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25화 (125/441)

# 125

힐통령 125화

50장 포이즌 마스터(2)

[붉은 아카투스의 뿌리 독]

등급 : 레어

롬바 강의 기슭에서 발견되는 강력한 독입니다.

한 방울만 복용해도 체내의 모든 마나가 역류하며 구토와 어지러움을 호소하게 됩니다.

‘……이게 뭐야?’

갑작스럽게 발동된 포이즌 마스터의 효과는 카이를 놀라게 만들었다.

포이즌 마스터는 아오사를 처치하고 보상으로 획득한 유니크 등급의 스킬 중 하나였다.

[포이즌 마스터]

등급 : 유니크

독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생깁니다.

독에 대한 면역력이 매우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카이는 포이즌 마스터의 설명을 처음 읽었을 때, 내성이 강화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킬의 주 능력치는 누가 뭐래도 독 저항력의 상승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독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생긴다는 것.

그것이 포이즌 마스터 스킬이 지닌 진정한 능력이었다.

설마 이렇게 처음보는 독의 종류에 대해서도 단번에 알아낼 수 있을 정도라니!

“뭐하고 있나? 역시 독에 대해 잘 모르는 것 아닌가?”

파사낙스의 목소리와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조금씩 카이에게 다가오는 살벌한 마법들.

하지만 포이즌 마스터의 효과를 견식한 카이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롬바 강이네요.”

“뭐라?”

“거기서 채집된 독이라구요. 붉은 아카투스의 뿌리 독. 이 약병에 들어 있는 독의 이름입니다.”

“…….”

카이의 당당한 말투에 긴가민가한 파사낙스는 책상 위에 놓여진 서류 더미를 뒤적거렸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붉은 아카투스의 뿌리 독이라. 확실히 구매 리스트에 있긴 하군.”

“본래라면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하시면 안 됩니다. 한 방울만 집어삼켜도 체내의 마나가 모두 역류하는 치명적인 극독이거든요.”

“호오, 체내의 모든 마나가?”

“예. 가장 이상적인 보관 방법은…….”

카이의 입에서는 일평생 독에 대해 연구한 사람이나 알 법한 지식들이 흘러나왔다.

이에 파사낙스는 의심을 거두고는 순수하게 놀랐다.

“제법이군. 정말 독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편이야. 웬만한 약재사들보다도 나아.”

“후후, 제가 어려서부터 독에 대해서는 모르는게 없었습니다.”

잔뜩 높아진 카이의 콧대와, 솟아오르는 어깨!

파사낙스는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지만, 실력을 입증한 카이를 구박할 수는 없었다.

“……그럼 이번에는 이 독을 분석해 봐라.”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파사낙스는 새로운 독병을 건네며 분석을 이어나갔다.

‘후후. 보인다, 보여!’

독을 집어올리는 족족 그에 대한 분석이 완료되었고, 정보가 떠올랐다.

카이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것을 힘들게 알아내는 척 표정 몇 번 찌푸려 주면 끝!

그렇게 카이가 다섯 병째 독의 분석을 마치던 순간이었다.

[레어 아이템의 감정에 성공하셨습니다.]

[안목이 약간 높아지는 기분이 듭니다.]

[감정 스킬이 중급 1레벨로 상승합니다.]

“……!”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올라간 감정 스킬의 숙련도!

카이가 돌연 멍한 표정을 내보이자 파사낙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냐?”

“아, 아뇨. 아무것도…….”

떠듬거리며 겨우 대답을 마친 카이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독을 분석하는데 감정 스킬의 숙련도가 오른다고?’

카이는 손에 쥐고 있던 독병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래, 이상할 것은 없다.

아무리 포이즌 마스터의 스킬 효과를 빌린다고 해도,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은 ‘무슨 효과를 지녔는지 모르는 독의 정체를 밝히는 일’.

한 마디로 아이템 감정이었으니까.

‘그리고 아이템 감정은 노말보다는 매직 아이템을, 매직보다는 레어 아이템을 감정할 때 더 숙련도가 잘 올라가지.’

그렇다면 파사낙스가 대륙을 뒤져서 힘들게 수집한 수백 종류의 독이라면?

카이의 두 눈으로 기대가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확실히 지금까지 감정한 것도 최소 매직 등급이었어.’

그런 독들이 앞으로도 수백 개나 있다.

아마 이만한 아이템들을 밖에서 감정하려고 했다면, 최소 1~2년은 사냥을 하거나,

엄청난 돈을 들여서 경매장을 싹 다 쓸어버리는 수밖에 없을 터!

‘이걸 공짜로, 아니, 오히려 보상을 받으면서 감정할 수 있다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

‘운이 좋으면 감정 스킬의 레벨이 상급까지 올라갈 수도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카이는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는 한 아이템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성환, 페트라.’

