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힐통령 176화
64장 두 개의 게이트(3)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
흑룡 길드의 마법사 부대를 지휘하는 샤오유는 카이의 질문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가 이동을 원하는 바덴 성은 이미 보스 몬스터가 나온 상황.
당연히 그곳으로의 텔레포트는 불가능했다.
‘심지어 바덴 성에는 상급 게이트가 두 개나 열렸고, 두 곳 모두에서 보스가 나왔어.’
텔레포트를 할 수 없는 영역은 다른 도시보다 훨씬 넓은 것이다.
때문에 바덴 성과 가장 가까운 도시를 순식간에 계산하여 텔레포트를 한 것이건만…….
“최, 최선이에요. 여기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요. 보스 몬스터들의 파장 때문에…….”
“그럼 저는 여기서부터 바덴 성까지 어떻게 가지요?”
“예? 그건 저도 잘…….”
그걸 왜 자신들에게 묻는단 말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샤오유를 쳐다보던 카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책임자 불러주세요.”
“예? 마법사 부대를 이끌고 있는 건 저예요. 책임도 물론 저에게…….”
“그래요? 그건 나와 흑룡 길드가 전쟁을 벌여도 그쪽이 모두 책임질 수 있다는 소리겠지요?”
“호, 호호…… 농담 한 번 살벌하게 하시네요오…….”
샤오유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카이의 눈매가 싸늘해졌다.
“농담? 지금 이게 농담처럼 들립니까?”
“네, 네?”
왜 자신을 이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만약 다른 유저가 자신을 이런 식으로 대했다면 마법으로 꽁꽁 얼려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카이.
‘검은 벌과 타이탄을 짓밟은 괴물 같은 녀석. 게다가 마스터는…….’
최대한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고 하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샤오유는 최대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남성들이라면 그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입을 헤 벌릴 것 같은 가녀리고 청순한 표정!
하지만 애석하게도 카이에게는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다.
“아, 혹시 억울하세요?”
“그건 아니지만…….”
“아니긴요. 얼굴 보니 지금 굉장히 억울하신 것 같은데…… 그거 알아요?”
카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흑룡 쪽에서 나와 타이탄의 싸움을 성사시키지만 않았어도, 난 지금쯤 바덴 성에서 싸우고 있을 거예요. 아닙니까?”
사실이다.
때문에 샤오유는 우물쭈물거리며 쉽게 답을 내어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흑룡 쪽을 배려해 줬습니다. 때문에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고 텔레포트를 사용해주길 원했지요. 왜냐하면 지금 나는 바덴 성으로 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급하니까. 그런데 이 정도 일 처리도 제대로 못 해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하지만 그건 저희의 잘못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그래서 내 잘못입니까?”
카이의 싸늘한 눈동자를 마주한 샤오유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저희가 어떻게 보상을 해드려야…….”
“흠. 현실적으로 지금 내가 바덴 성에 가는 것은 무리인 것 맞죠?”
“예에…….”
“그럼 이렇게 합시다.”
마치 지금까지의 차가운 눈빛과 표정이 거짓이었다는 듯, 미소를 지은 카이가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내가 바덴 성에 도착하기 전까지, 바덴 성이 함락되지 않도록 막으세요.”
“예? 하지만 저에게는 그 정도의 권한이……!”
“그래서 내가 말했죠? 책임자 불러오라고.”
우드득, 우드득.
제 말을 마치고 목과 어깨, 허리부터 무릎까지.
순차적으로 스트레칭을 마친 카이가 등을 돌렸다.
“뭐, 전력으로 뛰어가면 여기서 바덴 성까지는 30분 정도 걸리겠네요. 만약 그 전에 바덴 성이 함락당하면, 단언컨대 그 뒤에는 재미없는 일이 일어날 겁니다.”
***
콰드드드득!
오우거의 거대한 몽둥이에 얻어맞은 건물은 그대로 부서지며 파편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쿠웅, 쿠웅!
