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힐통령 145화
57장 비르 평야 전투(2)
니~ 나니노~
니~ 나니노~
멍한 상태로 천사들의 연주와 노랫소리를 듣던 유저들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이, 이게 뭐야?”
“이런 버프는 받아본 적…… 아니, 들어본 적조차 없다고!”
“물리, 마법 피해가 30%씩 감소한다고? 거기다가 모든 상태 이상 저항력도 증가……?”
“개사기 스킬이잖아!”
“가만, 그럼 이런 버프 스킬을 쓴다는건…….”
650명의 유저들이 일제히 카이, 아니 언노운을 쳐다봤다.
그건 길드 마스터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언노운이 이 정도의 버프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이건 랭커 사제도 부여할 수 없는 수준의 버프.’
‘하지만 언노운이 사제일리는 없어. 저 복장은 결국 눈속임.’
‘사제라면 혼자서 그렇게 미쳐 날뛸 수가 없으니까.’
‘흐응. 아오사를 잡았을 때 보여준 힘 스탯은 절대 사제의 것이 아니었어.’
‘올힘을 찍은 미친 사제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렇다면 신성력이 부족해지겠지.’
‘하지만 언노운은 아오사를 잡을 때 신성력 소비가 큰 신성 사슬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어.’
‘그 말은…….’
그들은 머릿속에서 각자만의 결론을 내렸다.
대화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도출된 답은 똑같았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언노운은 히든 클래스의 성기사 유저였어.”
“그게 아니라면 이 정도 수준의 버프는 말도 안 되지.”
사제가 그렇게 강할 리가 없다!
유저들의 뇌리에 뿌리 깊게 박힌 관념은 길드 마스터라고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카이는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자 쾌재를 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전 히든 클래스의 유저입니다.”
“역시.”
“그럼 그렇지.”
“자, 잠깐만요! 그래도 이상해요!”
다른 마스터들이 모두 납득하며 상황이 끝나려는 찰나,
프레이의 마스터인 미네르바가 당황한 표정으로 항의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전 히든 클래스 사제예요. 그런데 어째서 성기사인 언노운이 저보다 버프 효과가 뛰어난 거죠?”
“그러고 보니…….”
“잠깐, 그렇다면?”
마스터들이 다시금 의심어린 눈빛을 띄었지만, 카이는 침착한 마음을 유지했다.
‘여기서 말리면 망한다.’
마음을 독하게 먹은 카이는 그들을 설득할 생각을 했다.
본디 설득력이라는 건 말하는 자의 자신감에서 큰 영향을 받는 것!
카이는 곧장 자신의 자세를 바꾸었다.
스트레칭을 하듯 쭉 펴지는 허리!
드넓은 태평양처럼 쫙 갈라지는 어깨!
32도의 각도로 하늘을 향하는 턱!
그렇게 당당한 자세를 취한 카이가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히든 클래스 사이에도 격차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거야 알지만…….”
“물론 저도 알아요. 히든 클래스로 전직을 하고 나서 그에 관해 수도 없이 조사해 봤으니까. 하지만 제 직업인 성녀는 히든 클래스 중에서도 상위권이라구요. 버프의 능력 차이가 이렇게 날 리가…….”
“그럼 제 히든 클래스가 최~상위권인가 보죠.”
“…….”
할 말을 잃게 만들어버리는 카이의 논리!
하지만 직업 간의 우위는 서로의 스킬 등을 밝히지 않는 이상 가릴 수가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스킬을 비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제가 사제면, 힘 스탯이 이렇게 높을 수야 있겠습니까?”
카이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애검, ‘강인한 의지의 롱소드’의 착용 제한만을 찍어 마스터들에게 공개하였다.
“호오. 들고 있는 검의 힘 제한이 500이나 되는 건가?”
“확실히…… 사제라면 절대 들 수 없는 수준의 검이야.”
다시금 납득하는 마스터들.
결국 이에 대한 반론을 하지 못한 미네르바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직업의 이름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아, 직업의 이름은…….”
카이는 일말의 망설임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성기사를 팔아먹었다.
“광휘의 성기사인 패트릭의 뒤를 잇는 영웅 등급의 직업입니다.”
“광휘의 성기사라…….”
그럴듯한 이름에 납득하는 마스터들!
하지만 카이는 누구보다 그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납득하는 척하지만, 이걸로 의심을 거둘 리가 없지.’
저들은 100% 마을로 돌아가는 즉시 패트릭이라는 이름을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광휘의 패트릭이 실존했던 성기사였다는 것을 발견한 후에야 의심을 거둘 터.
‘이것으로 저들은 태양의 사제에 관해선 알아낼 수 없어. 그가 사도였다는 건 교단 내에서도 극비로 취급될 테니까.’
