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51화 (151/441)

# 151

힐통령 151화

58장 전쟁이 끝나고(4)

제트와 그랑은 생각보다 빠르게 충격에서 헤어나왔다.

“비켜, 이 새끼들아!”

“소환수 주제에 감히!”

콰득!

과연 스스로가 고수라고 지칭할 정도의 실력자들.

블리자드와 미믹을 쉽게 떨쳐낸 이들은 뒤를 경계하면서도 언노운을 노려봤다.

‘언노운…….’

‘최근 미드 온라인에서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

그 명성이 주는 위압감에 침을 꿀꺽 삼킨 제트가 물었다.

“언노운이 언제부터 정의의 용사 흉내를 내기 시작했지?”

그 질문에 카이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졌다.

“정의의 용사라니? 말했잖아. 그냥 선약이 있을 뿐이라고. 비켜.”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카이의 검집에서 검이 뽑혀져 나왔다.

뽑는 것과 동시에 휘둘러지는 깔끔한 발도.

촤아아아악!

두 사람의 가슴을 크게 베고 지나간 검은 소기의 목적을 완수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속도는 가히 제트와 그랑이 쉽게 반응을 하지 못할 정도.

‘빠, 빠르다!’

‘공격력도…… 젠장, 강해!’

직접 상대하는 언노운의 검은 영상에서 보던 것보다 몇 배나 더 빠르게 느껴졌다.

“……좋네.”

카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고급 여명의 검법 스킬. 확실히 좋아.’

카이는 이번 전쟁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 올라선 검법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고급 여명의 검법 LV.1 Passive.]

등급 : 유니크

검으로 공격할 시 적에게 공격력의 300% 데미지를 준다.

적을 공격할 시 신성 스탯에 비례한 추가 신성 피해를 준다.

적을 공격할 때마다 일정량의 신성력을 회복한다.

숙련도 0/100

처음 후이 관장에게 전수 받을 때만해도 노말 등급이던 스킬이었다.

하지만 아쿠에리아에서 중급 랭크로 올랐을 때 레어 등급이 되었고,

이번 전쟁을 통해 고급 랭크로 올라선 검법은 유니크 등급의 스킬이 되었다.

‘효과는 발군.’

적을 공격할 때마다 터지는 추가 신성 피해는 뮬딘 교를 상대할 때도 그 효과가 두드러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성력 회복도 장난 아니잖아?’

한 번 공격할 때마다 신성력은 최소 500씩 차올랐다.

‘안 그래도 최근 신성력이 부족한 것을 느껴서 신성력 스탯에도 신경을 많이 썼었는데…….’

이건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준 격!

마르지 않는 신성력은 카이의 전투력을 몇 배나 상승시켜줄 것이 분명했다.

“이런, 40초 남았네.”

약속 시간을 확인한 카이는 여유롭게 걸어 나가며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비키라는 경고는 두 번이나 했어. 이제 경고는 없다.”

***

‘괴, 굉장하다!’

아리스는 눈앞의 사제가 펼친 검무에 정신이 쏘옥 빠졌다.

처음 사제복을 입은 유저가 등장할 때만해도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설마 언노운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황급히 정신을 차린 아리스는 언노운에게 달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굳이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한 제 잘못이죠.”

부드러운 언노운의 음성.

틀림없이 차갑고 강렬한 이미지일 것이라는 편견이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었다.

언노운이 손을 뻗어 악수를 요청했다.

“연락이 많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카이라고 합니다.”

“아, 아리스예요! 연락을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죠. 그런데 카이라면……?”

아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닉네임.

잠시 눈만 깜빡이던 그녀의 동공이 휘둥그레졌다.

“서, 설마 현재 레벨 랭킹 1위이신 그 카이 님?!”

“하하하…….”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카이.

이에 아리스는 다시 한 번 큰 충격을 받으며 입을 멍하니 벌렸다.

‘대, 대박이다. 이건 대박 특종이야.’

설마 언노운의 플레이어 닉네임이 카이였을 줄이야!

커뮤니티에서도 몇 차례 그런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물증이 없어서 빠르게 사그라든 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현재 미드 온라인 랭킹 1위.

더불어 최근 미드 온라인에서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

하나만 거머쥐고 있어도 칭송받을 타이틀을 이 남자는 양손에 쥐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야…….’

아리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제가 옛날에 프리카 마을이라는 곳을 방문했었는데요. 그곳 주민들은 마을의 영웅을 카이라고 부르시던데…… 혹시 무언가 관련이라도……?”