투석기도 없건만 거대한 바윗덩이가 날아다니는 전장!
정신없이 흘러가는 전장을 살펴보던 미네르바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오히려 밖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만…….’
서문을 통해 꾸역꾸역 들어온 몬스터들의 기세는 좋았다.
하지만 바덴 성의 시가지는 인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곳.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중형, 대형 크기의 몬스터들에게는 행동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아직도 성 밖에는 수백의 몬스터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상황!
‘하지만 조금 전에 북문이 뚫렸으니 이제 남문도 뚫리겠지.’
지금은 좁은 시가지에서 겨우겨우 막아내고 있을 뿐.
그조차도 세 방향에서 몬스터들이 몰려오면 또다시 후퇴를 해야 한다.
“지원군이 오기는 오는 거야?”
“젠장, 친구들이 온다고는 했는데…… 텔레포트가 안 통해서 달려와야 한대!”
“그걸 또 언제 기다려!”
쉴 틈 없이 치러지는 전쟁판에서 유저들은 엄청난 양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
베어도 베어도 재생하는 트롤의 강인한 육체.
한 번의 타격만 허용해도 빈사 상태에 이르는 오우거의 공격.
그 모든 것들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부터 정신력 소모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
“도, 동문 열립니다!”
“뭐!? 동문은 분명 몬스터들이 없다고…… 아니, 게다가 함락당한 게 아니라 열리다니?”
부하의 보고에 막 오우거의 머리 하나를 잘라낸 기사 단장이 불같이 소리쳤다.
“모, 모험가들입니다! 지원군이에요!”
“지원군?”
그 한마디에 유저와 NPC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수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슴팍에 검은색 용 상징을 달고 있는 이들은 분명…….”
“모험가들의 세력, 흑룡이군!”
“흑룡 길드!”
“세계 10대 길드에서 지원을 온 건가!”
모두가 기뻐할 때, 미네르바는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쟈오 린이 바덴 성에 원군을 보냈다구요? 말도 안 돼요.’
그는 절대 지는 싸움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말은, 패배할 확률이 높아 보이는 싸움에는 아예 발조차 들여놓지 않는다는 뜻.
안타깝게도 현재 바덴 성 전투는 누가 봐도 몬스터들의 승률이 높아 보였다.
“미네르바 님.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죠?”
부 마스터 라즐리도 이상함을 감지하고 운을 띄웠다.
“일단 도와주러 왔으니까…… 뒤통수를 치지는 않을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배신을 하면 흑룡의 이미지는 물론, NPC들의 적대감도 말도 안 되게 치솟을 터.
당연히 쟈오 린이 그런 실수를 범할 리는 없었다.
“지금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예.”
정찰병의 말처럼 흑룡 길드의 지원군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150명 정도.
하지만 그들은 전장의 그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웠다.
“절대! 절대 바덴 성이 함락당하면 안 된다!”
“15분만 버텨라! 그 뒤에는 함락당해도 우리 탓 아니야!”
“우리가 막아야 할 건 딱 15분이다!”
몬스터를 베어 넘기며 소리를 지르는 흑룡 길드원들!
그들의 외침에 유저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15분? 왜 15분인데?’
‘혹시 우리가 싸우는 동안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더 풀렸나?’
‘일정 시간을 버티면 게이트가 소멸된다거나…….’
유저들이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거대한 굉음이 성을 뒤흔들었다.
와르르르르르!
서쪽의 성채가 무너지며 내는 소리였다.
무너진 성채 사이로는 해가 떨어지며 발하는 눈부신 석양이 들어왔다.
“맙소사! 성문을 부수는 건 이해해도…….”
“몬스터 따위가 성채를 부순다고? 에라이! 페가수스 새끼들아 이건 아니지!”
“석양이 진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너진 돌들을 짓밟으며 트롤 히어로가 바덴 성 내부로 진입했다.
