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힐통령 138화
54장 엘프의 마을 (3)
“그럼 엘프족을 대표해서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부디 세계수 루테리아 님을 치료해 주세요.”
“제 전문입니다. 맡겨주십시오.”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인 카이가 고개를 들었다.
굳이 멀리 보지 않더라도 한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세계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습니다. 바로 가보지요.”
카이는 엘프 여왕의 안내를 따라 루테리아의 내부로 들어가는 길로 이동했다.
“카이님. 저희는 여기까지가 한계랍니다. 더 가까이 가면 독연에 정신을 잃어버려서…….”
“예. 충분합니다.”
엘프들을 남겨둔 카이는 천천히 루테리아에게 다가갔다.
마을을 처음 들어왔을 때도 느낀 거지만, 세계수의 위용은 가까이서 보니 더욱 대단했다.
‘이게 나무라니…… 웬만한 빌딩만 하잖아.’
그 어떤 문명도 개입되지 않은 자연이 만들어낸 빌딩!
동시에 카이는 엘프 여왕이 왜 그리 경고를 하였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오사 때와 비슷해.’
루테리아의 주변에는 붉은색 안개가 낮게 깔려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그 독은 카이가 무시할만한 수준도 아니었다.
띠링!
[포이즌 마스터 스킬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포이즌 마스터 스킬로 인해 ‘아카샤의 심판’에 크게 저항합니다.]
[초당 2,000의 피해를 받습니다.]
[체력, 마나, 신성력이 재생되는 속도가 매우 느려집니다.]
“포이즌 마스터 스킬로 저항을 한 게 이 정도라고?!”
깜짝 놀란 카이는 황급히 햇살의 따스함 스킬을 사용했다.
[생명력이 4,000만큼 회복됩니다.]
[아카샤의 심판을 정화하였습니다.]
[상태이상 ‘중독’이 해제되었습니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카이는 짙은 붉은색의 안개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독 분석.”
[포이즌 마스터 스킬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분석 중…….]
[독에 대한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아카샤의 심판]
등급 : 레전더리
뮬딘 교의 암흑 사제들이 지난 천 년간 연구를 마친 끝에 완성시킨 희대의 극독입니다.
공기 중에 살포된 독을 소량 호흡한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중독된 상태에서는 모든 종류의 재생 속도가 매우 느려집니다.
희귀도 : ★★★★★★★
독성 : ★★★★★★★
“헉!”
독을 분석한 순간, 카이는 숨이라도 멎은 듯한 소리를 내었다.
“카이님, 괜찮으신 겁니까? 무리라면 어서 이쪽으로!”
멀찍이 떨어진 엘프 여왕이 그 모습을 보고 걱정을 하자, 카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독에 중독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
눈앞에 떠오른 인터페이스 창을 쳐다보던 카이의 말끝이 흐려졌다.
‘독성과 희귀도는 별 다섯 개가 아니었어? 아니, 그것보다 레전더리 등급의 독이라니?’
뮬딘 교가 천 년 동안 연구를 한 끝에 완성시킨 극독!
카이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한편 눈을 빛냈다.
‘가만, 레어 등급과 유니크 등급의 독을 감정했을 때도 분명…….’
감정 스킬의 숙련도가 올랐었다.
그렇다면 레전더리 등급의 독을 분석한 지금은?
의문은 빠르게 해소되었다.
띠링!
[전설적인 독을 분석하였습니다!]
[감정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감정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감정 스킬이 고급 1레벨이 되었습니다.]
흐뭇.
카이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급 9레벨에서 절대 올라가지 않던 숙련도 문제가 이렇게 단번에 해결될 줄이야.’
이를 두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동서 좋고 처남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걸로 성물도 감정할 수 있게 되었어. 하지만 지금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카이는 거대한 세계수, 루테리아의 내부로 향하는 문을 그대로 통과했다.
***
루테리아의 내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좁디좁은 복도 하나만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길을 찾는 것도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네.”
카이의 눈매가 좁혀졌다.
‘최초의 방문자 칭호가 왜 뜨질 않지?’
