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13화 (113/441)

# 113

힐통령 113화

46장. 푸른 역병의 아오사(4)

게임을 좋아하고 많이 플레이해 본 유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고생 끝에 겨우 해치웠다고 생각한 보스가 새로운 페이즈에 돌입하며 더 강해지는 순간을.

허탈함이라는 감정이 전신을 뒤덮는 순간이기도 하고, 개발자를 눈앞에 앉혀놓고는 대체 왜 그랬냐고 묻고 싶은 순간이기도 하다.

‘페가수스사 개발자…… 미국 가면 만날 수 있나?’

눈앞의 거대한 마수를 올려다보던 카이는 본사로 찾아가고픈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확실히 인간 폼의 아오사가 너무 약하긴 했어. 내 도발에 걸려들었다고는 해도 말이지.’

아오사는 등급만 따지면 몇 개월 동안 모든 길드를 무릎 꿇렸던 약탈자들의 왕 베이거스와도 동일했다.

물론 같은 등급이라고 해도 힘의 차이는 온전히 개발사의 뜻대로지만.

‘후우. 이제 이걸 나 혼자 처치해야 한다고?’

건물 두, 세 개는 이어붙인 듯한 압도적인 크기!

게다가 변신을 마친 녀석의 피는 어느새 30%까지 회복된 상태였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다른 길드들의 공격대와 랭커들도 소식을 듣고 찾아올 거야.’

지금이야 아오사가 한바탕 난동을 피운 바람에 텔레포트 게이트가 파괴된 상태.

하지만 근처 도시의 텔레포트 게이트로 이동을 한 뒤, 이곳까지 달려올 수는 있을 것이다.

‘길면 30분. 그 안에 이 녀석 막타를 치지 못하면 보상을 나눠야 한다.’

물론 기여도에 따라 자신에게 가장 좋은 보상이 배분될 테지만, 기분이 나쁘다.

‘재주는 내가 다 부려놓고, 남이 숟가락만 얹어놓는 광경을 봐야 한다고? 그건 안 되지.’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는 죽는 것보다도 받아들이기 싫은 상황!

카이의 두 눈이 빠르게 아오사의 약점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덩치는 커. 전체적으로 생긴 모습은…… 슬라임과 별다를 바 없어 보여.’

슬라임은 미드 온라인에서 하급으로 취급되는 몬스터 중 하나이다.

주로 축축한 숲이나 도시의 지하 수도에 서식하며, 산성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인 몬스터.

겉모습은 젤리와 비슷해서 늘 물컹거리고 만만해 보이지만, 녀석을 공격할 때마다 장비의 내구도가 상하기에 전사들에게는 기피 대상 몬스터로 꼽히는 녀석!

‘아오사의 경우에도 다르지는 않을 거야.’

오히려 이 녀석은 슬라임보다 더한 녀석이다.

산성 따위가 아닌, 마법 저항력이 낮으면 바로 중독되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독연을 내뿜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무리 변신을 했다고 해도, 약점 자체는 동일하겠지.’

촤르르르륵.

카이는 검을 검집에 얌전히 꽂아 넣고, 사슬을 꽈악 잡았다.

[크롸아아아아아!]

콰아앙, 콰앙, 콰아아앙!

새벽의 도시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아오사의 표효!

동시에 구경 중이던 유저들이 귀를 틀어막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이런, 미친!”

“7.1 서라운드냐! 귀청 떨어지겠다!”

“거기다가 위협 상태 이상까지…….”

아오사의 표효는 단순히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 또한 일종의 스킬이었던 것!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카이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높은 위엄 수치로 인해 위협 효과에 다소 저항합니다.]

[용맹 버프로 인해 위협 효과에 크게 저항합니다.]

[아오사의 위협 스킬에 완벽하게 저항하셨습니다.]

용맹 버프!

카이가 아직 배우지 못한 버프였지만, 공교롭게도 현재 그에겐 이 버프가 걸려 있었다.

‘운이 좋았어. 강화 소환이 이럴 때 도움이 되다니.’

강화 소환은 블리자드를 소환할 때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스킬이다.

그리고 소환을 할 때마다 시전자와 소환수 모두에게 한 가지 버프를 랜덤하게 걸어주는 스킬!

