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24화 (124/441)

# 124

힐통령 124화

50장 포이즌 마스터(1)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렇다.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 때도 있을뿐더러, 상대방이 이를 몰라줄 때도 있는 법이다.

카이는 그 진리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불완전한 핵이 몰캉이라는 이름을 싫어합니다.]

[불완전한 핵의 충성도가 약간 떨어집니다.]

[불완전한 핵의 이름을 몰캉이라 짓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허어.”

그야말로 통탄할 노릇!

자신의 무릎을 베개 삼아 자고 있던 몰캉…… 아니, 불완전한 핵이 슬쩍 머리를 들었다.

폴짝!

그러더니 건너편 시트로 점프한 뒤 그곳에서 다시 잠을 자려는 녀석!

그쯤 되자 카이도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이름이 마음에 안 드나 본데.’

작명 실력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자신이 거절당할 줄이야!

충격에 입을 꾹 다문 카이는 진지하게 녀석의 이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긴 건 영락없는 슬라임. 보유 스킬 중 내세울 수 있는 건 흉내 내기 정도.’

인터넷 창을 활성화 한 뒤, 이런저런 이름을 찾아보던 카이가 손뼉을 쳤다.

“미믹? 이거 괜찮은데.”

미믹(Mimic).

모 게임에서 보물 상자의 모습을 흉내 내 모험가들을 골탕 먹이면서 단숨에 유명해진 녀석이다.

하지만 본래 미믹이라는 단어는 흉내쟁이라는 뜻!

카이는 불완전한 핵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미믹. 이 이름은 어때?”

“…….”

스윽 고개를 들어 카이의 얼굴 부분을 쳐다보던 녀석은 이내 몸을 낮게 숙였다.

‘이런, 이것도 별로인가.’

카이가 낭패한 표정을 짓는 순간.

몸을 낮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듯 다시 카이의 무릎으로 점프하는 녀석.

그곳에서 누운 녀석은 다시 고로롱 잠에 들기 시작했다.

[불완전한 핵의 이름이 ‘미믹’으로 변경됩니다.]

[미믹의 충성도가 약간 상승합니다.]

미믹.

블리자드에 이어 새롭게 생긴, 카이의 두 번째 펫이었다.

***

“하으으으!”

약수터 할아버지가 빙의된 카이는 신음과 함께 기지개를 켰다.

마차에 오랜 시간 앉아 있어서 굳었던 온몸의 뼈와 근육이 비명을 내질렀다.

“어우, 시원하다.”

상쾌한 표정을 지은 카이는 바다 비린내를 맡으며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타르달에게 임무 완수를 보고하는 것이 급선무.

그 때문에 마차를 타고 마을로 이동한 뒤,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 아쿠에리아로 온 것이었다.

“왔는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며 카이를 반갑게 맞이하는 타르달.

카이는 그의 생소한 행동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쪽으로 앉게. 자네와는 할 이야기가 많겠군.”

그의 권유에 따라 자리에 앉은 카이는 이내 표정을 풀었다.

‘처음이야.’

자신이 방문했을 때 타르달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아오사를 처치했다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크게 높여주었다는 뜻일 터!

카이는 당당한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말씀하신 대로 푸른 역병의 아오사를 처치했습니다.”

“아무래도 듣는 귀가 있다보니 여기저기서 들었다네. 자네, 그새 유명인사가 되었더군.”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카이를 훑어본 타르달이 말을 이었다.

“정말로 아오사를 홀로 잡은 건가?”

“예.”

“과연, 그 녀석이 관심을 가질 만도 하군.”

혼자서 무언가를 중얼거린 타르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임무 완수를 확인하는 바이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5개 획득했습니다.]

소소하게 올라간 레벨을 확인한 카이는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아까 전에 할 이야기가 많다고 하신 건?”

“아, 자네는 모르겠지만, 사실 자네의 이름이 요즘 자주 들려.”

“제 이름이요?”

카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 이름을 어디서……? 우선 유저들은 아닐 테고.’

현재 유저들은 언노운이라는 가명만을 알 뿐, 카이라는 유저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상태다.

한 마디로 자신의 이름을 거론한다면 그것은 필히 NPC일 터.

카이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지명이네.”

“……지명이요?”

“어둠 추적자들은 임무를 수행할 때 자신들을 도와줄 이를 요청할 권한이 있네.”

“아하, 한 마디로 다른 어둠 추적자들이 저를 원한다는 말이군요.”

“맞네. 블랙 리자드맨 때 자네와 함께했던 어둠 추적자들이 소문을 제법 좋게 내준 모양이야. 그때부터 자네에 대한 지명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아오사를 처치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지명 요청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네.”

