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54화 (154/441)

# 154

힐통령 154화

59장 오염된 땅(3)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 때는 언제일까.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왔을 때?

유치원에서 배운 율동과 노래를 불러줄 때?

카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고로 자식이 밥을 복스럽게 잘 먹고 진화를 목전에 두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지.”

흐뭇한 아빠 미소를 입가에 걸친 카이.

그의 옆에는 슬라임 형태의 미믹이 바닥을 뾸뾸 기어다니며 열심히 독연을 먹는 중이었다.

[흡수율 99.4%……]

조그마한 미믹을 데리고 그 넓은 땅을 모두 돌아다니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었다.

심지어 독기가 강한 지역에 도달하면 미믹은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독을 흡수하기도 했으니까.

‘벌써 보름이 넘었나…….’

카이는 3주 동안 오염된 지역 중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곡식이 자라기 좋은 평야와 건물을 세우기 좋은 단단한 땅에 이어,

지금은 죽어버렸지만 자신이 곧 살릴 숲. 심지어 오염된 바닷속까지!

그 모든 곳을 미믹과 함께 돌아다닌 카이는 곧 다가올 노동의 해방에 미소를 지었다.

그 노동이란 건…….

-카이 님. 너무 지루한데 체란티아 님 좀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하시는 일 방해 안 하고 둘이서 조용히 대화만 할게요.

“두 분이서 조용히 대화하는 건 불가능이니 기각하겠습니다.”

-정말이에요. 저는 초대 태양의 사제이자 교황이었단 말이에요. 왜 저를 못 믿으시나요?

“…….”

바로 지난 보름 동안 시미즈가 따라다녔다는 것이다.

‘아니, 예전에 하녹스의 시련에 있을 땐 금세 사라졌잖아. 이번엔 왜 이렇게 오래 따라다녀?’

그 이유에 대해선 시미즈가 설명해주었다.

-카이 님이 저에게 오염된 대지에 대해 물어보셨잖아요. 이 일이 무사히 마무리되기 전까지, 저는 아마 카이 님을 쫓아다닐 거예요.

“……이럴 수가.”

자신의 일이 끝나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고 따라다니는 사념이라니!

‘앞으로는 정말 뭐 간단한 거 물어볼 때만 불러야지.’

오염된 몬스터들을 잡는 것보다, 시미즈의 말 상대가 되어주는 게 더 피곤할 정도였다.

카이가 그 고통에서 해방된 건 몇 시간 이후의 일이였다.

[미믹이 푸른 역병의 흡수를 완료했습니다.]

[미믹이 푸른 역병의 힘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대의 오염된 대지가 완벽하게 정화되었습니다. 이 땅 위에는 다시금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 미믹! 드디어 다 먹었구나!”

자랑스러운 미믹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은 카이는 녀석을 역소환했다.

“고생했으니 편히 쉬고 있어.”

미소를 지은 카이는 곧장 미믹의 스킬 목록을 확인했다.

그러자 확실히 등록되어 있는 푸른 역병 스킬이 눈에 들어왔다.

‘미믹까지 푸른 역병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니. 이건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야.’

게다가 스킬 설명을 읽어보니, 미믹은 자신처럼 몬스터들을 잡아 기운을 모을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푸른 역병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어. 마치 예전의 아오사처럼 말이지.’

애초에 미믹은 아오사의 근원을 담당하던 핵이었다.

한 마디로 아오사 때 사용하던 기술을 사용하지 못할 리가 없다는 뜻.

‘그럼…… 레벨이 오르게 되면 아오사처럼 거대해질 수도 있으려나?’

정말 그렇게 된다면 무서울 것이 없을 터.

기분 좋은 상상을 마친 카이는 현실적인 문제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문제는…….”

-남아있는 오염된 몬스터들이겠네요. 푸른 역병이 없어진 지금, 대지와 바다는 자정작용에 의해 깨끗함을 되찾아갈 거예요.

시미즈의 말에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죠. 오염된 몬스터들이 문제인데…… 사실 그것도 지난 보름 동안 대충 생각을 해봤어요.”

-아직 이 땅을 돌아다니는 오염된 몬스터들의 숫자는 수만 마리가 넘어요.

“예. 많죠. 정말이지 미치도록 많이 남았어요.”

하지만 카이는 울상을 짓는 대신, 미소를 지었다.

‘엘프와 인어들을 끌어와 이곳에 도시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유저들도 모여들겠지.’

하지만 유저들은 기본적으로 강해지기를 원하는 자들.

엘프와 인어들이 신기하기는 해도, 방문 목적이 그것이 전부라면 금세 질릴 것이다.