“그거 저 맞습니다. 글렌데일과 화이트홀의 성자도 마찬가지구요.”

듣는 이로 하여금 속이 시원해지는 대답!

최근들어 유저들이 그토록 궁금해하던 질문의 답을 얻은 아리스가 활짝 웃었다.

‘언노운은 인성도 매우 훌륭한 유저였어!’

그게 아니라면 성자 칭호 두 개에, 영웅 칭호 하나를 획득할 리가 없지 않은가!

생각을 정리한 아리스는 이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대답해주셔서 감사해요! 정정 보도는 빠른 시간 내에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정정 보도라니요?”

“아참,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제가 예전에 카이 님에 대한 영상을 찍었는데, 프리카의 사제님들은 카이 님이 사제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제 팬들은 카이 님을 사제인 줄 알아요.”

“아하. 사실 이번에 인터뷰를 요청한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는데…….”

“네네, 카이 님의 심정은 잘 알겠어요.”

한 쪽 눈을 찡그리며 윙크를 건넨 아리스가 말을 이었다.

“그 후에 성기사 히든 클래스로 전직하신 거죠? 그런데 지금은 다들 카이 님이 사제라고 하셔서 애매하신 상황이신 거고.”

“……예?”

“그 부분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저 아리스.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몇몇 기레기랍니다. 심지어 그 사람들은 정보가 잘못된 것을 알아도 사과를 안 한다니까요? 전 절대 그런 짓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

“성기사라고 성자 칭호 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제가 사람들의 오해를 꼭 바로 잡아드릴게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드럼을 친 뒤 꽹가리까지 치기 시작한 아리스!

하지만 그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는 흥미로움을 느꼈다.

‘잠깐. 이거 그냥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빠르게 눈을 깜빡거리는 카이의 두뇌는 맹렬한 속도로 돌아갔다.

‘가만히 있으면 아리스가 내가 사제가 아니라고 해명 방송을 해줄 테고…….’

그럼 이번 인터뷰를 통해 공개되는 건, 카이가 언노운이라는 사실뿐이다.

‘결과적으로 카이는 버그 플레이어라는 오명을 벗게 되는 거고…… 언노운은 히든 클래스 성기사가 되는 거지. 게다가 얻어걸린 것이지만…… 복선도 깔아뒀잖아?’

전쟁이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언노운이 카이라는 사실을 밝힐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던 때,

카이는 길드 마스터들에게 자신의 직업이 광휘의 성기사라는 거짓 정보를 건넸다.

‘만약 이번에 아리스에게도 같은 정보를 건넨다면?’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호랑이를 봤다고 거짓말을 하면 아무도 믿지 않지만,

그 숫자가 두 명, 세 명이 되면 주변 사람들이 믿기 시작한다는 사자성어이다.

한 마디로 거짓을 부르짖는 이가 많을수록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쉽다는 뜻.

‘아리스의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이 거짓 정보를 퍼트리기 시작한다면?’

거짓도 진실로 만들 수가 있다.

그것이 바로 매스컴의 무서운 점!

가볍게 두뇌를 한 차례 돌린 카이가 빙그레 웃었다.

“예. 아참. 광휘의 성기사라는 정보는 드릴게요. 공개하셔도 됩니다.”

“저, 정말이신가요?”

“그럼요. 제 인터뷰를 해주시는 분인데 이 정도 소스야 당연히 드려야죠.”

“가, 감사합니다! 소문과는 달리 천사 같으세요!”

“그런 말 자주 들어요. 하하하.”

인터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아리스는 해야 할 질문과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을 정확히 구별할 수 있는 프로였고,

그 덕분에 카이도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할 수 있었다.

“감사해요! 편집 끝나면 바로 제 채널에 올리고 말씀드릴게요!”

“예.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네네. 수고하셨어요!”

영상을 편집할 생각에 잔뜩 신난 아리스가 사냥터를 떠나자.

홀로 남은 카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일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풀렸어.’

결과적으로 언노운이라는 가면의 의미는 크게 퇴색되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아쉽지는 않았다.

‘그저 새로운 가면으로 바꿔낀 것뿐이니까.’

언노운에서 광휘의 성기사라는 가면으로 바뀐 것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가 베일에 쌓여있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후우. 이제 하나만 더 끝내면 내 땅으로 갈 수 있는 건가.”

머리를 벅벅 긁은 카이는 커뮤니티의 쪽지함을 열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세계의 방송국들이 보낸 쪽지들.

“흠.”

