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힐통령 173화
63장 영웅 출현(5)
사실 이상하다는 생각이 없잖아 있기는 했다.
때는 멜버른의 폐허에서 타이탄 길드원들과 싸웠을 때였다.
‘그때 놈들은 스킬의 이름이 영체화라는 것도, 그리고 약점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고 있었지.’
카이가 알기로 영체화라는 스킬은 이전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스킬이다.
커뮤니티는 물론 각종 검색 엔진으로 몇 번이나 찾아보았기에 확신할 수 있다.
‘그때는 단순히 타이탄 길드의 정보력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하고 말았지만…….’
이제 모든 의문이 풀린다.
타이탄 길드가 어째서 영체화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젠장……!”
카이의 칼날 쇄도는 흐릿해진 골리앗을 허무하게 관통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상대했던 적들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실감한 카이!
하지만 그는 빠르게 정신을 수습하고는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영체화 상태에서는 물리 공격에 면역이야.’
때문에 카이가 시전한 것은 추적하는 빛의 화살.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여 개의 화살이 허공에 생성되었다.
“이건 몰랐을걸?”
피식 웃은 카이가 손가락을 튕기자, 빛의 화살들이 골리앗을 향해 쇄도했다.
영체화는 시전 시간 동안 물리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지만, 마법 피해에 두 배의 피해를 입는 양날의 검!
카이는 자신의 주문이 골리앗을 고슴도치로 만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웃는다고? 이 상황에서도?’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스위칭. 거울 호수의 축복.”
영체화를 사용하여 반투명하던 골리앗의 외형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더니, 마치 거울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빛으로 만들어진 화살 수 십 여발이 그의 몸을 두드렸다.
투두두두두두!
마치 굵은 빗방울이 바닥을 때리는 것 같은 난폭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피해가 없어……?”
전투 시작 이래 처음으로, 카이의 두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골리앗이 영체화 스킬을 사용했을 때는 놀랐을지언정 당황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영체화는 명백한 단점이 있는 스킬이었으니까.
그리고 카이에게는 그 단점을 공략할 수 있는 스킬들이 있었다.
“어리석기는. 난 네놈보다 영체화 스킬을 훨씬 먼저 손에 넣은 사람이다. 스킬의 단점을 극복할 대안 정도는 마련해 둔 지 오래지.”
“스위칭이라니…… 그 스킬은?”
“뭐, 상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만…… 두 개의 스킬을 등록하면 번갈아가면서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다.”
“……맙소사.”
골리앗은 카이의 경악한 표정을 지켜보더니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여태까지 네놈이 무서워서 참았다고 생각하나? 천만에. 내 정보를 공개하기가 싫어서 꽁꽁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만약 네놈이 길드를 이끄는 수장이었다면 이렇게 배척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개인이 세계 10대 길드의 위치를 뒤흔드는 건 위험하지. 아주 위험해.”
때문에 골리앗은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다지기 위해 숨겨왔던 능력을 거리낌 없이 공개했다.
그것도 라이벌이라 칭할 수 있는 흑룡의 앞에서.
실제로 전투를 지켜보던 쿤 팽이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영체화라는 스킬은 아까 카이가 사용했을 때도 그렇고, 골리앗이 사용한 것도 그렇고…… 물리 피해를 무시하는 스킬 같다.’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신경 쓰이는 스킬이다.
근접 계열의 유저들이 닭 쫒던 개마냥 멍하니 쳐다만 봐야 하니까.
‘하지만 이 게임에는 마법사라는 존재가 있지.’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영체화 스킬이라고 해도 무리 없이 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스위칭이라니? 그런 스킬은 들어본 적도 없다.’
그 스킬로 인해 골리앗은 원할 때 물리 피해와 마법 피해.
둘 모두를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무적(無敵).
맞지 않고 일방적으로 적을 때릴 수 있다면, 그 존재는 무적이라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다.
“영광으로 알아라. 이 스킬 조합을 상대하는 건 유저 중에서 네놈이 최초니까.”
“…….”
골리앗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린 카이는 우선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영체화 스킬의 지속시간은 원래 10분이다.
그 말은 상황이 아무리 엿 같아도 10분 동안 도망만 다니면 된다는 소리다.
하지만 스위칭이라는 스킬의 존재로 상황이 애매해졌다.
‘대체 스위칭의 효과가 어떻게 되는 거지?’
원래 영체화의 지속 시간인 10분 동안만 마음껏 바꿀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건지.