‘그렇다면 만들어줘야지. 새로운 방문 목적을.’

때문에 카이가 구상한 것은 바로 오염된 몬스터들이었다.

최소 레벨 290부터 340까지 골고루 등장하는 오염된 몬스터!

‘랭커들에게 있어선 최고의 사냥터라고 할 수 있지.’

한 마디로 현존하는 최고 수준의 사냥터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전에는 푸른 역병 때문에 사냥이 불가능했다면, 지금은 달랐다.

‘미믹은 모든 역병을 흡수했어. 나 같은 포이즌 마스터가 아니더라도 일반 유저들이 사냥을 하는 건 가능해.’

랭커들에게 소문을 뿌려 이곳의 사냥터가 좋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카이의 목적!

‘랭커들이 많이 방문하게 되면 지역 상권은 자연스럽게 살아나지.’

그들은 돈 몇 푼을 아끼는 것보다 시간을 아끼는 것을 선호했다.

한 마디로 가격이 조금 비싸도 가까운 마을에서 모든 것을 구입한다는 뜻.

‘이 정도 장치만 마련해 주면 엘프와 인어들이 인간과 무리 없이 섞일 수 있을 거야.’

흐뭇한 표정을 지은 카이는 곧장 엘프의 숲으로 달려갔다.

[벗이여. 그 말이 사실인가? 숲과 바다가 있고, 질 좋은 광석까지 있는 땅이라고?]

“사실이야. 다만, 숲의 경우에는 오염의 정도가 조금 심한데…….”

[후후. 나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닌가? 나는 세계수. 자연의 수호자이자 엘프들의 어버이. 오염된 숲 하나쯤을 정화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그럼 엘프들의 이주는 언제쯤 할 수 있지?”

[당장이라도 가능하네만…… 아무래도 준비가 필요하겠지.]

“준비? 무슨 준비가 필요…….”

[거리가 무척이나 멀지 않나. 그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당연히 철저하게 식량을 준비해야…….]

“아, 그 부분은 라시온 왕국의 마탑 중 한 곳의 도움을 받으라고 폐하께서 손을 써주셨어.”

카이는 베오르크에게 적탑의 도움을 받을 권한을 부여받았다.

한마디로 텔레포트 마법을 통해 엘프들을 모두 새로운 땅으로 이주시킬 수 있다는 뜻!

[오오, 그것이 정녕 사실인가? 그렇다면 더 이상 꾸물거릴 이유는 없지.]

루테리아의 명령이 떨어지자 엘프들은 두말 않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사악한 뮬딘 교를 끝내는 날. 이 숲으로 다시 돌아오리…….]

루테리아의 각오가 서린 목소리와 함께 엘프들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인어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흠. 바다로 연결된 곳이라면, 우린 세계의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있지.”

오히려 인어들의 이동은 엘프들보다도 손쉬웠다.

그들의 왕국을 짊어지고 있는 거북이, 타루타루는 매우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이곳이 우리가 새롭게 살아갈 터전인가.]

“으음, 아직 완벽하게 정화가 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괜찮군.”

[그 부분은 내가 도와줄 수 있다네. 인어들의 왕이여.]

“이거, 세계수님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음. 많이 컸구나.]

오랜만에 해후를 나누는 두 종족!

그 모습을 감동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던 카이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궁금한 점이라도?

“…….”

많다.

무지막지하게 많다.

카이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시미즈를 향해 물었다.

“저기…… 왜 안 사라져요?”

-해드릴 말이 있어서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에요.

“아니, 그거 버틸 수도 있는 거예요?!”

충격적인 발언에 황당한 표정을 지은 카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 좋습니다. 할 말이라는 건 뭐예요?”

-태양교의 본단을 방문하실 생각이지요?

“네. 사도의 진정한 힘을 계승하려면 어쩔 수 없이 가야죠.

-조심하세요.

목덜미에 날붙이라도 들이민 것 같은 시미즈의 차가운 경고.

이에 카이는 눈매를 좁히며 되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3대 사도인 패트릭이 왜 성물을 본단에 맡기지 않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패트릭이 성물을 아인종들에게 맡긴 이유라…….”

이유라고 해봐야 더 있을까.

“신뢰할 수가 없어서겠죠.”

-맞아요. 신뢰. 카이 님이 그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흠. 신을 믿는 이들이라고 해서 전부 청렴결백한 건 아닌가 봐요?”

그 질문에 시미즈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예요. 특히 빛이 더 밝아질수록 그림자는 짙어지죠.

“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이 존재하는 곳. 태양교의 본단도 같은 이치군요.”

