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21화 (121/441)

# 121

힐통령 121화

48장. 달빛과 함께 춤을 (3)

미드 온라인 커뮤니티의 동영상 게시판에는 아주 좋은 시스템이 있다.

-언노운이 드디어 아오사 사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건가?

└글쎄, 제목을 보니 그냥 신작인 듯?

└이 시점에서 신작이라…… 배포가 좋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일단 보면 알겠지. 다들 집중하자고.

바로 채팅 시스템이다.

동영상을 보면서 의견을 실시간으로 나눌 수 있는 아주 좋은 시스템.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그 좋은 시스템의 부정적인 영향이 부각되었다.

-으하하하하하! 용갑주 어쩌고 하던 놈들 전부 버로우 탔죠?

-언노운이네?

-언노운이야!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내가 분명 우리 형한테 들었어! 용갑주 녀석이 아오사 잡았다는 거 똑똑히 들었다고!

└어이, 확실하지 않으면 키보드 함부로 두드리지 말라고 안 배웠냐? 망치 가져 와!

바로 동영상의 채팅창에서 키보드 배틀이 재개되었으니까.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여태껏 언노운이 아오사를 잡았다고 주장한 이들은 대놓고 무시를 당해왔으니까.

-크으, 우리 언노운님, 등장도 멋있어!

-이번에도 마이클 레이놀드 작품이야? 얘도 진짜 감탄밖에 안 나온다.

-저번 영상에서는 편집과 연출 모두 마이클이 전담했다고 했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듯.

인트로의 시작과 동시에 깔리는 잔잔한 피아노 소리.

칠흑의 원한을 장비한 채 어두운 도시에서 모습을 드러낸 언노운.

이어서 강렬한 폰트의 제목이 화면의 중앙을 메꿨다.

-Dance with the moonlight(달빛과 함께 춤을). 영상에 어울리는 제목이군.

-인트로 부분 분위기 미쳤네.

-이걸 보고 확신했다. 영화 산업의 미래는 어두워.

영화 산업의 미래까지 걱정되게 만드는, 압도적인 분위기의 영상!

언노운의 팬들은 그가 이번에는 또 어떤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분이 지나자, 채팅창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보세요? 거기 911이죠? 여기 보스 몬스터한테 얻어맞고 실신한 유저가 있어서요. 엠뷸런스 좀 보내주세요.

-역시는 역시 역시군. 루키에 불과한 언노운이 아오사를 잡는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됐지.

-언노운 흑역사 박제 완료.

-소크라테스가 이 영상을 보고 말합니다. 네 자신을 알라.

-언노운 찬양하던 애들 전부 어디갔냐?

언노운을 향해 이어지는 비난과 조롱!

그의 팬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그들의 영웅은 이미 아오사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상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물론 적절한 의문점을 제시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뭔가 좀 석연치 않은데? 언노운이 왜 자기가 얻어맞는 영상을 올렸을까? 이거 혹시……

└또또 시나리오 쓰고 있네. 초반에 잠깐 등장했으니 올린 거겠지.

└아니야. 저 용갑주 유저가 쓰는 검, 언노운이 오크 로드 잡을 때 쓰던 거랑 똑같다니까?

└친구야.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냐? 네 행복회로에서 나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러한 의견 충돌도 잠시.

서로 물어뜯던 시청자들은 시간이 흐를 수록 모든 걸 잊고 점점 영상에 빠져들었다.

그만큼 용갑주 유저의 전투는 호쾌했으니까.

언뜻 투박해 보이는 장면조차 맛깔나게 잘 살린 건 마이클의 솜씨가 십분 발휘된 결과였다.

-잘 싸우긴 잘 싸우네…….

-흥. 언노운님보다는 아니지만 제법 하네요.

└눈 괜찮냐? 누가 봐도 언노운이랑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잘 싸우는데.

-무슨 칼 휘두르는 모습조차 섹시하냐. 내 심장아 제발 나대지 마.

언노운의 팬을 자처하던 이들조차 그 믿음(?)이 약간 흔들릴 정도!

그만큼 달빛 아래에서 한데 어우러지는 두 존재의 검술 전투는 아름다웠다.

-역시 악성의 월광 1악장은 언제 들어도 최고야.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마성이 담긴 곡이지.

└영상의 분위기와도 딱 들어맞아. 도시를 지키기 위한 남자의 쓸쓸한 마음을 대변해주는듯 해.

훌륭한 전투와 어우러진 희대의 명곡!

무엇보다 언노운의 신작은 신선했다.

이 부분이 시청자들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은 킬 포인트였다.

-살다살다 도시에서 레이드하는 영상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이런 이벤트 자체가 쉽게 일어나지는 않으니까 말이지.

└아마 누가 이 영상을 따라한답시고 도시에서 싸우면 바로 치안대에 잡혀갈걸?

