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29화 (129/441)

# 129

힐통령 129화

51장 충돌(4)

[속보! 검은 벌, 선전포고 당하다?]

[일반 유저들, 벌처 파티에게 심판을 내리다!]

[검은 벌의 도 넘은 갑질에 분노한 유저들!]

[엘프의 숲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 고레벨 유저들의 확고한 입장 발표.]

[10대 길드의 횡포, 이대로 괜찮은가?]

셀 수도 없이 많은 기사들은 자극적인 단어를 곁들인 채 정보의 바다에 흩뿌려졌다.

그리고 그 모든 기사에는 빠지지 않고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검은 벌.

쌓여 있던 둑이 터진 것처럼, 혹은 막혀 있던 강이 범람하는 것처럼.

검은 벌을 향해 쌓여 있던 일반 유저들의 분노는 이번 사건을 장작 삼아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검은 벌 길드의 마스터, 스팅은 스산한 눈빛을 뿌려대며 중얼거렸다.

그의 메시지 창으로 시시각각 랭커와 길드의 입장 발표에 대한 정보가 날아드는 중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양.

그것이야말로 평소 검은 벌을 곱게 보지 않던 이들이 많다는 증거였다.

‘아주 이 때다 싶어서 하이에나 떼처럼 몰려드는군.’

하지만 스팅은 짜증은 낼지언정,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안한 표정을 지은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차라리 잘되었어. 이번 기회에 적대적인 입장에 있는 녀석들을 싸그리 정리하면 돼.’

그들을 부나방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현재 메시지 창으로는 처리해야 할 인물 리스트가 실시간으로 쌓여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지.’

스팅은 아주 예전에 가입해놓은,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활동을 하지 않은 채팅방을 열었다.

[스팅 : 이번 일에 대해 전할 말이 있다.]

바로 10대 길드 마스터 채팅 방이다.

세간에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아주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다.

아무리 경쟁하는 사이라고 하지만, 때때로 손을 잡거나 협의할 일이 생기곤 한다.

이 채팅 방은 바로 그때를 위한 장소.

그렇기 때문에 이곳의 텍스트는 모두 복사, 캡쳐가 불가능했다.

스팅은 그런 곳에 채팅을 올린 것이다.

답은 즉각적으로 왔다.

[발칸 : 기사는 잘 봤다. 자업자득이더군.]

[캐서린 : 저 새끼는 언젠가 이럴 줄 알았어. 떡잎부터 아주 노랬거든. 아주 그냥 병신.]

[산드로 : 커뮤니티 메인에 얼굴 커다랗게 잘 박혀 있던데, 포토샵 기술이 많이 발전했더군.]

“이 새끼들이 누굴 놀리나…….”

꽈악.

스팅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이들을 쳐다보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그러진 미간을 주무르던 그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쟈오 린 : 하고 싶다는 말이 뭐지?]

[요시아츠 : 용건만 간단히. 바쁘다.]

이 채팅 방에 있는 이들은 누구보다 바쁜 몸들이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스팅은 말을 짧게 마쳤다.

[스팅 : 이번 일, 끼어들지 말도록. 우리 선에서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발칸 : 깨끗해서 좋군. 그렇다면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흙탕물이 튀길 시에는…….]

[골리앗 : 이쪽도 움직일 수밖에 없지. 같이 죽을 수는 없으니까.]

[미네르바 : ……저희도 굳이 끼어들지 않겠어요.]

‘됐다.’

스팅은 굳이 10대 길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도움을 줄 새끼들도 아니니까.’

그걸 유추해 내는 건 쉬웠다.

만약 10대 길드 중 어딘가가 지금의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자신은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게 나아.’

스팅은 자신이 있었다.

‘다른 10대 길드에서 끼어들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랭커나 언더 쪽의 길드가 도전장을 내밀어도,

검은 벌의 힘만으로 박살 낼 수 있다는 자신이.

***

“부어라, 마셔라!”

“으하하하하하! 십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네!”

“아까 벌처 새끼 똥 씹은 표정 봤냐? 그걸 스크린샷으로 찍어놨어야 하는데!”

“이제 우리도 베이스캠프에서 가장 가깝고 몬스터 많은 서쪽 구역에서 사냥할 수 있어.”

