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69화 (169/441)

# 169

힐통령 169화

63장 영웅 출현(1)

프리카 마을은 평소와는 다르게 굉장히 부산스러웠다.

“젠장! 통나무 더 가져와!”

“벽돌이랑 가구도! 아니, 뭐라도 쌓을 수 있는 건 전부 가져와서 벽을 만들어!”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는 플레이어와 NPC들.

평화롭던 산골 마을이 이렇게 바빠진 건 인근에 게이트가 열리면서였다.

그곳에서 흘러나온 몬스터들은 마을을 향해 직선으로 돌진했으니까.

“선발대가 놀의 평원에서 몬스터들을 막고 있는 동안, 성채를 증축시켜야 해.”

붉은 노을 길드의 마스터인 토반이 성채 증축을 지휘하는 동안, 그의 동생인 아우는 몇몇 길드원을 데리고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지역 커뮤니티의 공지를 읽고 모인 유저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크흐흠.”

목을 가다듬은 아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미드 온라인은 침공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재수 없게도…… 우리의 마을인 프리카 근처에 하급 게이트가 생성되었어. 손 하나가 모자란 상황이니 다들 전투를 준비하도록.”

마치 당연한 것을 맡겨놓은 사람처럼 당당한 말투와 고압적인 시선.

이에 유저들이 어이없음과 불쾌함을 드러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 평소에는 길드원도 아닌 우리를 개돼지 취급했으면서, 이럴 때만 우리의 마을이라고?’

‘그리고 뭐? 준비하도록? 내가 제 부하야 뭐야.’

‘그냥 확 떠나 버려? 마을이 망해 버려서 저놈들도 제대로 엿 먹었으면 좋겠는데…….’

불만 가득한 유저들의 분위기를 파악한 마법사, 아칸은 아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속삭였다.

“유저들 분위기가 안 좋아요. 누누이 말했잖습니까. 그렇게 강압적으로 나가면 대체 누가 말을 듣겠…….”

“아! 거 참, 시끄럽네.”

홱!

자신의 어깨를 올려진 아칸의 손을 뿌리친 아우가 인상을 찡그렸다.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넌 네가 마치 뭐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있어. 이 길드는 우리 형의 길드라고.”

“……그리고 전 그 길드의 참모입니다.”

“이이…….”

할 말을 찾지 못한 아우가 뿌득, 이를 갈았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래…… 분명 카이, 그 빌어먹을 사제 새끼랑 엮였을 때부터였어.’

압도적인 전력을 데리고 척살에 임한 아우는 멍청한 실수를 저질러 일을 그르쳤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완전 무능한 놈으로 찍혔고…… 이 새끼는 그 날부터 승승장구…….’

아칸은 똑똑하다.

그건 초보자 시절부터 함께 사냥을 해왔기에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우는 그가 똑똑한 머리로 자신을 받쳐주기를 원했지, 자신을 앞질러 길드의 요직을 차지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이건 형이 나에게 맡긴 일이니 신경 꺼.”

“하지만 계속 그런 고압적인 말투로 명령한다면 최악의 사태가…….”

“내가 애새끼도 아니고, 그 정도 사리분별도 못할 줄 알아?”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은 아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유저들을 둘러보았다.

과연 아칸의 말대로 불만이라는 두 글자를 얼굴에 써놓은 듯한 몰골들.

아우가 허를 찼다.

‘쯧…… 게이트가 생성되기 전까지는 눈도 잘 못 마주치던 것들이…….’

지금은 무슨 말을 하는지 구경이라도 해보자는 듯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우는 그런 상황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킨 뒤 말했다.

“후우. 좀 부탁한다? 그리고 우리 길드만 좋은 이야기는 아닐 거야. 이거 이벤트라고. 참여해서 몬스터 죽이고 게이트 닫으면 공헌도도 획득할 수 있고, 프리카 마을의 우호도도 대폭 올라갈 거야. 앞으로도 이곳에서 활동할 거라면…….”

“아, 됐고. 부탁을 할 거면 먼저 사과부터 하는 게 예의 아닌가?”

흔히 졸업반이라고 불리는, 조만간 프리카 마을을 떠나려던 유저 하나가 귀를 후비며 말했다.

“솔직히 붉은 노을 길드, 평소에 진짜 거슬렸거든. 세트 아이템 공장이나 돌리는 놈들이 어깨에 힘 빡 주고 다니면서 일반 유저들 괴롭히는 거 짜증 난다고.”

“맞아! 그리고 멀쩡한 붉은 놀 치프 사냥 순번은 왜 너희가 정하는데?”

