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44화 (144/441)

# 144

힐통령 144화

57장 비르 평야 전투(1)

분노조절장애.

화가 나는 상황에서 그 정도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성격 장애를 일컫는다.

골리앗의 성격이 딱 이러했다.

나면서부터 키, 맷집, 특유의 배포와 힘을 타고난 그는 평생을 강자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본인의 마음대로 세상을 살아가기엔, 법이라는 것이 거슬렸다.

그러던 찰나 미드 온라인을 만난 골리앗은 크게 감탄했다.

‘완벽한 세상이다!’

카이에게 미드 온라인이 훌륭한 도피처, 세상이 되었듯 골리앗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를 보는 골리앗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깝치면 죽는다는 생각이 머릿속 경종을 쉴 새 없이 울렸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골리앗의 앞까지 이동한 남자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물었다. 지금 감히 누구에게 손을 대려는 것이냐고.”

“……그쪽은?”

“질문은 내가 한다. 네 역할은 대답을 하는 것. 그리고…….”

철그렁.

남자가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동시에 뒤바뀌는 주변의 공기.

드드드드.

“낮춰라. 목 아프다.”

“커억……!”

골리앗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미중유의 힘에 저항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버티던 그는, 태연한 표정의 남자를 보는 순간 저항을 포기했다.

‘이건 못 이긴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짙은 패배감!

쿠웅!

포기와 함께 무릎을 꿇은 골리앗은 목 언저리에 드리워진 차가운 검신을 느꼈다.

그리고 머리맡에서 느껴지는 검신보다 더욱 차가운 음성.

“마지막으로 묻지. 답해라. 지금 누구에게 손을 대려는 거지?”

“나, 나는…….”

“바체 님. 오셨습니까.”

일촉즉발의 상황.

카이는 그 절묘한 틈을 찌르며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슬쩍 카이를 쳐다본 바체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폐하의 명에 따라 이번 전투에서는 그대와 함께 싸우게 되었다. 기사단의 독립적인 지휘권은 나에게 귀속되어 있으나, 최대한 그대의 의견을 반영하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곤란해 보여서 끼어들었다만, 이건 뭐지?”

“별거 아니니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철혈 기사단장님의 검을 상대하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한 애송이입니다.”

철혈 기사단장!

카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이 주는 무게에 길드의 마스터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아아! 바체! 어디서 들어봤나 했더니…… 철혈기사단장, 바체 댄 블랙이다!’

‘라시온 국왕의 가장 날카로운 검.’

‘그곳의 단장이면 최소 400레벨은 넘겠지.’

‘이 자가 전장에 나왔다는 건…….’

‘라시온 국왕. 그가 직접 명령을 내린 경우뿐이다. 언노운의 인맥은 대체…….’

‘호호, 골리앗 병신. 꼴좋네.’

그들이 한 발 물러선 채 순수하게 놀랄 수 있었다면, 골리앗은 미친 듯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이런 작자가 이곳에 왜 오는 거냐!’

말 그대로 애들이 싸움하는데 어른도 아니고, 세계 복싱 챔피언이 나타난 수준.

침을 꿀꺽 삼킨 그는 다가오는 카이를 올려다봤다.

“나도 마지막으로 물을게. 내 지시 받을래, 꺼질래.”

“…….”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어대던 골리앗은 눈을 질끈 감더니 입을 열었다.

“……지시를 따르지.”

“좋아, 그럼 타이탄 길드에게는 군의 최후방을 부탁하지.”

“…….”

당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기분이 더럽다고 소문난 인사 보복!

활약을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최후방을 지정받았지만, 골리앗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이이.

바체와 그가 이끄는 기사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 그를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골리앗은 그날 분노조절잘해가 되었다.

***

‘대략 1,700명 정도인가?’

10대 길드에서는 각각 100명씩의 정예들을 데려왔다.

거기에 엘프 전사 700여명, 철혈 기사단 50인.

마지막으로 기웃거리며 카이를 쫓아온 일반 유저들 400명까지!

도합 1,750명이라는 역대급 인원을 지휘하게 된 카이가 물었다.

“엘두인. 뮬딘 교의 군세가 이 방향으로 오는 것은 확실하지?”