베이스캠프에 자리한 유저들은 한창 축배를 들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그들 모두가 영웅이었다.

물론 검은 벌의 응징과 보복이 이어질 것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에 후회란 없어보였다.

‘그래. 이게 옳아.’

한 대를 맞으면 한 대를 때려준다.

그 당연한 것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무시를 당하느냐, 당하지 않느냐로 이어진다.

나무 밑동에 기대 유저들을 쳐다보던 카이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시작은 만족스러워. 10점 만점에 8점 정도?’

이쪽의 인원이 조금 더 많고, 검은 벌의 핵심 간부를 짜를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엘프의 숲을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에 이는 불가능했다.

‘이곳의 주 사냥감인 트리바고는 마법사가 아닌 이상 생각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우니까.’

물리 공격에 상당한 면역이 있으며 체력 재생력도 높은 편이다.

화속성 공격 수단이 있다면 모를까, 아니라면 이곳에서 사냥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200레벨이 넘는 유저들이니, 효율을 먼저 찾는 게 당연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이 이곳을 끊임없이 방문하고, 파티를 꾸려 탐색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이 엘프의 숲이니까.’

엘프.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만 나오던 신비로운 종족.

그들의 마을을 제 손으로 찾고, 누구보다 먼저 발을 들여 보고 싶다는 순수한 탐험 욕구.

그것이 수많은 고레벨 유저들을 이 장소로 찾아오게 만들었다.

‘뭐, 별로 성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마을로 향하는 지도를 가진 자신과는 다르게, 저들은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한다.

그것도 트리바고처럼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를 상대해 가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내 말에 잘 따라줬어.’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단순히 레벨을 올리는 데만 목숨을 건 이들이 아니다.

자신들이 쫓는, 판타지적 로망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게이머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그들의 마음 속에 내포된 불만을 건드리자, 터져 버렸다.

카이는 이 상황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검은 벌 이미지는 원래 10대 길드 중에서도 밑바닥을 나돌고 있었어.’

그러던 차에 이번 사건이 터졌고, 검은 벌의 이미지는 몇 시간 만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니, 바닥도 아니지.”

사람들은 항상 밑바닥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 밑에 도사리고 있는 지하를 보기 전까지는.

‘이제 검은 벌은 끝났어. 이 악당, 쓰레기 이미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복구 못 해.’

카이는 커뮤니티를 둘러보며 확신했다.

수십 개의 언더 길드와 수백 명의 랭커들이 검은 벌의 횡포를 비난하는 데 앞장섰다.

당연한 말이지만 랭킹과는 연관이 없는 일반 유저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이걸 복구하면 그때는 엎드려서 절을 해주마.’

카이가 혼자서 피식거리며 웃자, 유저들이 다가와서 음식을 권했다.

“거, 좋은 날에 뭘 혼자 중얼거리고 있어?”

“당신 사제야. 여기 이쪽의 네크로맨서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너 지금 네크로맨서 유저 무시하냐?”

“아니. 널 무시한 건데.”

결국 카이는 그들의 손에 이끌려 음식을 마시고, 음료를 목구멍으로 퍼부으며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아무리 마시고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이 미드 온라인의 음료!

‘이런 걸 보면 요즘 회식을 미드 온라인에서 한다는 게 이해가 된다니까.’

돈도 싸게 먹히고, 현실에서보다 3배는 더 오래 마시고 먹을 수 있다.

심지어 다음 날 숙취까지 없음!

그것이 수많은 부장님들을 미드 온라인에 끌어들인 이유 중 하나였다.

“후우,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검은 벌, 이제 어떻게 나올까요?”

“뭘 어떻게 나와? 지들이 잘못한 건데. 아마 사과하지 않을까?”

“걔네가요? 10대 길드 중 하나인데? 에이, 설마…….”

“아니, 현실을 봐. 지금 언더 쪽 애들이랑 랭커들이 신나게 때리고 있잖아. 아무리 검은 벌이라지만 그 녀석들을 싹 다 무시하면서 게임할 수 있겠어? 못 하지.”

우연찮게 유저들의 대화를 듣던 카이가 고개를 돌렸다.

