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47화 (147/441)

# 147

힐통령 147화

57장 비르 평야 전투(4)

사람들은 항상 자연을 정복하고 싶어했다.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정복하고자 비행기를 만들었고,

밤이 내린 어둠을 정복하기 위해 전구가 만들어졌듯이.

하지만 세계의 그 어떤 기술력도 해일과 같은 자연 재해를 정복할 수는 없었다.

미드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꼬르륵!”

“어푸, 어푸!”

“커어억……!”

물에 빠진 뮬딘 교의 군대!

그 수만 물경 7천에 육박하는 대군이었다.

뮬딘 교 군대의 절반이 넘는 엄청난 물량은 운하에 빠져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버렸다.

“이거 원, 전쟁이라고 해서 나름 각오를 했건만…….”

“평소에 음식 구하러 다니던 것과 별반 차이도 없잖아?”

“아쿠아베라를 멸망시키려던 원흉!”

인어족의 전사들은 마법에 능수능란하며, 나가족에 대응하기 위해 검과 삼지창 등의 무기술 또한 연마했다.

전투력만큼은 발군이라는 뜻!

게다가 그들은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었으니, 뮬딘 교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조각난 아이스 필드 위에서 고군분투를 해보았지만, 인어들의 공격에 하나둘씩 물에 빠져 익사를 당하는 뮬딘 교의 군대!

그 모습을 조용히 관망하던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인종은 강해.’

엘프는 궁술과 정령술.

인어는 마법과 무기술.

인간들이라면 고작 하나 배우고 말법한 힘들을 두 개씩이나 배우고 있다.

그뿐인가? 인어들은 물속에서, 엘프들은 숲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아인종들과 친근한 관계를 맺은 건 정답이었어.’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10대 길드의 마스터들은 인어들의 활약에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

“설마…… 온다던 지원군이 인어족일 줄이야……!”

“인어족 녀석들, 말도 안 되게 강하잖아?”

“철혈 기사단, 엘프에 이어 인어족까지…… 대체 뭐 하는 놈이지?”

까면 깔수록 무언가 나오는 양파 같은 남자, 언노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발칸이 그에게 다가왔다.

“이제 인어들을 도와 운하의 적들을 처치하면 되는 건가?”

“아니요. 인어족 전사 800명이면 저들을 묶어두기엔 충분해요. 그러니…….”

척! 손을 들어올린 카이가 대교를 가리켰다.

“저희는 곧장 다리를 통해 건너편으로 건너가서 철혈 기사단과 합류합니다.”

본진 타격!

머리를 잃어버린 조직이 와해된다는 것은 전쟁의 기본적인 상식.

카이는 이 기세를 몰아 단숨에 주교를 처치할 심산이었다.

“과연, 물에 빠진 뮬딘 교의 군대를 인어들이 묶어두고…….”

“그사이에 본진을 공격한다.”

“심지어 이제 저쪽 본진의 숫자는 4천 정도밖에 안 돼.”

“반면 이쪽의 전력은 처음과 비슷하고…….”

“거기에 철혈 기사단까지 가세하면?”

할 수 있다!

카이는 이단심판관을 쓰러트려 아군의 사기를 북돋았다.

하지만 그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심어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행위!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은 다르다.

보이지 않던 승리가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카이는 힘차게 손을 들어 명령했다.

“전군, 다리를 건너 적 본진의 배후를 치십시오!”

철혈 기사단이 난리를 치고 있는 적의 본진은 그들에게 온통 신경을 쏟아붓는 상태.

그 와중에 엘프와 유저들의 군대가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자, 뮬딘 군은 크게 당황했다.

“주교님! 적들의 군세가 다리를 건너 저희의 배후를 노리는 중입니다!”

“뭣이……?! 그럴 리가! 그들을 상대하던 아군은 모두 어디로 갔느냐!”

“그들은 인어들의 술수에 걸려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이런…… 수치스러운!”

전략적으로 패배를 당하다니!

지휘관의 역량이 적에게 압도당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주교의 입장에서는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아랫입술을 꽉 깨문 주교에게 세 명의 이단심판관들이 다가왔다.

“주교님! 상황이 너무 불리합니다!”

“결단을 내리셔야 할 시기입니다.”

“어서 지시를!”

퇴각이냐, 강행돌파냐.

선택의 기로에 선 주교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패잔병 따위가되어 본교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아군에게 명한다. 어둠의 정수를 복용하라!”

어둠의 정수.

복용하면 이지가 상실되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대신 압도적인 힘을 얻게 되는 물건!

주교는 아군에게 그러한 정수를 복용할 것을 요구했다.

일반인들이라면 당연히 미친 거 아니냐고 소리치며 거절하겠지만…….

“뮬딘 교의 앞날에 영광 있으라!”

“뮬딘 교의 앞날에 영광 있으라!”

이들은 철저한 사이비 광신도들!

자신의 이지가 파괴되건 말건, 주교의 명이 떨어지자 4천여 명의 군세는 모조리 어둠의 정수를 제 입에 털어 넣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

“꺼…… 커어억!”

