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01화 (101/441)

# 101

힐통령 101화

41장. 라이넬의 던전(4)

치유 감소는 대상의 치유 효과를 대폭 감소시키는 상태이상 디버프이다.

파티의 앞선에서 적들의 공격을 계속해서 받아내야 하는 탱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존재!

물론 치유 감소 디버프에도 대처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큐어, 그리고 힐.’

아군에게 걸린 디버프를 정화해 주는 큐어(Cure).

그리고 아군의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힐(Heal).

두 가지 스킬 모두 사제로 전직하자마자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스킬이다.

하지만 이 스킬들이 카이의 손에서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순간, 일행의 눈빛이 돌변했다.

심지어는 치료를 받은 발터마저 탱커인 자신의 입장을 까맣게 잊은 채 뒤를 돌아볼 정도였다.

‘뭐, 뭐야, 이 녀석……?’

‘방금 저거…… 설마 더블 캐스팅?’

‘사제가 더블 캐스팅이라고? 마법사도 아니고 사제인데?!’

입만 쩍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하는 파티원들.

그 위로 카이의 노성이 떨어졌다.

“다들 뭐하십니까? 라인 무너지잖아요!”

“어, 어! 그렇죠!”

“탱커들 다시 라인 세워! 발터 쪽 무너진다!”

“그쪽 집중해서 힐 보낼게요!”

혼란스러웠던 전장이 순식간에 정돈되었지만, 이미 휘몰이 길드원들에게 리빙 아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의 모든 신경은 뒤쪽, 파티의 가장 후방에 자리한 한 사제에게 몰려있었다.

‘더블 캐스팅을 사용하는 사제라니!’

‘재능 낭비잖아, 그거!’

‘아니, 대체 왜 마법사 안 키우고 사제를 키우고 있지?’

왼손으로 별을 그리는 것, 그리고 오른손으로 팔각형을 그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동시에 하라고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블 캐스팅은 그런 종류의 기술이었다.

플레이어의 노력보다는 재능, 뇌의 성능에 의해 사용 여부가 결정되는 불공평한 기술.

‘왼손으로 큐어, 그리고 동시에 오른손에서 힐.’

좌뇌와 우뇌가 동시에 명령을 내리고, 양손이 각기 다른 일을 수행한다.

이 불공평한 기술을 사용하던 사제들은 카이 이전에도 몇 명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깨닫는 순간, 캐릭터를 삭제하고 마법사로 다시 만들었다.

사제의 더블 캐스팅과 마법사의 더블 캐스팅은 그 의미나 대우부터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나도 진작 더블 캐스팅이 가능했으면, 사제를 때려치우고 마법사로 전직했을 수도 있지.’

안타깝게도 카이가 더블 캐스팅을 깨우친 건 고작 며칠 전이었다.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역시 흰수염 사범에게 배웠던 무빙 캐스팅!

그것의 발동 원리가 더블 캐스팅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해야 하는 멀티태스킹. 짜증 나는 부분이 똑같아.’

멜버른의 공동묘지에서 2주 동안 솔플을 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으며 손에 넣은 성과들.

더블 캐스팅도 그것들 중 하나에 속해 있었다.

콰아아아앙!

“크윽!”

“아프잖아!”

[쿠오오오!]

리빙 아머들의 공격은 기사 NPC를 방불케했다.

빠르고, 강력하고, 엿 같은 치유 감소 효과까지 붙어있는 공격!

당연히 탱커들의 눈빛에서는 불똥이 튀었다.

‘아오! 진짜 치감 효과만 없었으면 이딴 공격 따위는…….’

‘저저저, 이놈들 치감 믿고 개돌하는 거 보소!’

‘아주 그냥 방패로 뚝배기를 확 마…….’

물론 눈빛만 험악할 뿐, 현실은 방패로 녀석들의 공격을 패링(Parrying)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제들이 열심히 힐을 넣고는 있지만, 치유 감소 때문에 힐이 전혀 안 들어오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카이의 참전이 그 상황을 뒤집었다.

“치감 디버프 걸린 분들 위주로 큐어와 힐 넣을게요. 다른 사제분들은 힐량 지원해 주세요!”

“그, 그러지.”

“하지만 20명이나 되는데 가능하겠나?”

“됩니다. 전 서브 힐러니까요.”

카이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현재 파티에서 그의 역할은 서브 힐러.

메인 힐러는 140레벨이 넘어가는 세 명의 휘몰이 사제가 맡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서브 힐러는 메인 힐러가 마음껏 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판만 깔아주면 되지!’

현재 메인 힐러들은 한 사람당 7명씩의 파티원을 담당하는 중이었다.

