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05화 (105/441)

# 105

힐통령 105화

44장. 두 번째 임무(1)

교단에 들린 카이는 휘몰이 길드의 사제들이 충고해 줬던 스킬들을 모조리 배웠다.

‘물론 태양의 사제가 지닌 스킬보다는 훨씬 못하겠지만…….’

문제는 지금 당장 태양의 사제 스킬들이 잠겨져 있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 카테고리를 언락하기 전까지는 일반 사제의 스킬이라도 연마해야 했다.

이번처럼 언제 어디서 누군가와 파티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일반 사제가 배우는 스킬들을 지니고 있는 편이 나아 보였다.

‘모든 준비는 끝났어.’

이제 타르달의 두 번째 임무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그 전에 카이는 접속을 종료하고 샤워를 마쳤다.

이른 아침부터 그가 이렇게 바삐 움직이는 이유는 단 하나!

‘드디어 오늘이 대망의 이삿날이구나.’

한정우는 캡슐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는 자신의 방을 쳐다봤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사를 온 뒤, 쭈욱 자라왔던 자신의 방.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방을 보니 왠지 모르게 공허한 기분이…….

“방이 깨끗해지니까 속이 다 시원하구나. 아, 시원해!”

“…….”

배달부들이 캡슐을 분해해서 자신의 원룸으로 가져간 동안, 김현정 여사는 한정우의 방이었던 공간을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진짜 내 방이 이렇게 넓었나?’

책상과 컴퓨터, 옷장과 침대가 빠지자 말도 안 되게 넓어진 공간!

분하지만 한정우조차 그 모습이 조금은 시원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엄마는 좋겠네요. 집에서 아들 쫓아내고, 넓은 방도 생겨서.”

“아들, 말은 바로 해야지? 이 집은 엄마 명의로 되어 있으니 원래 내 방이었단다.”

“…….”

푹 움츠러든 한정우의 어깨를 누군가가 두드렸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자 근엄한 표정을 짓고 계신 아버지다.

“아들아, 우리는 널 믿는다. 널 믿기 때문에 저 험한 세상 속에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거지. 어디 가더라도 사내놈이 어깨 움츠리지 말고, 허리 쫙 펴고 당당하게 살거라. 알겠느냐.”

“아버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한 부정에 한정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아들에게 좋은 말을 남긴 아버지는 금세 제 아내에게 다가가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여보, 그럼 저번에 얘기한 대로 이 방은 내 서재가 되는 거요.”

“좋아요. 대신 지혜 방에 최신식 안마 의자 설치해 준다는 약속, 잊으신 거 아니죠?”

“이미 예약까지 다 끝났소. 다음 주면 배송 오겠지.”

“좋네요. 호호호.”

“…….”

한정우가 목덜미를 잡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이 집을 나가게 된 것이 저런 어두운 거래 때문이었다니!

지독한 배신감에 치를 떤 한정우의 어깨 위로, 작고 부드러운 손이 올라왔다.

“너무 실망하지는 마. 두 분이 저래도 어젯밤에는 밤잠도 설치면서 걱정하셨어.”

“그걸 내 앞에서 보여주란 말이야, 내 앞에서.”

“부끄러우신 거지. 두 분 성격 알잖아?”

한정우는 자신의 등을 호탕하게 두드리는 그녀를 쳐다봤다.

수심이 가득해 보이는 우울한 표정.

‘그래도 나 생각해 주는 건 누나밖에 없네.’

한정우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달랬다.

“누나, 난 괜찮아. 애도 아니고 22살인데 설마 혼자 못 살겠어?”

“그거야 걱정 안 하는데…… 너만 나가면 되지 왜 굳이 나까지…….”

“…….”

절대 5초 이상 감동을 느끼게 해주지 않는 가족들!

“그리고 이제 나 혼자 살면 맥주 심부름은 누구한테 시켜야 해?”

“…….”

네가 하세요, 네가.

짜게 식은 눈으로 누나를 쳐다보던 한정우는 재빨리 신발을 신었다.

‘떠나자, 이놈의 집구석!’

한정우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저 가요.”

“멀리 가진 않으마.”

아버지가 어서 가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 모습에 아들이 살짝 안쓰러워 보였는지, 어머니가 다가와 그를 살짝 안아 줬다.