“뮤, 뮬딘께서…… 오신다. 나에게 오셔!”

“크…… 크르르!”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의 눈이 뒤집어지며 흰자가 드러났다.

철혈 기사단이 이변을 느낀 것도 그때쯤.

바체는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이는 적들을 베어 넘기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보고서에 쓰여 있던 어둠의 정수를 복용한 몬스터들의 증상과 비슷하다.’

이성을 잃고, 고통도 쉽게 느끼지 못하며, 막강한 힘을 얻게 되는 금단의 술법!

마찬가지로 이상함을 감지한 철혈 기사단들이 바체의 곁으로 황급히 모여들었다.

“단장님. 이 녀석들 뭔가 이상합니다.”

“갑자기 강해졌어요. 게다가 제 몸을 아끼지 않고 공격만 퍼붓는 저 모습은…….”

“어둠의 정수. 그것을 복용한 것 같군.”

바체의 빠르고 정확한 진찰에 정의로운 기사들은 분노했다.

“설마 아군에게 그 저주받은 힘을 복용시켰단 겁니까?”

“이 잔악무도한……!”

“잊지 마라.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이들은 뮬딘 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신을 믿는 광신도 집단이다.”

옅은 한숨을 내쉬는 바체에게 카이와 군대가 다가왔다.

“바체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옹기종기 모여 뒤로 물러나있는 기사단을 쳐다본 카이가 물었다.

“적들이 어둠의 정수를 복용했다. 힘이 압도적으로 강해졌어.”

“어둠의 정수……!”

“설마? 저들 모두가 그걸 먹었단 말입니까?”

“지금까지 그걸 먹고 정신을 유지했던 이는 약탈자들의 왕, 베이거스 밖에 없었는데…….”

그건 길드 마스터들조차 깜짝 놀랄 정도의 소식이었다.

그들도 모두 어둠 추적자에 소속되어 다들 어둠의 정수 한두 개씩은 모아봤던 이들.

이를 복용한 몬스터들이 얼마나 포악하고 사나워지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음…….”

가만히 적들을 살펴보던 카이가 입을 열었다.

“바체님. 어둠의 정수를 복용한 이들은 이지를 상실하는 것 맞죠?”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그런데 뮬딘 교에서는 어떻게 저들을 통제할 수 있는 거죠?”

“아마 주교 때문이겠지. 저길 봐라.”

바체가 가리키는 곳에는 어둠의 힘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뮬딘 교 주교의 모습이 보였다.

“한 마디로 주교만 해치우면 오합지졸이라는 소리 아닙니까?”

“맞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지. 왜냐하면…….”

“주교를 지키는 군대가 너무 강력하니까. 맞습니까?”

“잘 아는군.”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바체는 카이를 쳐다봤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이 모험가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훨씬 밝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럼 주교는 저에게 맡겨주시고 철혈 기사단은 아군을 보호하면서 천천히 퇴각해 주세요. 피해만 최소화하시면 됩니다.”

“잠깐, 말했다시피 저들의 군대를 뚫고 주교만 상대하는 건 불가능…….”

“저에게 생각이 있습니다.”

짧게 대꾸한 카이는 곧장 수베르 운하 쪽으로 달려갔다.

“어디보자…….”

고개를 돌리며 무언가를 찾던 카이가 밝은 목소리로 손을 흔들었다.

“미믹! 이쪽!”

퉤에에에!

주인의 부름에 씹고 있던 암흑 사제를 그대로 뱉어내는 킹 샌드 웜!

카이는 가까이 다가오는 미믹의 거대한 입으로 들어가면서 명했다.

“미믹, 땅 좀 파자.”

***

덜덜덜.

덜덜덜.

뮬딘 교의 주교는 신경이 잔뜩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어둠의 정수를 복용하면 이지를 상실하게 돼. 내가 끊임없이 어둠의 힘을 뿜어내줘야만 저들이 내 명령을 듣는다.’

뮬딘 교의 오랜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람에게 어둠의 정수를 먹이는 건 불완전했다.

유일한 성공 사례였던 베이거스 때조차 사전에 다양한 준비를 하고, 개량된 어둠의 정수를 먹였기에 간신히 성공을 한 것이다.

덜덜덜.

덜덜덜.

‘하지만 이 강력한 군대와 함께라면 이 전장의 판도를 뒤집을 수도 있…… 아니, 근데 이 진동은 대체?’

주교는 아까부터 계속 발밑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인상을 찌푸렸다.

날카로운 신경 때문인지, 계속해서 거슬리는 진동!

“비르 평야의 지반이 약하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이런 때에 지진이라니…… 잠깐, 지진?”

무언가를 떠올린 주교의 눈이 의심에 잠겼다.

지금 느껴지는 진동이 아까 전 수베르 운하의 벽이 뚫릴 때 느끼던 것과 비슷했기 때문!

‘아니, 아까와는 다르다. 아까는 조금 더 약했지만…….’

지금은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

“설마……?!”

불길한 예감이 떠오른 순간, 주교가 딛고 있던 바닥이 그대로 무너졌다.

“크아아아아악!”

