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97화 (97/441)

# 97

힐통령 097화

40장. 사냥꾼의 밤(3)

화아아아악!

영체화를 시전함과 동시에 전신이 푸른색 입자로 변한 카이.

그 모습은 마치 옅은 물감을 덧칠한 것처럼 흐릿해 보였다.

까앙, 까앙, 까앙!

타이탄 길드원들의 공격이 카이의 몸을 지나치며 어스 월에 처박혔다.

동시에 하나같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 이들!

“뭐, 뭐야!”

“설마 물리 면역…… 아니, 물리 공격 무시냐?”

“이거 고스트나 벤시들이 가지는 속성이잖아?!”

“이, 이건 영체화 스킬?”

‘……어라, 그 와중에 이 스킬을 알아보는 놈이 있어?’

멀찍이 떨어진 하비르의 중얼거림은 조용했지만 카이는 이를 똑똑히 들었다.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현재 상황이 헉! 어떻게 아셨어요? 라고 물어볼 만한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콰드드드득!

영체화 상태에서 앞으로 튀어나간 카이의 검이 한 놈의 목젖을 파고들었고, 왼손은 궁수의 입술을 거칠게 부여잡았다.

그 상태에서 쏘아져 나가는 홀리 익스플로젼!

“끄어어…… 어업!”

게임에서 입속을 공격당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그 좀처럼 없는 경우를 마주한 궁수는 순식간에 패닉 상태에 빠지며 버둥거렸다.

‘확실히 영체화 상태라서 그런지 확실히 공격력은 약해졌어. 하지만…….’

아직 시간은 많다.

카이는 느긋한 마음으로 제 손에 붙잡힌 적들의 피를 야금야금 깎아나갔다.

이를 보다 못한 하비르가 소리쳤다.

“거리를 벌린 뒤 마법을 퍼부어! 영체화 상태에선 마법 스킬에 두 배의 데미지를 입는다!”

‘뭐야, 영체화 대해서 약점에 대해서도 알고 있잖아?’

밑천을 털린 카이는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티 내기라도 하듯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그를 향해 날아오는 다양한 속성의 마법 주문들!

“아이스 스피어!”

“어스 혼!”

“파이어 볼!”

‘마법 저항력이 높아서 맞아도 크게 아프지는 않을 테지만…… 저걸 굳이 맞아줄 의리는 없지.’

붙잡고 있던 적들을 바닥에 내팽개친 카이의 두 발이 바닥을 빠르게 밟았다.

마치 탱고를 추는 것처럼 화려하고 기민한 스텝이 이어졌고,

그의 몸이 마법 주문들을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마법을 사용한다는 판단은 좋았지만, 딱 그 정도.’

타이탄 길드원의 마법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검은 벌 길드원들보다 나을 리는 없지 않은가?

카이는 이미 예전에 검은 벌 길드원들의 마법 폭격을 한 대도 허용하지 않고 피해냈던 인물.

카이의 입장에서는 검은 벌 녀석들의 마법이 훨씬 무섭게 느껴졌다.

“젠장, 괴물 같은 새끼! 일단 후퇴한 뒤 태세를 정비한다! 영체화는 물리 면역이야!”

하비르의 명령과 함께 멀쩡한 다섯 명의 적들은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

아무 말 없이 그들이 도망치는 방향을 시야에 꾹꾹 담은 카이의 신성력이 쭉 빠져나갔다.

고오오.

동시에 칠흑의 장비 위로 새하얀 신성력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허억, 허억.”

열심히 두 다리를 놀리는 하비르의 입에서는 연신 새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저런 괴물 같은 놈의 레벨이 고작 100 전후라고? 정보부 새끼들…… 믿을 게 못 되잖아!’

칼질 몇 방에 120레벨의 유저를 죽여버리는 압도적인 강력함.

그건 절대 100레벨 유저가 보여줄 만한 공격력이 아니었다.

‘아니, 물론, 대부분의 공격이 급소에 박혀서 치명타가 떴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공격력이다.

