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20화 (120/441)

# 120

힐통령 120화

48장. 달빛과 함께 춤을 (2)

본디 깨끗했을 책상 위에는 찌그러진 레드불 캔이 7개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일반인이 그 현장을 본다면 혈관 속에 피가 아니라 카페인이 흐르는 것 아니냐고 물어도 할 말 없는 상황.

하지만 레드불의 힘으로 날개를 펼친 마이클은 바싹 말라 있는 입술을 달싹였다.

“……드디어 끝났다.”

장장 9시간.

언노운에게 메일을 받는 순간부터 다른 일감을 모두 미뤄놓고, 편집에 임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도화지는 언노운의 영상뿐이니까.’

예술가의 마음을 지닌 마이클로서는 탐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영상에는 지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쏟아부었어.’

중학생 때부터 독학을 하면서 배운 지식들, 대학교에서 교수님들에게 빨아들인 지식들,

더불어 고객들의 영상을 편집해 주면서 스스로 체득한 노하우까지.

마이클 레이놀드가 지닌 영상 편집의 정수가 이 영상 하나에 고스란히 흘러들어간 것이다.

그랬기에 그는 확신했다.

‘나에 대한 평가는 다시 한 번 뛰어오르겠군.’

자신이 다른 이들과 벌려놓은 격차는, 이 영상을 기준으로 더욱 크게 벌려질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은 그 사실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리고 언노운과의 합작은 이번이 끝일 것 같고.”

이 방면에서 프로인 마이클은 수많은 영상들을 편집해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개중에는 초보자 시절 때부터 영상을 만져주다가 랭커가 된 이들도 있었다.

‘어느 길드에 들어가서 그쪽의 영상 편집자와 일하든, 아니면 방송국 차원에서 영상을 제작하고 방송을 하든. 둘 중 하나겠지.’

머리에 귤이라도 박아 넣지 않은 이상, 이 정도의 실력자가 솔플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고작 두 번의 영상 편집이었지만, 마이클은 언노운과 작업을 하며 엄청난 재미를 느꼈다.

“이제 다시 따분해지겠어.”

씁쓸한 미소를 띄운 그는 지금 당장 침대로 달려가 자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임무를 위해 메일함을 열었다.

***

삐로리!

“으음……?”

귓가를 흔드는 소리에 꿈뻑꿈뻑 눈을 뜬 한정우는 흐르는 침을 닦으며 머리를 들었다.

여전히 피로가 풀리지 않은 머리를 억지로 들어 시계를 확인한 그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직 7시간밖에 못 잤잖아?’

근래 피로가 축적된 탓에 최소 10시간은 자려고 알람도 그 시각으로 맞춰놓았다.

“그럼 방금 그 소리는…….”

잠긴 목소리로 의문을 내뱉은 한정우는 게으른 몸짓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아, 뭐야. 메일이잖아.”

찌푸린 눈으로 스마트폰을 머리맡에 던지고 다시 눈을 감은 그는, 이내 다시 눈을 떴다.

“……메일?”

이메일로 자신에게 편지를 보낼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지간한 스팸 문자는 모두 차단 등록을 해놨기에, 당연히 알림음도 뜨지 않는다.

“설마.”

의심스러운 말을 내뱉는 입과는 달리, 몸은 재빠르게 스마트폰을 다시 낚아챘다.

잠금 패턴을 풀어 메일함을 확인한 순간, 머리에 냉수라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이클? 이렇게 빨리?!”

순식간에 이불을 걷어낸 한정우는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했다.

‘역시 액세스 코드도 함께 왔다.’

미드 온라인의 영상 대부분은 웬만한 영화보다 용량이 크다.

당연히 일개 메일에 첨부하는 건 불가능. 때문에 마이클은 이렇게 메일의 본문에 늘 액세스 코드를 첨부해 놓았다.

이 코드를 마이클의 개인 홈페이지에 입력하면 그곳에서 영상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것이다.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시스템 창을 확인한 카이는 곧장 영상을 재생했다.

인트로의 시작은 잔잔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블리자드가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마치 도시의 밤을 수호하는 영웅처럼 묘사된 그는 궁지에 몰린 유저들을 지그시 응시하더니,

그대로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콰드드드득!

곡도로 아오사의 목덜미를 물어뜯음과 동시에 시작되는 전투!

‘역시 게임 내부에서 직접 보는 것과 영상으로 만들어서 보는 것은 차원이 달라.’

비록 생동감은 이쪽이 떨어질지라도, 속도감과 영상미는 확실히 더 살아 있었다.

휘익, 휘익!

아오사의 촉수 공격을 현란한 몸놀림으로 피해내는 블리자드.

그 와중에 간간히 뿜어내는 그의 곡도는 날카롭고 위험해 보였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공격을 허용한 블리자드는 순식간에 수세에 몰렸다.

‘노래가 바뀌었다. 영상도 조금 천천히 재생되고 있고, 화면도 점점 흑백으로 바뀌고 있어.’

그건 마치 블리자드의 죽음을 예고하는 듯했다.

그런 블리자드를 향해 날아오는 아오사의 마지막 일격.

블리자드는 이를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 피하지 못했다.

촤르르륵.

그 순간 날아드는 한 줄기의 사슬.

동시에 노래가 뒤바뀌었다.

암울하던 분위기는 드럼을 베이스로 한 웅장한 노래와 함께 급변했다.

영상을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심장을 뛰게 만드는 듯한 비트였다.

‘여기서 내가 등장하는구나.’

자신의 등장은 절대 밋밋하지 않았다.

발과 어깨, 팔과 허리, 그 다음은 용을 닮은 투구.

