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힐통령 136화
54장 엘프의 마을 (1)
“……?”
이렇게 인적이 드문 숲 속에서 기습이라니?
게다가 지금은 바다의 폭군 세트도 아닌 사제복을 입고 있는 상태.
그가 언노운이라는 것은 사실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카이가 벙찐 표정으로 가만히 있자 나뭇가지 위에 서 있던 누군가가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후후,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 역병의 힘을 다루는 인간이여.”
잘난 듯이 말하는 남성은 피부가 새카맸으며, 귀는 뾰족했다.
‘엘프……? 아니, 다크엘프인가!’
몬스터 도감에도 수록되는 그들은, 아인종 NPC가 아닌 몬스터로 분류가 되었다.
‘다크엘프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이들이라 몬스터로 분류한다고 도서관의 책에 쓰여 있었어.’
카이의 눈동자가 커지자, 남자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아,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살로네타의 독에 중독되었으니 멋대로 움직이려 할수록 오히려 독이 퍼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
“신성 사슬.”
촤르르르륵!
문답무용.
카이는 우선 그를 사슬로 칭칭 묶은 후 땅에 눕혔다.
자신의 머리가 땅에 처박히고 나서야 터져 나오는 비명.
“마, 말도 안 된다! 분명 화살촉에 살로네타의 독을 묻혔거늘!”
그 물음을 가볍게 무시한 카이가 물었다.
“갑자기 왜 나를 공격한 거지?”
“크윽, 그냥 날 죽여라!”
‘오호, 이유가 있긴 있나 보네?’
카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보통 몬스터가 유저를 공격하는데 이유는 없다.
그냥 보이니까 선빵을 치는 것뿐!
하지만 눈앞의 다크엘프는 달랐다.
등장하면서부터 푸른 역병을 운운했으니까.
‘설마 다크엘프들이 뮬딘 교와 관련이 있는 건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캐내야 한다.
카이가 신성 사슬을 강하게 잡아당기자 줄이 팽팽해지며 남성의 몸을 조였다.
“크으으윽!”
“뮬딘 교에서 보냈나?”
“……뮬딘 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나는 그런 곳을 모른다.”
다크엘프는 강하게 부정했다.
‘이놈 봐라?’
카이는 녀석의 등을 밟은 다리에 힘을 주면서 주변을 스윽 둘러봤다.
‘다행스럽게도 인적은 드물어 보여.’
깊은 숲 속의 어둡고 으슥한 장소!
딱, 딱!
카이는 손가락을 튕겨 블리자드와 미믹을 소환했다.
소환된 블리자드와 스켈레톤 나이트 미믹을 쳐다본 다크엘프는 코웃음을 쳤다.
“큭, 고문인가? 난 부족의 자랑스러운 정찰병. 인간의 고문 따위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 녀석은 뭐, 말하는 것마다 나에게 비밀이 있다고 광고해 주네.’
카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굳건한 그의 표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글쎄, 이게 고문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얘들아, 공격해. 숨은 붙여두고.”
말을 마친 카이는 근처의 평평한 나무둥치에 앉더니 커뮤니티 창을 구경하며 놀기 시작했다.
퍼억, 퍼억.
“크윽, 커억!”
210레벨이 넘는 다크엘프 정찰병은 맷집이 대단했다.
블리자드와 미믹이 진심을 담아서 패는 데도 무려 20분이나 버틸 정도!
딱딱!
카이는 미믹이 자신의 소매를 잡고 흔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났어?”
끄덕끄덕.
다크엘프는 얼굴이 퉁퉁 불어있었지만, 카이를 올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크큭, 아무것도 묻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건 확실히 예상 밖이었지만…… 결국 난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상황이 상대방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에서 흘러나오는 자부심!
하지만 카이는 빤히 다크엘프를 쳐다보더니 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햇살의 따스함.”
위이이잉.
신성력이 한 차례 빛나더니 다크엘프의 몸에 녹아들었다.
“아, 다행이다.”
