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힐통령 140화
55장 레벨업의 제왕(1)
“200레벨. 2주 안에 해결해야 할 과제.”
엘프의 숲을 나서는 카이의 눈은 어느 때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시미즈와 체란티아가 남긴 성물들!
그것을 착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바로 200레벨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동안 지닌 스탯에 비해선 레벨이 많이 낮았지.’
딱히 게으름을 피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고 사냥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을 뿐.
‘우선 현재의 내 레벨이…….’
카이는 오랜만에 스탯 창을 불러냈다.
[카이]
직업 : 태양의 사제
레벨 : 163
칭호 : 신의 대리자
생명력 : 39,600
신성력 : 64,900
능력치
힘 : 655 체력 : 396
지능 : 303 민첩 : 301
신성 : 649 위엄 : 240
선행 : 183
남은 스탯 : 60
독 저항력 +30
마법 저항력 +70%
자연친화력 +200
모든 공격력 6% 증가
모든 속도 6% 증가
“음. 좋아.”
믿기지 않는 스탯들의 향연!
그러고도 남은 스탯은 60여 개나 되었다.
‘검은 벌 놈들을 잡으면서 레벨이 올랐고, 이번에 루테리아를 치료하면서도 레벨이 제법 올랐어.’
게다가 새롭게 얻은 두 개의 스페셜 칭호로 인해 확연히 올라간 모든 스탯!
그 어떤 몬스터가 상대로 나온다고 해도 두렵지 않을 정도!
‘스탯은…… 우선 절반씩 투자할까.’
카이는 힘에 30, 그리고 신성력에 남은 30개의 스탯을 올렸다.
불끈불끈!
“으음. 나는야 힘 세고 강한 사제.”
몸속에서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꿈틀거리는 올힘 사제의 힘!
하지만 그 강력한 힘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한다.
‘뮬딘 교 녀석들이 고작 수백 명을 이끌고 오는데 루테리아가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부리진 않을 거야.’
적은 최소 수천 명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력 차이!
카이는 잠시 눈을 감고, 그 전력 차이를 메꿀 방법을 떠올렸다.
‘어쩔 수 없어. 이쪽도 머릿수를 늘려야 해.’
하지만 어떻게?
일반적인 유저들은 믿을 수 없다.
특히 10대 길드 쪽의 인물들이 스파이로 침투하여 작정하고 방해하면 막을 수단도 없었다.
‘그렇다면 유저들은 제외. 천화도…… 일단은 제외.’
한 번 손발은 맞춰봤다고 하나, 그들은 현재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검은 벌이 지배하던 사냥터를 흡수하면서 입장료를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민심을 사로잡는 작업을 하는 도중!
‘그렇다면 남는 건 NPC들.’
우선 어둠 추적자의 타르달.
그에게 이 상황에 대해 말해주면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NPC들이 모험가인 자신의 명령을 들을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어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육지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이 난제를 해결할 방법은…….’
카이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다양한 방법들이 떠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카이는 지도를 띄웠다.
“지도.”
촤아아악!
눈앞에 펼쳐지는 미드 온라인의 대륙전도!
카이의 두 눈이 라시온 왕국 쪽의 지형을 빠르게 살폈다.
‘엘프의 숲. 북쪽으로는 피베즈 산맥이 있고 남쪽으로 한참 내려가면 지그문트 사막이 나와.’
그리고 옆으로는 라시온 왕국 전체를 경유하는 거대한 인공 수로.
수베르 운하가 흐른다.
‘이 운하를 바다와 연결할 수만 있다면 인어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어.’
관건은 어떻게 이 거대한 운하를 바다와 연결할 것인가이다.
한참이나 골몰히 고민하던 카이의 한쪽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만족할만한 생각이 떠올랐을 때 즐겨짓는 미소!
‘이거 할 만하겠는데?’
***
카리우스가 말했던 대로, 인어족은 이동을 하지 않은 채 같은 장소에서 거주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그들을 찾아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숨을 쉬는 건 별개의 문제였지만.
“아니, 이게 누구인가?”
“일족의 영웅!”
“카이 아저씨다!”
반갑게 카이를 맞이하는 인어들!
지느러미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온 그들은 꼬로록, 거품을 내뿜는 카이를 보고서야 마법을 걸어주었다.
“후아……! 역시 물속에서 숨을 참는 건 힘드네요.”
“자네는 아가미가 없으니 말일세.”
“기별도 없이 어쩐 일인가 그래?”
“카리우스 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폐하께서는 집무실에 계시네.”
인어들과의 간략한 수다를 마친 카이는 곧장 카리우스를 찾아갔다.
“카이 님?”
“오, 반가운 얼굴이로군.”
갑작스러운 카이의 방문에 사이러스와 카리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반갑긴 하지만 조금 당황스럽네요. 갑자기 무슨 일이시지요?”
“나도 조금은 놀랍군.”
“염치없지만 카리우스 님에게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흠, 말해보게나.”
“사실 지금 막 엘프들과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오오! 숲의 파수꾼들!”
카리우스의 안색이 밝아졌다.
“나가들에게 쫓긴다고 그들과 만나지 못한 것도 제법 되는구만, 그래. 잘들 지내고 있던가?”
“아니요. 그들은 지금 일족의 명운이 걸린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진지한 카이의 표정에 두 부자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졌다.
“전쟁이라니, 설마 상대가 인간인가?”
“아니요. 두 분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나가들을 흉폭하게 만들었던 장치, 기억하십니까?”
“잊어버릴 리가 없잖습니까! 그것 때문에 저희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설마 그 장치를 설치한 자들과 연관이 있는 건가?”
“예. 그 장치를 설치한 건 다름 아닌 뮬딘 교!”
“허억!”