심드렁한 콧김을 내뿜은 카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까짓것, 경매 한 번 더 하지 뭐.”

***

경매는 적보다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할 수 있어야 이길 수 있는 치열한 전장이다.

하지만 그건 경매에 참가하는 이들이나 그렇지, 판매자는 다르다.

“그냥 승리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끝이지, 뭐.”

한정우가 경매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는 방송국들과 약속을 잡았다.

그것도 무려 국내의 일곱 개 방송국과 한 번에.

‘물론 조건 자체는 시장이 큰 해외 쪽이 훨씬 좋았지만…….’

간이든 쓸개든 빼줄 것 같이 굽실거리는 국내 방송사와는 다르게, 세계적인 방송국들은 자존심이 높았다.

물론 그 자존심을 뒷받침해 줄 돈도 함께였지만, 그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필요한 건 내 조건을 받아줄 수 있는 방송국이지.’

세계의 방송국들은 한정우의 조건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세계 최고라는 자존심이 그들의 발목을 묶고 있었으니까.

‘뭐, 그만큼 간절하지 않다는 뜻 아니겠어?’

때문에 한정우는 말 잘 듣는 국내 방송국들을 상대로 거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속보! 언노운, 미드 온라인 최초의 전쟁 영상을 한국과 독점 계약 추진 중.]

[언노운, 그의 국적은?]

[최초의 전쟁이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방송국 관계자에 의하면, 계약 장소는 천화 호텔의 컨벤션 홀.]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기사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한정우는 입을 열었다.

“얼마예요?”

“7,100원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럼 안전 운전하세요.”

택시비를 지불하고 도로로 나온 한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 사람들하고는…….”

번쩍! 번쩍!

“어! 저기 TBC 방송국 EP다!”

“언노운이 TBC랑 계약하는 건가?!”

“어? 잠깐만. 저기 NET미디어 EP도 오는데?”

“응? 온게임즈는 아예 국장도 같이 왔잖아……?”

속속들이 호텔 내부로 들어가는 방송 관계자들의 모습에 기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화 그룹의 경호원들에게 막혀 입구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기자들은 연신 카메라의 셔터만 눌렀다.

찰칵, 찰칵!

“일단 찍을 수 있는 거 전부 찍어! 그래야 나중에 확정 기사 나오면 사진 하나라도 건지지!”

“방송국 EP들 위주로 찍어! 계약 따내는 건 그치들 몫이니까.”

그러기를 잠시.

훤칠한 청년 하나가 기자들 사이를 끼어들면서 연신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죄송합니다. 저 호텔에 좀 들어가야 해서…….”

“아, 거 밀지 마요! 당신 기자 아니야?”

“아닙니다. 좀 지나갈게요.”

기자들의 벽을 겨우 뚫고 나온 청년은 십년감수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호텔 내부로 들어갔다.

“방금 지나간 녀석 배우나 모델인가?”

“뭐? 나도 언뜻 보긴 했는데. 그렇게 잘 생기진 않았었잖아? 몸은 제법 좋았지만.”

“그건 그런데…… 뭐라고 해야 되나. 위엄? 그런 게 느껴졌어. 배우나 모델들이 그런 분위기 잘 잡잖아?”

“에이, 난 또 뭐라고. 나도 똥 마려울 때 거울 보면 엄청 위엄 있어 보여.”

“지랄은.”

“크큭. 그나저나 언노운으로 추정되는 놈은 왜 하나도 없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호텔의 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은 하염없이 언노운만 기다렸다.

***

“후우, 무슨 기자들이 저리 많아.”

커뮤니티 댓글을 보면서 느끼는 인기와, 실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실감하는 인기.

그 둘의 차이는 컸다.

그 사실을 깨닫고 살짝 긴장한 한정우는 엘리베이터 내부의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잘할 수 있어. 피도 눈물도 없는 언노운을 흉내…… 아니, 아니지.”

지이잉.

천천히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고개를 숙이며 그를 안내했다.

‘언노운을 흉내낸다? 그게 아니야. 내가 미믹도 아닌데 흉내를 왜 내겠어.’

끼이이익.

호텔의 VIP들만이 입장할 수 있는 컨벤션 홀이 열리자,

한정우는 당당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자신을 쳐다보는 십 수 쌍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한 한정우는 고개를 까딱였다.

천천히 열리는 그의 입에서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언노운입니다.”

단상에 서서 자기소개를 하는 남자는 더 이상 별볼일 없는 22살의 휴학생이 아니었다.

그는 미드 온라인 랭킹 1위의 절대자.

언노운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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