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힐통령 114화
46장. 푸른 역병의 아오사(5)
[원기 회복의 샘]
아군의 체력과 스태미너를 치료하는 신성한 샘을 생성한다.
근처의 언데드나 악마족 몬스터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스킬의 설명만 읽어봐도 알 수 있듯이, 원기 회복의 샘은 아군의 지원이 주목적인 스킬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스킬은 수많은 사제와 성기사들에게 외면 받았다.
당연하지만 스킬이 외면 받는 이유는 간단했다.
‘원기 회복의 샘? 그거 뭣도 모르던 초보 시절에 배우긴 했지. 설치형 스킬이라서 설치만 제대로 끝내면 꾸준히 체력과 스태미너를 채워줘서 좋긴 한데…… 좀 애매해.’
‘왜냐고? 자, 들어봐. 졸렬하기로 소문난 미드 온라인 몬스터들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그 샘에 기어들어가서 수영이라도 해주기를 원해? 설치하는 순간 눈치 까고 슬금슬금 피한다고. 그렇다고 아군 치료를 목적으로 설치하려니 알다시피 적이 움직이면 아군도 계속해서 위치를 변경해 줘야 하는데, 이 스킬은 설치형이라서 거리가 멀리 떨어지면 회복이 안 들어간단 말이지.’
‘그냥 쉽게 말해서 개쓰레기 스킬이라고. 배우지 마! 돈 아까우니까.’
전투 중에 사용하기가 너무나도 힘들고 애매한, 그런 주제에 성능도 결코 뛰어나지 못한 스킬!
그것이 바로 이 스킬이 신성 클래스 직업군에게 외면 받은 이유였다.
물론 휴식을 취할 때 사용하면 제법 유용하다고는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굳이 이 스킬이 아니더라도 포션이나 음식, 모닥불 등등 체력과 스태미너를 채울 수 있는 수단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모든 스킬은 플레이어가 써먹기 나름이지.’
카이는 이 스킬이야말로 아오사를 괴롭힐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가 지닌 신성 스킬 중에는 홀리 익스플로젼이나 신성 사슬, 신성한 빛 등의 공격 스킬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가 원기 회복의 샘을 꺼내든 이유는 실로 간단했다.
‘원기 회복의 샘은 파괴 불가 옵션이 붙어 있고 소환 개수에 제한이 없어.’
초마다 적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기 회복의 샘은 설치형이기에 상대방 입장에서는 피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아오사라면?
이 거대한 마수의 등짝에 원기 회복의 샘을 주렁주렁 설치해 놓는다면?
‘제 등을 뜯어내지 않는 이상, 샘의 공격을 피할 방법은 없지.’
아오사가 2페이즈에 돌입하면서 거대한 마수로 변신한 순간 떠올린 작전이었다.
우우웅, 우웅.
카이의 양손이 연신 신성력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원기 회복의 샘을 동시에 캐스팅하며, 설치할 위치를 머릿속으로 조정한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면 새하얀 빛줄기와 함께 평화로운 샘이 떡하니 설치되었다.
[크아아아아!]
물론 아오사는 카이가 제 등을 놀이터 삼아 뛰어노는 걸 방관할 만큼 성격이 좋지 못했다.
부우웅!
거리와 제 옆구리에서 뽑아낸 촉수들을 이용해 카이를 후려치려 노력했다.
철썩, 철썩!
마치 커다란 줄넘기 수십 개가 동시에 바닥을 후려치는 모양새!
하지만 이 압도적인 공격을 눈앞에 둔 카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했다.
‘맞으면 아프겠지.’
이미 한 번 맞아봐서 안다.
비록 게임이지만, 중력이 비틀리는 기분과 함께 느껴지는 고통은 절대 상쾌하지 못했다.
‘아픈 건 피해야지.’
못 피한다면 모를까, 지금의 카이에겐 저 촉수들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의 눈이 빠르게 주위를 가득 포위한 촉수들을 훑었다.
‘촉수는 총 쉰네 개.’
초 집중력 포션인 하이어 웨이를 복용한 카이에게는 모든 촉수의 궤적이 보였다.
