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힐통령 170화
63장 영웅 출현(2)
쩌저저저적!
카이의 롱소드는 마치 두부라도 자르는 것처럼 게이트를 깔끔하게 양단했다.
[하급 게이트를 파괴하셨습니다.]
[하급 게이트를 파괴하여 공헌도 50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현재까지 획득하신 공헌도는 총 700포인트입니다.]
하급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는 한 마리당 1포인트씩의 공헌도를 뱉어냈다.
200마리를 죽였기에 200, 게이트를 파괴해서 500.
카이는 총 700의 공헌도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었다.
‘덤으로 스킬의 위력까지 확인하고.’
오백여 개의 화살이 허공을 찢어발기며 나가던 장면을 떠올린 카이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몬스터와 붉은 노을 길드원, 구별을 두지 않고 일거에 쓸어버린 강력한 스킬.
에로우 계열의 스킬을 고급까지 올린 최상위 랭커의 마법사라면 모를까, 일반적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할 수 없는 기술이나 마찬가지다.
“게이트를 닫는 법도 간단하네.”
그냥 게이트를 공격해서 파괴해버리면 전부인 간단한 일이었다.
‘좋아. 이걸로 튜토리얼은 끝.’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감을 잡은 카이는 주저없이 글렌데일로 향했다.
***
바덴.
상급 게이트가 동시에 두 개나 열려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성의 이름이었다.
‘젠장. 바덴 성에 가게도 차려놨다고…….’
‘이대로 도시가 함락당하면…… 모든게 끝!’
‘하지만 지금의 전력으로는 가능성이 턱없이 부족해.’
하급 게이트에서는 평균 레벨 50의 몬스터들이.
중급 게이트에서는 평균 레벨 150의 몬스터들이 나온다.
그렇다면 상급 게이트에서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평균 레벨 250의 괴물들이 튀어나온다.
콰드드드드드득!
“크롸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악!”
덩치 불문, 레벨 불문, 종족 불문.
상급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일종의 공동체 의식이라도 갖고 있는지, 서로를 경계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적은 오로지 인간들 뿐이라는 것처럼 무식하게 바덴 성을 공격할 뿐!
“마스터, 안 좋은 소식이 하나 더 들어왔습니다.”
바덴 성의 굳건한 성채 위에 서있던 프레이 길드의 부마스터, 라즐리가 미네르바에게 말했다.
“……으으.”
질린 표정으로 평야에 바퀴벌레처럼 깔린 몬스터들을 쳐다보던 미네르바가 고개를 돌렸다.
“걱정 말고 터놓아보세요. 여기서 더 나빠질 상황이 뭐가 있겠어요.”
“……아쉽지만 있습니다. 게이트, 일정 시간 안에 파괴하지 못하면 보스 몬스터도 쏟아내는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항상 사근사근 말을 늘어놓던 미네르바가 꽥 비명을 내질렀다.
“가만히 성만 지키면 되는 줄 알았더니…… 보스 몬스터도 내보낸다고요?”
“예. 내보내는 시간은 랜덤인 것 같은데 보스 몹 수준이 생각보다 세요.”
라즐리가 커뮤니티 창을 공유해서 보여주자, 미네르바는 인상을 찡그리며 영상을 쳐다봤다.
“……후우.”
영상을 모두 시청한 미네르바가 작은 손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확실히…… 중급 게이트에서 나온 보스 몹 치고는 굉장히 강하네요.”
“상급 게이트에서 나온 놈은 더욱 강할 겁니다.”
“그런 놈이 두 마리 동시에 나타난다면…….”
미네르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길드원의 사망은 곧 길드의 전력 약화야. 때문에 최대한 직접적인 교전은 피할 생각이었는데…….’
적어도 카이가 올 때까지는 얌전히 수성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 마리의 보스 몬스터가 튀어나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가 되면 아무리 우리, 프레이 길드라고 해도 막지 못해요.’
검은 벌 길드가 카이에 의해 날개가 찢기고 추락한 뒤 세계 10대 길드의 명성에 금이 갔다고는 하나, 여전히 세계 10대 길드라는 이름이 주는 포스는 건재했다.
그만큼 그들이 보유한 전력은 강대했으니까.
“후우. 지금 당장 전면전 준비해요.”
“……손해가 클 수도 있습니다. 두 개의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만 벌써 400마리예요.”
저 정도 숫자의 몬스터는 길드 단위로도 절대 몰이사냥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랭커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만, 절대 죽음의 리스크를 지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보스 몬스터 두 마리가 튀어나오는 순간 바덴은 끝이에요.”
양자택일의 선택지다.
바덴 성을 버리고 후퇴하느냐, 게이트의 몬스터와 싸우느냐.
