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힐통령 139화
54장 엘프의 마을(4)
[세계수의 친구]
등급 : 스페셜
내용 : 세계수 루테리아의 친구가 된 이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탯 +10, 엘프들을 상대로 위엄 효과가 세 배로 적용, 자연친화력 +150.(이 효과는 칭호를 착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전설의 치료사]
등급 : 스페셜
내용 : 전설적인 존재를 치료한 이에게 주는 칭호
효과 : 모든 스탯 +15, 치료 스킬의 효과 30% 증가.(이 효과는 칭호를 착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하나같이 입이 쩍 벌어지는 효과의 칭호들!
애초에 스페셜 등급의 칭호인 이상 꽝이라는 것이 있기는 쉽지 않았지만, 이번에 획득한 칭호들은 확실히 스페셜 칭호들 중에서도 효과가 좋았다.
‘엘프의 마을…… 인어들의 왕국에서처럼 고생을 한 것도 아닌데 그보다 더한 보상을 받을 줄이야.’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 카이는 루테리아를 향해 방긋 웃었다.
“루테리아 님, 행한 행동에 비해 과분한 보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우 사이에 말투가 너무 딱딱한 것 아닌가? 말을 편하게 하지 그러나.]
“하하, 제가 어찌 세계수님을 상대로…….”
[그리고 그 보상들은 일종의 선금 개념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대는 지금부터 뮬딘 교와의 전쟁을 준비해야 하니까.]
“내가 잘못 들어서 그런데, 지금 뭐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반말!
루테리아는 흔히 말하는 뒷짐을 지는 자세를 취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숲의 지배력을 되찾은 지금.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뮬딘 교 녀석들이 다크엘프들의 마을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세계수의 힘으로 쫓아내는 건?”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면 내가 기습을 받아 중독되는 일도 없었겠지.]
“아, 하긴…….”
그 부분은 납득이 된다.
하지만 전쟁이라니?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마치 군대 갈 생각도 없는데 영장이 발부된 기분!
“갑자기 뮬딘 교와의 전쟁이라니 조금 당황스럽네. 숲에 위치한 이들만 몰아내면 되는 건가?”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군대가 오고 있어. 본래라면 나의 힘을 빼앗고, 내 아이들을 타락시켜 지배력을 확보할 생각이었겠지.]
“아?”
루테리아의 말을 듣던 카이는 지나간 시스템 로그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시들어 버린 세계수와 타락한 엘프들의 퀘스트가 파괴되었어.’
한마디로 세계수가 시들어버리고, 그들의 힘을 취한 뮬딘 교가 엘프들을 모두 다크엘프로 만든다는 것이 원래의 시나리오였을 것!
‘훗. 시나리오 쓰고 있네. 뮬딘 새끼가.’
이미 그러한 미래는 카이의 손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
하지만 그 때문에 전쟁을 불가피하다.
카이는 루테리아의 말뜻을 이해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 혼자서는 뮬딘 교를…….”
[그래서 그대를 나의 친우라 부르는 것 아니겠는가? 나의 친우인 그대를 무시할 엘프는 한 명도 없을 걸세.]
“아……!”
엘프들에게 위엄 스탯이 세 배로 적용되는 세계수의 친구 효과!
그 효과라면 확실히 엘프들을 다루는데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이거…… 그럼 말 그대로 내가 전쟁을 지휘하라는 것 같은데?’
꿈에도 생각지 못한 엄청난 스케일의 전투!
카이는 식은땀이 흘러내릴 정도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 오히려 이게 기회일 수도 있어.’
유저가 NPC들을 이끌고 다른 세력과 전쟁을 한다?
그건 여태껏 그 어떤 유저도 이루지 못했던 위업이다.
기껏해야 귀족의 말단 병사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전부였던 유저들!
그 보상이 어느 정도일지는 감히 상상도 안 될 지경이었다.
“뮬딘 교 녀석들이 이곳까지 도착하는데 얼마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
[길어야 3주. 하지만 가급적이면 숲에 들어오기 전에 결판을 내줬으면 좋겠군…….]
“노력할게.”
카이의 입장에서는 숲에서 싸우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다.
그래야 엘프들의 특성을 살려서 전투를 하기 쉬우니까.
‘하지만 이건 전쟁이야. 기껏해야 몇백 명의 유저와 싸우던 검은 벌 때와는 이야기가 달라.’
그때만 해도 스팅과 설은영의 머리싸움에 기가 다 질렸던 카이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지휘를 자신이 직접 해야 하다니!
카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공부. 공부만이 살 길이다!’
모르는 것은 배우고, 아무리 적이라도 배울 점은 배우는 카이!
간만에 학구열을 활활 태우고 있는 그에게, 루테리아가 말했다.
[친우여. 나를 밖으로 데려가주게. 스스로 이 나무를 걸어 나가려면 족히 한나절은 걸려서…….]