그들도 치유 감소 디버프가 큐어로 지워진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도저히 큐어 스킬을 사용할 틈을 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더블 캐스팅을 사용하지 못하니까.’

게다가 버프까지 계속 돌려야 하는 그들은 줄어드는 신성력까지 신경 써야 했다.

괜히 사제가 극한 직업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물론 카이는 그런 머리 아픈 요소들로부터 자유로웠다.

‘어차피 난 서브 힐러니까.’

한 마디로 책임과 고통에서 자유로운 포지션!

“큐어, 힐! 큐어, 힐!”

카이가 전투에 합류하여 치유 감소 효과를 즉각적으로 제거해 주자, 탱커들의 체력은 순식간에 안정권까지 올라가며 유지되었다.

끼릭, 끼리릭!

콰지지직!

그 기세를 몰아 딜러들이 힘을 냈고, 리빙 아머들은 차례로 폴리곤이 되며 흩어졌다.

치열했던 전투에 지친 일행은 자신들의 무기를 늘어트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아…… 역시 지하 5층은 빡세네.”

“쯧, 이럴 줄 알았으면 길드 정예들 몇 명 더 꼬셔서 데려오는 건데…….”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흑곰 형님 뿐이니까.”

“흑곰 형님이 탱커인게 아쉬워. 딜러였으면 혼자 던전 몬스터 다 녹이셨을 텐데.”

“그래도 전투 초반에만 힘들었지, 끝에 가서는 별로 힘들지도 않았어.”

“그거야…….”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시선의 끝에는 자리에 주저앉은 채 신성력 포션을 빨고 있는 카이가 있었다.

“야! 너 대체 뭐야!”

상기된 얼굴을 앞세운 발터가 특유의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카이에게 물었다.

카이의 인상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아, 더워. 가까이 오지 마. 주변 온도가 2도쯤 높아진 거 같잖아.”

“지금 그게 중요해? 아까 그거 대체 뭐야? 더블 캐스팅 아니야?”

“맞는데?”

“마, 맞는데, 라니…….”

발터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을 억지로 삼켰다.

‘그 재능 가지고 왜 사제를 하고 있어!’

“그 재능 가지고 왜 사제를 하고 있어! 어라.”

결국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튀어나온 질문!

이에 카이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이거 할 수 있는지 몰랐어, 인마.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며칠 안 됐고.”

흰수염 사범에게 무빙 캐스팅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면, 더블 캐스팅도 사용할 수 없었으리라. 최고급 스포츠카조차 운전자의 실력에 따라 성능이 천차만별로 바뀌는 법,

마찬가지로 뇌의 성능 또한 다룰 수 있는 법을 배우면 더욱 효율적으로 올라갔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

“발터. 내가 잠시 카이 님과 대화를 나눠도 될까?”

“아, 네. 그러세요.”

진중한 표정을 지은 흑곰은 발터에게 양해를 구하더니 카이에게 물었다.

“괜찮으시다면 잠시 대화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이에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씀하시죠.”

“……혹시 마법사라는 직업에는 뜻이 없으십니까?”

흑곰의 질문에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사제라는 것은 흑곰은 물론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저런 질문을 던진다는 건…….

‘캐릭터를 새로 키울 생각이 없냐, 이 뜻이겠지?’

돌려 말하고 있지만, 결국 영입 제안이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흑곰의 말이 이어졌다.

“캐릭터를 다시 만드시고 저희 길드에 가입하신다면 현실 시간으로 석 달…… 아니, 두 달하고 보름 안에 130레벨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최고급 장비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맞춰드리죠.”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만한 파격적인 제안!

휘몰이 길드가 던전 하나에 쩔쩔매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길드 전력의 일부일 뿐이었다.

국내의 수많은 길드 중에서 4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 길드에 속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흑곰 옆에 자리한 코밋 또한 놀랐는지, 어서 기회를 잡으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야 내가 일반적인 사제였다면 한 30분 정도 고민을 해봤을 문제지만…….’

찰나의 고민조차 하지 않은 카이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역시 마법사보다는 사제가 제 취향에 맞는 것 같아요.”

“으음…… 하지만 더블 캐스팅은 사제보다는 마법사가 사용해야 더 위력적인 기술입니다. 순간 DPS를 두 배 가까이 올릴 수 있으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전 이 직업이 좋아요.”

“끄응. 그렇게까지 생각이 확고하시다면 어쩔 수 없군요.”

흑곰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게임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재능은 흘러넘치지만 그저 욕심이 없을 뿐이었다.

흑곰은 카이를 그렇게 평가했다.

물론, 그 생각은 사실과는 조금 달랐다.

‘와, 지금 신화 등급 플레이어한테 캐릭터 지우고 일반 마법사로 전직하라고 한 거지?’