“원룸 냉장고에 반찬 채워놨어. 서랍에 보면 김이랑 캔 음식도 있고, 라면도 종류별로 있어.”

“에이, 내가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알아서 할 수 있어요.”

“아들이 혼자서 잘 하는 아이였으면 집에서 쫓겨나는 일도 없었겠지,”

“쫓겨나는 게 아니라, 독립이라는 고급스러운 단어가 있는데…….”

“그런 단어가 있는 건 엄마도 알지. 근데 아들은 쫓겨나는 거잖아?”

“…….”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도 건질 것이 없다고 판단한 한정우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제 진짜 가볼게요.”

“반찬 떨어지면 전화하고!”

멀리 나오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가족들은 굳이 1층까지 내려왔다.

괜찮다고 해도, 결국 도로까지 나와 한정우가 차에 타는 것을 확인하는 가족들!

“아니, 여기 뭐 공항이야? 나 어디 유학 가는 거 아니잖아?”

“부모의 눈에 자식은 언제나 아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명언을 뒤로한 한정우는 쑥스러움을 느끼며 괜스레 투덜거렸다.

“……아 들어가요. 날 추워요.”

창문을 올리자 기사 아저씨가 천천히 차를 몰았고, 가족들은 차가 코너를 돌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기대하세요.’

사고뭉치에 백수 취급을 받던 아들, 집안의 자랑거리가 돼서 돌아갈 테니까.

***

“흠. 대충 정리는 끝났나.”

이사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어차피 이삿짐센터의 직원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줬으니까.

정우가 신경을 쓴 건 개인적인 물건들의 배치 정도가 전부.

덕분에 이사를 마쳤음에도 중천에 떠 있는 해를 쳐다보던 정우는 식탁으로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떡도 돌려야 하네.”

적당히 후드를 걸친 한정우는 에코백 한가득 떡을 채운 뒤 오피스텔 1층부터 인사를 돌렸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맨 위층인 7층.

‘……뭐야, 여긴?’

7층의 계단을 올라가는 순간, 한정우의 눈이 좌우를 훑었다.

‘경호원?’

오피스텔의 문을 가로막고 있는 두 명의 경호원.

정우는 그제야 부동산 중개업자의 당부를 떠올렸다.

‘아, 참고로 맨 위층에는 함부로 올라가지 마세요. 거긴 벽을 허물어서 집 세 개를 하나로 만들었거든요. 그냥 거긴 개인 사유지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편할 거예요.’

그 사실을 떠올린 한정우가 발걸음을 돌리려 할 때, 그의 어깨 위로 손이 올라왔다.

“실례지만 무슨 용무이십니까?”

정중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그를 압박하는 경호원.

한정우는 몸을 돌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이 밑에 4층에 새로 이사 온 사람입니다. 떡을 돌리는 중인데, 7층만 못 돌려서요.”

에코 백에 들어있는 마지막 남은 세 개의 떡을 내밀자, 경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떡과 이야기는 잘 전해두겠습니다.”

“예, 그럼 저는 이만.”

이야기를 끝낸 정우가 계단을 내려가려 할 때, 굳게 닫혀있던 오피스텔의 문이 열렸다.

쌀쌀한 날씨에 맞춰 하얀색 치마 정장 위로 붉은색 밍크 숄더를 두르고 있는 여자.

‘……여기 연예인 산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8등신의 완벽한 몸매에 주먹 하나 크기의 조막만 한 얼굴,

갸름한 턱선과 오뚝한 콧날은 그녀가 미녀라는 것을 감추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녀는 계단에 서 있는 자신의 경호원과 한정우에게 시선을 던졌다.

“무슨 일이죠?”

“아, 4층에 새로 이사 온 남자입니다. 떡을 돌리러 왔다고 합니다.”

“……떡은 냉장고 넣어둬요. 그리고 그쪽 4층 입주자분.”

“예?”

또각또각.

계단을 몇 개 내려온 여자는 하이힐 때문인지 키가 굉장히 커 보였다.

181㎝의 키로 결코 작지 않은 카이의 턱에 살짝 못 미치는 키였으니까.