한마디로 이번에 블리자드를 소환할 때 생긴 것이 바로 용맹 버프였다.

[용맹]

위협, 공포, 혼란, 도발, 위축 등의 상태 이상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이것 덕분에 블리자드도 아오사에게 맞서 싸울 수 있었지.’

아오사의 등장만으로도 겁을 집어먹었던 블리자드가 녀석에게 겁을 먹지 않고,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은 카이에게까지 도움이 되는 유용한 버프!

콰지직, 콰직, 콰지지직!

아오사가 빠른 속도로 도시의 길거리를 미끄러지며 카이에게 달려들었다.

‘젠장, 그래도 인간 폼일 때는 상식이라는 게 있어 보였는데…….’

지금은 그런 걸 모른다는 듯, 경로상의 건물을 모두 밀어버리며 다가오는 녀석!

“그렇다고 내가 저 밑에 깔려줄 수는 없지.”

카이는 그대로 몸을 돌려 후다닥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오사의 몸은 카이보다 훨씬 크다.

당연히 두 사람의 거리는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크, 위험한데? 그럼 이쯤에서…….’

카이의 신성력이 불시에 후욱! 줄어들었다.

동시에 몇십 미터나 뿜어져 나가는 신성 사슬!

촤르르르륵!

사슬은 광장 지역에 위치한 시계탑을 그대로 휘감았다.

“흐읍!”

그대로 사슬을 잡아당기며 땅을 박차는 카이.

이와 동시에 그가 머물던 거리로 아오사의 큼직한 몸이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슬쩍 뒤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광경!

‘저런 거에 깔렸다가는 불사의 의지고 뭐고 소용없잖아.’

부활 후 5초 무적이어도 금세 다시 죽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카이는 현재 자신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무조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해. 녀석의 밑에서 돌아다니면 전투 자체가 성립되질 않아.’

타악!

시계탑의 초침 위에 자리 잡은 카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오사와 도시를 내려다봤다.

‘페가수스에서 대충 어떻게 잡으라고 만든 놈인지는 알 것 같아.’

이곳은 도시 한복판이다.

아오사의 덩치가 크다고는 하지만, 건물들 위에 올라서면 녀석과 눈높이 정도는 맞는다.

한 마디로 저 녀석을 공략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건물 위에 자리를 잡고 차례대로 어그로를 끌면서 공격하는 것.’

그것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놈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다.

‘녀석보다 낮은 위치에 있으면 싸움 자체가 성립되질 않아.’

하지만 문제는 카이가 홀몸이라는 것!

시야로는 자신과 아오사의 전투를 구경 중인 다른 유저들의 모습도 제법 보였지만, 그들의 손을 빌릴 마음은 없었다.

‘나 혼자 할 수 있어.’

아오사가 2페이즈에서 확실히 범접 불가의 괴물이 된 것은 맞다.

하지만 녀석은 덩치를 무식하게 불린 만큼 포기한 것도 많았다.

‘우선 손과 발이 사라졌다.’

한 마디로 카이가 높은 위치를 점하게 되면, 그를 저지할 수 있는 건 촉수밖에 없다는 뜻.

다행스럽게도 카이는 아오사와의 전투를 통해 촉수 공격에는 나름 익숙해진 상태!

‘저쪽에도 시계탑이 있고, 저쪽의 도서관과 교회도 제법 높아. 그리고…….’

카이는 도시 내에 존재하는 몇 개의 시계탑과 고층 건물들의 위치를 차례대로 눈에 담았다.

“후우, 아야나가 이거 먹으면 후회할 거라고 하긴 했는데…….”

인벤토리에서 보라색 포션 하나를 꺼낸 카이는 마지못해 병의 마개를 열었다.

[초 집중력 향상 포션, 하이어 웨이(Higher Way) LV.8]

복용 시 집중력을 매우 큰 폭으로 향상시켜 줍니다.

후유증으로 며칠 동안 탈력감 및 탈진 상태에 시달리게 되며, 두통을 비롯해 다양한 증상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후우, 부작용을 보면 절대 마시기 싫지만…… 그래도 이게 없으면 힘들 거야.’

부족한 신체 능력과 스탯 차이를 집중력으로 메꾼다.