장비의 부분부분을 차례대로 보여준 뒤에야 전신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비취색의 용갑주를 입고 있는 이의 늠름한 모습.

[너에게선…… 참을 수 없이 고약한 냄새가 나는군.]

아오사가 분노를 터뜨리며 촉수 다발을 휘둘렀다.

하지만 용갑주의 유저는 그것들을 일검에 베어버렸다.

동시에 그의 갑주가 푸른색으로 물들었고, 새로운 전투가 시작되었다.

‘영상의 템포가 빨라졌어.’

덕분에 전투는 아주 박진감 있게 표현되었다.

달빛이 비춰주는 건물의 지붕과 지붕 사이를 뛰어다니며 검을 주고받는 두 사람.

그 승자는 단연 언노운이었다.

우르르르릉!

건물 하나를 통채로 무너트린 언노운은 떨어지는 도중 아오사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먹였다.

‘이 다음에 아오사가 변신을 하지.’

그때부터 시작되는 2페이즈.

이와 함께 영상에 깔린 노래는 한정우는 물론, 일반인조차 잘 아는 노래였다.

듣는 이로 하여금 ‘아! 이거!’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한 노래.

바로 악성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였다.

콰아앙, 콰아아아앙!

압도적인 덩치를 자랑하는 아오사는 건물들을 밀어버리며 언노운의 뒤를 쫓았고,

언노운은 신성 사슬을 이용해 건물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하이어 웨이를 먹는 장면은 알아서 편집을 해줬네.’

그야말로 언노운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작정한 듯한 편집!

하지만 그 효과는 절대적이라고 칭할 정도였다.

자신이 도핑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본인조차, 영상을 보고 입이 벌어질 정도였으니까.

“……저게 나라고? 내가 저랬어?”

허공으로 떨어지는 건물의 파편.

그 파편들 속에서 길을 찾아내고, 없다면 사슬을 통해 돌덩이를 끌어와서라도 길을 만든다.

그 말도 안되는 일을 몇 번이고 자연스럽게 해내는 모습은 한정우로 하여금 몇 번이나 영상을 되돌려보게 만들었다.

얼마나 몰입을 했는지, 깜짝 문구가 첨부된 엔딩 크레딧은 순식간에 올라왔다.

“…….”

영상을 모두 시청한 한정우는 턱을 문지르면서 고민했다.

‘이건 아무리봐도 무료로 공개할만한 퀄리티는 아닌 것 같은데…….’

웬만한 길드의 레이드 영상과 비교해도 절대 꿇리지 않는다.

돈을 받고 팔아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돌려서 생각하자면…….’

한정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영상을 무료로 공개했을 때 얻게 될 막대한 이득이 속속들이 떠오른 것이다.

‘이건 랭커들조차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무기야.’

그 어느 랭커도 아오사를 단신으로 해치우는 것을 장담할 수 없으며,

언노운이 보여줬던 아득한 경지의 움직임을 보여줄 자신이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이런 영상을 무료로 공개해 버린다면?

‘유료로 판매하면 아무래도 보는 사람이 줄어들 수밖에 없지.’

하지만 무료로 공개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쩌면 1억 뷰도 가능한 거 아닐까.’

미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조작을 방지하고자 동일 IP의 조회수 중복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1억 뷰가 넘는 동영상은 게임이 오픈된 지 7개월이 된 지금까지도 전무한 상황.

‘조회수 1억을 뽑을 수 있을만한 영상은 모두 유료로 판매했으니까 말이지.’

하지만 자신은 아직 돈이 궁하지는 않았다.

아직도 통장에는 쓰지도 않은 몇 억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결국 지금 내가 노려야 하는 건 명예.’

명예는 당장 돈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명예는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준다.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받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

마찬가지로 언노운의 이름이 유명해지면, 그의 말 하나하나가 힘을 지니게 된다는 뜻.

‘만약 지금 내가 검은 벌, 타이탄과 시비가 붙으면 압도적으로 불리해.’

물론 레벨이나 장비, 인원의 문제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영향력이었다.

그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길드들.

무슨 말을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반면 인지도가 없는 사람의 말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내 이름값이 좀 더 올라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한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무료로 공개하자.”

어차피 무료로 공개해도 수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두 개의 영상만 봐도 알 수 있지만, 후원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오니까.’

고민은 짧게, 행동은 빠르게.

한정우의 마우스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미드 온라인 커뮤니티.

혹자는 게임의 모든 정보가 교류되는 기회의 땅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혹자는 그냥 병신들이 키배 뜨는 병신 같은 장소라고 부르는 곳이다.

만약 누군가가 요 며칠 간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둘러봤다면,

그 의견은 후자 쪽으로 실릴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정말 미친 듯이 싸워댔으니까.

-아니, 언노운 빠돌이, 빠순이 새끼들아. 아오사는 용갑주 유저가 잡았다니까? 우리 형이 직접 봤다니까.

└넌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너야말로 언노운이 잡았다고 믿고 싶은 거겠지.

└어휴, 노답.

└어휴, 개노답.

서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화기애애하게 서로의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면서 전화 통화를 한다.

최종적으로는 서로의 부모님 안부까지 여쭙게 되는 화목한 장소!

그 한심한 작태를 쳐다보던 한 유저가 말했다.

-어휴, 한심한 새끼들. 내가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뭐래, 이 등신은.

└뭐래, 이 븅신은.

└시끄러워 이 자식들아, 여기서 싸우지말고 동영상 게시판이나 가보지 그래?

└거긴 또 왜?

└언노운이 신작을 올렸거든.

그 뒤로는 귀신같이 답글이 달리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게시판에서 열심히 싸워대던 모든 이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그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언노운이 새롭게 올린 동영상의 조회수가 폭주하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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