인어족들의 마을에 보관되어 있던, 전대 태양의 사제가 사용한 성물!

상급 감정 스킬이 필요해서 여태까지 정보 확인조차 하지 못한 아이템이었다.

‘잘하면 이번 기회에…….’

사람은 항상 목표가 확고히 정해졌을 때 일의 능률이 오르는 법!

파사낙스는 갑자기 일에 열중하기 시작한 카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예에…….”

“그럼 이제 나가봐라. 내어준 방의 위치 정도는 기억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뵙겠습니다.”

방을 나선 카이는 침침한 눈을 꼭 감고, 눈두덩이 주변을 손으로 문지르며 마사지했다.

열 두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조그마한 독병만 분류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피곤해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그의 눈은 어느 때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불과 하루만에 독을 200개나 감정했다.’

덕분에 콩나물처럼 쑥쑥자란 카이의 감정 스킬은 현재 중급 3레벨!

개중에 유니크 등급의 독병이 몇 개나 들어 있었기에 가능한 쾌거였다.

‘그리고 감정 스킬이 올라서 조금 더 세부적인 관찰도 가능해졌고.’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말라 비틀어진 아렉투의 뿌리]

등급 : 유니크

복용 시 매우 강력한 수면 상태에 빠집니다.

*뿌리를 잘게 빻아 성수와 9대 1 비율로 섞을 경우, 수면제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희귀도 : ★★★★★

독성 : ★★★★☆

바로 독의 희귀도와 독성에 대한 등급이 표시되는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다른 아이템들도 감정해봤지만, 독을 관찰할 때만 저렇게 나와.’

한마디로 저 세부적인 관찰 또한 포이즌 마스터의 능력이라는 뜻.

감정 스킬의 등급이 올라가면서, 포이즌 마스터의 본 능력을 더 이끌어냈다는 소리였다.

“후우.”

파사낙스가 내어준 조그마한 방에 들어온 카이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아직도 감정해야 할 독은 수백 개나 남아 있어. 오늘 같은 속도라면…….’

분명 감정 스킬이 상급에 닿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그런 카이의 예상이 마냥 틀린 것이 아니었다.

***

이후 며칠은 빛살처럼 흘러갔다.

그사이에 카이가 분석한 독의 갯수는 정확히 874개였다.

더불어 파사낙스가 지닌 독의 갯수도 874개였다.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마디로 파사낙스의 의뢰가 완전히 끝났다는 뜻이었다.

파사낙스는 독에 대한 분류가 아주 깔끔하게 끝나자 기분이 좋아 보이는 눈치였다.

‘으음.’

반면 카이의 인상은 생각보다 밝지 못했다.

지난 며칠 동안 감정 스킬의 숙련도는 계속해서 상승했다.

하지만 중급 9레벨의 문턱까지 올라간 스킬은 그 때부터 정말 더디게 올라갔다.

그런 상황에서 감정이 끝났으니 얼마나 허탈한 기분이 느껴지겠는가.

‘앞으로 조금만 더하면 성환을 감정할 수 있는데…….’

파사낙스가 안타까운 마음에 발만 동동구르는 카이에게 말을 건넸다.

“독들의 분류를 성공적으로 끝내줘서 고맙군. 그럼 이제 보상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인가.”

“……아, 보상이요?”

감정 스킬을 어떻게 상급까지 올릴지 고민하던 카이는 보상 얘기가 나오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러고보니, 타르달은 이 임무의 보상이 후하다고 했지.’

모든 일이 끝난 지금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작업량부터가 살인적이다.

874개나 되는 독을 하나씩 분석하는 일은 근성은 물론, 전문적인 지식도 요구했다.

‘한 마디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의뢰야. 그리고 무엇보다 적탑주 파사낙스의 개인 지명 의뢰지.’

의뢰에 대한 보상은 곧 그의 명예와도 직결된 문제다.

그러니 절대 가치가 낮은 보상을 내어놓지는 않으리라.

실제로 파사낙스가 내뱉은 말은 카이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딱히 원하는 것이라도 있나? 돈이라면 돈, 마법 아이템이라면 마법 아이템. 원하는 걸 주지.”

“……원하는 걸 아무거나 말해도 되는 겁니까?”

초롱초롱.

카이의 눈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최고급 뷔페에 온 사람처럼,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는 듯한 모양새!

‘무조건 마법 아이템을 골라야 돼.’

돈이 있어도 매물이 없어 못 구하는 게 마탑에서 제작한 마법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달라고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카이의 눈으로, 손가락에 낀 반지가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라이넬을 잡고 획득한 ‘타락한 성기사의 반지’.

휘하의 스켈레톤 나이트들을 모두 듀라한으로 승격시키는 서임 스킬이 내제된 유니크 등급의 반지다.

