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23화 (123/441)

# 123

힐통령 123화

49장 아오사가 남긴 것 (2)

[지도가 갱신되었습니다.]

‘좋아.’

지도를 활성화한 카이는 엘프의 마을로 향하는 길이 등록된 것을 확인했다.

‘이걸로 인어들에 이어 엘프까지…… 그럼 이제 남은 건 드워프들의 도시뿐인가?’

하지만 카이의 여유로운 표정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아야나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카이 님, 한 가지 충고를 드리자면…… 숲의 파수꾼들을 조심하세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들은 외부인, 특히 인간에게는 절대로 마을을 공개하지 않아요. 심지어 길을 알고 있어도 찾아 가는 게 쉽지 않을 정도지요.”

길을 알고 있는데도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카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의 의중을 헤아렸다.

‘대체 무슨 말이지? 물론 엘프의 숲이 넓은 것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엘프의 숲은 넓다.

정말 넓다.

더군다나 200레벨 이상의 몬스터가 서식하는 지역이기에, 웬만한 랭커들도 사냥을 꺼리는 장소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웬만한 랭커들.’

전세계적으로 10,000위까지를 랭커라고 지칭하지만 랭커라고 다 같은 랭커는 아니다.

상식적으로 9천 위나 5천 위는 물론, 500위와 100위의 실력이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

‘일명 천상계라고 불리는 랭커들은 최근 엘프의 숲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어.’

그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랭커들의 소식과 동영상 게시판을 뒤져보는 자만이 유추해낼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엘프를 봤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지.’

그래서 카이는 엘프들의 숲, 정확히는 그들의 마을로 향하는 지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길을 알고 있는데도 갈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엘프들은 숲의 감시자 혹은 숲의 파수꾼이라고 불리죠. 혹시 그 이유를 아시나요?”

“모르겠습니다.”

“말 그대로 마을로 접근하는 모든 존재들을 감시하기 때문이예요.”

“감시만하는 겁니까?”

“평소에는 감시만하죠. 그러다가 마을로 접근하면 죽이고요.”

카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엘프들은 그…… 보통 평화를 사랑하는 이미지가 있지 않습니까?”

“맞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 평화가 오직 엘프들을 위한 평화라는 부분을 간과하더군요.”

“…….”

이 순간, 카이는 진심으로 따지고 싶었다.

그건 평화라는 이름을 사칭한 배타주의라고.

“……한마디로 지도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군요. 마을로 접근하면 죽으니까요.”

“아, 물론 다짜고짜 접근하면 공격하겠죠. 하지만 다짜고짜 접근하지 않으면 되잖아요?”

“그게 무슨…… 아!”

생글생글 웃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카이가 탄성을 내질렀다.

“그들이 저를 침입자가 아닌 손님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야겠군요?”

“정답이예요. 파수꾼들에게 숲을 방문한 목적을 확실히 알리세요. 카이 님의 진심이 전해진다면, 그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마을을 공개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는 카이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만약 그녀의 충고 없이 엘프의 마을로 향했다면 영문도 모른 채 죽었을 테니까.

“별말씀을요. 카이 님이 저희 가족에게 해주신 것에 비하면 초라할 뿐이예요.”

“아니요. 저에겐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후로 몇 시간이 더 대화를 나눈 그들은 자연스럽게 현관문으로 이동했다.

“카이 님…… 아, 안 가시면 안 돼요?”

그를 마중 나온 아야나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두 눈을 마주하자 마음이 약해지는 카이!

‘아, 안 돼.’

나약해지는 마음을 억지로 부여잡은 그는 아야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주 놀러올 테니까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물론 자주 올 것이다.

스마일 진료소만큼 훌륭한 포션을 제작하는 곳은 드무니까.

“후에엥.”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아야나.

카이는 한참이나 그녀를 달랜 후에야 그들 가족과 작별할 수 있었다.

“……이렇게 또 한 건 끝났네.”

그도 아야나와의 이별이 섭섭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정착할 수도 없는 일.

마음을 강하게 먹은 그는 지도를 펼치며 앞으로의 계획을 다듬었다.

‘우선 타르달에게 임무 완수 보고를 하기 위해서는 아쿠에리아로 돌아가야 하는데…….’

