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46화 (146/441)

# 146

힐통령 146화

57장 비르 평야 전투(3)

뮬딘 교의 이단심판관은 외형부터가 독특했다.

한 손에는 검,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철퇴.

게다가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으며 그 위로 뮬딘 교의 사제복까지 함께 입고 있다.

화룡점정은 전신에서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어둠!

그야말로 강렬한 포스를 자랑하는 녀석이었다.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역겨운 이교도여.”

카이의 말을 농담으로 치부한 이단심판관이 자신의 철퇴를 붕붕 돌렸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주지. 뮬딘이시여! 지금 당장 이교도를 잡아 당신 앞에 바치겠나이다.”

콰아아앙!

예고없이 휘둘러진 이단심판관의 철퇴는 카이 대신 얼음을 강타했다.

‘빠르다.’

그리고 강하다.

쩌저저저적!

그들이 서있던 두꺼운 아이스 필드에 균열이 생길 정도의 공격력!

저런 철퇴 공격이 바닥에 몇 번이고 꽂히면 얼음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니 그 전에 끝내야겠어.’

어차피 카이는 이 군대의 지휘관.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전쟁 자체를 승리로 이끌기만 하면 된다.

그 말은 평소처럼 최전선에서 오랫동안 싸울 필요가 없다는 소리.

‘속전속결.’

모든 힘을 퍼부어서 최대한 빠르게 처치한다.

목표를 세운 카이의 입이 속사포처럼 움직였다.

“신성 폭발.”

[모든 스탯이 47만큼 증가합니다.]

[플레이어의 레벨보다 높은 적을 상대하는 중입니다.]

[용맹한 전사 효과가 적용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스탯이 10 상승합니다.]

모든 스탯이 순식간에 57이나 상승하는 사기 스킬!

신성 폭발의 효과가 이렇게 폭발적으로 상승한 것은, 성환 페트라의 효과 덕분이었다.

‘신성력을 소모하는 모든 스킬의 효과가 30% 증가하지.’

글렌데일의 성자, 화이트홀의 성자와 중첩하면 무려 55%나 증가한다는 소리.

이 말도 안 되는 효과는 비단 신성 폭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이터널 레전더리 반지 하나로 인해 카이의 힘은 다른 차원에 올라섰다는 뜻.

“태양의 축복, 태양의 갑옷, 헤이스트, 블레스, 홀리 인챈트…….”

[물리/마법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모든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모든 속도가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무기에 성스러운 기운이 깃듭니다.]

……

버프, 버프, 버프!

태양교의 신성력이 번쩍일 때마다 카이의 능력치는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아아, 저렇게 역겨운 꼴을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다!”

물론 이를 지켜볼 이단심판관이 아니었다.

아이스 필드를 미끄러지듯 달려온 그는 자신의 검을 내질렀다.

카이의 버프 스킬이 모두 시전된 것도 바로 그때.

휘이이이익!

허공을 가르는 빠르고 날카로운 검.

평범한 250레벨 유저라면 공격을 허용한 순간 생명력의 80%가 날아갈 무시무시한 공격이다.

하지만 카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상태로 가볍게 걸음을 내딛었다.

후우우웅!

동시에 전장에서 사라지는 그의 모습.

난전 속에서도 그 장면을 목격한 몇몇 이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언노운이 사라졌다?’

‘무슨 스킬이지? 태양교에 블링크와 비슷한 효과를 지닌 스킬이 있던가?’

‘아니, 사라진 게 아니야…….’

순식간에 이단심판관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언노운.

‘그냥 빠르게 움직인 거다!’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라서 그 움직임을 놓친 것뿐!’

‘저런 속도가 나오려면 힘 스탯과 이동속도 증가 버프의 수치가 대체 얼마나 되어야…….’

유저들의 경악을 한 몸에 받은 카이의 검이 굉음을 토해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칼날 쇄도!”

콰드드득!

“커억, 마, 말도 안 되는!”

등 뒤에서 쏘아진 불의의 일격에 이단심판관이 비명을 내질렀다.

350레벨인 자신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의 속도라니!

하지만 더욱 두려운 것은 비단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칼날 쇄도 한 번에 생명력 18%라? 괜찮네.’

상식이라는 것이 통용되지 않는 언노운의 공격력.

물론 이 상황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건, 이단심판관 본인이었다.

“크으윽…… 부정한 힘이…… 내 몸에 들어온다…… 뮬딘이시여!”

뮬딘 교의 유일한 카운터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태양교의 신성력이다.

그 기운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카이의 공격력이 약할 리 없었다.

더군다나 현재 그가 지닌 버프만 무려 십여 개.

‘신성력은 초마다 미친 듯이 빠지지만…….’

페널티를 즐겁게 받아들일 정도로 강력한 힘이 넘쳐흐른다!

