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35화 (135/441)

# 135

힐통령 135화

53장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1)

푸른색의 연기는 순식간에 퍼져나가며 공터를 가득 메웠다.

파사사사삭.

연기에 맞닿은 나무와 열매가 순식간에 썩어서 뒤틀렸고,

검은색으로 죽어버린 땅과 잡초들은 이 땅이 죽음의 대지가 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커어어억!”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스팅은 라이트닝 스피어를 날리기는커녕, 제 목을 부여잡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마치 코와 입으로 밀가루를 들이부은 듯한 기분!

“커헉, 커허억!”

[푸른 역병에 중독되었습니다.]

[생명력이 초당 1,500씩 감소합니다.]

[스킬의 효과가 25% 감소합니다.]

[움직임이 20% 느려집니다.]

카이가 시전한 푸른 역병은 무려 100개의 기운을 모아 터트린 회심의 한 방!

‘기운을 얻기 위해 뭣 빠지게 사냥했다고.’

몬스터 100마리의 기운을 획득한 뒤, 처음으로 푸른 역병을 사용했던 순간.

카이는 검은 벌을 철저하게 짓밟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제 저 녀석들은 무빙 캐스팅을 하기도 힘들어. 심지어 주문의 효과도 턱없이 약해지지.’

게다가 사제도 없는 녀석들은, 비싼 해독약이라도 들고 다니지 않는 이상 상태이상을 해제할 수단조차 없다.

‘그건 오크 토벌대에서 클라드에게 페르메의 독을 사용하면서 확인했던 사항이야.’

클라드와 검은 벌 정예는 레벨 차이만 날 뿐, 마법사라는 점에서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커어억…….”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인벤토리를 연 스팅은 약병 하나를 제 입가로 가져갔다.

물론 카이가 그것을 지켜볼 리 만무!

“어딜!”

파악!

순식간에 약병을 걷어찬 카이는 고통스러워하는 스팅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네, 네놈…… 감히…….”

“그래그래, 그렇게 잘난 척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테니 열심히 즐기라고.”

카이는 망설임 없이 스팅의 복부에 검을 꽂아 넣었다.

그런 뒤, 녀석의 귀 옆으로 얼굴을 바짝 갖다 대며 속삭였다.

“칼날 쇄도.”

위이이이이잉!

“크아아아악!”

자신의 몸속에서 뭔가가 회전하는 듯한 이질적인 기분!

스팅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에 비명을 내질렀다.

물리적으로 아프지는 않지만,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이, 이 빚은 언젠가…….”

“갚을 일 없을 거야. 내가 게임을 접지 않는 이상은.”

차갑게 선언한 카이는 생명력이 바닥난 스팅을 그대로 놓아버렸다.

그러자 하얀색 폴리곤들이 바닥을 두드렸다.

“오, 좋은 거 두고 갔네.”

그가 즐겨 사용하던 스태프를 챙긴 카이는 피식 웃으며 등을 돌렸다.

자신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마법사들과 블리자드, 미믹이 시야에 들어왔다.

카이는 자신의 소환수들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정리해.”

***

“커허어억……!”

미믹은 검을 휘둘러 마지막 남은 마법사를 처치했다.

검은 벌의 패배!

아나운서가 9시 뉴스 데스크에서 보도해도 믿기 힘든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후우…… 드디어 끝났네.”

불과 한 시간 전만해도 200명의 유저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 숲의 공터.

그곳에는 오직 세 명의 인영만이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수고했어. 블리자드, 미믹.”

펫들의 공을 치하한 카이는 그들을 역소환했다.

충분히 고생한 녀석들을 쉬게 해줄 요량이었다.

‘아이템들의 수거도 끝났고…… 짭짤한데?’

80여명의 마법사들이 드랍한 장비는 무려 28개!

개중에 레어 아이템만 무려 24개였고, 스팅은 무려 유니크 등급의 스태프를 뱉어냈다.

“이것들은 나중에 천천히 경매장에 올려서 팔자고.”

지금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카이는 유니크 스태프를 높이 들어 올린 뒤, 손으로 V자를 그리며 스크린샷을 찍었다.

“후후, 영원히 고통받는 스팅 짤을 한 번 만들어 볼까.”

그 사진은 곧장 언노운의 이름으로 커뮤니티에 게재되었다.

언노운의 계정은 커뮤니티에서 누구보다 유명했기에 입질은 금방 왔다.

-이거 뭐임?

-어라? 나 스태프 어디서 본 적 있는데…….

-이거 거짓된 망령의 스태프 아님?

└그건 스팅이 쓰고 있는 유니크 스태프잖아?

