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힐통령 160화
61장 전직, 태양의 사제!(1)
화아아아악!
카이의 양손에 머물러있던 신성력은 천천히 알버트의 몸으로 옮겨져 갔다.
“햇살의 따스함.”
차분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특유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카이의 목소리.
알버트 교황은 자신의 몸으로 물밀 듯 들어오는 신성력에 눈을 크게 떴다.
‘이…… 이렇게 순도 높은 신성력이라니……?’
교황인 자신과도 비교될 정도로 순수한 신성력.
게다가 신성력이 몸의 구석구석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헬릭의 자비가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점은…….
‘고통이…… 점점 사라져 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신성력이 스쳐 지나가면 어김없이 고통이 사라지고, 포근한 기분만이 자리했다.
마치 몸 안에 퍼져 있는 바이러스를 극상성의 백신이 사냥하는 듯한 느낌.
카이가 알버트를 치료하는 장면을 쳐다보던 모라크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큭. 어리석은 녀석. 네깟 놈이 정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알버트 교황이 진즉에 스스로 정화를 했을 것이다. 어둠의 정수는 천 년 역사의 뮬딘 교가 자랑하는 신의 힘 그 자체…….”
하지만 알버트 교황의 안색이 점점 편안해지자, 모라크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이상하군. 왜 아까처럼 비명을 지르지 않지? 저렇게 편안한 표정을 내보일 수 없을 텐데?’
알버트의 피부 위로 툭툭 불거져 있던 핏줄은 아기의 그것처럼 잠잠해진 지 오래!
심지어 피부마저 살짝 뽀송뽀송해진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럴 리가 없다. 설마 저걸 정화할 수 있을 리는 없겠지.”
그러나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모라크는 조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굳이 기회를 줄 필요는 없겠지. 지금 놈은 무방비 상태다! 공격해!”
그 명령에 수십의 암흑 성기사들이 검을 뽑으며 카이에게 달려들었다.
“크르륵!”
“뀨오오오!”
물론 그 모습을 지켜볼 블리자드와 미믹이 아니었다.
미믹은 그 거대한 몸을 눕혀 카이와 알버트를 보호하는 벽을 만들었고, 블리자드는 두 자루의 곡도를 길게 늘어트리며 그 앞을 막아섰다.
“블랙 리자드맨…… 그래. 기억에 있는 놈이군.”
모라크는 한 때 실험 대상이었던 블리자드를 쳐다보며 경멸의 눈빛을 드러냈다.
“고작 실험이나 당하던 쓰레기 따위가…… 감히 교단의 성기사들을 막아선다는 건가?”
분노한 모라크가 날카로운 음성을 뱉어냈다.
“죽여라! 그리고 알버트 교황의 신변을 확보해!”
블리자드의 현재 레벨은 230.
유저들과 비교했을 때도 절대 낮은 레벨은 아니었지만, 수십의 성기사들을 상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레벨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리자드맨 일족의 차기 우두머리가 될 자질이 있었던 녀석.
자신을 둘러싼 뮬딘 교 성기사들을 상대로도, 블리자드는 허리와 목, 어깨를 빳빳하게 세웠다.
“크르륵.”
올 테면 와봐라.
블리자드의 이글거리는 두 눈동자가 그렇게 외치는 듯했다.
물론 그 오만한 눈빛을 마주보는 암흑 성기사들의 기분은 결코 좋지 못했다.
“이런 건방진…….”
“실험체 주제에 감히!”
”말도 못하는 미물 따위가!”
빛살처럼 튀어나온 다섯 명의 암흑 성기사가 검을 내질렀다.
각각 블리자드의 몸을 가로와 세로로 일도양단 할 수 있는 강력한 공격.
블리자드가 쥐고 있는 두 자루의 곡도는 마치 미끄럼틀처럼 그 공격들을 흘려보냈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정면으로 맞서면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싸움꾼인 리자드맨이…….’
‘정면승부를 피하고, 방어적으로 대처한다고?’
그것도 블리자드는 리자드맨 일족의 전사장을 맡고 있던 존재.
그 자존심이 높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녀석이었다.
하지만 지금 녀석은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카이를 지키기 위하는 것에만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암흑 성기사들이 서로 눈웃음을 주고받았다.
‘블랙 리자드맨이 이렇게 싸운다는 것 의외지만…….’
‘소극적으로 나와준다면 오히려 이쪽의 선택지가 많아지지.’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다.’
