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15화 (115/441)

# 115

힐통령 115화

47장. 권선징악(1)

‘대체 어느 길드에서? 아니, 애초에 플레이어가 처치한 게 확실해?’

의문으로 가득 찬 설은영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태양교의 영향력이 더 강대해진다고? 대체 왜?’

이와 같은 메시지가 떠오를 수 있는 상황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NPC가 아오사를 처치했거나,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유저가 아오사를 처치했거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설은영이 황급히 지시했다.

“아오사의 시체부터 찾아. 루팅을 하고 있는 존재가 있을 거야. 누구인지 알아내.”

“예!”

천화 길드의 정예 길드원들이 사방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후, 길드 채팅을 통해 그들이 알아낸 정보가 속속들이 밀려들어왔다.

[어디 애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시를 완전 쑥대밭으로 만들어놨는데요?]

[정말이네요. 광장 지역 근처는 성한 건물을 찾아볼 수가 없을 지경이에요.]

[아주 지독하고, 치열하게 싸운 것 같습니다.]

[어! 지금 아오사로 추정되는 거대한 잔해를 발견하긴 했습니다!]

기다리던 보고에 설은영은 재빨리 길드 채팅창을 띄웠다.

[어디 작품이야? 인원은?]

[어어…… 그게…….]

설은영이 유독 싫어하는 건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답답한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 답답한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설은영의 눈빛이 험악해지자, 옆에 서 있던 보이드가 재빨리 채팅을 쳤다.

[됐고, 좌표나 찍어줘 봐. 대체 어디야 거기?]

[여, 여기 좌표가…….]

길드 채팅 창에 좌표가 떠오른 순간, 보이드가 설은영의 어깨를 살짝 짚었다.

“그럼 아가씨, 잠시만 실례요.”

“마스터라고 불…….”

“텔레포트.”

슈우우우웅.

200레벨이 넘어 마도사 칭호를 부여받은 보이드의 스킬 시전은 빠르고, 깔끔했다.

순식간에 폐허가 된 광장 지역으로 이동한 보이드가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애들 말이 맞네. 누군지는 몰라도 아주 헐리우드 재난 영화 한 편 찍었는데요?”

툭툭.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건물의 잔해를 툭툭 두드리던 보이드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저게 아오사라는 놈인가 보죠? 정보부에서 조사했던 모습이랑은 조금 다르네.”

“…….”

설은영은 구태여 대꾸하지 않고, 쓰러진 아오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꿀렁, 꿀렁.

푸른 액체를 쏟아내는 녀석은 조금씩 몸의 일부분이 폴리곤화가 되며 흩어지는 중이었다.

‘확실히 정보부의 예상과는 다른 모습.’

정보부에서는 아오사가 인간 형태의 소형 몬스터라고 추측했다.

그렇기 때문에 천화 길드에서는 아오사의 레이드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던 상태였다.

‘같은 인간형의 레이드 보스 몬스터이기에, 자신이 있었어.’

베이거스를 공략하면서 얻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도착했다고 생각했건만, 이미 누군가가 선수를 친 상태.

‘게다가 사체만 봐도…….’

설은영의 날카로운 눈매가 아오사의 사체를 훑었다.

이미 반 정도는 사라진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덩치가 선사하는 위압감은 여전했다.

‘이런 녀석을 처치한 녀석. 대체 누구지?’

설은영의 고개가 천천히 위쪽을 향해 올라갔다.

그러자 그녀의 시야로 눈부신 달빛을 등에 업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내가 들어왔다.

‘한 명?’

그럴 리가 없다.

명색이 보스 몬스터인데 솔플로 잡았다니?

고개를 흔든 그녀가 황급히 주변 길드원들을 돌아봤다.

하지만 그들은 미리 짜기라도 한 듯, 일제히 고개를 흔들었다.

[도시 전부 뒤져봤습니다.]

[레인저들 총출동하고, 발자국 뒤지고, 수색이랑 추적 스킬까지 사용했어요.]

[다른 유저들 몇 명이 더 있던 건 맞는데, 단순한 구경꾼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어.’

설은영이 저도 모르게 현실을 부정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눈앞의 사내는 그 유하린과도 비견될만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이 갑자기 나타난다고?’

미드 온라인의 대륙은 넓다. 정말 넓은 세계다.

하지만 아무리 넓다고 해도 미드 온라인은 이미 누적 가입자 수만 7억 명을 돌파한 상태!

이만한 실력자가 몇 개월 동안 숨어 있다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었다.

‘그렇다면…….’

설은영이 다시 한 번 남자의 차림새를 살폈다.

언뜻 보기에도 정교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방어구와,

알 수 없는 위압감과 자신감이 느껴지는 단단한 몸.

‘NPC?’

그나마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이다.

‘하지만 겉모습은…….’

아무리 봐도 태양교의 사제나 성기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에 설은영은 일말의 고민 없이 입을 열었다.

“당신, 플레이어인가요?”

끄덕.

사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오사를 처치한 사람도 당신인가요?”

이에 설은영을 흘깃 쳐다본 남자, 카이는 시선을 메시지 창으로 돌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누가 봐도 그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

그 모습은 당장 천화 길드원들의 분노를 이끌어냈다.

“저런 건방진…….”

“지금 자기가 누구랑 대화하고 있는 지는 알고나 저러는…….”

“좀, 닥쳐.”

절대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모두의 귓가를 선명하게 때리는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길드원들은 얌전히 입을 닫았다.