“좋은 현상이죠?”

“나쁘지는 않지.”

희미한 미소를 내비친 타르달이 두꺼운 서류더미를 그에게 내밀었다.

“한 번 읽어보고 수행하고 싶은 임무를 선택해 보게.”

“어? 설마 임무의 결정 권한이 제게 있는 겁니까?”

“지명 요청 임무를 수행하는 건 처음이니 특별히 선택권을 주겠네.”

“감사합니다.”

타르달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를 표한 카이는 서둘러 서류의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대부분이 어둠의 정수에 물든 네임드 몬스터를 잡거나 뮬딘 교의 흔적을 뒤쫓는 것들뿐이야.’

애석하게도 현재 카이는 그 모든 것들을 수행할 수 없는 몸이었다.

‘아직 디버프가 8일하고 한나절이나 남아 있으니까.’

카이가 어두운 표정으로 서류의 내용들을 휙휙 넘기자, 타르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표정이 안 좋군.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 사실 지금 몸이 썩 좋은 상태는 아닙니다. 아오사와의 전투 때문에 약간의 부상을 입었거든요.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9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럼 대부분의 지명은 모두 무시해야겠어.”

“안타깝게도요.”

“그렇다면…….”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타르달이 손짓했다.

“그 서류에 담긴 내용은 모두 무시하게. 전투를 치러야 하는 것뿐이니 말일세.”

“예.”

아쉬운 표정으로 서류를 밀어내자, 타르달이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자네가 글렌데일에서 수많은 환자들의 중독 초기 증상을 치료했다고 들었네만.”

“예. 아오사가 나타나기 전까지 진료를 해줬습니다.”

“그럼 독에 대한 조예도 있는 편인가?”

“독이요? 제법 있죠.”

이번에 진료소에서 아야나와 함께 그녀의 부모님이 기록한 책들을 싸그리 훑었다.

덕분에 독이나 약초 등에 대한 지식이 크게 늘어난 상태!

‘게다가 아오사를 잡고 포이즌 마스터 스킬까지 익힌 상태지.’

카이의 당당한 모습에 타르달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럼 마침 잘되었군.”

스윽, 슥.

타르달은 서류 한 장을 꺼내 그곳에 무언가를 적더니 카이에게 내밀었다.

“사실 내 몇 주 전부터 내 오랜 친우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다들 바쁜지 이를 거절하더군. 전투 임무는 아닐뿐더러 보상도 제법 후하다고 하니 지금의 자네에겐 안성맞춤일 걸세.”

“잘 되었네요. 그나저나 목적지가 적탑이네요? 이곳에 친구 분이 계신 겁니까?”

카이가 서류를 확인하며 물었다.

물의 현자이자 전직 재상인 자와 친구인 마법사라, 그 정체가 궁금하다.

하지만 타르달은 절대 답을 쉽게 내어놓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찾아가보면 알 걸세.”

***

미드 온라인에는 몇 가지 종류의 마탑이 있다.

적들을 호쾌하게 쓸어버리는 공격 마법이 장기인 적탑.

아군과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 마법을 연구하는 청탑.

모두에게 이로운 지원 마법을 공부하는 백탑.

마지막으로 네크로맨서와 흑마법사들의 성지라 불리는 흑탑까지.

이렇게 네 개의 마탑이 미드 온라인을 대표하는 마탑들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법사가 아닌 유저가 알고 있는 지식은 이 정도가 전부이다.

‘탑주들 이름까지 줄줄 외우고 있는 건 마법사 클래스의 유저 정도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유저가 이름을 외우는 마탑주가 한 명, 존재한다.

‘적탑주 파사낙스.’

유저들이 지칭하기를, 걸어 다니는 자연재해!

그에게 이와 같은 별명이 붙은 이유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자신이 덥다는 이유로 블리자드를 시전해서 주변의 모험가들을 동상 상태에 빠트리고…… 왕국에서 산적 토벌 명령을 내렸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산을 없애 버렸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드 온라인의 네임드 괴짜 중의 괴짜!

카이는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하는 충고를 뼛속 깊이 새겼다.

‘음. 파사낙스가 근처에 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구나.’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목숨만큼은 끔찍하게 아끼는 카이!

하지만 슬프게도, 현재 그는 파사낙스의 근처에 있었지만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생긴 건 영 비실비실해 보이는데…… 타르달이 정말 네놈을 추천한 게 맞는 게냐?”

“…….”

왜냐하면 타르달의 오랜 친우가 파사낙스였기 때문!

침을 꿀꺽 삼킨 카이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 그래. 나는 어둠 추적자의 일원으로 적탑을 방문한 거고, 타르달의 추천서까지 있어.’