문제는 화이트홀의 텔레포트 게이트가 망가졌다는 것이다.

결국 주변의 다른 영지로 이동을 한 뒤 그곳의 게이트를 이용해야 한다는 소리.

‘마차를 구해야겠어.’

옛날의 카이였다면 두 다리로 열심히 걸어갔을 터.

하지만 지갑이 풍족해진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금 나에겐 돈보다 시간이 더 소중하니까.’

곧장 성문 근처로 향한 카이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아니, 마차들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중에서 어느것을 고를 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친근한 형제 활성화.’

스킬을 사용하자 곧장 카이에게 관심을 드러내는 마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말은 즉 그들이 태양교의 신자라는 뜻!

카이는 개중에서 가장 날쌔보이는 말이 이끄는 마차로 다가갔다.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가는데 얼맙니까?”

“1골드 5실버인데…… 인상이 좋으시니 깔끔하게 1골드로 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요.”

마부와의 거래를 마치고 마차에 탑승한 카이는 곧장 스킬을 비활성화 상태로 바꾸었다.

생각보다는 편안한 내부.

마차가 달그락거리며 출발하자, 카이는 여유롭게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어디보자, 탈진이랑 탈력감 디버프가 아직도 9일이나 남았네. 당분간 사냥은 무리겠어.’

오히려 요양이 필요할 정도였다.

지금 이 상태라면 100레벨의 몬스터를 잡는 것도 벅찰 테니까.

‘뭐, 당분간 휴가라고 생각하는게 편하겠지.’

짧은 휴가 뒤에 도사리는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옥의 레이스!

마음을 다잡은 카이는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입을 벌렸다.

“아, 그러고보니…….”

탈진 상태에 빠지기 전, 자신이 무엇을 하는 중이었는지 떠올린 카이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불완전한 핵]

등급 : 유니크

한때 아오사의 근원을 담당하던 핵입니다.

신성력을 부여하면 깨어납니다.

‘아직도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유니크 등급이란 말이지…….’

아오사가 드랍한 모든 아이템과 재료는 유니크 등급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꽝은 단 하나도 없었어.’

그 사실이 카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잔뜩 기대에 찬 카이는 핵을 제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한 손으로 신성력을 내뿜었다.

“자아, 그럼 어디 한 번 보자고.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카이의 손끝이 핵과 마주하는 순간,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띠링!

[불완전한 핵이 신성력에 반응합니다.]

꿀렁꿀렁!

메시지와 함께 핵은 수은과도 비슷한 액체를 흘려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핵을 감싸안는 액체.

‘아니, 수은보다는 조금 더 고체에 가까운……이라기보다, 이거 그냥 아오사랑 똑같잖아?’

카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제 무릎 위의 물건을 쳐다보았다.

아오사와의 차이점이라면 푸른색이 은색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크기가 수십 배는 작아졌다는 것?

잠시 그것을 쳐다보고 있던 카이가 화들짝 놀랐다.

“아, 깜짝이야!”

꿈틀!

그것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마치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아기 새가 눈곱 낀 눈으로 세상을 두리번 거리듯,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것은 천천히 꿈틀거리며 제 몸을 움직였다.

카이는 조심스럽게 검지 손가락을 들어 그것을 쿡쿡 찔러보았다.

몰캉몰캉!

기분 좋은 느낌이 손끝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대체 뭐냐, 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시스템 메시지가 대신했다.

[불완전한 핵이 태양교의 신성력을 받아들이고 무사히 작동하였습니다.]

[불완전한 핵을 길들이셨습니다.]

[길들인 몬스터에겐 장비를 입혀줄 수 있으며, 추후 스킬 북을 통해 소환과 역소환을 할 수 있습니다.]

“어……?”

카이가 눈을 깜빡였다.

“이, 이거 펫이었어?”

누가 봐도 생명체로는 보이지 않는 존재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이나 귀, 하다못해 숨을 쉴 수 있는 코조차 없었으니까.

카이는 자신의 무릎을 벗어나 마차 벽을 꾸물꾸물 기어가는 녀석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아오사가 남긴 것 중 유일한 꽝은 이거인 듯하네.”

이벤트 경향이 짙은 펫 전리품.

카이가 눈앞의 존재를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하긴, 게임이 계속 유리하고, 대박만 터지면 무슨 재미가 있어?’