“예. 루테리아 님께서 몇 번이고 확신하셨습니다.”

세계수의 확언이라면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보기에는 귀엽게 생겼지만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전설적인 생명이니까.

‘그럼 작전이 흔들리는 일은 없겠어. 다만…….’

카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 등 뒤의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1,700명이 넘는다던데. 이거 실화냐?”

“머릿수가 이 정도면 어떤 적이 와도 걱정 없다고.”

“이 전력이면 웬만한 백작령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건 무조건 방송 나가겠지? 엄마! 나 방송 탔어!”

“게다가 전쟁이 끝나면 라시온 왕국 차원에서 보상도 있을 거야. 크으…… 기분 끝내준다!”

마스터의 통제를 받는 10대 길드원들, 엘프 전사들과는 달리 들뜬 일반 유저들.

카이를 따라 그들을 쳐다보던 바체가 입을 열었다.

“……글쎄. 과연 그리 쉬운 전투가 될까.”

카이의 군대는 인원수만큼은 감히 역대급이라 칭할 만하다.

하지만 실상은 저마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오합지졸!

그 핵심을 꿰뚫어본 바체가 통렬한 비판을 날린 것이다.

“아군의 전력은 이것이 전부인가?”

“음…… 시간이 지나면 800명이 더 올 겁니다.”

“호오, 800명이나 말인가?”

놀란 것은 비단 바체뿐만이 아니었다.

‘800명이라고?’

‘이상하군. 내가 알기로 언노운은 그 어떤 길드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아.’

‘그런데 800명이나 동원할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한건 흑룡의 쟈오 린 정도…… 역시 허세겠지?’

‘뭐, 기다리보면 결과는 나오겠지.’

다양한 의미로 주목을 받게 된 카이.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었다.

‘이번 전쟁은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기회이자, 최대의 고비야.’

일만 잘 풀리면 앞으로의 게임 생활은 상당히 쉽게 풀릴 것이다.

상황이 그렇다고는 하나, 10대 길드를 수하로 부린 유일한 플레이어가 되는 셈이니까.

‘게다가 전쟁에서 승리만하면 왕실 쪽에서도 막강한 지원을 해주겠지, 무엇보다…….’

엘프와 인어족.

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그의 두 눈이 저 멀리 북쪽에 위치한 피베즈 산맥의 정상을 주시했다.

“……많군.”

바체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1,700여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자, 잠깐만.”

“아, 아니지……? 설마 저게 전부?”

“적군이라고?!”

“이런 미친! 난 여길 나가겠어!”

전쟁.

서로 대립하는 집단이 서로의 군사력을 비롯한 각종 수단으로 상대방을 강제하는 행위.

그 폭력적인 행위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인원수다.

……두두두!

겨울이 으레 그러하듯, 나뭇잎 하나 없는 앙상한 나무들이 피베즈 산맥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것은 겨울을 상징하는 순백의 눈.

두두두두두두두!

그 눈은 검은색 군대에 의해 순식간에 물들어갔다.

“그대는 적군이 몇 명 정도라 생각하지?”

“……글쎄요. 못해도 5천 명은 되어 보입니다.”

“상당히 긍정적인 성격이군.”

옅은 한숨을 내쉰 바체가 입을 열었다.

“최소 1만. 많으면 1만 2천까지는 되어 보이는군.”

“1, 1만이라고?”

“거의 다섯 배 차이잖아……?”

“아니야. 이건 정말 아니야.”

이번 전쟁을 단순한 이벤트로 알고 찾아온 일반 유저들이 순식간에 대열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어이, 멈춰!”

“야, 이 새끼들아! 여기까지 와서 어디가!”

10대 길드원들이 다급히 그들을 말렸지만, 이를 무시한 유저들은 속속들이 사라져갔다.

로그아웃을 하거나, 귀환 주문서를 사용하며 순식간에 자리를 떠나는 유저들.

“크으윽…….”

“의지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새끼들!”

빠져나간 유저들의 수만 무려 300여 명!

하지만 카이는 굳이 그들을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떠날 사람은 지금 떠나십시오!”

쩌렁쩌렁!

지휘관의 특별한 능력!