그게 아니면 자신이 원할 때라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인지.
머리가 복잡해진 카이의 생각은 그대로 얼굴 위로 떠올랐다.
“크큭, 당황스러운가 보군.”
우드득, 우드득.
사냥 준비를 마친 골리앗은 슬쩍 말을 던졌다.
“궁금한가보군. 과연 내가 스위칭을 몇 번이나 사용할 수 있을지. 지속 시간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물론…….”
히죽 웃은 골리앗이 말을 이었다.
“말해줄 생각은 없다.”
“…….”
울컥!
머리까지 솟아오른 짜증을 겨우 가라앉힌 카이는 우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황이 너무 불리해.’
평소 때라면 지형지물을 이용해 도망이라도 쳤을 테지만…….
‘젠장. 너무 안일했어.’
골리앗이 무방비라고 판단한 카이는 뒤쪽의 타이탄 길드원들을 무시하고 달려든 상태였다.
당연히 그의 뒤쪽으로는 70명이나 남은 타이탄 길드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사제들은 모두 녹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아.’
서른 마리의 듀라한들이 버텨주기를 바랄 수밖에.
카이는 롱소드를 굳게 잡으며 되물었다.
“그래. 솔직히 놀랐어. 멍청한 곰인줄 알았더니…… 뱃속에 이무기가 몇 마리나 들어있었다니.”
“흥, 멍청한 머리를 달고 쉽게 올라올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하지만 뭐 하나 잊은 것 같은데?”
카이의 오른손에 들린 롱소드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왼손은 마법 주문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나, 더블 캐스팅 유저거든.”
“크큭, 크하하하하하!”
가소롭다는 듯 크게 웃어재낀 골리앗은 손자의 재롱이라도 보는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상관 없는 이야기가 되겠지. 왜냐하면…….”
후우우웅!
2미터에 달하는 골리앗의 신형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래쪽! 빠르다!’
현실에서라면 절대 저 덩치로 이런 속도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은 게임.
스탯과 아이템의 영향을 받는다면 덩치에 관계없이 빛살처럼 빠른 속도를 선보일 수가 있다.
“무도가 랭킹 1위를 눈앞에 두고, 더블 캐스팅 따위를 할 여유는 없을 테니까.”
말을 마친 골리앗이 솥뚜껑만한 왼주먹을 가볍게 날렸다.
잽이다.
‘검으로 가드를!’
카이는 주먹의 충격을 해소시키기 위해 뒤로 물러서면서 검을 비스듬히 들었다.
방패가 없는 전사가 검으로 피해를 경감시킬 수 있는 훌륭한 방법!
지이이이이이잉!
하지만 골리앗의 잽이 검신을 후려칠 때마다, 카이의 체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아니, 무슨 공격력이……!”
“영체화와 거울 호수의 축복. 이 두 가지 스킬의 조합이라면 난 무적이나 다름없다. 그 말은 즉, 다른 이들처럼 방어에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지.”
한 마디로 공격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는 뜻!
카이가 보기에는 무식하기 그지없는 선택이었지만, 그 효과는 굉장했다.
“커억!”
무도가의 스킬은 기본적으로 공격 속도가 빠르지만, 데미지는 약한 편이다.
하지만 그 단점을 메꾸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연계기.
‘한 번 맞으면…… 빠져나올 수 없어!’
마치 개미지옥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골리앗의 주먹을 한 번 가드하기 시작하자 카이는 쉽사리 도망칠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체화 스킬은 아까 사용했기에 아직 쿨타임!
‘이대로는 진짜 죽는다.’
연신 얻어맞기만 하던 카이가 오른손의 검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캐스팅이 완료된 주문을 쏟아냈다.
“칼날 쇄도, 홀리 익스플로젼!”
콰아아아아앙!
오른쪽에서는 검, 동시에 왼쪽에서는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광선!
그 두 가지 스킬을 바라보던 골리앗이 고른 선택지는 간단했다.
“굳이 둘 중 하나를 맞아줘야 할 필요는 없지.”
또 다시 그 큰 몸을 기민하게 움직인 골리앗은 뒤로 크게 물러나며 카이의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젠장…….”
겉보기엔 영락없는 곰이지만, 전투를 치룰 때만큼은 영민한 뱀처럼 움직인다.
“포기해라. 넌 날 이길 수 없으니까.”
콰드드드득!