“기꺼이.”
루테리아를 제 손바닥 위에 세운 카이는 천천히 거대한 나무.
짝퉁 루테리아를 나섰다.
입구를 나서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엘프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엇! 붉은색 독연이 점점 사라져 간다!”
“주변의 나무와 새싹들이 더 이상 고통어린 신음을 내뱉지 않아요!”
“저기 봐, 인간이 나왔다!”
“잠깐만, 인간의 손바닥 위에는…… 루테리아 님?!”
“어버이시여!”
한바탕 뒤집어진 엘프 일족!
엘프 여왕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모두 무릎을 꿇는, 물경 천에 가까운 엘프들!
“어버이시여. 저희의 미흡함을 꾸짖어주십시오.”
[나의 딸아. 고개를 들어라. 이번 사건은 너희의 잘못이 아닌,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이 행한 잘못이다.]
“하지만…….”
[여기 있는 나의 친우, 카이의 덕분에 몸은 완벽히 치료했으니 더 이상 그 문제를 입 밖에 내지 말거라.]
루테리아의 말이 끝나자 잠시 마을에 정적이 흘렀다.
그러기를 잠시, 모든 엘프들이 비명을 터뜨렸다.
“에에에에?!”
“치, 친우라고?!”
“드래곤들조차 한 수 접어주는 세계수님이 한낱 인간이랑?”
“그렇다는 말은…….”
“엣헴.”
카이는 경악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엘프들을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오늘부터 루테리아 베프인 카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
엘프의 마을, 루테리아엔 축제가 벌어졌다.
그들의 어버이자 존재 의의인 세계수 루테리아의 회복을 축하하는 축제!
“……라고는 해도, 내가 생각한 축제와는 다르네.”
춤과 노래는 없었다.
그저 잔잔한 분위기에서 서로 맛있는 음식과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뿐.
그것이 고지식한 엘프들의 축제 방식!
게다가 채식 위주인 엘프들의 식단은 고기를 좋아하는 카이와는 맞지 않았다.
‘뭐, 맛은 있지만.’
엘프들이 직접 키운 과일과 채소는 고기의 맛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음식이었다.
카이가 서로 웃고 떠들며 대화를 나누는 엘프들을 바라보기를 잠시,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카이 님.”
“아, 상병 엘프.”
눈밑에 노란색 줄무늬가 세 개나 그려진 엘프들의 전사장, 엘두인이었다.
그는 카이의 생소한 칭호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상병…… 영문 모를 소리로군요. 이 아이와 함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엘두인은 세계수의 친구가 된 카이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도, 그것이 규칙이라며 절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고집불통!
그런 그의 뒤에서 루나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우물쭈물하더니 엘두인을 간절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자, 꾸중이 이어졌다.
“쓰읍. 루나.”
“으으, 저도 안다구요.”
애처로운 표정을 지은 그녀는 카이의 눈치를 힐긋힐긋 살피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 그리고 감사합…….”
“루나! 사과를 할 때는 제대로! 상대방이 잘 들을 수 있도록!”
“……공격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루테리아 님을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속사포처럼 사과와 감사의 인사를 건넨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달아나버렸다.
가히 우샤인 볼트와도 자웅을 겨룰만한 육상 실력!
그 모습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엘두인이 혀를 차며 고개를 숙였다.
“저 아이를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아까 무례를 범한 것. 용서해주시길.”
“아니, 나야 이제 다 잊었는데…… 그 말투만 좀 어떻게 해주면 고맙겠지만.”
“안 됩니다. 루테리아 님은 저희의 신과 같은 분. 그분의 친우라면…….”
적응이 안 되는 건 여전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본인이 그러고 싶다는데.
어깨를 으쓱거린 카이는 엘프들이 빚은 포도주를 홀짝이며 물었다.
“루테리아는 조만간 전쟁이 일어날 거라 했어.”
“그 내용은 이미 전달 받았습니다. 저희 엘프 족의 전사는 카이 님의 날카로운 창이 되어 간악한 뮬딘 교를 상대하겠습니다.”
“……하지만 엘프들의 수는 결코 많지 않지.”
일족 전체가 천 명이 겨우 넘어가는 정도다.
하물며 이제는 현역이 아닌 노인 엘프도 있고,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그래도 엘프는 남녀 모두 전투를 치룰 수 있는 이들입니다. 전사들의 수는 그 전체 인구수의 절반 이상인 700여 명. 결코 작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숫자라는 건 언제나 상대적인 거지. 뮬딘 교에서 과연 몇 명이나 끌고 올지가 관건이야.”
“적이 몇 명이라 하더라도, 정의를 수호하는 엘프들이 겁에 질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고맙고.”
빙긋 미소를 지어보인 카이는 엘두인을 돌려보낸 뒤, 혼자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애초에 시나리오 상 엘프 족은 멸망해야 하는 이들이다.