아니, 보인다는 말에는 살짝 어폐가 있다.
촉수의 뿌리와 몸통 부분이 살짝 휘어지는 순간.
카이는 이미 몸을 움직였다.
‘저건 이쪽으로 움직인다.’
일말의 의심도 없는 확신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촉수가 휘어지는 모습만을 보고 언제, 어느 궤적에 도달할 것인지를 유추해 내는, 일종의 예지라고 불려도 손색없는 놀라운 통찰력이었다.
콰앙! 콰아앙!
실제로 촉수들은 카이가 아니라 애꿎은 아오사의 등을 후려쳤다.
물론 그 피해 또한 아오사의 체력을 갉아먹기는 매한가지!
‘음. 아쉽지만 이번에는 여기까지인가.’
녀석의 등에 총 여섯 개의 샘을 설치한 카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아쉬움을 삼켰다.
자신을 노리는 촉수들은 끝도 없이 증식해 갔고, 시간이 더 흐르면 빠져 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번 물러나자.’
카이는 곧장 신성 사슬을 휘둘러 이번에는 높은 교회의 지붕 위로 피신했다.
태양교의 문양이 떡하니 박혀져 있는 거대하고 성스러운 교회!
그곳에서 카이는 아오사의 체력창을 힐긋 쳐다봤다.
‘역시 샘 여섯 개로는 공격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애초에 공격 목적으로 개발된 스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오사의 깎인 피해는 이제 고작 0.3% 정도!
‘제대로 피해를 입히려면 더 많은 샘을 설치해야겠어.’
하지만 샘을 더 설치하기 위해서는 이제 백 개가 넘어버린 저 촉수부터 해결해야 했다.
“간단한 방법이 있지.”
전투만 돌입하면 두 배가량 빠르게 돌아가는 카이의 배틀 브레인!
카이는 자신을 노리는 촉수들을 여유롭게 피하며, 건물들의 뒤쪽.
뒷골목으로 유유히 떨어졌다.
콰아아앙!
건물들을 꿰뚫으며 자신을 쫓아오는 백여 개에 달하는 촉수.
한 대만 맞아도 빈사 상태에 이를 정도의 매서운 공격이었지만, 카이는 침착하게 신성 사슬을 소환해 냈다.
‘괜찮아. 신발 끈은 많이 묶어봤어.’
아오사의 촉수를 신발 끈 취급하는 카이!
그는 촉수들의 공격을 피하며 그것들을 조금씩 묶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아무렇게나 묶어서는 안 되었다.
‘질서 있게 묶으면 안 돼. 그렇게 묶으면 더 두꺼운 촉수로 만들어주는 것밖에는 안 되니까.’
아주 질서 없게.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주머니에 들어간 이어폰이 잔뜩 엉킨 채 나올 때처럼!
카이는 건물의 지붕을 내달리며 촉수들을 피해내고, 그와 동시에 촉수와 촉수들을 열심히 묶어댔다.
그렇게 공격들을 피하며 버틴 시간이 무려 10분!
폭군의 분노를 장비한 카이의 전신에서는 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그것은 비단 게임 캐릭터뿐만이 아니라, 캡슐에 누워 있는 한정우도 마찬가지였다.
‘허억, 허억. 힘들어 죽겠네.’
일반인은 전력으로 10분을 달리는 것조차 힘들다.
하물며 한정우는 10분을 달리면서 장애물을 피하고, 그 와중에 실뜨기를 한 셈!
당연히 육체적, 정신적으로 받은 피로감이나 스트레스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덕분에 길이 보인다.’
카이가 눈빛을 번뜩였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위압적인 덩치의 아오사!
하지만 녀석이 자랑하는 수많은 촉수는 더 이상 위협적이지 못했다.
부들부들.
이리저리 엉킨 실타래처럼 묶인 상태로 시계탑이나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있는 촉수들!
‘후우, 이제 시간이 정말 별로 없어.’
랭커들이 도착하는 것을 상정한 시간은 30분.