카이는 새 살이 솔솔 돋아나는 다크엘프를 쳐다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뮬딘 교와 연관이 있다고 해서 신성력에 피해를 받으면 어쩌나했는데…… 이게 치료가 되네.’
[다크엘프 정찰병을 회복시키셨습니다.]
[다크엘프 정찰병을 회복시키셨습니다.]
…….
“크하하하! 한심한 녀석.”
순식간에 몸의 활력이 돌아오자 다크엘프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와 동시에 짓는 표정은…… 마치 네놈의 생각 정도는 모두 알고 있다는 얼굴!
“이런다고 내가 네놈에게 고마움을 느낄 거라 생각했나? 천만에! 병 주고 약 주는 대상에게 고마움을 느낄 리가 없지.”
“고마움? 아니아니,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친 카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가며 말했다.
“얘들아, 뭐해? 공격해. 숨만 붙여두는 건 알지?”
“…….”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는 것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까!
다크엘프는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라는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인간을 불렀다.
“인간, 인간!”
“…….”
하지만 이미 카이는 음악을 크게 키워놓고 커뮤니티를 구경 중인 상태!
입이 달작거리는 다크엘프에게 블리자드와 미믹이 천천히 다가갔다.
***
“아, 그렇게 된 거구나.”
“그허스빈다(그렇습니다).”
“진작 이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아.”
“…….”
나무테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카이의 앞에는,
눈덩이가 퉁퉁 부은 다크엘프 하나가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지난 2시간 동안 고문 아닌 고문을 한 결과!
‘비록 NPC라지만 한 생명의 마음이 꺾이는 과정을 보는 건 참으로 마음이 아프구나.’
그래도 결과부터 말하자면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으니 매우 이득!
카이는 그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뮬딘 교의 잔당들이 다크엘프와 접선을 시도했을 줄이야.’
녀석의 말에 따르면 엘프의 숲에는 두 개의 엘프 마을이 있다.
하나는 카이가 찾아가려던 일반적인 엘프의 마을.
다른 하나는 눈앞에서 질질 짜고 있는 다크엘프의 마을.
‘다크엘프는 몬스터로 인식되는 녀석들이니…… 뮬딘 교와 손을 잡아도 이상할 건 없지.’
뮬딘 교는 확실히 지난 전쟁의 패배에서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아인종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것.
‘이걸로 벌써 두 번째인가.’
첫 번째는 인어족들이었다.
뮬딘 교는 나가족과 결탁하여 인어들의 왕국을 멸망시키려 했다.
아인종과 인간들이 힘을 합치면 얼마나 두려운 군대가 탄생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
비록 그 시도는 카이의 불사의 무적, 마법의 소라고둥 콤보에 막혀 산산조각이 나버렸지만.
“흠.”
역시 이렇게 중대한 사항은 타르달에게 보고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카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한 줄기의 파공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쇄애애액!
‘화살!?’
카이의 반응은 빨랐지만, 소리를 인지한 순간에 화살은 이미 심장을 관통해 있었다.
“커, 커어억…….”
자신이 아닌 다크엘프의 심장에.
“어이, 이봐!”
카이가 황급히 힐 스킬을 사용하려 했지만, 이미 폴리곤이 되어버린 상대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크허헝!”
딱딱딱!
동시에 얌전하던 블리자드와 미믹이 돌연 시끄럽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카이가 그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들은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블리자드의 이 반응은…… 마치 아오사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해.’
물론 그 때는 공포에 얼어붙었다면, 지금은 다가올 전투에 호승심을 느낀다는 것이 다를 뿐.
‘이 녀석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확실히 주변에 누군가가 있어.’
카이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귀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귓가로 들어오는 수많은 소리들 중,
카이는 자신에게 필요 없는 소리들을 하나씩 지워 나갔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휘이이…… 후우웅!
잘 이동하던 바람이 무언가에 부딪혀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소리!
‘찾았다!’
눈을 번쩍 뜬 카이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리며 신성 사슬을 뿌렸다.
촤르르륵!
“꺄아아악!”