└에이, 그걸 왜 언노운이 들고 있…… 잠깐, 설마?

-이거 혹시?

유저들은 잠시 언노운의 사진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일 뿐.

승리의 V자를 드러낸 그의 손가락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어, 언노운이 해냈다!

-미쳤다! 진짜로 천화가 검은 벌을 제꼈어!

-저 스태프가 언노운 손에 있다는 건…… 스팅이 최소 한 번은 죽었다는 뜻이잖아?!

-미쳤어, 진짜 제대로 미쳤어! 이런 놈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그렇지 않아도 커뮤니티의 유저들은 떠들기를 좋아한다.

심지어 오늘의 장작은 10대 길드의 패배, 그리고 몰락!

카이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유저들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는 법이지.”

그것이 비록 벌이라 할지라도.

인터넷 창을 끈 카이는 주변을 둘러봤다.

“끄응.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안 되나?”

푸른 역병의 여파 때문인지, 공터의 나무와 식물, 열매는 모두 죽어버린 상태였다.

숲의 파수꾼을 자청하는 엘프들이 본다면 절대로 좋아할 수 없는 광경!

카이는 불안한 마음으로 땅에다가 손을 가져다댔다.

“햇살의 따스함.”

우우우웅!

스킬이 시전되고 밝은 빛이 땅에 닿자, 놀랍게도 죽어있던 땅에서 잡초가 피어났다.

동시에 카이의 안색도 밝아졌다.

‘아! 살릴 수 있겠다.’

엘프의 마을에 방문하려는 카이로서는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 없는 상황!

카이는 피곤한 몸을 쉬게 해주고 싶었지만, 일일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죽은 땅을 되살렸다.

‘푸른 역병 스킬. 강력하지만 함부로 쓰지는 못하겠어.’

특히 도시 같은 곳에서는 절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 같다.

도시 전체가 죽음의 땅이 되어버리는 순간, 지명 수배가 붙을 테니까.

“후우, 끝났다.”

말끔하게 뒷처리를 끝낸 카이의 메시지 창이 불난 것처럼 바빠지기 시작했다.

“거, 천화 쪽 여왕님도 어지간히 성격이 급하구만.”

카이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설은영은 충격과 혼란, 기쁨, 그리고 또 혼란.

아주아주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싸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겼죠.”

안타깝게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간단한 대답!

“……하아.”

옅은 한숨을 내쉰 설은영이 입을 열었다.

“……그래요. 거기까지 묻는 건 예의가 아니겠죠.”

‘똑똑하네. 물어야 할 것과 묻지 말아야 할 것의 차이를 잘 알고 있어.’

카이는 설은영의 깔끔한 대처가 마음에 들었다.

플레이어의 스킬이나 아이템, 전투 패턴 등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다.

그것은 랭킹이 올라감에 따라 더욱 비싼 정보가 된다.

‘실제로 나도 검은 벌의 레이드 영상에서 블레이드 템페스트를 보지 못했다면…….’

아까와 같은 작전을 짤 수도 없었을 터!

“받아요.”

설은영이 묵직한 골드 주머니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흠. 언뜻 보기에도 약속한 것보다 많아 보입니다만?”

“더 넣었어요. 제 생각보다 훨씬, 훨씬 더 잘해주셨으니까. 감사의 표시예요.”

“굳이 준다는데 거절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카이가 말끝을 흐리자, 찰떡같이 알아먹은 설은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 돈을 빌미로 물고 늘어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제 이름을 걸고 약속하죠. 이 돈은 오롯이 언노운 당신이 검은 벌을 쓰러트렸기에 드리는 돈이에요.”

“그렇다면 감사히 받죠.”

찝찝한 기분이 사라진 카이는 낮게 웃으며 돈 주머니를 제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런데 성공 보수는 천화에서 10대 길드가 되었을 때 주는 거 아니었습니까?”

“무조건 되어야죠. 이 정도까지 해주셨는데 못 올라선다면, 그건 제 능력의 부족이에요.”

설은영이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 미소에서 당당한 자신감을 엿본 카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만수무강하시고, 사업…… 아니, 길드도 번창하시길.”

“마음이 맞으면 같이 또 일해요. 천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까.”

“……이번에도 길드 가입하라고 붙잡을 줄 알았는데, 안 붙잡는군요.”

“잡으면 잡혀줄 거예요? 아니잖아요.”

‘날 너무 빨리 파악하는데?’

투구 아래에서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 카이는 곧장 천화의 길드 아지트를 나섰다.

“어디 보자…… 어이쿠, 뭘 이렇게 많이 넣었대?”

도시의 뒷골목에서 골드 주머니를 확인하던 카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들어있는 액수는 무려 2,000골드!