그 사실이 카이를 더욱 과감하게 만들어주었다.

‘녀석의 공격은 눈에 훤히 들어와.’

이단심판관의 손에서 붕붕 돌아가는 철퇴가 느릿느릿하게 보일 지경.

“죽어라!”

철퇴가 날아온다.

노리는 것은 급소인 심장.

카이는 제 자리에서 한 발자국을 옆으로 물러나면서, 철퇴의 사슬 부분을 붙잡았다.

“……!”

놀라는 이단심판관을 쳐다보는 카이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다.

‘내가 여기서 보여줘야 할 건 치열한 전투 따위가 아니야.’

커뮤니티에 올릴 영상이라면 오히려 전투를 치열하게 하는 것이 좋았다.

그만큼 시청자들은 자신의 전투에 더욱 몰입을 할 테고, 이겼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낄 테니까.

하지만 전장에서 그런 치열함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좋은 전장은 승리한 전장뿐이지.’

자신들의 지휘관이 강적을 압도적으로 처치했다는 사실.

아군의 떨어진 사기를 단번에 역전시킬 수 있는 건 그런 임팩트 있는 사실뿐이었다.

그 때문에 카이는 이단심판과의 정면 승부를 택했다.

‘정면에서 쳐부순다!’

카이의 왼손이 그대로 놈의 철퇴를 잡아당겼다.

“크윽!”

그대로 딸려오는 이단심판관!

카이가 아군의 사기를 어깨 위에 짊어졌듯, 녀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무기를 빼앗기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넌 자존심보다, 실리를 택했어야 했다.’

카이의 오른쪽 어깨가 뒤로 쭈욱 늘어났다.

사람의 몸이라기보다는, 고무줄이나 활대를 보는 듯한 유연한 몸.

한계까지 당겨진 그의 어깨는 이단심판관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타이밍을 맞춰,

당겨놓은 주먹을 포탄처럼 쏘아냈다.

콰아아아앙!

우지지직!

이단심판관의 투구가 그대로 찌그러지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코에서 코피를 줄줄 흘려대는 이단심판관의 얼굴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커, 커어어…….”

카이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녀석의 멱살을 왼손으로 거칠게 붙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포탄!

콰앙, 콰앙, 콰앙!

그것은 이미 각 군대의 사기를 결정지을 치열한 사투 따위가 아니었다.

철저한 폭력.

카이는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적군의 사기를 찢어버리기 위해 검 대신 주먹을 사용했다.

‘이 편이 더욱 원시적이고, 폭력적이며 직관적이지.’

콰드득!

카이의 마지막 공격이 이단심판관의 얼굴에 처박혔다.

생명력이 바닥이 나버리고 폴리곤이 되어 사라지는 이단심판관.

그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는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이단심판관은 레벨만 높은 머저리에 불과합니다! 이 전투, 저희가 이길 수 있습니다!”

“와아아아!”

“언노운이 우리와 함께한다!”

“언노운은 혼자서 가장 강한 이단심판관을 해치웠다. 우리도 어서 모여서 놈들을 처치해!”

“죽여버려!”

길드 마스터들은 카이가 만들어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속내는 아니꼬울지라도, 그의 위업을 입 밖으로 쏟아내며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이것으로 내 역할은 끝.’

카이는 초조한 표정으로 동쪽을 쳐다보았다.

이미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그런데도 인어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설마 내 계획이 실패한 건가?’

그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

물론 지금 당장에야 아군의 사기가 높아 적들을 몰아세우고 있다지만,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압도적인 머릿수가 지닌 강점이 두드러질 것이다.

그래서 카이는 이 전쟁을 하루가 지나기 전에 결판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어들의 도움이 절실해.’

미믹으로 드래곤을 흉내 내지 않는 이상, 800여명의 인어들을 한 번에 데려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랬기 때문에 카이가 구상했던 계획은…….

우르르.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아이스 필드 위에서 별안간 진동이 느껴졌다.

“뭐지?”

“지진인가?”

유저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카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왔다!’

지금 느껴지는 진동이야말로 미믹이 가까워졌다는 증거!

카이는 곧장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모두 퇴각하십시오! 아이스 필드를 벗어나 비르 평야의 기슭까지 되돌아가는 겁니다!”

“으, 응?”

“대체 무슨 소리를? 지금 이 기세를 살리지 못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아군이 불리해진다!”

“현재 전황은 아군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해요! 지금 이 상황에서 후퇴할 이유가…….”

모두가 카이의 명령에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다크엘프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은 설은영과 카이의 눈이 마주쳤다.

‘은혜는 이 전장에서 확실하게 갚겠다고 정했어.’

다음 순간 설은영은 검을 갈무리하며 소리쳤다.

“천화는 지휘관의 명에 따라 퇴각한다!”