‘하지만 스켈레톤 나이트들을 구할 방법이 없어서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지.’

만약 파사낙스가 이 부분을 해결해 준다면?

그건 자신의 전투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켜 줄 것이다.

카이는 한껏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스켈레톤 나이트들을 소환할 수 있는 아이템도 있습니까?”

“……스켈레톤 나이트를 소환해? 그게 무슨 소리냐.”

“음, 직접 보여드리는 게 빠르겠네요.”

카이는 인벤토리에서 놀 언데드 치프의 스태프를 꺼내 그에게 보여줬다.

“이 스태프는 놀 스켈레톤을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이 새겨져 있습니다.”

“흐음. 스태프에 각인된 술식을 보니 그런 것 같군. 그래서, 이와 비슷한 장비를 원한다?”

“예. 파사낙스 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꿈틀.

카이의 미묘한 언사에 파사낙스의 인상이 찡그러졌다.

“건방진…… 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어느 시대에나, 가능하냐는 질문은 사람의 자존심을 긁는 법!

특히 마탑의 탑주인 파사낙스의 자존심은 남들보다 더더욱 높았다.

‘이 녀석은 내가 의뢰한 독의 분석을 모두 마쳤는데, 정작 놈이 원하는 보상을 지급해 주지 못한다?’

세상에 놀림거리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흐으으음.”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고민하던 파사낙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라.”

“예!”

카이가 밝은 안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파사낙스가 예고 없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텔레포트.”

동시에 뒤바뀌는 시야.

하지만 도착한 곳은 카이의 예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탑의 보물 창고가 아니야?’

파사낙스의 방처럼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다만, 벙찐 표정의 여인 하나가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만이 다를 뿐.

‘여자?’

흑발의 웨이브진 머리가 거의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정말 긴 머리카락을 소유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까만 머리카락과는 대조적으로, 창백한 피부 때문인지 그녀는 병약해 보였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왜 왔어?”

적탑주 파사낙스에게 거리낌 없이 반말을 하다니!

카이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에 나에게 빚진 거, 기억하나?”

“……7년 전에 죽음의 평야?”

“용케 기억하는군. 그거 맞다.”

“안 잊어버렸네.”

“줄 건 잊어버려도, 받을 건 안 잊어버리는 성격이다.”

“고약한 노인.”

“시끄럽다.”

그녀의 시무룩한 목소리를 가볍게 일축한 파사낙스가 두꺼운 손을 뻗어 카이를 땡겨 왔다.

“이 녀석이 스켈레톤 나이트를 부릴 수 있는 장비를 원한다. 가지고 있나?”

“……누구?”

“타르달의 부하. 독 전문가다.”

“호.”

카이에 대한 인상을 짤막하게 표현한 여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스켈레톤 나이트를 다룰 수 있는 물건……은 없는데.”

“쯧.”

파사낙스가 혀를 차며 구박하자, 그녀가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스, 스킬 북은 있어!”

“하지만 그건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만 사용 가능한 거 아닌가?”

“그렇지만…….”

“이 놈의 복장을 보면 모르겠나. 사제도 다룰 수 있는 스켈레톤 나이트가 필요하단 말이다.”

“으으으.”

안 그래도 창백한 그녀의 안색이 더욱 하얗게 질려갔다.

잠시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쳐다보던 카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파사낙스 님. 실례지만 저 분은 누구십니까?”

차마 ‘저 여성분이 누구길래 당신에게 반말을 지껄이고도 무사하죠?’라고 묻지는 못했다.

“음? 모르는 건가? 네놈, 나를 처음 봤을 때는 단번에 알아보지 않았나.”

“그거야…….”

걸어 다니는 자연재해는 미리 얼굴을 알아둬야 만났을 때 도망칠 수 있으니까.

대부분의 모험가들이 파사낙스의 얼굴을 알고 있는 이유였다.

물론 카이는 그 사실을 입에 담을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파사낙스 님은 워낙 유명인이잖습니까.”

“흠, 그렇지. 나는 유명한 편이지. 저 흑탑의 건방진 꼬맹이와는 다르게 말이지.”

‘흑탑의 건방진 꼬맹이?’

잠시 그 단어를 입 속에서 굴려보던 카이가 설마 싶은 심정을 담아 되물었다.

“혹시……?”

“아마 생각하는 바가 맞을 거다.”

“저분이 흑탑주 코로나 님이라고요?”

“그래.”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인 파사낙스가 말을 덧붙였다.

“스켈레톤 나이트를 원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낫겠지.”

“하지만 코로나님도 뾰족한 수가 없으신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라. 마법사라는 족속은 결국 쪼아대면 결과를 내놓게 마련이니까.”

“…….”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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