당연히 이 시점에서 뮬딘 교를 상대로 전쟁을 할 수 있는 유저가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카이는 이미 그들에게 희망을 주입한 상태.
여기서 힘들 것 같다고 나 몰라라 도망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준비. 단단히 해야겠어.’
마을의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무지개색의 반딧불들을 쳐다보며, 카이는 다짐했다.
***
“카이 님, 선대의 사도가 맡겨두었던 의복을 받으세요.”
“이것이 니케…….”
카이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엘라니아의 손 위에 들린 의복을 바라봤다.
온통 하얀색으로 이루어져있는 의복!
알 수 없는 재질의 천으로 이루어진 옷은 마치 폭포처럼 계속해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분위기!
“이 물건을 즐겨 쓰시던 시미즈 님에게는 수호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지요.”
“수호?”
“예. 시미즈 님은 이 의복의 힘을 빌려 모든 아군의 힘을 강력하게 만드는데 특화된 존재라고 들었어요.”
“그 말은…….”
이 성물에는 버프 스킬이 탑재되어 있다!
눈을 반짝인 카이는 길게 끌 것 없이 의복을 건네받으며 중얼거렸다.
“아이템 감정.”
[성의(聖衣) 니케]
등급 : 이터널 레전더리
체력 +30
신성 +70
위엄 +20
방어력 1415
마법 방어력 1841
악마/언데드에게 주는 피해 +30%
신성력 재생 +150%
내구도 감소 무시
스킬 ‘천사들의 찬가’ 사용 가능
시미즈의 사념과 대화 가능.
-수호의 시미즈가 즐겨입던 사제복이다.
최고위급 주교의 신성력이 24시간 의복을 감돌고 있어 신성력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이 장비는 착용자와 함께 성장하는 장비입니다.
착용 제한 : 레벨 200, 태양의 사제 클래스.
내구도 ∞
“오, 오오오오…….”
다른 건 다 필요 없었다.
아이템 등급이 레전더리라는 점!
그 부분에서 카이는 전율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레, 레전더리 아이템!’
태양의 사제로 전직을 할 때 봤던 석상이나, 아카샤의 심판 같은 독을 제외하고.
자신이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 아니. 유저가 착용할 수 있는 최초의 레전더리 아이템!
하지만 카이는 곧장 그 앞에 붙어 있는 수식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만, 이터널 레전더리는 또 뭐야?’
물론 그 의문이 해소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장비가 성장을 한다고?”
휘둥그렇게 떠진 카이의 눈은 작아질 줄을 몰랐다.
한 마디로 이 아이템 하나만 있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게임이 서비스 종료될 때까지 다른 아이템을 얻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
‘물론 지금이야 레벨 제한이 걸려서 착용할 수는 없지만…….’
만약 착용만 한다면 또 하나의 스페셜 칭호는 당연한 것!
게다가 현재 카이 수준의 스탯이라면, 200레벨 중반까지는 미친 듯한 속도로 올라갈 수 있었다.
다른 짓을 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사냥에 전념할 수 있는 집중력만 있다면 말이다.
‘의복은 대박이야. 이보다 더 좋은 아이템을 난 본 적이 없어.’
레전더리만으로도 대단한데, 이터널 레전더리라니!
카이는 생각난 김에 인벤토리에서 또 하나의 성물을 꺼내 들었다.
반짝반짝!
인어들이 보관하고 있던 성환!
“아이템 감정.”
[성환(聖環) 페트라]
등급 : 이터널 레전더리
체력 +15
지능 +30
신성 +50
공격력 30
주문력 30
방어력 450
마법 방어력 500
악마/언데드에게 주는 피해 +20%
신성력을 소모하는 모든 스킬의 효과 +30%
내구도 감소 무시
스킬 ‘영원한 안식‘ 사용 가능
체란티아의 사념과 대화 가능
-안식의 체란티아가 항상 손가락에 끼고 다니던 반지이다.
교주였던 체란티아의 반지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태양교의 NPC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이 장비는 착용자와 함께 성장하는 장비입니다.
착용 제한 : 레벨 200, 태양의 사제 클래스.
내구도 ∞
“역시.”
역대 태양의 사제들이 사용했다는 성물들은 모두 이터널 레전더리 등급인 모양!
‘이제 드워프들이 가지고 있는 패트릭의 무기. 성검 프리우스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솔플을 하면서 이따금씩 막연히 그려왔던 솔로 플레잉의 끝.
게임을 독보군림하는 것조차 가능해진다.
‘……재미있네.’
두 성물을 곱게 인벤토리에 보관한 카이는 엘라니아와 루테리아, 두 사람을 쳐다봤다.
“출범식은 보름 정도 후에 하지요.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서.”
[벗이여, 이토록 불안정한 상황에서 무엇을 하기 위해 떠나는가?]
루테리아의 질문에 미소를 지은 카이는 짤막하게 대꾸했다.
“……전쟁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