‘평소라면 어쩔 수 없이 바덴 성을 버렸겠지만…….’
이번엔 그럴 수도 없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이곳으로 온 것은 스스로의 의지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그 곰 같은 여우! 명령을 어기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사람.’
카이. 그가 교단을 통해 압력만 넣어도 세계 10대 길드 타이틀이 벗겨지는 건 순식간이다.
미네르바는 짧은 평생을 살면서 지난 1년처럼 바쁘고, 뜨겁게 살아본 기억이 없었다.
‘나에게 미드 온라인이란 더 이상 단순한 놀이 같은 게 아니에요.’
그야말로 인생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게임!
결론을 내린 미네르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바덴 성은 지켜야 해요.”
결단을 내린 미네르바의 눈동자에선 평소의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전쟁을 앞둔 전사의 눈빛이었다.
***
콰드드드득!
“젠장! 야! 이걸 기뻐해야 되냐?!”
“뭔 개소리야!”
“평소에 이 오우거 녀석들을 몰이사냥하고 싶었으니까!”
“허억, 허억, 좋겠다 빙신아.”
파티 단위의 유저들.
혹은 소수를 지향하는 길드에 속한 이들.
그들은 바덴 성의 평야에서 게이트에선 나온 몬스터들을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유저들의 수가 더 많아. 더 많긴 한데…….’
‘수준 차이가 터무니없이 난다!’
바덴 성은 이제 최전방으로 부르기에는 상당히 난해한 장소이다.
주변 사냥터에서 나오는 몬스터들도 210레벨 정도이기에 고수들은 있을지언정, 랭커들은 쉽게 보기 힘들다.
대신, 바덴 성은 무척이나 큰 대도시이다.
때문에 수많은 길드들이 하우스를 이 도시에 세워둔 상태였고, 상인의 길을 걷고 있는 유저들의 상단도 이곳에 많이 자리한 상태.
“막아!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젠장! 오우거를 유저 세 명이서 마크하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고!”
평야에서 한창 전투를 하고 있는 유저들은 도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을 뿐이지만,
적들은 그냥 무력 자체가 강했다.
콰드드드드드득!
오우거가 들고 있던 거대한 나무 기둥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서너명의 유저들이 그대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젠장, 스매쉬는 절대 맞지 마!”
“오우거는 힘만 높은 녀석이야! 기술이 뛰어난 녀석은 아니니 천천히 패턴을 파악해!”
“그건 한 마리 잡을 때 쓰는 전술이고! 사방에 오우거인데 어느 세월에 패턴을 보고 있어!”
상황이 잘 풀리지 않자 유저들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상태.
평소 미드 온라인은 게임을 하다가 죽어도 스트레스를 조금 받고 말 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전투에서 패배하면 말 그대로 터전이 사라질 판!
당연히 유저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평소보다 더할 수밖에 없다.
“모험가들이여,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시오! 분명히 지원군이 올 터이니!”
물론 전투를 치루는 건 유저들만이 아니었다.
바덴 성에 소속된 병사와 기사, 그리고 마법사들.
그들은 주군과 가족, 영지민들을 지키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무기를 뽑았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뭐여, 지원군은 저쪽에서 오잖아?”
“이쪽 지원군은 왜 안 오는데!”
“평소에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거대 길드 놈들, 이럴 때는 보이지도 않아요.”
“아아, 그냥 엄마 보고 싶다…….”
게이트에서 새롭게 쏟아져 나온 몬스들이 전장에 도착한 것이다.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는 유저들과 바덴 성의 군대는 하나같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기사단장조차 검을 툭 늘어트리며 눈동자를 흔들었다.
‘정녕 바덴의 운명은 여기까지란 말인가…….’
이대로 후퇴를 해서 수성을 하면 시간을 벌 수야 있다.
하지만 저 엄청난 수의 몬스터를 없앨 방법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피해를 최소화해야.’
기사단장이 검을 들어 퇴각 명령을 내리던 때였다.
“카아아아악!”
제법 머리가 좋은 그레이 트롤 하나가 기사단장을 향해 들고 있던 나무 방망이를 던졌다.
쐐애애액!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방망이.
기사단장이 말에서 내리더라도 전장에서의 고립은 막을 수 없는 상황!
그 때, 기사단장의 앞으로 성스러운 방어막이 드리워지며 이를 막아냈다.
까아아앙!
“카르륵?”
“무. 무슨…….”
그레이 트롤도, 기사단장도 상황 파악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굳게 닫혀있던 바덴 성의 성문이 힘차게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장 뛰쳐나오는 수백 명의 성기사들.
“성녀의 은총, 전장의 가호.”
우우우우웅!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여인 하나가 손을 들어올리며 중얼거리자, 빛이 그들을 감싸 안았다.