이전에 접하지 못한 신선함!

그것은 언노운의 첫 번째 동영상에서부터 전통처럼 이어진, 그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오사의 체력이 20% 이하로 떨어졌을 때, 사람들은 슬슬 지루함을 느꼈다.

-흐음. 확실히 재미있고 신선하긴 한데…….

-계속 칼질만 하다보니 조금 지루하네.

-설마 남은 15분 동안에도 계속 칼질만 하는 건가?

└그게 사실이라면 굉장히 실망스러울 거야.

그러나 마이클은 영상 편집의 프로다.

그중에서도 천재라고 불리우는 프로.

당연히 시청자들이 어느 지점에서 지루함을 느낄지, 그는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우르르르르릉!

두 존재가 서있던 건물이 예고없이 무너졌다.

그 와중에도 치명타를 먹이는 용갑주의 유저!

-저 상황에서도 공격을 넣는다고?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저건 진짜 어려운거야. 내가 저번에 힐탄 산맥 절벽에서 발 헛디뎌서 추락한 적이 있는데, 아찔해서 눈만 꼭 감게 되더라고.

-담력이나 배짱을 후천적으로 키우는 건 한계가 있어. 타고나야 된다는 소리지.

다음 순간 아오사의 덩치가 거대해졌고, 2페이즈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고요하게 흐르던 월광의 1악장이 끝나고, 2악장을 건너뛴 채 3악장이 재생되었다.

콰아아앙, 콰아앙, 콰드드드득!

아오사의 맹렬한 추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는 용갑주 유저의 신위(神威)!

그리고 마침내 그가 시계탑의 파편들을 밟고 허공을 걸어 다니며 공격을 피하는 순간,

채팅창은 더 이상 글을 읽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지져스! 제대로 미쳤군! 저게 사람이야?

└진지하게 사람 아닌 것 같은데? 슈퍼 A.I 기반의…… 거 뭐냐, 옛날의 알파고 같은 거 아니야?

-일단 팬티부터 좀 갈아입고 와야겠다.

└원래 언노운이 올린 영상 볼 때는 팬티 다섯 장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예의입니다.

……

눈 깜빡할 때마다 수백 줄씩 올라가는 채팅창의 위엄!

물론 일반인들이 찬양 일색의 글만을 쏟아낼 때, 게임 좀 본다는 고수들은 토론을 시작했다.

-신성 사슬? 저건 레어 등급 스킬인데.

└레어 등급이지만 물량이 없어서 웬만한 유니크 스킬 북 가격 뺨을 서너 대 후려치지.

└저걸 사용한다는 건 일단 성기사 클래스 확정이라는 소리야. 설마 사제일 리는 없으니까.

나름 침착함을 유지한 채 철저히 용갑주 유저에 대해 파헤치는 사람들.

그러나 그 가면이 깨지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워, 원기 회복의 샘을 저렇게 사용한다고?!

-저 상황에서 저런 방법을 떠올리다니…… 대체 어떻게 된 위기대처 능력이야?

-상대방의 압도적인 덩치를 역이용한 거야. 천잰데?

고수들마저 깜짝 놀라게 만드는 기발한 전투 방법!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다음 순간 그들의 숨을 멎게 만드는 기술이 영상을 통해 세상에 공개되었으니까.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건 아무리 봐도 더블 캐스팅인데?

└어? 정말이잖아?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해서 몰라봤어.

-마법사도 아니고 성기사가 더블 캐스팅을 쓴다고? 재능 낭비 미쳤네;;

-제가 전사라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 원래 더블 캐스팅을 저렇게 움직이면서도 쓸 수 있는 겁니까? 사실이라면 이건 개발사에서 너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너프요? 저게 둘 다 되는 사람은 전 세계를 통틀어도 100명이 채 안 될 겁니다.

└100명이나 된다고? 평가가 너무 후하네. 한 30명 수준 아닌가.

성기사가 더블 캐스팅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충격적!

하지만 그는 한 술을 더 떠서 그걸 움직이면서 사용하는 무빙 캐스팅마저 보여줬다.

말 그대로 탑 클래스의 마법사들이나 보여줄 법한 기술들의 향연!

[구아아아아아악!]

이윽고 아오사가 쓰러지자, 채팅창은 박수치는 모양의 이모티콘으로 도배되었다.

-40분도 안 되는 영상인데 보고 나니까 진이 다 빠지는 기분. 얼마나 집중한 거지?

└난 아직 부족해. 2회차 보러간다.

-와이프 몰래 챙겨놓은 비자금으로 후원금을 넣어야겠어.

-지져스, Take my money! 이런 영상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다.

└비록 언노운의 출연은 5분 밖에 안 되지만(웃음).

끝까지 조롱당하는 언노운!

