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힐통령 168화
62장 Ready to kill(4)
시린의 사원.
최소 280 레벨의 몬스터가 나오는 사냥터로, 이곳에서 활동이 가능한 이들은 몇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세계에서 100명 정도.
끼릭끼릭. 그으으응. 그으으으응.
“지금이다. 이동해.”
사냥터를 돌아다니며 주기적인 소음을 내뱉는 사원 골렘.
침입자를 찾아다니는 놈들을 피해 사원의 내부로 들어선 일련의 무리가 있었다.
그 수만 무려 다섯 명.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이들의 수 또한 다섯 명이었다.
“먼저 불러놓고 늦게 오다니. 장난하나?”
“약속 시간에 늦진 않았다. 서로 시간이 생명인걸 아니까.”
툭툭.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유저는 쓰고 있던 로브의 후드를 벗었다.
그 너머로 드러난 건 미드 온라인을 좀 한다 싶은 유저라면 모를 리 없는 얼굴.
바로 타이탄 길드의 골리앗이었다.
“전화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텐데. 귀찮게 왜 여기까지 오라고 한 거지?”
골리앗을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살짝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골리앗은 큼직한 입술을 주욱 찢으며 웃었다.
“하. 목소리만 듣고 네 놈을 믿으라고? 그럴 수가 있나.”
“얼굴을 보면 무언가 달라질 거라 생각하나.”
“전화 통화보다는 낫겠지.”
“네 놈이 중요한 이야기라고 거듭 강조해서 직접 움직인 거다. 만약 시답잖은 이야기라면….”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우선 하나 묻지. 이번 이벤트. 후에 어떤 식으로 연결될 거라 생각하나.”
“……?”
골리앗의 저의를 파악하기 위해, 남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뜻이지?”
“서로 눈치 보지 말고 시원하게 까자고. 난 이번 이벤트가 후에 있을 공성전, 영지전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돌려 말하는 걸 싫어하는 듯, 다이렉트 의사를 전달한 골리앗.
이에 상대편 남자는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군그래. 침공 이벤트 영상에서 나온 몬스터의 수는 인간들보다도 많았다. 죽어나간 NPC병사들의 시체도 셀 수 없을 정도였지.”
“분명 몬스터에게 침공 당해 멸망하는 도시와 마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테야.”
“그리고 그 땅은…….”
“먼저 주변의 몬스터들을 섬멸하고, 민심을 잡는 모험가에게 주어질 공산이 크겠지.”
그건 두 사람의 길드 정보부가 파악한 향후 게임의 방향성이었다.
‘세계 10대 길드의 정보부가 지닌 정보 파악 능력은 절대 우습게 볼 수 없지.’
‘한 곳이라면 모를까. 두 곳이 같은 결론을 냈다는 건…….’
‘십중팔구는 들어맞는다는 소리다.’
침공 이벤트의 다음에는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것이다!
서로의 정보부가 내놓은 결과를 공개한 두 사람은 확신에 찬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골리앗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러니 먼저 제안을 하지. 침공 이벤트 때 우리를 도와주면, 영지전에서 너희를 도와주겠다.”
“웃기는군, 우리 길드가 도움을 받을 정도로 나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다른 10대 길드와의 정면 승부에서 승리를 확신할 수 있나? 타이탄 쪽에서 힘을 실어주면 패배란 없을 것이다.”
세계 10대 길드 사이의 암묵적 동맹!
서로 잘난 맛에 사는 이들치고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여태 이런 일이 성사되지 않았던 건 먼저 고개를 숙이고 제안을 하는 이가 없었기 때문.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침공 이벤트에서 우리가 도와줄 일이 어디있지?”
“언노운. 아니, 카이.”
골리앗이 활화산처럼 뜨거운 눈길을 뿜어내며 이를 갈았다.
“너희들은 지난 비르 평야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서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놈이 지닌 힘을.”
“또 그 소리인가? 이미 충분히 실감하고 있다. 위협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그래봤자 놈은…….”
