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힐통령 180화
65장 메리 크리스마스 온라인(2)
침공 이벤트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 페가수스 사는 또 하나의 깜짝 소식을 전했다.
“크리스마스 이벤트라…….”
침공 이벤트가 유저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이벤트였다면,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그와는 성질이 조금 많이 달랐다.
“한정판 캐릭터 의복을 시작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크리스탈 하트까지?”
한 마디로 연인과 친구들이 있는 이들을 위한 이벤트다. 카이와는 그 어떤 접점도 없는 이벤트!
……인 줄 알았다.
“먹고 싶은 게 생겼느니라.”
두 볼을 공기로 빵빵하게 부풀린 헬릭은 오랜만에 찾아온 카이를 보며 투정을 부렸다.
“아니, 뭐가 또 그렇게 드시고 싶으신데요?”
“크리스마스 스페셜 스플리트.”
“허…… 그건 또 어떻게 아셨대.”
간식 조달을 위해 천상의 정원을 방문한 카이는 제 이마를 짚었다.
헬릭을 힐긋 쳐다보니 지난번보다 살짝 뱃살이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이거 내가 신생(神生) 하나 망치는 거 아니겠지?’
신자에게 간식거리를 잔뜩 받아서 살이 찌는 신이라니!
자신이 가져온 간식 꾸러미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카이가 말을 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뭔지는 아세요?”
“안다.”
“오?”
바보일 줄 알았던 헬릭이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선보이자,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인데…… 헬릭이 어떻게 알지?’
그에 대한 의문은 금방 풀렸다.
팔짱을 낀 헬릭이 자신의 어깨를 앙증맞게 으쓱거리며 베시시 웃었으니까.
“이 몸이 인간들에게 가르침을 내려준 최초의 날이 아니더냐.”
“……진짜요?”
“……네 녀석, 성전(聖典)을 읽는 것에 너무 소홀한 것 아니더냐?”
헬릭이 살짝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호감도가 떨어질 기미가 보인다!’
다급해진 카이는 빠르게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에이, 농담입니다. 크, 크리스마스라서 제가 이렇게 선물도 가져왔잖아요?”
황급히 간식 꾸러미를 탈탈 털어낸 카이는 산처럼 쌓인 과자와 사탕, 초콜릿과 케이크들을 내밀었다.
“오오오…… 역시 나의 대리인! 나의 마음을 이토록 잘 헤아린다!”
밤하늘의 별처럼 눈동자를 반짝거린 헬릭은 간식더미로 달려들었다.
척.
물론 카이는 팔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왜, 왜 막는 것이냐……?”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의 심정을 설파한 헬릭이 울적한 목소리로 물었다.
“먹고 나면 양치질 꼭꼭 하시고, 하루에 세 개씩만 드세요.”
“이, 이렇게나 많은데…… 하루에 세 개뿐이라고……? 너무하다! 그대는 극악무도한 사람이다!”
“살쪄요. 이도 상하고.”
“후으으으…….”
“대신 말 잘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시면…… 크리스마스 스페셜 스플리트를 가져다드릴게요.”
크리스마스 스페셜 스플리트!
그 단어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헬릭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정말이더냐?”
“예. 물론이지요. 물론 그것을 얻기 위해 제가 엄청난 고생을 해야겠지만…… 반드시 구해다드리겠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스페셜 스플리트는 크리스마스 이벤트에서만 구할 수 있는 한정 메뉴였다.
바나나 위에 초콜릿, 바닐라, 딸기와 커피 아이스크림이 올라가고, 그 위에 세 개의 특별한 시럽이 올라가있으며, 마지막으로 맛 좋은 쿠키들이 보기 좋게 꽂혀 있는 초인기 상품!
‘저거 구하려면 몬스터들 부지런히 잡아야 하는데…….’
자신의 레벨과는 맞지 않는 저레벨 몬스터도 잡아야 하기에 카이에게는 손해다. 하지만 헬릭과의 호감도를 올릴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봐야지.’
여태까지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선행 스탯을 발급하는 주체가 바로 헬릭이다.
‘그녀가 감동을 받거나, 수긍이 가면 선행 스탯을 주는 형식이야.’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 법!
평소에도 이쁜 짓을 하는 카이가 착한 일까지 한다면?
‘선행 스탯이 점점 더 많이 쌓이겠지.’
게다가 자신은 태양 목격자라는 스페셜 칭호를 통해 선행 스탯이 50% 추가 상승한다.
‘이번에도 내가 받아야 할 선행 스탯은 10개였지만 결과적으로 15개나 받았지.’
예전에 아쿠아베라 왕국을 구했을 때보다도 많은 선행 스탯을, 고작 바덴 성 하나를 구한 뒤 획득한 것이다.
한마디로 선행 스탯을 얼마나 획득하는 지는 순전히 헬릭의 뜻에 달려 있다는 소리!
‘다른 유저들에게는 그냥 형식상의 신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진정한 신이나 다름없어.’