까앙! 까앙!
암흑 성기사 다섯 명은 마치 오각형을 이루듯 블리자드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공격을 날렸다.
블리자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직 두 자루의 곡도로.
그리고 그것으로도 못 막은 공격은 몸으로 버티는 것.
“크르륵……!”
블리자드는 아오사와의 일전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주인이 앞으로 설 전장에서, 자신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블리자드는 생각했다.
스르르릉!
곡도의 휘어진 검날 부분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흘리고.
휘이이익!
자신의 기민한 몸놀림으로 적의 공격을 회피하고.
“크륵.”
콰드드득!
“크아아악!”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작은 빈틈을 내보이면, 그 부분을 집요하게 물어뜯자고.
그것이 자신의 주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콰드득, 콰득!
“커, 커어억…….”
블리자드의 두 자루 곡도는 암흑 성기사 하나의 목덜미를 완벽하게 파고들었다.
마치 가위질을 하는 것처럼, 내부에서 만난 두 자루의 곡도.
블리자드가 호전적인 전투 패턴을 버리고, 방어라는 개념을 깨달으며 손에 넣은 전투법.
그것은 바로 카운터(Counter)였다.
***
알버트 교황의 안색은 더할나위 없이 좋아보였다.
최고급 안마사의 안마를 받은 뒤, 온천에 들어갔다 나온다면 이런 표정일까.
“……고맙네. 정말 고마워.”
알버트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두 손이 카이의 오른손을 덮었다.
“아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 그, 울지 마시지요.”
당황한 카이는 눈물을 흘리는 알버트를 상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크으음. 그래. 내가 젊은이를 상대로 너무 추태를 부렸군.”
눈을 질끈 감으며 마지막 눈물을 흘려보낸 알버트는 단단한 눈빛을 드러내며 카이를 마주보았다.
“나의 이름은 알버트. 태양교의 32대 교황이라는 과분한 직책을 맡고 있는 늙은이일세. 실례가 안된다면 은인의 이름을 들어볼 수 있겠는가?”
“제 이름은 카이입니다.”
“그렇군. 카이. 정말 고맙네만 이야기는 나중에 하세. 지금은 뮬딘 교의 잔당들을 몰아내는 것이 더 시급한 상황이야.”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금방 해치우고 오겠습니다.”
카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알버트 교황이 그를 멈춰 세웠다.
“잠깐! 자네에게 축복을 걸어주겠네.”
이윽고 알버트 교황의 버프가 카이의 몸을 휘감았다.
[모든 스탯이 50만큼 상승합니다.]
[모든 속도가 30% 빨라집니다.]
[받는 피해가 30% 줄어듭니다.]
“…….”
태양의 사제와 비교해도 우위를 점할 정도의, 교황 표 버프!
게다가 그가 걸어준 스킬들은 모두 사제의 기본 스킬들이었다.
‘그런데도 효과가 이 정도라니…….’
카이가 혀를 내두르려는 찰나, 교황이 그에게 마지막 버프를 시전했다.
“어둠을 꿰뚫을 한 줄기 광명을 내려주시옵소서…… 홀리 인챈트.”
[악마/언데드/타락한 이들을 상대로 모든 공력력이 250% 상승합니다.]
“축복을 걸어주었으니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걸세.”
“이 정도 축복이라면…….”
큰 도움 정도가 아니다.
이미 전투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미믹, 이제 괜찮아. 몸을 일으켜.”
뀨우우웅!
카이가 비늘을 툭툭치며 말하자, 미믹이 기지개를 펴듯 시원한 소리를 내며 몸을 세웠다.
시야를 가리고 있던 미믹이 사라지자 그 너머로 보이는 수십의 암흑 성기사와 사제들.
그리고…….
“응?”
카이는 아오사 일전 때와 마찬가지로, 블리자드가 압도적으로 밀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하나, 둘, 셋…….”
바닥에 흩어져 있는 폴리곤 덩어리들을 쳐다보던 카이가 견적을 뽑으며 중얼거렸다.
“최소 다섯은 되어 보이는데…… 이걸 블리자드가?”
물론 전신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블리자드의 상태도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혼자서 수십여 명의 적들을 앞에 두면서 다섯 명을 해치운다?
카이처럼 비정상적인 스탯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암흑 성기사들의 레벨도 최소 250이야. 한 명 한 명이 모두 블리자드보다 강해. 그런데…….’