“뮬딘이라고?”
두 사람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나가들의 산란장을 격퇴할 때만해도, 카이는 뮬딘 교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전무했던 상태!
그 때문에 인어족들도 나가와 뮬딘 교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 세계연합군의 주축이 되었던 인간과 아인종들. 그들의 재결합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으음…… 설마 숲의 파수꾼들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던가?”
“예. 제가 조금만 늦었다면 세계수 루테리아가 죽고, 엘프들이 그들의 지배하에 놓였을 겁니다.”
“끔찍하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 카리우스는 그 큰 몸집을 앞으로 숙이며 물었다.
“그 전쟁에 우리 인어들도 참여해 달라는 소리인가?”
“예, 그렇습니다.”
“숲의 파수꾼과 지하의 예술가들은 우리 일족과는 형제같은 이들! 물론 이를 간과할 수는 없네.”
“그렇다면……!”
카이의 얼굴이 밝아지기를 잠시, 카리우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 인어들은 지상에서는 그리 큰 힘을 쓰지 못하네. 물속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렇다면 운하라면 어떻겠습니까?”
“음? 운하라면…… 인간들이 인공적으로 파놓은 수로를 말하는 건가?”
카리우스는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바다여야 할 필요는 없지. 제법 수심이 깊은 물. 그 정도의 무대만 갖춰진다면 우리는 최고의 힘을 끌어낼 수 있네.”
“그렇다면 그 무대는 제가 만들겠습니다.”
그 말에 카리우스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자네에게 분명히 말한 바 있네. 종족은 다를지언정, 자네는 우리 인어족의 형제이자 친우, 가족이라고!”
쿵!
옥좌의 팔걸이를 강하게 내려친 카리우스가 일어나자, 입고 있던 용포가 바닷물에 휘날렸다.
“인어족의 정예 800여 명이 자네와 뜻을 함께할 걸세. 함께 숲의 파수꾼들을 구해보세!”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첫 번째 조건은 클리어되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카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기왕 도와주신다면 어떻게 마법의 소라고둥도 안 될까요?”
“안 되네. 우리가 자네를 구하기 위해 떠나면 소라고둥의 힘이 마을을 보호해야 하니까.”
“크흐흠.”
단호박을 세 개는 먹은 듯한 단호함!
결국 카리우스에게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고 대화를 마친 카이는 곧장 바다를 나왔다.
이어서 그가 향한 곳은 타르달의 저택.
“음? 엘프의 숲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
“갔었습니다.”
이어지는 설명.
카이는 말을 하면서도 확신했다.
‘타르달이라면 분명 대군을 지원해주겠지.’
어둠 추적자는 뮬딘 교를 대적하는 비밀결사단체다.
그렇기에 놈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는 이번 전쟁을 절대 무시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타르달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후우. 하필 이런 때에……. 곤란하네.”
“예?”
“군대를 일으키면 추적자 내의 첩자를 통해 그 비밀이 고스란히 뮬딘 교에 흘러갈 걸세.”
“……지금 어둠 추적자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어느 곳보다 까다로운 시험을 통해 가입자를 받는 이곳에 배신자가 있다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륙 모든 나라의 황족과 왕족, 고위 귀족들이 모두 한 마음 한 뜻을 품는 건 힘든 일이니까.
“두려움에 굴복한 것일 수도, 보상에 매혹당한 것일 수도 있네. 하지만 근래에 파견되는 어둠 추적자들의 사망 확률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어.”
“정보가 새고 있다는 소리로군요.”
카이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한 장소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주는 충격!
게다가 단순히 충격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타르달의 말이 맞아. 결국 군대가 함께하면 어떤 작전을 세우든, 적들의 귀에 흘러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전쟁에서 전략이란 일종의 가위바위보와도 같다.
서로가 무엇을 낼 것인지 감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군대를 어떤 식으로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읽힌 순간, 그 전쟁은 패배한다.
“끄응…….”
카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해하자 타르달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어둠 추적자의 입장에서는 이 기회를 놓칠 수도 없는 법일세.”
“맞습니다. 하지만 정보가 새어 나간다면야…….”
“어둠 추적자 내부의 인사를 차출하면 각국의 인사들에게 보고가 들어가지만, 개인적으로 보내는 건 그렇지 않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철혈 기사단 하나 정도라면 황제의 명으로 외부 시찰을 보낼 수 있다는 소리네.”
“……!”
이건 말 그대로 철혈 기사단을 지원해 주겠다는 뜻!
뜻밖의 희소식에 카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어중이떠중이 수천 명 보다는 철혈 기사단 하나가 나을 수도 있어.’
무엇보다 비밀이 새어 나갈 확률이 거의 사라진다.
어둠 추적자 내부에서 임무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황제가 직접 자신의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니까.
게다가 기본적으로 철혈 기사단은 황제 직속의, 황제만을 위해 검을 뽑는 이들!
당연히 어둠 추적자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상 검증과 신분 확인이 철저히 이루어진다.
‘충분해.’
엘프와 인어.
그리고 철혈 기사단까지!
머릿수가 얼마나 차이 날지는 몰라도, 아군의 수준은 최정예군 그 자체였다.
“아차, 그런데 타르달 님. 혹시 이번 전쟁에서 수베르 운하를 좀 사용해도 될까요?”
“……수베르 운하를? 아아, 전쟁 물자를 보급하기 위함인가?”
멋대로 오해한 타르달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껏 사용하게나. 그럼 전쟁 당일을 기준으로 일주일 정도 전부터 수리를 핑계로 운하의 사용금지령을 내리겠네. 폐하께 제안을 드리면 허락해 주실 게야.”
타르달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낸 카이는 지체 없이 텔레포트 게이트로 향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지그문트 사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