“쥐꼬리만 한 길드가 필드 통제하는 것도 슬슬 짜증 나던 참이었고…….”

한 번 불만이라는 물줄기가 새어 나오자, 둑이라도 터진 것처럼 우수수 쏟아진다.

그리고 아우는 이런 상황에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한 인물이 아니었다.

결국 그가 택한 방법은…….

“전부 시끄러워! 이게 뭐 우리만 좋자고 하는 일이야? 우리의 마을을……!”

“우리의 마을? 이게 왜 우리 마을이야? 느그 마을이지. 너나 열심히 지켜라. 어차피 여기 졸업할 때도 됐는데, 잘됐네.”

“30레벨 이후 사냥터가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꼬워도 이동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참으려고 했는데, 정나미가 떨어져서 내가 간다. 내가 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쩌겠어.”

“캬악 퉤!”

광장에 모여 있던 한 명의 유저가 코웃음을 치며 자리를 떠나자, 다른 이들도 우르르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 어어……?”

멍하니 그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아우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래. 평소.

평소에는 프리카 마을을 장악하다시피 한 붉은 노을 길드의 힘이 강대했다.

얼마나 대단하냐면, 길드 마스터 토반의 손짓 하나면 무한 척살을 당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침공 이벤트로 인해 마을 근처에 하급 게이트가 열리자, 상황은 바뀌었다.

“쯧.”

아랫입술을 깨문 아칸은 인상을 찡그리며 길드 메신저창을 두드렸다.

‘하급 게이트를 닫으려면 유저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붉은 노을 길드는 붉은 놀 세트를 양산하기 위해 꾸려진 길드, 일종의 기업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혹시 모를 배신자나 산업 스파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소수 정예로 운영되었다.

그 수는 겨우 30여명.

아무리 프리카 근처에 생성된 게이트의 등급이 하급이라도, 30명의 유저가 닫을 수는 없다.

“아우!”

아칸의 보고를 듣고 상황을 전달받은 토반은 황급히 광장에 도착했다.

“멍청한 새끼!”

자신의 동생을 다그친 그는 빠른 속도로 마을을 떠나는 유저들을 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기를 잠시. 마치 모든 걸 내려놓은 것처럼 쓴웃음을 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망했구나.’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가 없다는것을.

가족이라고 동생을 믿은 것도 그의 큰 실수 중 하나였다.

설마 이렇게 간단한 일조차 못할 줄이야.

헛웃음을 몇 차례 터뜨리던 토반이 눈을 뜨자, 그 속에선 광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래도 곱게 보내줄 수는 없지. 우리만 죽을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어차피 붉은 노을 길드 30명이서 마을을 지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복수라도 할 수밖에.

***

“……응?”

프리카의 산기슭을 달려 내려가던 카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주세요!’

태양의 사제로 완벽하게 전직을 한 카이의 신체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그것은 청각 또한 마찬가지.

아주 예민해진 귓등에 자그마한 소리가 다가와 부딪치는 것이 느껴졌다.

“게이트가 저쪽인가?”

위치를 가늠한 카이의 몸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안 그래도 가파른 산을 질주하듯 달리던 카이의 몸은 바람처럼 산을 타고 내려갔다.

엄청난 속도로 산길을 주파한 카이는 소리의 근원지로 도착할 수 있었다.

“……유저들이잖아?”

두 눈을 크게 뜬 카이는 눈앞의 알 수 없는 광경에 고개만 갸웃거렸다.

‘게이트가 코앞에서 생성되었는데…… 왜 유저들끼리 PK를 해?’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몬스터들까지 한데 섞여 그야말로 개판이나 다름없는 상황!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카이는 쓰러져서 헐떡거리는 유저에게 다가갔다.

“힐.”

화아아아악!

신성한 빛으로 그녀를 회복시킨 카이가 전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죄송한데 상황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되서요.”

유저들끼리 힘을 합쳐서 몬스터를 무찔러도 모자랄 판에, 서로 싸우고 있다니?

자신을 치료해 준 것에 고마운 눈빛을 띄운 여성 유저가 입을 열었다.

“붉은 노을 길드예요. 프리카를 거점으로 삼고 있던 유저들이 그들을 도와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마을을 떠나는 저희의 뒤를 다짜고짜 공격했어요. 완전히 미친 놈들이예요!”

“……하?”

붉은 노을.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동시에 카이의 입가로 비릿한 미소가 걸쳐졌다.

“아아~ 있었죠. 그런 이름을 지닌 길드가. 제법 그리운 이름이네요.”

생각해 보면 그들 덕분에 태양의 사제라는 직업을 획득하긴 했지만.