“아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부터 방심을 하고 있다는 소리다.”
골리앗의 생각은 확고해 보였다.
실제로 그는 지금 이 게임에서 가장 강력한 변수를 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하린. 그 괴물 같은 여자는 포섭의 대상이었지, 적대의 대상은 아니었어.’
골리앗은 개인적으로 그녀의 기량이 카이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적대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는 개인이니까.’
솔로 플레이.
그 어느 세력에도 소속되지 않고, 어느 세력도 거느리지 않은 채 홀로 돌아다니는 존재.
그녀는 유저였지만, 마치 절대적인 실력을 지닌 NPC처럼 여겨졌다.
그 때문에 세계 10대 길드는 그녀와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을지언정, 적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카이는 다르다.
‘놈은 위험하다.’
얼핏보면 카이는 유하린과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비르 평야 전투에서 숨겨진 패를 두 개나 꺼내보였다.
‘광휘의 성기사라는 직업. 그리고…… 엘프와 인어들.’
골리앗은 광휘의 성기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따로 조사를 하도록 정보부에 명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이 알아낸 사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직업이 교단에서 얼마나 숭배 받고 있는지는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놈은 분명 태양교 본단과도 끈끈한 유대 관계를 가지고 있겠지. 성녀인 미네르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여차하면 태양교에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어.’
태양교와 아인종.
그 두 세력을 등에 업은 것만으로도 놈은 요주 인물이다.
“그 자리에 있던 길드 마스터들은 모두 놈의 위험함을 깨달았다. 캐서린은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선언했고, 발칸 녀석은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겠다는 유치한 소리를 하더군. 다른 녀석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겁쟁이들뿐이지. 움직일 용기조차 없는.”
“이야기만 들어보면 너 하나만이 용기 있는 사람이로군그래.”
“틀린 말은 아닐 거다.”
골리앗의 당찬 표정을 쳐다보던 남자가 잠시 고민을 이어갔다.
‘여기서 타이탄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영지전을 치룰 때 세계 10대 길드 하나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그 말은 자신이 원하는 영지 하나를 무조건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는 뜻.
‘나쁘지는 않아. 하지만 그 전에…….’
계약은 확실하게 해야 하는 법.
남자는 깐깐한 목소리로 골리앗에게 물었다.
“정확한 요구 사항을 듣고 싶다. 네놈이 언노운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건 알겠어. 그래서 뭐, 나보고 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지?”
“이번 침공 이벤트는 숫자가 많은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아하. 그래서 날 찾아오셨군.”
남자가 씨익 웃었다.
골리앗의 말이 맞았다.
영상만 봤을 때 침공 이벤트는 대다수의 몬스터들이 인간의 왕국을 침공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그 어느 곳도 아닌, 나의 손을 잡는 게 확실하겠지.’
왜냐하면 그는 세계 10대 길드 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크다고 일컬어지는,
중국의 흑룡 길드 마스터.
쟈오 린이었으니까.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봐라.”
쟈오 린의 마음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렇지 않아도 원하고 있던 도시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
침공 이벤트의 몬스터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에 대한 의견은 굉장히 분분했다.
혹자는 바다에서 나올 것이라고 했으며, 혹자는 땅을 파고 나올 것이라고 했다.
모두 틀렸다.
“저게 뭐야?”
“저건…… 영화 스타트렉 같은데 나오는 워프 게이트처럼 생겼는데?”
게이트(Gate).
몬스터들은 보라색으로 일렁이는 원형의 구멍에서 흘러나왔다.
게이트가 출현한 장소도 매우 생뚱맞았다.
“뭐, 뭐야!”
“이게 게이트라고?”
“아니 근데 왜 이딴 곳에……?”
멀쩡하게 사냥을 하고 있던 사냥터는 물론.
평범하게 다른 도시로 가는 길목에서도 생성되었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부분은 따로 있었다.
“왜 게이트가 저기서 생겨……?”