‘게다가 영체화라니. 그 엿 같은 스킬은 대체 어떻게 얻은 거지?’

전혀 생각도 못 했던 스킬이었기에 더욱 깜짝 놀랐다.

자신이 아는 한 유니크 등급인 영체화 스킬을 손에 넣은 존재는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하비르는 빠르게 보이스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며 파티원들에게 명령했다.

“우선 바로 근처에 있는 멜버른의 공동묘지에서 다시 집결한다.”

[보이스…….]

“거기서 재정비를 한 뒤,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니다.]

말을 이어가던 하비르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며 천천히 달려가던 속도를 줄였다.

‘자꾸 무슨 메시지가 들리는데?’

마침내 자리에 멈춰 서서 메시지 로그를 확인하는 순간, 하비르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보이스톡에 참여 중인 인원이 없습니다.]

“뭐, 뭐라고?”

꿀꺽.

목구멍이 따끔거릴 정도로 기분 나쁘게 넘어가는 침 덩어리.

하비르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파티원창을 열어봤다.

회색으로 칠해져 있는 닉네임과 그 옆에 그려진 해골 표시가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젠장! 정말 다 죽었다고?’

자신을 제외한 모두의 사망.

그 사실을 깨달은 하비르는 발에 못질이라도 당했는지 좀처럼 발걸음을 떼질 못했다.

‘상대를 잘못 건드렸나?’

길드의 정보부에서는 분명 언노운의 레벨이 100 정도라고 했다.

그래서 120에서 130레벨의 유저 8명인 자신들은 승리를 확신했던 것이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릴 수가 있지? 말이 안 되는데?’

타이탄 길드에서 누군가를 척살하는 건 일종의 놀이였다.

자신들이 사냥꾼이 되고, 사냥감을 포위하여 뒤쫓는 놀이.

‘그런데 이 새끼가…… 오히려 우리를 사냥하고 있어?’

뿌드드득.

화가 치밀어 이빨이 갈렸지만, 하비르는 이성을 잃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 오고 있는 중이겠지.’

언노운의 대책 없고 깔끔한 성격상 자신을 마무리를 하기 위해 뒤를 쫓아오는 중일 것이다.

“젠장!”

죽음 페널티로 인해 떨어질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를 복구할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그는 타이탄 길드의 조장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그래. 죽을 땐 죽더라도, 그놈에게서 하나라도 더 많은 정보를 뽑아내…….’

나름 심오한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그의 다리에 무언가가 휘감겼다.

촤르르르륵!

“이건……!”

언노운이 사용하던 기묘한 스킬!

그것을 깨달은 하비르는 순식간에 창을 뽑아 용뢰섬 스킬을 이용해 사슬을 잘라냈다.

“감히 나에게도 이딴 수작이 통할 거라 생각하다니!”

숲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자신만만한 호통!

하지만 그에게 날아든 사슬은 고작 하나가 아니었다.

촤르륵, 촤르르륵!

두 개, 세 개, 네 개…….

“이익……!”

사슬이 열두 개가 넘어가는 순간, 하비르는 몸의 통제권을 잃고 어두운 숲속으로 끌려갔다.

“으읍, 으읍!”

“……하여튼 10대 길드 녀석들은 사람 귀찮게 만드는 데 재주가 있다니까.”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 위에 앉아 있던 카이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널 가장 마지막에 찾아온 거거든.”

“으읍!”

“아, 입을 틀어막아 놔서 대답을 못 하나?”

사슬들을 풀어주는 순간, 하비르가 재빨리 일어나며 등 뒤의 창을 뽑아냈다.

“후우…….”

그 모습에 가볍게 한숨을 내쉰 카이의 손목이 살짝 뒤틀렸다.

휘리릭!

“으윽!?”

카이는 녀석의 목에 사슬을 휘감더니, 신성 폭발의 힘을 통해 그대로 사슬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압도적인 힘에 의해 개구리처럼 엎어지는 하비르의 신형.