인어들의 마을인 아쿠아베라를 방문했을때는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엘프의 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칭호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가설도 만들어봤는데…….’
엘프의 마을 이름이 루테리아라는 점.
그리고 세계수의 이름도 루테리아라는 것을 미루어보아, 세계수의 내부로 들어오면 칭호가 생겨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안 생긴다라…… 혹시 나 말고 다른 유저가 방문한 적이 있나?’
이 부분은 나가면 반드시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카이는 천천히 복도를 걸어 나갔다.
“……이게 뭐지? 제단이랑 화분?”
복도의 끝에 위치해있는 건 화려한 제단과 그 앞에 놓여져 있는 자그마한 화분이었다.
그 화분 속에는 신기한 식물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만드라고라? 아니, 인삼인가? 뭐야 이거.”
마치 사람처럼 팔 다리가 달려 있는 작고 귀여운 나무!
카이는 부드럽고 질 좋은 모래를 침대 삼아 누워있는 녀석을 빤히 쳐다봤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파 보여? 좀 있으면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린 카이는 곧장 감정 스킬을 사용했다.
“감정.”
띠링!
[세계수 루테리아]
등급 : 레전더리
창조신이 숲을 관리하라는 명과 함께 만들어냈다는 숲의 수호신.
현재는 치명적인 독에 중독되어 자아를 봉인하고 휴식에 전념하는 중이다.
*전설적인 창조물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마스터 레벨의 감정 스킬이 필요합니다.
“…….”
카이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루테리아라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메시지 창이 들려주었다.
띠링!
[스페셜 칭호, ‘루테리아와 만난 자‘를 획득했습니다.]
[루테리아와 만난 자]
등급 : 스페셜
내용 : 최초로 세계수 루테리아와 만난 이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탯 +10, 자연친화력 +50(이 효과는 칭호를 착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세계수 맞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카이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내 가설이 틀린 건 아니었어.’
루테리아야말로 엘프들의 삶, 그 자체라는 것!
“자연 친화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올라서 나쁠 건 없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카이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 녀석이 루테리아라는 건…….’
지금 자신이 들어와 있는 이 거대한 나무는?
족히 수천 년은 되어 보이는 듯한, 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준 이 나무는?!
그냥 커다란 나무에 불과하다는 뜻!
카이는 다시 한 번 인삼…… 아니, 세계수 루테리아를 내려다봤다.
“…….”
나무인데도 불구하고 눈과 입이 달려 있는 이상한 녀석.
물론 그 모습이 괴물같고 무섭다기보다는 귀엽고 깜찍했다.
“세계수 루테리아가 이렇게 작았다니…… 아! 그렇다면 혹시 이 장소는?”
카이는 엘라니아가 해줬던 말을 상기했다.
‘분명히 아이를 원할 때 기도를 올린다고 했지.’
설마 이 장소가 기도를 올리는 제단이었던 건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카이는 사제복의 소매를 걷어붙였다.
“뭐, 잘 됐어. 이 큰 나무를 언제 다 정화할지 고민했는데…….”
루테리아가 이렇게 조그마한 나무라면 오히려 다행!
카이의 두 손이 즉시 밝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햇살의 따스함!”
우우우웅.
태양교의 신성력이 루테리아의 몸을 감싸 안았다.
보기만해도 광합성이 잘될 것만 같은 모습!
효과는 금새 나타났다.
[아카샤의 심판이 정화되었습니다. 1%…….]
[아카샤의 심판이 정화되었습니다. 2%…….]
[아카샤의 심판이 정화되었습니다. 3%…….]
…….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독을 모두 정화할 때까지 이루어진 힐링 샤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카이는 자신이 원하던 문구를 볼 수 있었다.
[아카샤의 심판이 정화되었습니다. 100%…….]
[아카샤의 심판이 모두 정화되었습니다.]
[세계수 루테리아의 회복이 끝났습니다. 가라앉아있던 그의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우웅……!]
기지개를 펴면서 상체를 들어올리는 인삼, 루테리아!
녀석은 까만색 눈동자를 말똥말똥하게 뜨더니, 제자리에서 당당하게 일어나 카이를 쳐다보았다.