“성채 바로 옆이라니……!”
“젠장! 마을은 시스템으로 보호되는 안전지역 아니었냐고!”
“내가 왜 휴식하러 온 장소에서 왜 전투 준비를 해야 하는지…….”
몇몇 마을들의 코앞에서 생성된 게이트!
그곳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굶주린 상태였다.
때문에 그들이 다짜고짜 성채를 공격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띠링!
[Extra Ep.1 침공이 시작되었습니다.]
[플레이어 분들은 몬스터를 처치하고, 게이트를 닫아주십시오.]
[대륙 전역에 생성된 게이트는 상,중,하 난이도로 분류되어 있으며, 총 1,500개가 존재합니다.]
[몬스터와 게이트를 닫아서 획득한 포인트는 이벤트 NPC에게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전에 이벤트를 개최하겠다고 공표를 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공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덕분에 커뮤니티는 폭발적인 반응은 물론, 정말로 서버가 맛이 갈 정도로 혼잡해졌다.
“이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카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안일했던 생각을 후회하며 커뮤니티 창을 띄웠다.
‘우선 내가 지켜야 할 곳은…….’
가장 먼저 리버티아.
자신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NPC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며, 자신의 영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은 최우선적으로 지켜야할 장소 중 하나일 뿐, 전부는 아니었다.
‘내가 거쳐 왔던 마을들…….’
초보자 시절을 보냈던 다양한 마을들은 물론이고,
분타 촌장이나 대장장이 막심이 거주하는 프리카.
후이 관장이나 아르센 남작이 통치하는 글렌데일.
심지어 아야나 일가족이 살고 있는 화이트홀까지!
카이의 머릿속으로 자신과 인연이 닿았던 NPC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선 확인부터.”
당황할수록 침착해져야 하는 법.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누누히 들어왔던 말이었다.
‘바쁘고 위험에 빠질 때일수록,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겁게 행동해야 해.’
카이는 몇 번이나 새로 고침을 한 뒤에 접속한 커뮤니티를 빠르게 둘러보았다.
[충격! 대도시 바란 인근, 상급 게이트 2개 오픈. 치열한 접전 중.]
[도시 니올란 함락! 상급 게이트의 위력을 엿볼 수 있는 사건…….]
[하급 게이트. 평균 레벨 57의 모험가 길드에 의해 닫혀지다.]
[침공은 단순히 보상을 쟁취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추억을 지키는 이벤트.]
수많은 기사들이 초마다 새롭게 갱신되었다.
그 많은 기사들과 유저들의 게시글을 검색한 카이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리버티아는 안전해. 루테리아의 가호 덕분인가?’
리버티아는 세계수 루테리아가 축복을 내렸기 때문인지, 게이트가 나타나지 않았다.
덕분에 리버티아는 안전한 상태.
다만…….
‘프리카에 하급 게이트 하나가. 글렌데일에는 하급 하나와 중급 하나. 그리고….’
아직 보수 공사가 한창인 화이트홀에는 무려 상급 게이트가 출현했다.
‘게다가 바란 영지라면 내가 나중에 가야하는 곳이잖아.’
글렌데일의 영주인 아르센 남작은 바덴 성의 백작에게 자신의 추천장을 써준 바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방문할 생각이었는데…….
‘바란은 아직 망해선 안 돼.’
그렇다면 바란까지 자신이 지켜야 할 터.
복잡한 상황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던 카이에게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네르바 : 어디부터 공략하실 생각이세요?]
그녀의 물음에 잠시 고민을 하던 카이가 천천히 가상 키보드를 두드렸다.
[카이 : 프레이 길드는 대도시 바란으로 가주십시오.]
[미네르바 : 카이 님은 합류하시지 않나요?]
[카이 : 저는 이어서 합류하겠습니다.]
프레이 길드가 바란을 수성하는 사이, 다른 마을과 도시 인근의 게이트를 모두 파괴하는 것.
그것이 카이의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