당시 자신이 느꼈던 서러움과 억울함, 그리고 개인이라는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치듯 마을을 벗어나야했던 수치심.

그 모든 것들은 한 때 카이가 밤잠을 설칠 정도의 고통을 선사해 주었다.

‘확실히…… 어느 정도 힘이 생긴 뒤에는 복수할 생각을 안 하고 있었어.’

아니, 정확히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는 말이 맞으리라.

카이는 이제 시골 마을에서 양아치 짓이나 하는 이들과 엮이기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존재가 되었으니까.

‘세계 10대 길드 녀석들 눈치 살피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붉은 노을 따위한테 쏟을 시간이 어디있어?’

하지만 계속 잊고 있었다면 모를까, 원수들이 눈앞에 있는데도 넘어갈 위인은 아니었다.

카이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천천히 치열한 전장을 향해 걸어갔다.

스릉.

부드럽게 뽑아낸 롱소드는 그대로 붉은 노을 길드원의 가슴에 틀어박히며 그를 현실로 돌려보냈다.

‘붉은 노을. 붉은 노을.’

놈들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프리카 마을에 거주하기에는 비정상적으로 레벨이 높은 놈들.

그리고 가슴에 붉은 노을 엠블렘을 달고 있는 놈들.

그런 특색 있는 놈들만 찾으면 되었으니까.

“우선 한 놈.”

스르릉!

여명의 검법이 고급으로 올라가면서 카이의 검술도 굉장히 아름다워졌다.

검술이 아름다워졌다는 건, 검을 휘두를 때, 적을 벨 때의 소리.

모든 것이 제법 숙련된 기사처럼 고상해졌다는 뜻.

하지만 현재 카이의 힘은 고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콰드드드드득!

마치 오래된 차가 폐차장에서 기계에 의해 찌그러지는 것처럼.

학생들이 다 마시고 난 우유갑을 발로 밟아 우그러뜨리는 것처럼.

카이의 검은 한때 자신의 적이었고, 원수였던 이들을 난폭하게 물어뜯었다.

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맹수가 할퀴고 간 것처럼 그들의 방어구가 찢겨져 나갔다.

“뭐, 뭐야! 저 새끼는!”

“고, 공격력이 왜 저래? 겨우 한 방을 허용했는데 탱커가 죽는다고?”

“대체 저런 괴물 새끼가 왜 이런 곳에……?”

“…….”

자신이 아무리 진실을 부르짖어도 저들이 대답을 해준 적 없듯.

카이는 저들의 의문에 대꾸를 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무정하게 검을 휘두를 뿐.

서걱, 서걱!

날붙이가 부딪치며 시끄럽던 전장이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붉은 노을 길드원들은 위기감을 느끼며 한 쪽으로 뭉쳤고, 다른 유저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오직 몬스터들만이 시끄럽게 떠들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

카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을 바라보는 붉은 노을 길드원들을 쳐다보았다.

‘저번에 그 못생긴 탱커도 있고…….’

아칸이라는 재수없는 마법사도.

그리고 그 녀석의 친구인 궁수도 확실하게 있다.

게다가 토반.

붉은 노을 길드의 마스터인 녀석의 얼굴조차 똑똑히 보인다.

‘복수는 허무하다. 라고 했나.’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한 때는 제법 경계하고, 조심스러워하던 녀석들이 이렇게나 작아 보일 줄이야.

‘겨우 이 정도였구나.’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다시 한 번 실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카이는 자신의 감정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이 녀석들에게는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아.’

오히려 일일이 상대해 주는 게 귀찮고 짜증 날 정도.

하지만 한 번 시작한 복수라면 깔끔하게 끝내야 하는 법.

검을 쥐지 않은 카이의 왼손이 천천히 허공으로 올라갔다.

“추적하는 빛의 화살.”

카이의 신성력이 단번에 5,000이나 빠져나갔다.

개당 10의 신성력을 소모하는 스킬이니만큼, 무려 500여 개의 빛의 화살이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붉은 노을 길드와 일반 유저는 물론, 몬스터들 마저도 움직임을 우뚝 멈췄다.

“저, 저게 뭐……?”

“미친…… 저놈이 무슨 마법사 랭킹 1위라도 되는…… 아니, 아니지. 마법사가 홀리 에로우를 배울 수는 없을 텐데?”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저 갯수가…… 말이 된다고 생각해?”

“케라라락?”

카이는 당황을 금치 못하는 붉은 노을 길드와 몬스터들 보며, 가볍게 왼손을 휘둘렀다.

‘그럼 잘 가라. 미련의 조각들.’

파아아아아앙!

오백여 개의 화살이 파공성을 일으키며 적들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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