한화로 2억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원래는 천 골드 받기로 했었는데…… 2배를 그냥 줘버리네. 역시 재벌!’

돈은 귀신마저 부리는 법!

카이는 싱글벙글해진 표정으로 인벤토리를 닫았다.

‘간단하게 엘프의 마을을 찾아가려고 했던 일이, 생각보다 길어졌어.’

하지만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서 다행이다.

‘검은 벌 놈들 접속 불가 페널티 끝나면 다시 접속하겠지만…….’

절대자는 건 패배를 용납할 수 없는 자리이다.

이미 언노운에게 짓밟힌 검은 벌은 더 이상 패자로 군림할 수 없을 터.

‘뭐, 그래도 그 힘이 어디가지는 않겠지. 당분간 몸 좀 사려야겠어.’

카이는 그렇게 다짐하며 접속을 종료했다.

***

[찬성 9표, 반대 0표로 스팅님의 추방이 결정되었습니다.]

[발칸 :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스팅 : …….]

[스팅 님이 채팅방을 나가셨습니다.]

스팅은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채팅방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 무거웠던 공기가 약간이나마 느슨해졌다.

[발칸 : 설마 스팅이 당할 줄이야.]

[골리앗 : 패배한 개가 더 이상 이 방에 붙어있을 자격은 없지.]

[쟈오 린 : 기사를 보니 언노운에게 당했다더군.]

[산드로 :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난놈은 난놈이야. 설마 검은 벌을 무너트릴 줄이야.]

[캐서린 : 후후, 하지만 그래봤자 검은 벌은 우리들 중 최약체…….]

[미네르바 : ……가 아니어서 문제죠. 어떡하죠?]

[요시아츠 : …….]

[캐서린 : 어떡하긴 뭘 어떡해, 어차피 각자 갈 길 가던거 아니었어? 옆에서 기둥이 무너지든, 산이 무너지든, 신경 쓰지 말라고.]

[골리앗 : 아무튼 이것으로 한 가지는 확실해졌군. 오늘부로 천화와 언노운의 이름값은…….]

[래너드 : 10대 길드에 필적할 만큼 높아졌다.]

[발칸 :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군.]

길드 마스터들의 눈에 이제 언노운은 단순한 루키, 혜성 따위가 아니었다.

‘언제든지, 기회만 되면 내 목줄을 물어뜯을…….’

‘광포한 사냥꾼.’

‘하지만 그런 만큼, 그를 끌어들이게 된다면…….’

‘다른 10대 길드 녀석들과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모든 힘 있는 자들의 시선이 언노운의 다음 행보에 집중되었다.

***

한숨 푹 잔 카이는 기계처럼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한 뒤, 시리얼을 먹고 게임에 접속했다.

‘……돈도 왕창 벌었는데, 이번 퀘스트 끝나면 어디 전망 좋은 곳에 가서 고기나 썰어야겠어.’

게임 폐인…… 아니, 프로게이머의 단순한 생활이란!

우두둑.

몸을 스트레칭해서 개운한 기분을 느낀 카이는 지체 없이 엘프의 숲으로 향했다.

“이곳이 언노운이 검은 벌을 쓸어버린 장소!”

“언노운 닭꼬치 팝니다~ 살살 녹는 닭 위에 머스터드 소스와 바베큐 소스, 케찹까지 있어요~”

“자기야, 나 잘 나와?”

“응, 하나, 둘, 셋, 치즈!”

“…….”

불과 하루 만에 관광의 명소가 되어버린 엘프의 숲!

이전까지는 엘프의 마을을 찾는 사람들만 찾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게 전부 내 소문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라고?’

장사꾼들은 자신이 파는 물건 앞에 ‘언노운’이라는 단어만 붙인 채 팔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냥 닭꼬치였고, 그냥 팝콘이었을 뿐!

그러나 그 인기는 대단했다.

“언노운 닭꼬치 주세요!”

“언노운 팝콘 하나에 얼마예요?”

‘마, 말도 안 돼.’

카이는 북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행동 하나,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신경써야 함을 깨달았다.

자신의 영향력은 이제 일개 유저의 그것을 벗어났음이 실감되었으니까.

‘허, 이것이 유명인의 고통인가……!’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고통!

카이는 눈물을 머금은 채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아야나의 어머니가 주었던 지도를 따라, 곧장 엘프들의 마을에 들어갈 심산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지도를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순간, 갑자기 화면이 붉게 물들었다.

[포이즌 애로우에 의해 기습을 받았습니다.]

[포이즌 마스터 스킬이 발동됩니다.]

[살로네타의 독을 완벽하게 저항하였습니다.]

“……?”

카이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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