원래 치트키를 쓰고 게임을 하면 금세 질리는 법!

“음?”

그 순간.

창문에 찰싹 붙어 있던 불완전한 핵이 몇 번 꿈틀거리더니, 이내 토끼의 모습을 취했다.

“…….”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카이는 멍한 표정으로 토끼를 바라보았다.

눈과 귀, 코와 입은 달려있지 않았지만 길쭉한 귀를 지닌 그 형태는 분명 토끼였다.

[불완전한 핵이 흉내내기를 사용했습니다.]

“흉내……내기라고?”

자신의 무릎 위로 폴짝 뛰어오르더니, 몸을 뉘이며 그대로 고로롱 소리와 함께 잠드는 토끼.

멍한 표정을 황급히 지워낸 카이는 곧장 펫 상태창을 불러냈다.

[불완전한 핵]

등급 : 레이드 보스

불완전한 핵은 뮬딘 교에서 만들어낸 인공 생명체이지만 현재는 태양교의 신성력에 완벽하게 정화된 상태입니다.

신성력을 주입한 대상을 부모로 여기는 핵은 당신을 맹목적으로 따를 것이며, 그 누구보다 신뢰할 것입니다.

포만감 : ∞

충성도 : 100/100

[초급 흉내내기 LV.1]

등급 : 유니크

[위기감지, Passive]

등급 : 레어

보유 스킬이라고는 달랑 두 개뿐인 초라한 스킬 창!

‘하지만 잡다한 스킬 수십 개보다는 유니크 등급의 스킬 하나가 나아.’

카이는 곧장 흉내내기에 대한 정보를 살폈다.

[초급 흉내내기 LV.1]

등급 : 유니크

다른 몬스터의 모습을 흉내냅니다.

스킬의 레벨에 따라 흉내낸 대상의 스킬과 능력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스킬의 레벨이 부족하면 흉내내기를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12시간.

(중립 NPC, 유저 상대로는 사용 불가)

“이, 이럴 수가…….”

카이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진으로 시작된 흔들림은 경진과 약진, 중진을 넘어 강진이 되었다.

파르르르!

모터라도 달아놓은 것처럼 흔들리는 카이의 눈꺼풀!

그 정도로 그가 받은 충격이 상당했다.

‘이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카이의 머리는 재빨리 굴러가기 시작했다.

‘흉내내기에는 12시간의 쿨타임이 존재하지만, 유지 시간에는 제한이 없어.’

한마디로 한 번 누군가를 흉내내기 시작하면, 다른 녀석을 모방하거나 스킬을 취소하기 전까지는 그 형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소리!

‘물론 스킬 레벨이 발목을 잡긴 해.’

스킬 레벨에 따라 실패할 수도 있다는 문구가 있다.

돌려 말하자면, 스킬 레벨이 낮으면 고위 몬스터를 흉내낼 수 없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부분은 내가 해결할 수 있어.’

쩔.

온라인 게임에서 고레벨 유저가 저레벨 유저를 일방적으로 키워주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물론 미드 온라인에서는 다른 유저를 쩔해주는 건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기여도가 없으면 획득하는 경험치가 형편없으니까.’

하지만 펫의 경우에는 다르다.

펫은 주인과 경험치를 공유하는 존재!

‘실제로 블리자드만 해도 그래.’

블리자드를 소환한 채 자신이 몬스터를 잡으면, 획득한 경험치의 10%는 녀석이 가져간다.

그 시스템을 이용하면 불완전한 핵도 금새 레벨을 올려줄 수 있다는 뜻!

‘게다가 현재 이 녀석의 레벨이 1이니까…….’

자신이 마음 먹고 사냥하기 시작하면, 이 녀석의 레벨은 쑥쑥 올라갈 것이다.

“후후후.”

카이는 눈앞의 핵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꽝인 줄 알았는데, 대박도 이런 초대박이 따로 없잖아?’

미드 온라인에서 오직 자신만이 획득 가능하다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역시 게임은 대박치는 재미지. 꽝 같은게 나오면 무슨 재미야?”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태도!

“오늘부터 네 이름은 몰캉이다.”

카이는 자신의 기가 막힌 작명 센스에 크게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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