동시에 달려가던 이들의 속도가 크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돌격해라!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게이트를 닫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선 몬스터들의 진형부터 파괴한다! 1번부터 3번 기사단은 대열의 왼쪽을, 4번부터 6번 기사단은 오른쪽을 타격하라!”
오우거와 트롤, 스톤 골렘이 무섭지도 않은 듯 용맹하게 돌격하는 수백 명의 성기사들.
“저, 저런 무모한…….”
“바보냐? 무모는 개뿔. 쟤네 엠블렘 안 보여?”
“엠블렘?”
그 말에 주변 유저들이 대번에 고개를 돌려 그들의 길드 엠블렘을 확인했다.
태양교의 문양을 하얗게 덧칠해 놓은 표식을 사용하는 길드는 미드 온라인에서 단 한 곳뿐!
“프, 프레이…….”
“프레이 길드다!”
“세계 10대 길드가 지원군으로 도착했다!”
“그래, 프레이 이 녀석들이라면 와줄 줄 알았어!”
“암! 검은 벌이나 타이탄 같은 곳이랑은 다르지!”
세계 10대 길드의 지원!
그들의 등장에 유저들이 열렬한 환호를 던졌다.
뒤이어 유저들에게 다가온 미네르바가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걱정 말고 싸우세요! 뒤는 우리 프레이 길드의 사제들이 서포트할 테니까!”
“살다살다 프레이 길드의 지원을 받아볼 줄이야!”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이번 전투 끝나면 뮤튜브 길드 채널 꼭 구독할게요!”
“그대들의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하네. 백작님께도 이 사실을 꼭 보고하겠네!”
잔뜩 신이나서 재차 돌격하는 유저와 NPC들!
“자, 이제 저희도 싸우도록 하지요.”
성녀 클래스의 미네르바를 필두로, 프레이 길드가 자랑하는 사제진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힐!”
“메스 큐어!”
“치료의 손길!”
수백여 명의 사제들이 뒷선을 꽈악 잡고, 계속해서 유저와 NPC들을 치료한다.
하지만 유저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이런, 헤이스트 지속 시간…….”
“헤이스트!”
“컥, 방어막이 깨졌…….”
“성스러운 방어막!”
매의 눈으로 전장을 지켜보고 있다가, 버프의 지속시간이 끝날 때마다 귀신처럼 걸어주는 센스! 게다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라즐리, NE에 적!”
“크리든. SW방향에 홉고블린 무리들이 독이 묻은 화살을 장전하고 있어요.”
각각 전담 마크하고 있는 성기사들에게 시시각각 전해지는 정보들!
그 정보는 성기사들이 미처 보지못한 적들의 공격과 패턴을 상세하게 브리핑해 주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한 유저들은 침만 꿀꺽 삼키며 혀를 내둘렀다.
‘전투의 꽃은 마법사지만…….’
‘전쟁의 꽃은 사제라더니.’
‘사제가 이렇게 무서운 클래스였나.’
실력있는 사제들이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황은 단번에 팽팽하게 만들어졌다.
이에 유저들은 기쁜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미네르바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프레이 길드가 합류했는데도 고작 팽팽이라…… 좋지 않아요.’
만약 바덴 성 인근에 생성된 게이트가 하나였다면 손쉽게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성된 게이트는 두 개.
‘커뮤니티 정보에 따르면 보스가 소환되는 건 게이트 생성 여섯 시간이 지난 후에 랜덤.’
바덴 성에 두 개의 게이트가 생성된 건 각각 일곱 시간과 여덟 시간 전이었다.
‘보스 몬스터는 지금 나와도 이상하지 않아요.’
왜 사람의 불길한 상상은 항상 적중하는 것일까.
“마스터! 정찰조에서 연락 왔습니다!”
“좌측 게이트에서 보스 몬스터 출현!”
“레벨은 278의 트롤 히어로입니다!”
“으으음……!”
미네르바가 인상을 찡그리며 전투의 템포를 더 올리라고 명령을 하려는 찰나, 보고 하나가 더 이어졌다.
“저, 정찰조에서 추가 연락 도착!”
“설마……?”
미네르바가 홱 고개를 돌려 보고를 올리는 정보부 길드원을 쳐다봤다.
그녀는 잔뜩 울상을 지은 채,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우측 게이트에서도…… 보스 몬스터 출현했습니다.”
“……정보는?”
“레, 레벨…… 310. 트리플 헤드 오우거입니다.”
“…….”
왜 사람의 불길한 상상은 두 번이나 연속해서 적중하는 것일까.
“……태양신은 대체 어디서 뭘하고 있는 걸까요?”
그녀는 지금쯤 카이가 남긴 사탕을 맛있게 먹고 있겠지만…… 아쉽게도 미네르바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