자신만 해도 그에게 직접 듣기 전까지는 몰랐을 정도였다.
한 차례의 위기를 넘긴 카이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것으로 철혈 기사단과 엘프들의 생존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어.’
굳이 리스크를 져가면서까지 천사들의 찬가를 사용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NPC들이 하나라도 더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카이는 어느새 건너편의 운하 근처까지 진격해온 적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잡담은 여기까지. 이제 입이 아닌 몸이 바빠질 차례입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간단합니다. 마법사들 앞으로!”
지시 한 번에 마법사 유저들이 앞으로 척척 걸어 나왔다.
그 수만 무려 200여 명!
“지금 당장 아이스 필드를 사용해 수로의 물을 얼리십시오.”
“흐응? 별로 좋은 생각 같아 보이진 않는데.”
“운하를 얼리면 저 엄청난 수의 적군과 정면 대결을 펼쳐야 한다.”
“그래요. 오히려 수상 대교. 그곳을 틀어막고 착실히 적들의 수를 줄여 나가야 해요.”
길드 마스터들의 강한 반발이 이어졌다.
그들 모두가 전술, 지휘라면 나름의 일가견이 있는 이들.
하지만 카이는 자신의 고집을 관철했다.
“아까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건 제 전장이라고.”
길드 마스터들을 바라보는 카이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제 전장에 온 이상, 저를 믿고 따라주십시오.”
***
수베르 운하는 그 폭이 넓은 만큼 깊이 또한 상당했다.
당연히 인간의 다리로 이를 건너는 것은 불가능!
때문에 그곳에는 수상대교가 지어져 있었고, 모든 유저들은 그곳이 결전의 장소라 생각했다.
그건 다리를 향해 달려오던 뮬딘 교의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카이의 명령에 의해 상황이 바뀌었다.
쩌저저적!
쩌저적!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린 수로!
모든 물을 얼음으로 바꿀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웬만한 충격으로는 무너지지 않을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의심하는군.”
“뮬딘 교 녀석들. 건너오질 않아.”
뮬딘 교는 얼어버린 수베르 운하의 앞까지 도착했지만, 이를 쉽사리 건너지는 못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 것!
눈을 반짝인 카이는 그 때를 놓치지 않았다.
“잘됐네요. 저희 쪽에서 좋은 위치를 선점합니다.”
딱딱한 얼음을 밟으며 운하 위로 올라간 카이의 대군은 순식간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 나갔다.
천 명이 넘는 인원이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얼음은 무너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비록 아이스 필드의 특성상 이 위에선 이동속도가 감소하지만…….’
그건 적들도 마찬가지!
카이의 군대가 운하 위로 이동하자 다급해진 뮬딘 교도 서둘러 제 1선을 내보냈다.
더 늦으면 불리한 위치에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일부만 보내고, 일부는 언덕 위에서 전황을 지켜볼 생각인가?’
나름 현명한 판단.
두두두두두!
뮬딘 교의 선봉대는 그 숫자만 무려 8천 가량이었다.
1,400명인 카이의 군대와는 거의 여섯 배나 차이나는 숫자였지만, 전쟁을 치루는 이상 군대의 격돌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콰득, 서걱!
첫 충돌로 양 쪽의 사상자만 무려 100여명 이상이 발생!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뮬딘 교의 군대가 점점 밀려났다.
다크엘프들을 향한 엘프들의 분노가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죽어라, 부정한 힘을 쫓는 이들이여!”
“어버이를 배신한 패륜아들!”
“자연이 그대들을 거부하리라!”
엘프들의 검술과 궁술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강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무기는 따로 있었다.
“대지의 정령이여, 적들의 퇴로를 봉쇄하라!”
다름 아닌 정령!
자연친화력이 높은 엘프들은 계약을 통해 정령의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
‘좋아. 기세가 정말 좋아.’
운하 위의 전투가 치열해지자, 카이는 허공을 향해 홀리 익스플로젼을 쏘아냈다.
두두두두두!
그와 동시에 수상 대교를 건너는 50인의 기마대!
바로 철혈 기사단이었다.
‘운하 위에서 적들의 선봉대를 상대하고, 철혈 기사단이 적들의 본진을 꾸준히 괴롭힌다.’
적군의 정신을 쏙 빼놓는 전략!
게다가 철혈 기사단은 숫자는 적지만 절대 무시할만한 수준의 전력이 아니었다.
콰아아앙!
마치 성난 호랑이처럼 뮬딘 교의 본진에 난입한 그들은 양떼를 도륙하듯 적들을 베어나갔다.
“이곳에 놈들을 이끄는 주교가 있을 것이다! 놈만 죽이면 키메라의 제어력이 풀린다!”
“바체 님의 명령이다! 주교를 찾아라!”
“키메라의 제어가 풀리면 적군의 숫자가 크게 감소한다!”