“퇴로 확보!”

“퇴로 확보되었습니다! 퇴각합니다!”

천화가 담당하던 쪽의 전선이 뚫려버리자, 다른 길드 마스터들이라고 뾰족한 수는 없었다.

“젠장!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타이탄! 후퇴한다!”

“워리어스도 전선을 뒤로 물린다.”

“프레이 여러분, 모두 후퇴하세요!”

“한창 좋았는데 왜 저런데? 리미트리스도 퇴각!”

카이가 이단심판관을 압도적으로 처부수자 밀물처럼 돌진하던 군세는,

그의 명령 한 번에 썰물처럼 빠져 나왔다.

주춤, 주춤.

상대하던 적들이 한 번에 빠져 나가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뮬딘 교의 군세들!

명령을 내려야할 이단심판관들은 이미 사냥당했고, 본진은 철혈 기사단에 묶여 명령을 내려줄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그들이 택한 것은 도망치는 적들의 꼬리를 붙잡는 것!

‘걸렸다.’

씨익 미소를 지은 카이는 아군이 비르 평야의 기슭 위로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미믹! 지금이다!”

외침과 함께 폭죽이라도 터진 것처럼 전장의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앙!

수베르 운하의 한쪽 벽면이 터지며 새로운 물줄기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 상황을 만든 존재는 다름 아닌 미믹!

‘그것도 보통의 미믹이 아니지.’

카이는 미믹의 늠름한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미믹 - 굶주린 킹 샌드 웜]

등급 : 일반 몬스터

레벨 : 195

생명력 : 104,500

힘 : 400 체력 : 1045

지능 : 110 민첩 : 150

-미믹이 킹 샌드 웜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소환수의 등급에 따라 킹 샌드 웜의 능력치가 추가적으로 상승합니다.

-미믹은 킹 샌드 웜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미믹은 킹 샌드 웜의 모든 스킬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굶주린 상태의 킹 샌드 웜을 흉내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쉽게 차지 않습니다.

킹 샌드 웜!

그것은 카이가 지그문트 사막에서 마주친 순간 박수를 쳤던 몬스터였다.

‘이 녀석이다!’

당초 목적은 지그문트 사막의 대형 몬스터 한 마리를 흉내 내서 800여 명의 인어들을 수베르 운하로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킹 샌드 웜을 마주친 순간, 그 계획은 폐기되었다.

‘킹 샌드 웜은 내가 예전에 상대했던 웜 리자드와 비슷해.’

다른 점이 있다면, 더 레벨이 높고 덩치도 크며, 이빨이 단단하다는 것뿐!

65레벨의 웜 리자드조차 산을 먹어치워 자신의 스위트홈을 만들 정도였다.

그렇다면 킹 샌드 웜이라면?

‘수로와 바다 사이의 돌을 먹어치워 길을 뚫는 건 일도 아니겠지.’

실제로 미믹은 그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개발자들의 노력이 이렇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구나.’

게임에서 몬스터들이 특정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서.

생각해 보라.

만약 용암 지역에서 서식하는 라바가 멋대로 이동해서 숲으로 들어간다면?

반대로 화염의 정령이 바다로 기어들어가서 죽어버린다면?

개발자 입장에서는 난처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들은 몬스터의 서식지를 어느 정도 고정해 두었다.

‘한마디로 킹 샌드 웜은 영원히 지그문트 사막에 묶여 있어야 할 존재지.’

하지만 미믹이라면 다르다.

미믹은 대상을 흉내 내는 것뿐.

본질 자체는 카이의 사랑스러운 펫.

이동의 자유에 구속되지 않는 존재였다.

“후, 후퇴…… 후퇴하라!”

미믹이 수로를 뚫고 나오자 불안함을 느낀 뮬딘 교의 군대가 서둘러 아이스 필드를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미믹이 뚫어놓은 굴.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는 수베르 운하의 물이 아니었으니까.

콰아아아아!

쏟아지는 물줄기로, 인간을 닮은 이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저게 뭐야…… 인간……?”

“아니, 하체가 지느러미잖아?”

“그 말은…….”

“인어?!”

입을 쩍 벌리며 당황하는 유저들!

뒤이어 호탕한 웃음소리가 전장에 널리 울려 퍼졌다.

“으하하하하! 나의 백성들이여! 영웅을 도와 추악한 뮬딘 교의 군대를 쓸어버려라!”

인어족의 왕.

카리우스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수베르 운하의 물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요동치던 물은 해일이 되어 아이스 필드를 건너던 뮬딘 교의 군대를 덮쳤다.

쩌저저적!

콰아아아아앙!

장난감처럼 조각나는 아이스 필드!

인어들은 각자의 무기를 빼든 채, 물에 빠진 뮬딘 교의 군대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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