상상만 해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무서운 소리!

어느 때보다도 직업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 카이는 부르르 떨리는 몸을 겨우 진정시켰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10분 뒤에 다시 출발할 예정입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흑곰은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코밋도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휴. 진짜 아쉽네요. 왜 신은 저런 재능을 썩히는 사람에게 주는 건지…… 제가 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면 진짜 잘 사용해 줬을 텐데.”

“우리같이 게임을 직업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카이 님처럼 게임을 게임 그대로 즐기는 사람도 있는 법이지. 각자의 가치관이 다를 뿐, 한쪽이 맞거나 다른 쪽이 틀린 문제는 아니야.”

“그래도…… 저 재능이면…….”

“그 얘기는 여기까지.”

슬쩍 고개를 돌린 흑곰은 발터와 떠들고 있는 카이를 쳐다봤다.

‘그래도 약간 기대는 되는군. 내가 알고 있는 한 더블 캐스팅을 사용할 줄 아는 사제는 카이 님뿐이야.’

더블 캐스팅을 사용할 줄 아는 사제들은 30레벨 이전에 모두 마법사로 전향했으니까.

‘마법사가 더블 캐스팅을 사용하면 강력한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사제는?’

그것이 좋든, 나쁘든.

카이가 여태껏 본 적 없던 존재가 될 것만은 확실했다.

‘재미있는 사람이군.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은 없겠어.’

고개를 돌린 흑곰은 우선 이 던전에서 나가는 것만을 생각했다.

***

“헤이스트는 꼭 배워두세요. 교단에서 70레벨에 언락되니까 지금 배울 수 있을 거예요.”

“아까 그거요? 힐링 웨이브라는 스킬이에요. 논타겟 스킬이라서 사용하는 게 어렵긴 한데…… 연습하면 조금씩 나아져요.”

“아, 그리고 성스러운 방어막 아직 업그레이드 안 했죠? 밀타 산에서 수행 퀘스트 완료하면 상위 스킬인 빛의 장막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주니까 이건 꼭 하세요.”

젖과 꿀과 팁이 흐르는 땅!

카이에게 라이넬의 던전은 그런 장소였다.

메인 힐러인 세 사람은 카이에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팁을 공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꿀팁 많이 얻어가네.’

그들의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쏙쏙 빨아들인 카이의 레벨은 어느새 98이 되어 있었다.

하루 동안 지하 5층을 듀라한까지 깔끔하게 정리했기에 가능했던 결과!

동시에 휘몰이 파티원들의 얼굴 위로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떠오른 상태였다.

‘이거, 아무래도 다음 층이…….’

‘무덤이 되겠어.’

‘그게 라이넬의 무덤이 될지, 우리의 무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카이는 지하 6층의 듀라한을 쓰러트리고 나온 메시지를 떠올렸다.

[여섯 번째 기사가 쓰러졌습니다. 일곱 번째 기사, 라이넬이 도전자들을 기다립니다.]

일곱 번째 기사, 라이넬.

여태까지 이름이 없던 플로어 가디언들과는 달리 이름이 있는 기사!

동시에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다.

“자, 갑시다.”

24인의 선두에 선 흑곰이 당당하게 외치며 계단 쪽의 석문을 건드렸다.

파티원들의 동의를 묻는 창이 나타나고, 모두 결연한 표정으로 이를 수락했다.

쿠구구구궁.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막고 있던 석문이 열렸고, 공략대는 아래층으로 향했다.

“음!”

“여긴……?”

아래층에 도착한 즉시 주변을 경계하는 사람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위층과는 플로어 형태가 다르다.’

‘리빙 아머들도, 듀라한도 보이지 않아.’

‘기둥들이 엄청 많은 층이군.’

‘바닥은 또 왜 이래?’

바닥의 네모난 타일은 푸른색으로 깜빡깜빡 빛나고 있었다.

그 위에 올라서니 마치 체스나 바둑판 위의 병정이 된 기분마저 들었다.

주변을 살피던 흑곰이 물었다.

“라이넬은?”

“아직 위치가 파악되지 않…… 앗! 전방에 라이넬 발견!”

레인저의 외침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질질.

낡고 해진 채 바닥에 질질 끌리는 누런색의 사제복.

그 아래로 보이는, 마찬가지로 녹이 슬고 찌그러져 있는 갑옷.

마지막으로 비어 있는 투구를 제 옆구리에 끼고 있는 녀석은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나왔다.

[던전의 보스, 일곱 번째 기사 라이넬과 조우하였습니다.]

라이넬은 으레 보스들이 하는 경고 문구 따위를 내뱉지 않았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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