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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통령 태양의 사제-112화 (112/441)

# 112

힐통령 112화

46장. 푸른 역병의 아오사(3)

카이는 지붕 위에서 당당하게 아오사를 내려다봤다.

폭군의 분노 효과로 인해 푸른색으로 변한 장비는 새하얀 달빛과 어우러져 그의 존재 자체를 신비롭게 만들어주었다.

‘원래 이렇게 밝은 달빛 아래에서는 정겹게 춤이나 춰야겠지만…….’

아오사와 카이는 그럴 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실제로 자신의 공격이 실패했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드러낸 아오사는 가볍게 바닥을 굴렀다.

콰드드득!

그 한 번에 카이를 뛰어넘고 건너편 건물의 지붕에 올라선 녀석은 카이를 빤히 쳐다봤다.

아오사의 몸은 사람과 비슷했지만, 얼굴에는 눈, 코, 입이 달려있지 않았다.

하지만 카이는 녀석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관찰을 끝낸 아오사가 중얼거렸다.

[재미있군. 저주받을 족속의 졸개를 다시 만나다니…….]

머릿속을 웅웅 울리는 아오사의 말이 끝나자, 녀석의 발밑에서 기다란 촉수가 튀어나왔다.

뚝, 뚝.

아오사는 푸른색의 액체가 줄줄 흘러내리는 그 촉수를 가볍게 낚아챘다.

그 촉수는 카이가 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롱소드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액체로 만들어진 검이었지만, 달빛을 반사하는 그 검은 무엇보다 예리해 보였다.

‘저건…… 나 자존심 상했어, 뭐 이런 건가?’

원거리에서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이점을 포기하고 검을 쥔다.

그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괴물이 선택한 전투 방법이었다.

‘나야 좋지. 좋은데…….’

카이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검을 더욱 세게 쥐었다.

‘대놓고 개무시를 당하니 기분이 좀 그러네.’

적으로 만난 이상,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리는 없다.

심지어 서로가 서로의 자존심에 조금씩 스크래치를 낸 상태!

그것이 바로 두 사람의 첫 격돌이 사나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콰드득!

순식간에 지붕을 박차고 날아온 아오사가 검을 휘둘렀다.

카이는 그 검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검날 한복판에 자신의 검을 쑤셔 박았다.

채애애앵!

“으음!’

카이가 거친 호흡을 토해냈다.

175레벨의 필드 보스 레이드 몬스터가 지닌 공격력은 확실히 강력했다.

하지만 카이는 그런 아오사를 상대로 밀리지 않았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했다.

‘타르달의 말에 의하면 아오사의 약점은 두 가지.’

하나는 몸의 어딘가에 약점인 핵이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신성력에 약하다는 것!’

화아아아악!

카이의 검에는 태양의 축복과 홀리 인챈트가 걸려 있는 상태였다.

그 때문인지 검을 맞대고 있는 아오사의 체력은 초마다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채앵!

결국 손해만 입게 된 아오사는 검을 거칠게 빼내며 뒤로 물러났다.

‘이거라면 가능해. 오크 로드 때와는 또 달라.’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완전 정반대였다.

그 당시 우르간의 공격은 정타를 허용하지 않고 순전히 검과 검을 부딪치기만 해도, 충격파로 인해 자신의 체력이 깎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쪽이 상성으로 압도를 하고 있어. 검을 부딪치기만 해도 이득을 본다.’

아오사는 카이의 신성력에 지속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기세 좋게 먼저 뛰어들었다가, 체력의 손실을 보고 먼저 물러난 아오사.

그것이 다시 한번 자존심에 상처를 만들어냈는지, 녀석의 분위기가 한층 더 살벌해졌다.

‘분위기를 보니…… 근접전을 포기하고 원래 하던 대로 공격하려는 모양인데?’

귀신같이 놈의 생각을 읽은 카이는 곧장 도발을 시전했다.

“그러게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근접전은 어차피 못 이길 테니 평소처럼 싸우라고.”

[……감히!]

사람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가도, 주변에서 부추기면 망설여지는 경우가 있다.

지금 아오사가 놓인 상황이 딱 그러했다.

마음 같아서는 근접전을 포기하고 다시 원거리 공격을 하고 싶은데, 하등한 인간이 저렇게 밑판을 깔아주니 자신의 패배를 시인하고 근접전을 피하는 것 같지 않은가?

아오사는 뮬딘 교의 피조물로서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이 남달랐다.

당연히 하등한 인간과의 승부에서 꼬리를 말고 물러난다는 행위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네 놈 따위는 근접전으로도 충분하다!]

호기롭게 소리친 아오사가 카이를 향해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휘이이익!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고 해도, 여러 번 보면 눈에 익는다.

빠른 공격, 정교하고 화려한 검술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그 과정을 피해갈 수는 없다.

실제로 검술의 대가들이나 기사 NPC들은 한 가지 기술을 여러 번 반복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대응하기 힘든 여러 개의 검술과 기술을 섞어서, 자신의 다음번 공격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아오사는 아직 미숙하다.’

본래 근접전을 즐기는 녀석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도발을 당해 근접전을 치르고 있을 뿐, 아오사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촉수다.

당연히 검술의 기교 자체가 그렇게 뛰어나지는 못하다.

채앵, 채앵, 채앵!

그 덕분에 카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검술로 아오사를 압박해나갔다.

단순히 공격을 받아내던 그가 어느 순간 반격을 시작하더니, 이제는 처음과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채앵, 채앵, 채앵!

카이가 공격을 하고, 아오사가 이를 급급히 막는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카이는 또 하나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내가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었지.’