“쯧.”

단 한 마디로 소란을 잠재운 설은영이 카이를 빤히 쳐다봤다.

‘정말 예의 없어.’

하지만 그녀는 그 부분을 탓하지 않았다.

어차피 직장에서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최고고, 게임에서는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최고니까.

대신 그녀도 더 이상 깍듯한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솔플?”

끄덕.

“소속된 길드는?”

도리도리.

카이가 자신의 깨끗한 가슴팍을 툭툭 두드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평소였다면 그의 태도에 눈빛이 차갑게 식었겠지만, 설은영은 인재를 좋아했다.

‘이만한 실력이라면, 저 정도 자존심은 당연해.’

그녀는 오히려 이해를 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싱그러운 미소를 입가에 담았다.

“천화로 와요. 세계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죠.”

“…….”

어이가 없어진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시선을 떼고 그녀를 쳐다봤다.

‘아니, 무슨 길드 가입 권유를 거리에서 음식점 전단지 돌리듯이 말하지?’

게다가 그 말을 꺼낸 이도 결코 평범한 이는 아니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 장비는 블랙 티로만의 세트. 현 주인은 설은영일 텐데?’

심지어 생긴 것도 설은영이 맞다.

그녀가 누구인가?

천화 그룹 회장의 손녀딸이라는 루머가 따라다니는, 천화 길드의 마스터.

동시에 기사 클래스의 랭커 중 하나이자 뛰어난 지휘 능력으로 유명한,

한국의 3대 게임 여신 중 하나로 손꼽히는 여인이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아, 이거야 당연한가.’

생각해 보니 약탈자들의 왕 베이거스 레이드 영상 때도 봤고, 그녀는 웬만한 연예인보다 유명하다.

한국에 발을 붙이고 사는 남자라면 모를 수가 없을 정도!

카이는 더 이상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드는 것만으로는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다고 판단.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를 텐데, 그렇게 무턱대고 영입 제안을 하는 겁니까?”

“알 필요 있나요?”

설은영은 당당한 태도를 드러냈다.

“미드 온라인에서 플레이어를 대변하는 건 오직 실력뿐이예요. 인성, 나이, 외모?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그저 당신이 솔로플레이로 아오사를 처치했다는 사실이면 충분합니다.”

과연 여왕님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광오하고, 당돌하다.

살짝 허무한 기분마저 느낀 카이는 정중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제안은 고맙지만, 딱히 길드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군요.”

“……유하린도 그러더니, 당신도…….”

혼자서 뭔가를 중얼거린 설은영은 눈썹을 살짝 치켜들며 물었다.

“대체 이유가 뭐죠? 천화는 세계 10대 길드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아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는 것은 꺾을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그리고 그녀의 자존심은 태산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하늘보다도 높았다.

범우주적 높이의 자존심!

‘이번이 두 번째야.’

유하린, 그리고 눈앞의 사내.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는 자신의 제안을 두 번이나 뿌리친 사람들이다.

‘대체 왜?’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세계 최고의 대우를 해줄 수가 있었다.

남들은 상상도 못할 연봉, 대우, 명성, 여차하면 자신의 전용기까지 내어줄 생각까지 있다.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하고있는 설은영에게, 카이는 간결한 답변을 내놓았다.

“천화나 세계 10대 길드 같은 경우는…… 소속되는 순간 게임이 게임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그건…….”

설은영의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뒷말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부를 원하면 부를, 명예를 원하면 명예를 줄 수 있어.’

하지만 그녀는 자유를 원하는 자에게 자유를 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천화 길드는 그녀가 꽉 쥐고 있는 새장.

길드에 가입한다는 건, 그녀의 새장 속 새가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실제로 제법 덩치 있는 길드에 소속이 되면 그때부터는 개인이 게임을 즐기는 것보다,

길드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다면 유하린이 내 제안을 거절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을까?’

물론 설은영으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다만, 그녀는 굳이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주입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매달리는 건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으니까.

“……생각이 바뀌면 찾아오세요.”

카이는 굳이 그러겠노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

‘후우. 갑자기 천화 길드라니, 깜짝 놀랐네.’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거, 정말 아오사를 처치하는 게 5분만 늦었어도…….’

보상과 경험치를 일부분이나마 그들과 나눌 뻔했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사실에 카이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나저나, 이제 방해꾼은 사라졌으니…….’

히죽히죽.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 카이는 끝도 없이 펼쳐진 메시지 로그를 위로 쭈욱 올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카이는 102레벨 주제에 170레벨의 인간 폼 아오사와 200레벨의 해방된 아오사를 처치했다.

그 결과 상승한 레벨은 무려 21개!

“크으, 이거지!”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절대 솔플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몬스터 하나 잡고 단번에 스탯 여유분이 105개나 생겼다!’

물론 아오사를 고작 몬스터 하나로 치부하는 인간은 전 세계에서 카이 정도밖에 없을 테지만.

‘일단 분배는 나중의 즐거움으로 미뤄두자고.’

어느 곳에 분배를 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분이 든다.

‘하지만 역시 보스를 잡으면 보상을 확인해야지.’

갑자기 등장한 설은영 때문에 당황해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아오사 처치 보상!

‘그래도 최종 200레벨의 보스 몬스터였는데, 거지같은 아이템을 내뱉지는 않았겠지.’

기대감은 잔뜩 품은 카이는 조심스럽게 아오사의 사체를 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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