카이는 입을 꾹 다물고 블리자드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적들의 공격을 모두 회피하고, 곡검을 이용해 교묘하게 흘리는 신기(神技)!
게다가 계속해서 공격이 실패하여 마음이 조급해진 적들이 틈을 보이는 순간.
콰드드득!
블리자드는 그 상대를 확실하게 끝장 내버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 몇 개의 검이 박히든, 그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독종 같은 면모는 암흑 성기사들을 하여금 침만 꿀꺽 삼키게 만들었다.
“블리자드.”
카이가 뒤에서 그를 부르자, 블리자드가 힐긋 뒤를 쳐다봤다.
그리고 카이를 확인하는 순간 축 늘어지는 녀석의 어깨.
동시에 블리자드의 온몸은 마치 몸살에 걸린 것처럼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현재 블리자드의 능력으로는 이러한 움직임들이 무리야.’
한 마디로 블리자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전투를 보여줬다는 뜻.
카이는 크나큰 고마움을 담은 주먹을 녀석의 가슴에 가져다댔다.
“수고했어. 뒤는 나에게 맡겨.”
“크륵.”
블리자드는 멋드러진 웃음을 씨익 지어보이며 이에 화답했다.
***
“마, 말도 안 되는…….”
모라크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멍하니 고개만 흔들었다.
“비록 이단심판관이 없다고는 하나…… 본교의 암흑 성기사와 암흑 사제만 쉰 명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것이 한 명에게 모조리 박살난단 말인가.
그것도 상대는 이세계의 주민도 아니었다.
‘바체나 코로나, 파사낙스 같은 괴물들이라면 애초에 싸움을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모험가.
불과 2년 전만해도 슬라임과 토끼를 잡으며 성장하던 모험가였다.
“어찌 이리 불공평한 일이……!”
“세상은 원래 불공평해. 그중에서도 난 조금 더.”
쥐고 있던 성기사의 멱살을 놓은 카이는 땅으로 떨어지는 녀석의 목울대를 발로 강하게 짓밟았다.
콰드드득!
동시에 폴리곤으로 변하는 녀석.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쉰 명의 암흑 성기사와 암흑 사제가 카이의 손에 박살 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2분.
카이는 모라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쪽은 나랑 함께 가줘야겠어.”
“내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할 것 같…….”
“어.”
우드드득!
카이의 검 손잡이가 모라크의 옆구리를 강하게 타격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모라크가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뱉어냈다.
“허으으…….”
카이는 제 옆구리를 부둥켜안으며 자리에 주저앉은 모라크를 바라보다가,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이제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썽부리지 못하게 푹 재우고 싶은데. 방법 좀 가르쳐 주시죠.”
[음.]
여태 지루한 듯 뒷짐을 지고 서있던 체란티아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더니, 주저앉은 모라크의 뒷편에 섰다.
이어서 두 손을 깍지 낀 그는, 모라크의 뒷통수에 시원하게 휘둘렀다.
[이렇게. 두 손으로 이곳의 수면혈을 강하게 타격하면 깔끔하게 재울 수 있다.]
“……그건 그냥 때려서 기절시키는 거 아니에요?”
[어허. 재우는 것이 맞대도. 동쪽의 대륙에서 온 무사에게 배운 것이니 확실하네.]
완강한 체란티아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카이는 그의 말대로 모라크를 재웠다.
“……이거 정말 자는 것 맞죠?”
[물론이지. 턱을 가격해서 재우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 이 방법을 더 추천하네.]
“그렇군요. 하나 또 배워갑니다.”
이번에도 유용한 기술을 배운 카이는 곧장 알버트 교황에게 다가갔다.
그는 한 때 자신의 친우였던 버나드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체 왜 그랬나. 우리가 무엇이 부족해서…….”
“교황님…… 아니, 알버트. 옛 정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용서해 주게…… 내가 잠시 미쳤나보이…….”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는 친우의 모습에 알버트의 마음이 약해지려는 찰나.
빠악!
카이의 깍지 낀 손이 버나드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
알버트는 게거품을 물면서 쓰러지는 버나드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카이는 씨익 웃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드러냈다.
“우선 수면혈을 가격해서 재워뒀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심문하지요.”
“아니, 이건 그냥 때려서 기절시킨 것 아닌가……?”
“…….”
잠시 오른쪽을 쳐다보던 카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꾸했다.
“아니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