두 다리를 지탱할 땅이 사라지자 밑으로 추락하는 주교와 암흑 성기사들!

그들을 기다리는 건 딱딱한 땅이 아니었다.

“크윽…… 여긴?”

축축하고 미끌거리는 액체가 그들의 온몸을 뒤덮었다.

동시에 앞쪽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음성.

“으음. 역시 한 놈만 빼오는 건 힘드네. 킹 샌드 웜은 입이 너무 커.”

“네, 네 놈은?!”

정신을 차린 주교가 곧장 어둠의 힘을 끌어올렸다.

저 음성은 적군의 선봉에서 엘프와 철혈 기사단을 부리던 적장의 것!

주교의 음성이 암흑 성기사들을 일깨웠다.

“암흑 성기사들은 저 놈을 매우 쳐라!”

쇄애애액, 솨아아악!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심장과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두 자루의 검.

‘쉽지는 않겠어.’

하나도 아니고, 무려 네 명의 암흑 성기사들.

주교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할 정도니 정예 중의 정예 성기사!

실제로 그들의 레벨은 각각 300 정도로 결코 낮지 않았다.

‘이놈들만 잡으면…….’

주교는 자신의 손에 떨어진다!

몸을 가볍게 흔들어 이를 피해낸 카이의 손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서걱, 서걱!

그의 손에서 펼쳐진 섬광같은 일격!

한 번 기회를 잡은 카이의 공격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왼쪽 종아리, 오른쪽 어깨, 그리고 위쪽에서 정수리를? 뒤쪽에서는 내 아킬레스건을 노리는군!’

무술가들이 가끔씩 겪게 된다는, 모든 신경이 전투에만 쏠리는 경지.

무아지경(無我之境).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상태에 빠진 카이의 눈에는 적들의 공격이 훤히 들어다보였다.

당연히 눈에 보이는 공격을 맞아줄 카이가 아니었다.

스윽.

‘적들의 공격은 피하고.’

서걱!

‘내 공격은 맞춘다!’

단순하지만, 그 무엇보다 효과적인 전투 방법!

카이의 검은 잔잔한 소낙비처럼 적들의 방어구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낙비는 점점 굵은 빗줄기가 되더니, 이내 폭우가 되었다.

‘흐름이 이쪽으로 넘어왔다.’

콰드드득, 콰드득!

카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김없이 적들의 검은 허공을 갈랐다.

동시에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어김없이 격파되는 적들의 방어구!

콰지지지직!

카이의 검은 날카로운 검격이라 불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실제로 암흑 성기사들의 방어구는 검에 베였다기보다는, 찢겨나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

그 정도로 투박하고 거친 공격을 쉴 새 없이 휘두른 카이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전투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적의 모든 공격을 100회 이상 피해냈습니다.]

[전투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적의 급소를 100회 이상 공격하셨습니다.]

[여명의 검법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여명의 검법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여명의 검법 스킬의 랭크가 고급으로 상승했습니다.]

쿠우웅!

“허억, 허억…….”

마지막 성기사의 몸이 바닥에 쓰러져 폴리곤이 됨과 동시에 상승하는 스킬 숙련도.

중급 9레벨이던 여명의 검법 스킬이 드디어 고급이 된 것이었다.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던 카이가 자신의 두 손을 쳐다봤다.

‘……어떻게 싸웠더라?’

몽롱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정신없이 싸웠다.

자신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내가 이겼네.”

저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지는 상황에서, 주교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 말도 안 되는…… 어찌 모험가 따위가 암흑 성기사를 네 명이나……?”

믿겨지지 않는 상황에 주교가 고개를 흔들며 현실을 부정했다.

네 명의 암흑 성기사가 쓰러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4분 35초.

그의 상식선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거야.”

카이는 지친 몸을 이끌고 주교에게 다가갔다.

그가 피곤한 티를 팍팍 내자, 슬며시 자신감을 되찾은 주교가 입을 열었다.

“지쳐보이는군. 이교도 모험가여.”

“맞아. 조금 지쳤지.”

“그런 상태로 뮬딘 교의 주교인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오만이다.”

대꾸할 힘도 없는 카이는 지친 표정으로 주교를 쳐다봤다.

[뮬딘 교 주교 LV.427]

‘거, 레벨만 더럽게 높아가지고.’

물론 이 게임은 레벨이 깡패이고, 절대적인 것이 맞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상태가 주교를 상대할 수 없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난 혼자서 상대하겠다고 한 적 없는데.”

“뭐, 뭐라고?”

툭툭.

카이가 미믹의 혓바닥을 발로 차자, 미믹이 그 거대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당연히 철혈의 기사단이 위치한 본진.

“이런 비겁한!”

상황을 파악한 주교가 공격을 퍼부었으나, 카이는 그 공격들을 모조리 맞으면서 버텨냈다.

“햇살의 따스함, 햇살의 따스함.”

이윽고 미믹이 멈췄을 때, 카이는 싱긋 웃으며 작별을 선고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셨습니다. 목적지는 지옥, 지옥입니다.”

전쟁의 끝을 알리는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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