언노운이 사제라는 의심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카이에게 미소를 지으며 한 가지 스킬을 하사해주었다.

‘신성 사슬. 나에겐 이제 그게 있어.’

NPC 성기사들과 이단심판관들이 즐겨 사용하는 신성 사슬!

물론 사제도 이 스킬을 배울 수는 있었지만, 여태까지 그런 짓을 한 머저리는 없었다.

‘그야 물론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지.’

성기사야 앞선에서 근접전을 치루는 클래스이기에 신성 사슬을 한 번 배워두면 정말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가 있다.

하지만 전투 내내 후방에서 아군을 케어해야 하는 사제라면?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신성 사슬을 배울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돈으로 다른 버프 스킬을 구매하는 것이 몇 배나 이득이었다.

한마디로 현재 미드 온라인에서는 신성 사슬을 사용하는 건 성기사 뿐이라는 고정 관념이 깊게 박힌 상태!

‘그렇다면 그 고정 관념을 이용해야지.’

카이의 손 끝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나왔다.

아군이라면 두 손을 치켜들며 환호하겠지만, 하지만 눈앞의 아오사라면 질색할 만한 기운.

바로 태양교의 신성력이었다.

화아아아악!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강렬한 신성력이 허공에 소환되었다.

치명적인 약점인 신성력을 마주한 아오사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카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신성 사슬!”

촤라라라락!

순식간에 사슬로 녀석의 한쪽 팔을 묶어버린 카이는 사슬을 곧장 잡아당겼다.

아오사의 몸이 끌려오자 카이는 그대로 녀석을 메어쳐 버렸다.

콰드득!

그대로 몸이 넘어가 버리는 아오사.

하지만 카이는 거기서 공격을 끝내지 않았다.

‘공격은 이 녀석의 체력이 바닥 날때까지 계속해야 해.’

승기를 붙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방심을 하지 않는 카이!

힘을 가득 실은 그의 다리가 누워있는 아오사의 가슴을 짓눌렀다.

우드드드득!

마치 거목이 쓰러지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실제로 피해가 누적된 지붕이 토해내는 비명이었다.

콰드득, 콰득, 콰드드득!

2층짜리 건물 전체가 서서히 와해되며 주저앉기 시작했다.

“크윽!”

지붕 위에 서 있던 아오사는 물론, 카이도 추락을 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카이는 떨어지는 와중에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부웅, 부웅, 부웅!

두 손으로 사슬을 꽉 붙잡고는 그대로 몸을 회전시킨 것이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원심력을 충분히 머금은 카이는 그대로 사슬을 놓아버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슬에 묶여있던 아오사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콰아아아앙!

그것이 바로 뉴턴식(Newton式) 내동댕이치기!

[크아아악!]

온몸이 산산이 조각나는 듯한 압도적인 고통에 아오사가 고통 섞인 신음을 터트렸다.

전투 시작 이래 처음으로 흘러나온 녀석의 비명!

“후우, 후우.”

지치는 것은 카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추락 데미지와 건물들의 잔해에 얻어맞아 체력까지 많이 깎인 상태!

카이는 지친 표정으로 신성 사슬을 당겼다.

“음?”

카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슬이…… 가볍다?’

도저히 아오사가 묶여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무게!

실제로 자신의 손에 딸려온 사슬에는 아오사가 묶여 있지 않았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경종이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푸른 역병은 신출귀몰한 것이 특징. 어두운 밤이 되면 그림자에 녹아들어 이동하기에 옆을 지나가도 모르는 일마저 생긴다네.

머릿속을 스쳐 가는 타르달의 충고.

그것을 상기한 카이는 본능적으로 성스러운 방어막을 시전하고 몸을 웅크렸다.

그다음 순간, 육중한 무언가가 방어막을 쳐부수며 카이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커어억!”

그것은 바로 블리자드를 덤프트럭처럼 치어버린 촉수들의 무리!

카이의 신형은 그대로 무너진 건물 잔해들을 뚫으며 길거리로 날아갔다.

‘쿨럭…… 아오사 녀석. 이제는 제대로 할 생각인가. 하긴, 2페이즈가 나올 때는 되었지.’

검술로 계속해서 괴롭힌 결과, 아오사의 체력은 이미 20% 아래로 내려간 상황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내세우며 일어난 카이가 무너진 건물을 쳐다봤다.

꿀렁, 꿀렁.

촉수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가 마치 용암이 터지듯 하늘로 비산했다.

[감히…… 하등한 인간 따위가…… 저주받아 마땅한 태양의 졸개 따위가……!]

분노를 성토한 아오사의 몸이 터질 것처럼 팽창하기 시작했다.

꿀렁, 꿀렁, 꿀렁.

마치 불길이 타오르는 것처럼, 바닥에서 솟구친 수많은 촉수가 아오사를 덕지덕지 감싸 안기 시작했다.

‘이건 가만히 놔둬선 안 돼!’

누가 봐도 변신을 하는 듯한 모양새!

불안한 감정을 느낀 카이는 곧장 아오사에게 홀리 익스플로젼을 쏘아냈다.

티잉!

[대상이 피해 면역 상태입니다.]

“젠장!”

피해 면역.

한마디로 아오사의 변신을 멈출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모든 것이 페가수스가 정해놓은 시나리오라는 소리.

‘이걸 내가 혼자서 상대해야 한다고?’

카이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이제는 절대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를 올려다봤다.

[푸른 역병의 마수, 해방된 아오사. LV. 200.]

“……농담이지? 이거 몰래카메라 아니야?”

카이가 어색한 미소를 띠우며 질문했지만, 이에 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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