[그대인가! 나의 치료를 도와준 이가!]
“그래…… 아니, 예…….”
[정말 고맙구나. 나는 세계수 루테리아. 숲의 수호신이며 엘프들의 어버이다.]
“제 이름은 카이입니다. 몸은 완전히 괜찮아지신 겁니까?”
[음! 이제 다시 내 아이들을 보살펴 줄 수 있겠구나.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야.]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말투를 흉내를 내는 듯한 모습!
카이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매우 익숙한 기운을 품고 있군. 그대, 혹시 사도인가?]
“예. 다시 한 번 인사드리지요. 4대째 태양의 사제, 카이입니다.”
[음, 역시 그렇군! 사도들에게는 항상 도움을 받게 되는구나.]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루테리아는 엄지손가락만 한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생명의 은인 카이여. 역대 사도들이 그랬듯 그대 또한 나의 친우로 인정을 하겠다. 나의 친우가 되는 이 순간부터 그대는 자연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며, 숲에서만큼은 그대를 해할 수 있는 존재가 없을 것이다.]
“그게 무슨…….”
카이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는 순간, 폭포수와도 같은 메시지 창이 그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띠링!
[스페셜 칭호, ‘세계수의 친구‘를 획득했습니다.]
[동화 속에나 나오는 전설적인 존재, 루테리아를 완벽하게 치료했습니다.]
[스페셜 칭호, ‘전설의 치료사‘를 획득했습니다.]
[루테리아가 완벽하게 회복함으로써 엘프족의 앞날이 밝아졌습니다.]
[메인 에피소드 : 시들어버린 세계수와 타락한 엘프 퀘스트의 발동 조건이 파괴되었습니다.]
[시들어버린 세계수와 타락한 엘프 퀘스트가 소멸됩니다.]
[이에 관련된 하위 퀘스트 1,712개가 함께 소멸됩니다.]
[태양신 헬릭이 박장대소를하며 당신을 칭찬합니다.]
[선행 스탯이 +20만큼 증가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스탯 포인트를 30개 획득했습니다.]
[태양교의 공헌도가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당신을 향한 뮬딘 교의 적대감이 매우 크게 상승합니다.]
[뮬딘 교의 대주교와 이단심판관들이 이 사건에 대해 크게 불쾌해합니다.]
[앞으로 뮬딘 교의 사신들이 당신을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한시라도 마음을 놓지 마십시오.]
“이, 이게 무슨…….”
말 그대로 정신을 쏙 빼놓는 엄청난 양의 메시지들!
그것을 읽어 내리는 데만 1분이라는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물론, 단순히 읽는 것과 이해는 또 다른 영역의 문제였다.
‘또? 내가 또 에피소드 퀘스트를 삭제했다고?’
이쯤되니 강심장인 카이조차 살포시 걱정이 될 정도!
‘……이제 내가 소멸시킨 퀘스트만 3천개가 넘지?’
그 퀘스트들을 만들기 위해 개발자와 라무스가 얼마나 일을 했을지!
등골이 싸늘해진 카이였지만, 그는 이번에도 떳떳했다.
‘아니, 그럼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그냥 죽게 나둬? 나 사제인데?’
듣는 이로 하여금 할 말을 없게 만드는 완벽한 논리!
자신의 정당성을 확립한 카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메시지들의 내용을 검토했다.
‘스페셜 칭호 두 개. 선행 스탯 20개, 레벨은 여섯 개가 올랐고…… 명성이 5천?’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띄운 카이였지만, 그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뮬딘 교와 관련된 문장들이 신경 쓰이네.’
자신이 얼마나 밉고 불쾌했으면 암살자까지 보내려 할까!
‘루테리아를 치료한 게 나인 건 또 어떻게 알고……!’
유저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쓰레기 같은 시스템!
하지만 지금의 카이에게 뮬딘 교의 사신 따위는 뒷전이었다.
‘나에겐 스페셜 칭호가 있어. 그것도 두 개나 있지.’
반짝!
초롱초롱한 눈빛을 띄운 그는 생일 선물의 포장지를 뜯는 아이처럼, 칭호 도감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