하지만 영상이 끝나고 수많은 시청자들이 ESC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마이클 레이놀드가 영상 말미에 박아놓은 깜짝 문구가 공개되었다.

[레벨이 올라서 그런지 언노운님 장비가 바뀌었더군요. 항상 좋은 영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

-…….

당연한 말이지만, 그에 대한 파급력은 엄청났다.

마치 산타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빠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와 같은 충격의 쇼크(Shock)!

얼어붙었던 채팅창이 천천히 제 기능을 되찾기 시작했다.

-어…… 그러니까 저 용갑주가 언노운이었다고? 영상 초반의 그 샌드백이 아니라?

-지금 이해가 안 되는데…… 아무튼 용갑주가, 아니 언노운이 아오사를 잡은 게 맞다는거지?

└그렇지. 그럼 내기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둘 다 이긴 것 아니야? 언노운이 아오사를 잡은 것도 맞고, 용갑주가 아오사를 잡은 것도 맞으니까.

└애초에 두 사람이 하나였다면, 싸울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잖아?

└그럼 쟤네들은 대체 왜 싸운 거야?

싸움의 이유를 잃어버린 수많은 유저들이 단체 공황에 빠졌을 때,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던 사람 하나가 말했다.

-병신들이 키배 뜨는 데 이유가 있냐?

묵직한 팩트였다.

***

“…….”

설은영의 예쁜 얼굴은 근래 찌푸려지는 일이 잦았다.

심지어 오늘은 그 앵두 같은 입술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설마 그때 그 남자가 언노운이었을 줄이야.”

길드 아지트의 집무실 의자에 앉은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렇게까지 빠르게 성장할 줄은 몰랐어.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처음 그의 영상을 본 건 오크 로드 레이드 영상이었다.

보이드가 그를 영입하자며 보여줬었고, 자신은 그날 딱 잘라서 거절했다.

‘그에게는 한계가 있을 거라고, 반짝 스타일 거라고 생각했지. 그랬는데…….’

그는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예상을 뒤집어버렸다.

홀로 아오사 레이드를 성사시킨 그의 몸값은 이제 함부로 재단할 수 없을 지경.

‘말 그대로 일류 스포츠 스타들의 연봉이 오갈 정도의 인물이 되어버렸어.’

기회를 놓친 그녀가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을 때, 그녀의 집무실 문이 활짝 열렸다.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보이드.

“으흐흐흐.”

“재수 없는 놈. 저리 안 꺼져?”

설은영의 차가운 독설에도 불구하고, 보이드는 바보처럼 실실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우리 아가씨, 표정을 보아하니 영상 보셨나 보네?”

“…….”

“그렇게 인상 찌푸리면 현실에서도 주름지지 않아요? 기껏 비싼 관리 받는데 아깝게시리.”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야?”

“에헤이. 제 말 안 듣다가 후회하고 계시면서 또 그러신다.”

완전한 승리자의 미소를 드러낸 보이드는 집무실의 소파에 편안하게 앉으며 물었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

무엇을 묻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언노운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묻는 것이다.

결국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내를 감춘 설은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입해.”

짝!

이에 보이드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뼉을 치더니 말했다.

“아시겠지만, 쉽지 않을 거예요.”

“업계 최고의 대우를 보장…….”

자신있게 입을 연 그녀의 말끝이 점점 흐려졌다.

생각해보니 그에게 업계 영입 제안을 건넨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결과는 아주 대차게 까였었고.

“딱 봐도 아시겠죠? 돈으로는 그 놈 못 데려와요.”

“그럼? 어떻게 해야 그를 데려올 수 있지?”

“일단 친해져야죠. 원래 사내놈이란 예? 크으, 의리! 바로 의리에 죽고 살고 한단 말입니다. 마음이 따르면 몸도 따라온다 이 말이죠.”

보이드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드러내며 제 가슴을 두드렸다.

“아시겠지만 제가 친화력 하나는 끝내주잖아요?”

“아아, 가끔씩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얄미워지는 그 친화력 말하는 거지?”

“하하하, 농담도 참.”

“농담 아냐.”

“…….”

그녀의 차가운 표정에서 진심을 읽어낸 보이드는 헛기침을 하며 슬그머니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 아무튼 그럼 언노운을 데려올 수 있는 방법을 한 번 생각해볼게요.”

“……최선을 다해줘.”

“명 받들겠습니다.”

집무실을 나가는 보이드를 쳐다보던 설은영은 그의 말을 떠올렸다.

‘일단 친해져야 한다고?’

설은영은 잠시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하더니, 곧장 언노운의 후원금 계좌로 3천만 원을 보냈다.

“이걸로 조금은 친해졌어.”

그녀는 마음이 약간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을 다스리는 건 몰라도, 사귀는데에는 서툰 설은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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