그녀는 선글라스를 슬쩍 내리며 카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기를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가 입을 열었다.

“혹시 어디서 저랑 만난 적 있나요?”

“……없을 겁니다만?”

한정우는 지난 2년간 집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던 히키코모리!

연예인 뺨치는 이런 여자를 만나기는커녕, 평범한 이성조차 만난 적이 없다.

게다가 이렇게 임팩트가 강한 여성이라면 기억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다.

“……내 눈이 틀릴 리가 없는데.”

혼자서 뭔가를 조그맣게 중얼거린 여인은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실례했어요. 만나서 반가웠고 떡은 맛있게 먹도록 하죠.”

“예. 그럼 저는 진짜 이만…….”

고개를 숙이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한정우.

그를 가만히 쳐다보던 여인의 곁으로 경호원이 다가와 물었다.

“마스터, 뒤를 캐볼까요?”

“됐어. 안 그래도 바쁜데.”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이동하시죠. 회장님과의 약속에 시간을 맞추시려면 지금 바로…….”

“…….”

여인의 고개가 잔소리를 쏟아붓는 경호원에게 돌아갔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음에도 느껴지는 차갑고 오싹한 시선.

“죄, 죄송합니다.”

황급히 고개를 숙인 경호원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면서도 식은땀을 흘렸다.

천화그룹 회장의 귀염둥이 손녀딸 눈 밖에 나는 즉시, 그는 회사에서 잘릴 테니까.

***

“자, 어때?”

“뀨로로오!”

도시 근처의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블리자드를 소환한 카이는 녀석에게 방어구를 입혀줬다.

방어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듯 소환해준 전신 거울에 제 모습을 계속 돌려보는 녀석.

당연한 말이지만 입혀준 장비는 꼬리 부분을 뚫어놓은 칠흑의 원한 세트였다.

‘후후, 게다가 솔리드가 내 생각보다 훨씬 잘 개량해 줬어.’

현재 칠흑의 원한 세트의 꼬리 부분은 뻥 뚫려 있었다.

하지만 블리자드의 꼬리를 자르게 되면 뚫린 구멍 부분이 검은 천으로 덮이게 된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여차하면 이 녀석 꼬리를 자르고 내 대타로 삼을 수도 있다는 소리지.’

부르르르.

알 수 없는 한기에 몸이 떨린 블리자드가 카이에게 다가왔다.

“춥지? 자, 이거 마셔.”

녀석에게 따뜻한 코코아를 건네는 순간,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어둠 추적자의 증명패가 빛을 뿜어냅니다.]

동시에 카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임무 떴다!’

타르달.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의 호출 신호가 떨어진 것이다.

순식간에 그의 저택으로 이동한 카이는 이전에 봤던 그때 그대로의 타르달을 마주했다.

“……그사이에 또 강해졌나.”

“제 고향의 옛말 중에 사별삼일(士別三日)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헤어진 지 사흘 만에 다시 만났다면 눈을 씻고 상대를 자세히 봐야 한다는 소리이지요. 헤어진 사흘 동안 필히 성장했을 테니까요.”

“자네 고향 사람들은 모두 자네처럼 괴물인가?”

“하하, 그럴 리가요. 제가 조금 유별난 편이죠.”

가벼운 대화가 끝나자 타르달이 서류를 건넸다.

“두 번째 임무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눈을 빛낸 카이는 곧장 서류를 들고 이를 읽어내렸다.

하지만 내용을 읽어나가던 카이의 표정이 점점 애매해졌다.

“……이게 뭡니까?”

서류에 기재된 내용은 뮬딘 교의 추적과는 털끝만큼도 연관이 없었다.

‘분명 다음 임무에는 나에게 걸맞은 임무를 준다고 하지 않았었나?’

타르달이 한 입으로 두말할 위인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서류의 내용만 보면 이건 숫제 그냥 자원봉사잖아.’

전염병이 들이닥친 마을에 사제가 필요하니 지원을 가라는 것이 주된 내용.

하지만 카이의 불만과 의문점은 타르달의 다음 말에 의해 깨끗이 씻겨나갔다.

“뮬딘 교가 만들어낸 지독한 키메라 중 하나인 푸른 역병의 아오사가 나타났네. 녀석을 처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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