카이의 목소리가 드넓은 비르 평야에 퍼져나갔다.

“어, 언노운이 떠나도 된다는데?”

“저렇게까지 말했으면 보복은…….”

“없다는 거겠지.”

“야. 어쩔래?”

“……나가자.”

50명의 유저가 새롭게 사라졌다.

이에 워리어스의 마스터, 발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카이를 쳐다봤다.

“손 하나라도 부족한 이때에 왜 굳이…….”

“저들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까? 진심으로?”

“…….”

발칸은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보상만을 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쟁에 참여한 이들이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각오나 다짐, 신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녀석들은 상황이 불리해지면 전투 도중에라도 도망칠 놈들이야.’

전투를 치루는 와중에 주변의 동료가 도망치기 시작하면 군대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지난 2주 동안 사냥을 하면서도 꼼꼼히 기초 지휘, 전략/전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카이!

역사에 기록된 다양한 전투를 찾아보고, 명장들의 전략을 닥치는 대로 훑어보았다.

‘전투에 참여하는 이들은 우선 뒤가 없어야 해.’

필사즉생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

비겁하게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 하면 살 것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명언!

“모두 나를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카이의 말에 수백 명의 유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물론 모를 리야 없다.

언노운.

단신으로는 현재 미드 온라인에서 가장 핫한 플레이어니까.

“두 번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전투는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카이가 밑도 끝도 없이 자신감을 드러내자, 유저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왜 제가 언노운인지. 항상 압도적으로 강한 적들을 상대로 이겨왔는지. 오늘 똑똑히 보여드리겠습니다.”

불패신화!

다른 이가 저런 말을 했다면 코웃음을 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노운이 남긴 발자국들은 그 말에 신빙성을 안겨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언노운이라면…….’

‘오크 로드와 주술사, 검은 벌의 루키 파티를 한 번에 전멸시켰지?’

‘그 아오사를 혼자서 레이드하기도 했고.’

‘게다가 실질적으로 검은 벌을 혼자서 무너트린 괴물이지.’

‘그럼 정말 저 녀석과 함께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다 죽어가는 아군의 눈빛에서 피어오른 한 줄기의 생기!

동시에 카이의 눈앞으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띠링!

[압도적인 위엄을 바탕으로 연설을 하여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렸습니다.]

[화술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화술 스킬의 레벨이 초급 6레벨이 되었습니다.]

[아군의 사기가 크게 상승합니다.]

[전투가 끝나기 전까지 모든 아군의 능력치가 3% 상승합니다.]

“오, 오오오!”

“모든 능력치 증가 버프!”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이 자리에 참여할 정도의 유저들은 최소 레벨 200이 넘는 고수들!

그들에게 모든 능력치 3% 상승은 절대 작은 수치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저희를 굽어 살피시는 아버지, 헬릭이시여.”

카이가 돌연 경건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10대 길드 마스터들이 의문을 내뱉었다.

“장비를 바꿔 입었어?”

“……그런데 왜 사제복이지?”

“젠장, 후드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아.”

“태양교의 출정 의식이에요.”

성기사와 사제들이 대거 소속되어 있는 프레이 길드의 마스터, 미네르바가 이를 설명했다.

“태양신에게 기도를 빌어 그 가호를 받는 것이죠. 물론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지만…….”

“한마디로 그냥 연출이라는 소리군.”

“뭐, 이후에 가공될 영상까지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

그들이 무엇이라 떠들건 말건 묵묵히 기도를 마친 카이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희들을 보호하소서. 스킬 발동, 천사들의 찬가.”

동시에 강렬한 태양빛이 한 차례 카이의 군대를 비추고 지나갔다.

니~나니노~

니~나니노~

어느새 그들의 머리 위에서 호른을 불며 날아다니는 수많은 아기 천사들!

그들을 멍하니 쳐다보는 유저들의 눈앞에, 충격적인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태양신 헬릭이 은혜로운 태양빛을 선물하였습니다.]

[천사들이 낭송하는 찬가를 들었습니다.]

[받는 물리 피해가 30% 감소합니다.]

[받는 마법 피해가 30% 감소합니다.]

[모든 상태 이상 저항력이 40% 증가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