콰당!

푸욱!

카이의 검은 다시 일어나려고 바닥을 짚는 녀석의 손을 관통해 바닥까지 파고들었다.

“크윽!”

“괜한 짓 하지 마. 넌 나 못 이겨.”

짤막한 경고를 남긴 카이가 질문했다.

“영체화 스킬에 대해선 어떻게 알고 있지?”

“크큭, 그게 궁금해서 날 안 죽이고 있었나?”

“어.”

“그걸 내가 왜 말해야 하지?”

“내가 궁금해하니까.”

“하, 너와 내가 적이라는 걸 까먹은 거냐?”

“대답만 잘해주면 살려줄게. 약속하지.”

카이가 하비르의 장비를 스윽 훑어봤다.

“착용 제한 130레벨 이상의 창, 라이노스의 뿔. 125레벨의 블랙 워리어 방어구 세트. 딱 봐도 레벨이 130은 넘어 보이는데 사망 페널티는 피하는 게 좋잖아?”

“크큭, 멍청한 놈. 넌 아직도 단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그딴 제안이나 하고 있지.”

“뭐?”

“너 같이 혼자 다니는 놈이야 한 번 뒤지면 복구하는 게 힘들겠지. 하지만 과연 우리도 똑같을까? 오늘 너한테 죽은 녀석들이 레벨이랑 스킬 숙련도 복구하는데 과연 며칠이나 걸릴 거라고 생각하냐. 한 달? 아니면 20일? 아니, 길드 지원받으면 일주일이면 충분해, 이 새끼야!”

하비르는 아무 말도 못 하는 카이를 승리자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한 마디로 너 같은 놈 질문에 대답해 주고 길드에 찍히는 것보다는, 그냥 한 번 뒈지는 게 낫다는 소리지.”

“음…….”

카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방식 자체가 이렇게 틀릴 줄이야.

하지만 확실히 하비르 녀석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이게 사람들이 길드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이유구나.’

길드의 명령에 복종하다가 죽어도 길드 차원에서 금방 복구해 준다는 믿음.

그것이야말로 길드에 소속된 이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명령에 따르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 정도로 생각이 확고한 녀석을 말로 구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전투를 시작한 이후로 시간이 제법 많이 흘렀으니 후속대가 도착할 수도 있는 상황.

카이는 깔끔하게 미련을 접고 하비르를 마무리했다.

“크큭…… 잊지 마라. 개인은 절대 단체를…… 이길 수 없…….”

“시끄러워.”

서걱!

하비르의 목을 베고 나서야 조용해지는 숲.

“후우, 적자네. 그것도 대 적자야.”

검은 벌을 적으로 돌렸을 땐 워낙 얻은 것이 많았기에 딱히 불만이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타이탄 길드가 적으로 돌아섰지만…… 금전적 보상을 얻은 것도 없어, 끝내주는 영상을 뽑은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이 거지 녀석들, 죽으면서 템 하나를 안 뱉네?’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마음씨가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골리앗 때문이었다.

“거 사람이 살다 보면 채팅방에서 추방 좀 당할 수도 있지…….”

설마 그걸 복수하겠답시고 이렇게 길드원까지 보낼 줄이야!

‘이러면 침공 이벤트 때의 동선을 새롭게 짜야 되잖아.’

애초에 검은 벌의 방해만 상정하고 짰던 동선이다.

하지만 이제는 타이탄 쪽의 움직임도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

“아, 진짜 짜증…….”

카이가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짜증을 내뱉었을 때, 한 파티가 근처를 지나갔다.

“우와, 팔로우 숫자 늘어난 거 봐!”

“언노운 효과가 좋긴 좋네.”

“나중에 만나면 또 사진 찍어야지.”

“이러다가 인스타 스타 되는 거 아니야?”

“…….”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

그리고 그들의 대화에 언급된,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

“……덕분에 아주 적자는 안 나겠네.”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