경질적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영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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