그가 아무리 걸어다니는 자연재해일지라도, 자신을 막 대하지는 못하리라.

카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상식이라는 것을 철석같이 믿었다.

“저…… 그래서 전 무엇을 하면 됩니까?”

“추천서에는 독에 대한 조예가 깊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정도라고 쓰여 있군.”

“제가 오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그건 제 자만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뭐라?”

파사낙스가 눈을 매섭게 부라렸다.

그러자 마법사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각진 턱과 단단한 몸매가 꿈틀거렸다.

학문을 가까이하는 마법사라기보다, 한평생 전장을 구른 용병 같은 느낌!

“항상 기억해라.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아…… 쏟아진 물처럼 말이죠?”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쏟아진 물 정도는 언제든지 주워 담을 수 있다.”

“…….”

이 순간, 카이의 믿음이 살짝 흔들렸다.

파사낙스에겐 상식이 안 통할 것 같은 기분!

“아무튼 나는 세상에서 거짓말쟁이를 가장 싫어한다는 걸 똑똑히 기억해 두도록.”

매서운 경고와 함께 다시 추천서로 고개를 돌린 파사낙스의 눈매가 좁혀졌다.

“으음? 서류에는 아오사를 처치한 것이 네놈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게 사실이냐?”

“아, 예에…….”

“호오. 재미있군.”

파사낙스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잔뜩 드러내며 물었다.

“내가 말을 했던가? 사실 독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려는 이유도 아오사 때문이다.”

“아오사 때문이라고요?”

“그래. 뮬딘 교에서는 아오사를 만들어낸 전적이 있지. 한 번 한 것을 두 번 못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다음번에는 더 발전된 존재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

“확실히 그렇군요. 그럼 독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시려는 것도 모두 미래의 대비를 위해서……?”

“맞다. 마법사는 준비를 하는 자이기 때문이지.”

파사낙스가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카이도 이때만큼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성격은 이상할지 몰라도,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만큼은 일류. 배워야 할 부분이야.’

배울 점이 있으면 배운다.

그것은 여태껏 노력을 통해 모든 것을 배워온 카이가 가장 자신 있는 부분 중 하나였다.

“뮬딘 교의 독에 대해 위협을 느낀 나는 대륙 각지의 희귀한 독들을 모두 수집했다. 거기까지는 순조로웠지. 그런데…….”

파사낙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막상 수집이 끝나고 보니 독의 종류만 수백 개가 넘더군. 이쯤 되니 도저히 분간이 안 가. 지역의 약재사들을 불러다가 감정을 요청했지만 모든 독의 종류를 구분하지는 못하더군.”

끄응, 신음을 흘린 파사낙스가 투덜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산적들에게 직접 실험해 보면서 독들의 효능에 대해 알아보고 싶지만…… 국왕 폐하께서 도저히 허락해 주지 않더군.”

“…….”

그야 당연히 해줄 리가 없다.

라시온 왕국의 유일한 마탑주가 인체 실험을 하겠다는데 허락할 군주가 어디 있을까!

특히 베오르크 국왕처럼 칼 같은 성격의 소유자라면 더더욱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음. 그렇다면 결국 제가 할 일이라는 건……?”

“긴 말은 필요 없겠지. 이 독들을 모두 분류해 주게. 효능 별로 모두 정리해 주면 좋겠어.”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언뜻 보기에도 독들의 종류는 수백 개나 되었다.

이걸 어떻게 모두 구분해 낸단 말인가?

카이가 연신 식은땀을 흘려내자, 파사낙스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설마 불가능하다는 건가? 그럼 독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말도 모두 거짓이겠군?”

파사낙스의 주변으로 전류가 파지직거리고, 화염구가 두둥실 떠올랐다.

마법 저항력이 높은 카이라고 하지만, 게임에선 결국 레벨이 깡패!

‘마탑주 정도 되는 NPC의 공격이라면…… 절대 무시 못해. 아니, 죽을 수도 있다.’

결국 그의 협박에 굴복한 카이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를 진정시켰다.

“무, 물론 가능합니다. 가능해요. 믿고 맡겨주세요…….”

“그럼 분류를 시작해라. 내 눈앞에서, 당장.”

마치 감시를 하겠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며 카이를 쳐다보는 파사낙스.

이에 침을 꿀꺽 삼킨 카이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약병 하나를 집어 올렸다.

“그, 그러니까요…… 이 독은 말입니다…….”

자신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하지만 독병을 지그시 쳐다보던 카이의 눈앞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포이즌 마스터 스킬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분석 중…….]

[독에 대한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어?”

카이가 멍청한 표정으로 두 눈을 껌뻑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