그것이 지금 자신이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카이는 망설임 없이 포션을 한입에 들이켰다.

꿀꺽, 꿀꺽.

아야나의 천재적인 포션 제조 실력과 카이의 고급 재료가 한데 어우러진 콜라보레이션!

포션을 먹는 즉시 카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으으으…….”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감각이 전신을 두드렸다.

두껍고 단단한 폭군의 분노 세트를 장비하고 있건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처럼 모든 정신과 신경이 예민하고 날카로워졌다.

‘지나가는 공기의 흐름조차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그것은 카이의 착각이 아니었다.

공기의 흐름이 뒤바뀐다는 것을 전신의 감각이 ‘인지’한 순간,

카이의 시선은 이미 아오사에게 향했다.

‘움직인다.’

[크롸아아아아!]

카이가 위치한 시계탑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아오사.

몇 초가 채 지나지 않아 카이가 서 있던 시계탑은 서서히 옆으로 기울었다.

콰아아아아앙!

아오사의 몸통 박치기 한 번에 시계탑이 무너진 것이다.

뒤이어 휘둘러진 수십 개의 촉수가 시계탑에 꼼짝없이 매달린 카이를 노렸다.

‘……피할 수 있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수십 개의 촉수.

게다가 허공에 위치한 터라 피할 공간은 없다.

전투 시작 이래 절체절명의 순간!

카이의 동공은 눈앞의 사물을 더욱 잘 분간하기 위해 축소되었다.

‘집중, 집중. 집중해.’

게임 속이라고는 해도, 추락을 하는 건 아찔한 기분임이 틀림없다.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땅에 떨어질 때까지 눈을 꼭 감고 있을 것이 분명한 상황.

하지만 그 와중에도 카이의 의식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마치 지금 이 순간, 이 전투에서 평생 사용할 모든 집중력을 소비해도 좋다는 듯,

그의 눈에는 오직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촉수와 함께 부서진 시계탑의 파편만이 들어왔다.

‘저쪽.’

촤르르륵.

신성 사슬을 휘둘러 제법 무거운 파편 하나를 휘감고, 강하게 당긴다.

그 반동을 이용해 앞으로 튀어나간 카이가 부서진 시계탑의 파편을 밟았다.

부우우웅!

우연의 일치처럼 그 뒤를 지나가는 아오사의 촉수.

[……!]

꿈틀.

완전 괴물이 되어버린 아오사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촉수들의 공격은 이어졌다.

부웅, 부웅, 부웅!

날아드는 촉수들의 궤적을 계산하면서, 시계탑 파편들이 몇 초 후 어느 장소에 위치할 것인가.

그 모든 것들을 계산하는 카이의 뇌는 금방이라도 타들어 갈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파앗, 콰득.

파편을 밟고, 자연스럽게 다른 파편으로 옮겨 탄다.

말로 하면 쉬운 아주 단순한 반복 행위.

하지만 이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유저들은 경악이나 찬사, 비명 따위를 내지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

“…….”

그저 머릿속의 퓨즈 한 다발이 끊어진 것처럼 침묵을 고수할 뿐.

그 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보던 유저 하나가 가까스로 입술을 달싹였다.

“……E.T.를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충격적이군.”

“아아, 좋은 영화지. 그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할리우드의 거장으로 만들어준 영화 E.T.

거기서 자전거를 타고 보름달을 향해 날아가는 E.T.는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하지만 언노운의 모습을 쳐다보던 유저들은 확신했다.

‘이제 구글 이미지 검색창에 최고의 보름달 씬을 검색하면, 내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이 뜨겠어.’

실시간으로 보고 있음에도 이 정도의 전율이 느껴진다.

과연 이펙트를 먹이고, 효과음을 넣으면 어떤 영상이 탄생하게 될까?

그 황홀한 상상이 끝나기도 전에, 모든 촉수를 피해낸 언노운이 낙하를 시작했다.

“끝내주는 기분이야.”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내뱉은 카이의 신형이 아오사의 거체 위에 떨어졌다.

꾸웅!

고무 튜브 위에 떨어진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아오사의 등 위로 파문이 일었다.

동시에, 카이는 두 개의 스킬을 동시에 시전했다.

“원기 회복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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