‘……검은 벌이 그들을 싸그리 무시하면서 게임할 수 있냐고?’

물론 없다.

아무리 검은 벌의 힘이 강력하고, 길드원들의 수준이 높다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건 이번 사건이 증명했다.

‘한마디로 검은 벌 입장에서는 제법 심각한 상황이라는 소리지.’

그들에게 있어서 이번 사건은 단순히 스쳐가는 돌풍이 아니다.

10대 길드로서의 위치와 입지를 뒤흔들 수 있는 지독한 태풍이다.

수많은 유저와 길드는 검은 벌을 10대 길드 중 하나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보였으니까.

‘검은 벌이 과연 이 태풍을 헤쳐 나올 수 있을까?’

빠르게 돌아간 카이의 머리는 순식간에 답을 도출해 냈다.

‘……방법은 딱 하나 있어.’

바로 진정한 악당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검은 벌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도 없지.’

이미 그들의 이미지는 쓰레기통에 골인 한 뒤, 쓰레기차에 실려 매립지에 쳐박힌 상태니까.

‘……바로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모조리 때려잡고, 공포로 군림하는 것.’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검은 벌은 10대 길드의 일좌로서 지금의 위치를 고수해 나갈 수 있다.

그들에게 반대한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에이, 그래도 설마…….”

카이가 애써 그 상황을 부정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런 미친! 검은 벌이 미쳤어!”

“랭커, 길드, 가리지 않고 필드에서 보는 족족 결투 신청 걸고 다닌대!”

“비록 PK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 무섭다는데? 수락할 때까지 쫓아다니면서 결투 신청을 걸고, 몬스터도 스틸한데.”

“지들이 뭐 숟가락 살인마야? 소름 돋네.”

“그것 때문에 지금 다들 소신 발표한 댓글이나 게시글 지운다고 난리 났어.”

“끄응, 그럼 일반 유저들이랑 개인으로 활동하는 랭커들은 싹 다 입을 다물겠군.”

“젠장, 질긴 녀석들! 다 끝난 상황에서 이런 수를 펼치다니…….”

아쉬움과 투덜거림, 그리고 불안함이 엿보이는 유저들의 얼굴.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던 카이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내가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내가 해야겠지.”

그는 곧장 연락처 하나를 뒤지기 시작했다.

***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가씨, 제발 대답 좀!”

보이드는 집무실의 소파에 앉은 채, 집무실을 돌아다니는 설은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 질문만 벌써 10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팔짱을 낀 채, 한 손으로는 턱을 괴며 고민을 이어갔다.

‘어떻게 하지?’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은연중에 한국에서 제일 강하고, 거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천화 길드.

지난번에는 베이거스 레이드까지 성공시키며 세계무대에 그 이름 두 글자를 확실히 알렸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인물이 없다.

그것은 설은영이 항상 인재에 목말라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베이거스 레이드 때도 우리끼리 단독으로 진행했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컸어.’

그때는 유하린의 도움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천화가 레이드를 성공시킨게 아니라, 유하린이 레이드를 성공시킨 게 아니냐며 놀릴 정도.

‘믿을 만한 에이스가 없어.’

설은영은 길드 자체를 대표하는 에이스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꼈다.

보통 10대 길드 에이스는 마스터들이다.

하지만 천화의 마스터인 설은영은 철저한 지휘관 타입.

‘내가 에이스가 될 수는 없어.’

그녀의 시선이 슬쩍 보이드에게 향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숨.

“뭐, 뭐예요. 지금 아가씨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 한 거 아니에요?”

“시끄러워. 쓸모없는 녀석.”

가볍게 보이드의 불만을 잠재운 그녀는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지금 상황에서 검은 벌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그들을 힘으로 꺾을 수만 있다면…….’

10대 길드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니, 거의 확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천화 길드는 언더 중에서도 길드 랭킹이 최상위권이었으니까.

“후우, 어쩔 수 없어. 아직은 준비가 많이 부족해. 우리도 이번에는 빠진…….”

설은영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가던 찰나, 그녀의 메시지 창이 울렸다.

[커뮤니티 쪽지 보고 연락드립니다.]

언노운으로부터 도착한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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