쿵!
황급히 달려간 카이는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확인했다.
“으으으…….”
쫑긋 세워진 두 귀가 고통 때문인지 파르르 떨렸고, 큼직한 눈망울엔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성형이 필요 없을 정도로 높게 세워진 콧날은 분해서인지 빨갛게 변한 상태!
카이는 시선을 내려 엘프 여성의 피부색을 확인했다.
‘……하얀색.’
다크엘프가 아닌, 자신이 찾던 일반적인 엘프라는 뜻!
카이는 머쓱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건넸다.
“저기, 미안합니다. 적인 줄 알고…….”
피잉! 콱!
다시 한 번 날아드는 화살.
정확히 카이의 귓볼을 스친 화살은 땅에 박혔다.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
카이는 무기를 빼들며 표효하는 미믹과 블리자드를 진정시키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무들이 무성한 숲.
그 나무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 위로는 수십의 엘프가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채 서 있었다.
‘대체 언제 온 거야?’
과연 숲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이들!
유니크 등급의 위기감지 스킬이 있는 미믹조차 눈앞의 여자 엘프를 눈치채는 것이 고작.
다른 엘프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영체화를 사용하면 화살이야 무시할 수 있긴 한데…….’
잠시 고민하던 카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저들과 싸우러 온 것은 아니니까.’
두 손을 들어 전투 의사가 없음을 알리자 발치에 쓰러져있던 엘프가 순식간에 카이를 넘어트렸다.
현역 주짓수 선수가 보았다면 엄지를 척 올렸을 정도의 깔끔한 투 레그 태클!
그녀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검둥이 녀석의 동료.”
“아, 아니 갑자기 그런 피부색을 차별하는 수위 높은 발언은 조금…….”
“시끄러워! 당장 저것들 무기 내려놓으라고 해!”
‘목청도 좋아라.’
카이는 손가락을 튕겨 펫들을 역소환했다.
“이제 됐죠?”
“소환사였나 보지? 입 닫아.”
그녀는 카이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더니 그의 두 손을 등 뒤로 묶었다.
이어서 무언가로 손목을 강하게 묶은 그녀는 그제야 카이의 뒷덜미를 잡고 그의 상체를 일으켰다.
“수고했다.”
나뭇가지 위에 서 있던 엘프들이 바닥으로 내려오며 카이를 포위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소음은 제로!
죄인처럼 무릎 꿇려진 카이는 자신을 빙 둘러싼 엘프들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이렇게 선남선녀 비율이 높은 종족이 있을 수도 있다니!
그들은 하나같이 배우와 모델 뺨을 두세 대는 때릴 듯한 얼굴과 몸매를 자랑했다.
스윽.
뺨에 세 줄의 노란색 막대기를 그려놓은 엘프가 카이의 앞으로 다가왔다.
“인간, 다크엘프 부족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목격했다. 무슨 대화를 나눴지?”
“…….”
목격을 했다는 사람이 저런 소리를 하다니!
누가 봐도 고문자와 피고문자의 모습이었거늘!
카이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엘프 분들께서는 대상이 하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옳다.”
“그렇다면 제가 하는 말도 판별하실 수 있겠지요. 우선, 전 다크엘프들의 동료가 아닙니다.”
올곧은 눈빛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말하는 카이.
잠시 그의 눈을 쳐다보던 엘프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당황했다.
“뭐, 뭐지?”
“이 인간. 진실력이 높아!”
“진실력이 이렇게 높은 경우는 틀림없이 사실일 경우뿐인데…….”
“그럼 우리가 잘못 짚었다는 건가?”
“하지만 저 인간은 ‘그’ 푸른 역병의 힘을 사용했다고.”
“그런데 그 뒤에 땅을 다시 정화시켰잖아.”
“그래서 정체를 확인하러 온 거잖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엘프들. 카이에게 질문을 던진 엘프조차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넌 대체 뭐지?”
씨익.
미소를 지어보인 카이가 당당하게 말했다.
“태양의 사제, 사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