“젠장, 이봐요! 15분을 버티면 대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게이트 소멸? 그도 아니면 흑룡의 최정예가 도착하나?”
“응? 그게 무슨 개소리야.”
흑룡 길드원 하나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말했다.
“우리 길드 쪽에서는 더 이상의 지원이 없어.”
“뭐, 뭐라고? 그럼 15분만 더 버티라고 한 건……?”
“그 뒤에도 뭐 빠지게 싸워야 되니까 기적을 바라고 있다면 꿈 깨라고 말하고 싶군. 하지만…….”
그는 3미터 크기의 트롤 히어로를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15분 후면 저런 괴물도 가볍게 요리할 수 있는 녀석이 올 테니까, 최대한 버티라는 소리지.”
***
“음. 생각보다 쾌적한데.”
만약 카이 혼자서 바덴 성까지 전력 질주를 했다면 조금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 캐릭터라고 해도 기본적인 스테미너는 존재하는 법.
체력이 바닥난 상태로 게이트 두 개를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은 세상에 없다.
때문에 카이는 듀라한 하나의 등에 업혔다
‘스테미너가 항상 최대치인 건 언데드의 장점 중 하나니까.’
듀라한의 등에서 내린 카이는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바덴 성을 쳐다보았다.
만약 지금이 가을이었으면 바덴을 둘러싼 평야는 황금빛 바다처럼 흔들리고 있을 터.
하지만 추수가 끝난 평야는 마치 죽음의 땅을 보는 것처럼 삭막했다.
게다가 평야에는 밀과 쌀 대신 흉측한 몬스터들이 있으니 더욱 그렇게 보일 수밖에.
“어디 보자…….”
카이가 날카로운 눈으로 전장을 관측했다.
‘서쪽은 아예 성채가 무너졌네? 북문도 뚫렸고, 남문은 아직 버티고 있네. 그리고 동문은…… 어라, 저쪽은 몬스터가 몇십밖에 없네.’
만약 내성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수성을 할 거라면 동문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 가장 수월해 보였다. 하지만 카이는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건 며칠 전 읽었던 손자병법에도 자주 언급되던 상황이구나.”
손자병법 제2계, 위위구조(圍魏救趙).
포위망에 갇힌 아군을 구할 때는 무작정 그들과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우회하여 적들의 배후를 치는 것이 몇 배나 효과적이라는 것을 설명해 놓은 계략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적들의 배후.
그것도 가장 맹렬한 공세를 펼치고 있는 서문의 몬스터들을 뒤에서부터 공격하는 것!
카이는 반쪽도 남지 않은 태양을 쳐다보았다.
“아쉽게도 이제 태양의 시간은 끝났어.”
지평선 너머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던 태양이 떨어지자, 대지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밤이 되어 태양이 사라졌습니다. 태양의 신체 효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모든 능력치를 20%나 상승시켜주는 꿀 같은 패시브 스킬!
자신의 힘이 크게 약해진 것이 느껴질 정도로 능력치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하나, 카이는 절대 아쉬움을 뱉어내지 않았다.
덜그럭, 덜그럭, 텅텅!
해가 지면 모든 몬스터들의 능력치는 30%가 증가한다.
물론 유저들이 소환한 몬스터들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
단, 언데드는 다르다.
‘네크로맨서 랭커들의 영상을 보면 하나같이 하늘이 새카만 이유가 있지.’
태양의 사제가 낮 동안 강해지듯, 네크로맨서는 밤이 되면 강력해지는 직업이다.
물론 카이에겐 네크로맨서의 스킬이 단 하나도 없었지만, 언데드는 있다.
[밤이 되었습니다. 통솔하는 언데드들의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가자.”
덜그럭, 덜그럭.
듀라한 23마리와 59마리의 스켈레톤.
그들을 통솔하는 카이는 곧장 언덕길을 내달리듯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