이미 그때부터 15분이 넘게 흐른 상태였으니, 이제 슬슬 막바지 준비를 해야 했다.
“웃차.”
가볍게 바닥을 박차고 아오사의 등 위에 올라탄 카이는 이제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허리를 눕히고 고개를 숙이며 촉수들을 피해냈다.
“원기 회복의 샘, 원기 회복의 샘, 원기 회복의 샘…….”
끝도 없이 시전되는 스킬들!
아오사의 등 위로 마흔두 개의 샘이 설치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시에 찔끔찔끔 줄어들던 녀석의 체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
아오사의 원통한 울음이 도시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스르릉.
부드럽게 자신의 애검, 깨달은 자의 롱소드를 뽑아든 카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함께해서 즐거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신성력을 잔뜩 머금은 그의 검이 아오사의 등을 파고들었다.
* * *
“전방에 화이트홀 성채 발견!”
“이제 곧 도착합니다!”
“예상 도착 시간 2분!”
천화 길드의 제1공격대.
국내 최대의 길드라고 불리는 곳에서 자랑하는 정예 길드원들은 새벽의 평야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을 지휘하는 여인, 설은영은 무리의 선두에서 헤이스트가 걸려 있는 늘씬한 다리를 가뿐하게 놀리며 전방에 있는 성채를 바라봤다.
그녀는 항상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자리한 보이드에게 물었다.
“세계 10대 길드 쪽 움직임은?”
“정예 공격대 위치는 모두 파악됐습니다. 정보부에 따르면 그들은 여전히 뮬딘교 이단심판관인 카지에르의 추적에 목을 매고 있어요.”
“아오사는 포기한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요? 세계 10대 길드 중 라시온 왕국에 소속된 곳은 네 곳밖에 없고, 그 녀석들은 카지에르랑 사냥터 통제 때문에 한창 민감한 상태니까요.”
한마디로 그들이 지금 이곳 화이트홀로 향할 일은 없다는 소리다.
물론 세계 10대 길드쯤 되는 곳이니, 제2나 제3의 공격대를 내보낼 여유 정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은영은 안심했다.
‘아무리 세계 10대 길드라고는 해도, 주전 멤버도 아닌 녀석들에게 천화의 제1공격대가 밀릴 이유는 없어.’
오직 그것만을 위해 최고의 인재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면서 이룩한 길드다.
그녀가 이끄는 무리는 빠르게 화이트홀의 성채를 통과했다.
“아오사의 위치는?”
“추적 스킬을 사용한 결과, 저 앞의 푸른색 연기 너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돌파해.”
천화 길드의 제1공격대에 포함될 수준이라면, 마법 저항력이 낮아서 독연을 통과 못 할 애송이는 없다.
‘곧 닿을 수 있어.’
설은영의 두 뺨이 더욱 붉어졌다.
마치 어린 시절 그토록 보고 싶었던 첫눈을 봤을 때처럼,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약탈자들의 왕 베이거스를 화려하게 처치하고, 세계 10대 길드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천화 길드.
만약 아오사마저 자신들의 손으로 처치한다면 길드의 주가는 끝을 모르고 치솟을 것이다.
‘거기까지 닿는다면 남은 건 하나야.’
세계 10대 길드 중 하나를 끌어내리든, 세계 11대 길드가 되든.
어떤 길을 가더라도 정상이라는 자리가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
동시에 설은영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방심하지 마, 설은영. 스스로가 최고라는 것을 증명해 내지 못하는 이상, 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주변을 가득 메운 푸른 연기가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이건 무슨 현상이지?”
“그, 그게…….”
“저도 거기까지는…….”
다음 순간, 당황한 공격대들의 시야로 똑같은 메시지들이 출력되었다.
[푸른 역병의 마수, 해방된 아오사가 처치되었습니다.]
[도시를 뒤덮은 푸른 안개가 일제히 소멸합니다.]
[푸른 역병에 감염된 모든 주민의 상태가 정상적으로 돌아옵니다.]
[대륙에서 태양교의 영향력이 더욱 강대해졌습니다.]
“……뭐?”
절대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설은영의 눈빛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