카이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무운을 빌어요.

그 말을 끝으로 반투명했던 시미즈의 모습이 점점 더 옅어져 갔다.

카이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시미즈.

그 모습을 쳐다보던 카이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부르면 또 나올 거면서 왜 그래요?”

-이 쪽이 더 기억에 남고 슬픈 이별일테니 자주 불러주겠지요.

“…….”

대체 천국이라는 곳은 얼마나 심심한 곳이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카이에게 인어들의 왕, 카리우스와 엘프들의 여왕 엘라니아가 다가왔다.

“누구와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 건가?”

“음? 카이 님은 혼자 계시지 않았나요?”

다른 사람의 눈에는 시미즈의 사념이 보이지 않는다.

카이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 싫었기에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땅은 마음에 드십니까?”

“네. 루테리아 님의 힘으로 숲은 빠르게 정상화가 되고 있어요. 다들 엘프들도 새로운 터전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일세. 이쪽 바다에는 식량이 아주 풍부하군. 아마 오랜 시간 동안 주변에 포식자들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카이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엘프와 인어. 두 일족이 모여서 생활하시면 뮬딘 교의 침공을 더욱 수월하게 방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모험가들도 꾸준히 이곳을 방문할 테고, 원하시면 라시온 왕국에서도 지원병을 파견해 준다고 하니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아니에요. 이런 땅에서 살 수 있게 되었는데, 당연히 치안 정도는 스스로 지켜야죠.”

“음. 우리는 뭍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야 없겠지만, 바다 쪽의 보안만큼은 철통같이 막을 수 있네.”

“예. 그럼 제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카이가 작별의 인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제는 태양교의 본단으로 떠나야 할 때.

‘그런데…….’

카리우스와 엘라니아, 그리고 그녀의 어깨 위에 탄 루테리아의 표정이 이상하다.

어색한 공기 속에서 카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그러자 오히려 그 질문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세 사람.

“아니…… 자네 어디가나? 이 도시의 영주를 맡는 게 아니었나?”

“당연히 카이 님이 해주신다고 생각했는데요…….”

[벗이여. 이들이 자네와 대화를 잘 한다고 하지만, 인간과 수십 년 동안 교류를 하지 못한 엘프, 인어들이라는 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네. 인간과 아인종. 중간 지점에서 그들을 이어줄 존재가 필요해.]

“…….”

평소보다 한 박자가 늦게 돌아가는 머리.

이윽고 저들의 말뜻을 이해했을 때, 카이가 깜짝 놀란 음성으로 소리쳤다.

“자, 잠깐만요! 그럼 지금 저보고 이 도시의 영주가 되어달라는 말이십니까?”

“바로 그 말일세.”

[자네야말로 그 역할에 어울리지.]

“아니, 저는 한 번도 누군가를 이끌어본 적이…….”

[무슨 말을 그리 섭하게 하는가?]

루테리아가 조그맣고 가느다란 줄기를 뻗어 카이의 머리를 토닥였다.

[벗이여. 그대는 엘프와 인어들을 훌륭하게 이끌어 뮬딘 교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네.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했을 뿐, 많은 이들을 이끌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네, 그대는.]

“하지만…….”

말을 이으려던 카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루테리아와 엘라니아, 카리우스의 눈빛은 그의 입을 다물게 할 정도로 진지했으니까.

결국 잠시 후, 카이는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저를 믿으실 수 있으세요?”

[허허, 벗이여. 신뢰감이 없는 이에게 자식들의 운명을 맡기는 어버이는 없다네. 나는 자네를 진작부터 믿고 있었어.]

“인어들도 마찬가지야. 자네는 우리 일족이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유일하게 손을 뻗어준 자. 이런 사람을 믿지 못한다면, 세상에 믿을 사람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겠지.”

“…….”

그들의 진심 어린 응원과 아낌없는 신뢰에 카이는 목이 매는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진심으로 대했던 이들이 진심으로 부딪쳐 올 때 느껴지는 진한 감동.

그 짙은 여운을 느끼던 카이는 그들을 차례대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영주가 되겠습니다.”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

띠링!

[플레이어 중 최초로 영주가 되었습니다.]

[스페셜 칭호, ‘최초의 영주’를 획득했습니다.]

[엘프, 인어 족과의 호감도가 최대치를 갱신했습니다.]

[인간과 엘프, 인어. 종족을 초월한 짙은 유대 관계에 헬릭이 눈시울을 붉힙니다.]

[선행 스탯이 10 증가했습니다.]

[영주 전용의 영지 관리창이 개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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