무도가의 대쉬 스킬인 도움닫기를 통해 순식간에 접근한 골리앗의 두터운 하이킥이 카이의 머리를 노렸다.
‘여기선 숙이면서 역습을……!’
카이가 자세를 낮추며 돌진하는 순간, 허공 높이 떠있던 골리앗의 다리가 유선형으로 꺾이며 카이의 목을 그대로 찍었다.
“커어억!”
예상치 못한 브라질리언 킥에 무게 중심을 잃은 카이가 크게 휘청거렸다.
눈을 반짝인 골리앗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득달처럼 달려들었다.
“으윽…… 칼날 쇄도!”
“스위칭, 영체화!”
후우우욱!
다시 반투명한 상태가 되어 물리 공격을 무시한 골리앗은 두껍고 거대한 손바닥으로 카이의 얼굴을 꽈악 쥐더니, 그대로 바닥에 쳐박았다.
그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지는 주먹!
“크윽…… 신성사슬!”
촤르르륵!
순식간에 신성 사슬을 팔에 둘러 이를 막아낸 카이는 다시 한 번 골리앗을 향해 빛의 화살을 뿜어냈다.
“스위칭. 거울 호수의 축복.”
팅티티티팅!
골리앗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스킬을 사용했다.
때문에 이번에도 가한 피해는 전무.
하지만 가까스로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강해.’
선행 스탯으로 강화된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잡는 것은 물론, 반사 신경 또한 발군이다.
‘마법 공격과 물리 공격을 번갈아 사용하면 정신을 빼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골리앗의 연계기에 자신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
게다가 자신의 공격은 스위칭이라는 스킬로 모두 무시를 해버리니, 까다롭기 그지없는 상대였다.
‘이럴 때 하이브리드 스킬이라도 있었으면…….’
반은 마법, 반은 물리 피해로 들어가는 하이브리드 스킬!
지능과 힘을 동시에 올리는 마검사들이 아니라면 그 데미지는 매우 약한 수준이었지만, 저 상태의 골리앗을 상대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밖에 없어보였다.
카이는 더블 캐스팅으로 골리앗을 공략하려고 했지만, 그조차도 쉽지가 않았으니까.
“자, 이제 슬슬 끝을 내도록 하지.”
카이의 체력이 절반 밖에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한 골리앗이 천천히 다가왔다.
‘동시에 두 개의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절대 못 이겨. 동시에…… 잠깐, 동시에?’
꽈르릉!
마치 벼락이 치듯, 머릿속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카이는 무엇에 홀린 것처럼 자신이 새롭게 터득한 기술 목록을 펼쳤다.
‘분명…… 있다!’
자신이 원하던 정보를 찾아낸 카이의 눈이 반짝였다.
[태양 분신]
등급 : 유니크
선행 스탯 5개를 영구적으로 소모하여 시전자의 분신을 만듭니다.
분신은 시전자의 70% 능력을 발휘하며, 사망할 시 폭발을 일으키며 적에게 피해를 줍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24시간
‘태양 분신.’
선행 스탯 5개를 영구적으로 소모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스킬은 모두 시험을 해봤지만 이 스킬과 강림 스킬은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이 분신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 싸울 지는 감도 안 잡히지만…….’
카이는 자신이 있었다.
‘이쪽에서 다 맞춰주면 돼.’
분신이 물리 공격을 하면 자신이 마법 주문을.
분신이 마법 주문을 외우면 자신이 물리 공격을.
심지어 분신의 움직임을 살피며 공격 타이밍도 자신이 맞추면 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카이는 망설임 없이 입을 달싹였다.
“태양 분신.”
스킬을 외우자 강렬한 태양빛이 카이를 스캔이라도 하듯, 한 차례 쭈욱 훑고 지나갔다.
[태양 분신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선행 스탯 5개가 영구적으로 소모됩니다.]
[태양 분신의 레벨과 스탯은 시전자의 70%로 설정됩니다.]
[레벨 216, 카이(분신)가 소환되었습니다.]
“…….”
깜빡.
자신과 똑같은 장비를 입은 채, 하얀 신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
눈, 코, 입이 달려있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신장이나 팔다리 길이가 똑같았다.
‘얼굴까지 똑같았으면 기분이 살짝 묘했겠어.’
어쩌면 소름이 돋았을 수도.
“흐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골리앗이 인상을 찡그리자, 분신의 얼굴 어딘가에서 무뚝뚝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대상 확인 완료. 교전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