철혈 기사단은 주교를 죽이기 위해 끊임없이 적군 본진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돌아다녔다.
“나이스! 역시 철혈 기사단!”
“우리도 지지 마라!”
“유저들의 힘을 보여주는 거다!”
“이대로 밀어붙여!”
“불패의 언노운이 우리와 함께한다!”
수로에서는 마스터들의 격려와 외침이 이어지기를 반복!
전투가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리자, 바짝 얼어있던 유저들의 몸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이거…… 할 만한데?’
‘뭐야. 머릿수만 보고 대패할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비등비등하잖아?’
‘진짜로…… 사고 하나 치는 거 아니야?’
만약 이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역전의 용사라고 인터넷에서 추앙받을 것이 당연한 일!
명성을 쫓는 유저들의 손속이 더욱 거세졌다.
“음. 좋아.”
성공적인 양동작전에 카이의 입가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전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 이단심판관들이다!”
“최소 레벨 250…… 미친! 350짜리가 있다고?!”
“크윽. 암흑 사제와 성기사들이 그들의 가호를 받고 더욱 강해진다!”
뮬딘 교의 이단심판관들!
다크엘프를 소모품으로 사용하던 그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뮬딘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죽음을.”
“역겨운 이교도들의 냄새가 코를 찌르는구나.”
“뮬딘의 뜻에 따라 정화 작업을 시작한다!”
콰드드득!
그들의 검과 철퇴가 휘둘러질 때마다 뒤로 튕겨져 나가는 유저들!
“너, 너무 강해!”
“젠장. 이단심판관 한 놈에 열 명…… 아니, 스무 명씩 붙어!”
“이건 단순한 사냥이 아니다. 레이드 진형을 짜라!”
강력한 이단심판관들은 전쟁을 단숨에 끝내겠다는 기세로 유저들을 덮쳤다.
그 뒤를 따라 유저들을 공격하는 암흑 성기사들과 키메라, 다크엘프들!
카이의 눈앞으로 속속들이 메시지가 도착했다.
[산드로 : 어이, 언노운. 이건 못 버틴다!]
[골리앗 : 젠장! 어째 일이 잘 풀린다 했더니……!]
[발칸 : 언노운! 퇴각 지시를! 이대로 가다가는 전부…….]
[언노운 : 아뇨. 더 버텨야 합니다.]
카이는 자신을 재촉하는 마스터들의 외침에도 수로의 동쪽만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캐서린 : 야! 여기서 어떻게 더 버텨? 지금도 방어만 하고 있는데 쭉쭉 밀리잖아!]
[골리앗 : 저 미친년 말이 맞아! 지금은 잠시 후퇴를 하여 진형을 가다듬어야 할 타이밍이다!]
[발칸 : 언노운. 이단심판관들을 막아내려면 철혈 기사단을 불러들이는 수밖에 없다.]
[언노운 : 철혈 기사단은…… 이곳에 합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본진을 괴롭히며, 4천 명에 가까운 적들의 발을 묶어둬야 했다.
‘오히려 지금 적들의 본진이 이단심판관들에게 가세하면 더욱 힘들어져.’
주교를 지키는 포위망은 더 견고해질 것이고, 이단심판관들도 안정적으로 공격해 올 것이다.
지금이야 뒤가 없다는 듯이 무식하게 돌격해서 그렇지, 저들도 나름 절박한 상황!
그만큼 철혈 기사단이 적들에게 안겨주는 불안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여기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텨야 해.’
수베르 운하에 도착하자마자 미믹을 소환해 동쪽으로 보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어들을 위해서!
‘적어도 인어들이 올 때까지는 이 운하 위에 적들을 붙잡고 있어야 해. 그렇다면…….’
이럴 땐 큰 거 한 방이 필요하다.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는 아군의 사기를 뒤집을 커다란 한 방이!
“……후우. 이번엔 좀 쉽게 가나했더니.”
군대를 지휘하며 상황을 관망하던 카이는 결국 머리를 긁으며 검을 뽑았다.
동시에, 그의 두 발이 유저들의 어깨를 밟으며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악! 악! 어떤 새끼가…….”
“어어?”
“언노운?!”
촤아아아악!
순식간에 대열의 선두까지 이동한 카이는 미끄러운 얼음 위를 미끄러졌다.
동시에 그를 쏘아보는 이단심판관!
“으음……! 어찌 이리 역겨운 냄새가……!”
[이단심판관 LV.350]
수로 위의 이단심판관 중 가장 레벨이 높고 강력한 녀석.
때문에 모든 아군이 두려움을 느끼는 상징적인 적.
카이는 망설임 없이 녀석에게 검을 겨누며 읊조렸다.
“미안한데, 좀 죽어줘야겠다.”
아군의 승리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