헬릭을 바라보는 카이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 안 가득 초코 케이크를 머금은 헬릭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
“후우, 재료를 이제야 다 구했네.”
크리스마스 스페셜 스플리트.
그것을 받으려면 이벤트 NPC에게 몬스터들을 잡고 나온 증표들을 가져다 줘야 한다.
‘밴시들이 조금 까다롭긴 했어.’
물리 공격만으로는 데미지가 잘 들어가지 않아 잡기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고작 130레벨인 덕분에 카이는 쉽게 잡을 수는 있었지만, 허공을 떠다니는 녀석들이기에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야야, 한정판 코스튬 무슨 부위 남았냐?”
“나는 이제 모자만 남았네. 너는?”
“난 신발이랑 수염. 혹시 재료 남는 거 있어?”
“응, 신발 재료는 다 있는데 수염 재료는 좀 부족하네. 가자. 도와줄게.”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어느 도시를 가도 도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게임 안임에도 불구하고 길거리 여기저기에 캐롤이 울려 퍼지고, 광장 지역에는 밝은 전구들과 커다란 트리가 들어서있었다.
“헬릭이 가르침을 내려준 날이라…… 이런 식으로 변형시켜도 기독교 쪽에서는 용케 별말 없네.”
피식 웃어 보인 카이는 곧장 이벤트 NPC를 찾아갔다.
현실의 크리스마스를 반영한 듯, 제법 중요한 NPC들은 의상이 전부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꾸며진 옷으로 바뀐 상태였다.
‘하긴,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예전부터 게임사들이 가장 좋아하던 컨텐츠였지.’
왜냐하면 동시 접속자 수와 함께 컨텐츠 구매력이 증가하니까!
물론 미드 온라인은 계정비 이외의 유료 콘텐츠를 판매하지 않았다.
다만, 이벤트 한정 의상이라는 것은 유저들의 컬렉터 기질을 자극시켰다.
‘헬릭한테 입혀주면 잘 어울릴 것 같긴 한데…….’
그러기 위해선 다른 코스를 돌아 또 몬스터들을 잡아야 한다.
머리를 긁적거린 카이는 이벤트 NPC를 발견하곤 곧장 그녀에게 다가갔다.
“메리~ 크리스마스~ 어떤 일로 오셨나요?”
“크리스마스 스페셜 스플리트 교환해 주세요. 재료는 여기요.”
“네에~ 재료 확인되셨구요~”
귀엽게 생긴 NPC는 초록색과 빨간색 포장지로 둘러진 네모난 상자를 카이에게 건넸다.
“크리스마스 스페셜 스플리트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에게 스플리트를 받아 든 카이가 자리를 떠나려는 찰나, 뒤에 서있던 사람이 다급한 목소리로 NPC에게 말했다.
“저…… 크, 크리스탈 하트 받으려면 재료가…….”
“밴시의 옷자락 15개와 수정 골렘의 파편 30개. 그리고…….”
“다, 다른 재료들은 종류별로 넘치게 있습니다. 하지만 밴시의 옷자락은 자력으로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서요…… 어떻게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이런…… 죄송해요 모험가님. 하지만 이 재료들이 있어야 크리스탈 하트를 만들 수 있답니다.”
이벤트 NPC의 미안한 표정을 마주하던 남자 유저는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흠.”
우연찮게 그의 말을 듣게 된 카이는 인벤토리를 슬쩍 쳐다보았다.
‘밴시의 옷자락은 32개나 남았네.’
자신의 홀리 익스플로젼 몇 방에 죽어나간 녀석들만 수십 마리였으니까.
‘지금 밴시의 옷자락 시세가 미쳐 날뛰고 있긴 한데…….’
이벤트에 필요한 재료들의 가격이 폭등하는 건 어느 게임에서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통장이 뚱뚱한 카이는 쓸쓸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결심을 내렸다.
“저기요!”
서둘러 달려가 그를 세우자, 남자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네……? 무슨 일이신지…….”
“밴시의 옷자락, 필요하십니까?”
카이의 물음에 남자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필요해요! 꼭 필요합니다! 아, 그런데…….”
이내 안색이 어두워진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보유 골드가 없어서 그……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카이가 재료 아이템을 판매하는 장사꾼이라고 생각한 그는 정중하게 사과하며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아뇨. 마침 재료가 15개 정도는 남아서요. 그리고…….”
활짝 웃은 카이가 거래 창을 띄웠다.
“아까 다른 재료들은 넘치도록 많다고 하셨죠?”
“네에…… 그렇습니다만.”
“혹시 크리스마스 산타 복장 재료들도 있습니까?”
“아, 네! 한 개 세트 정도를 뽑을 정도는 있습니다.”
“그럼 밴시의 옷자락 15개와 교환하시는 게 어떠세요?”
남자의 입장에서도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밴시는 마법사의 도움 없이 순수 전사가 사냥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몬스터였으니까.
때문에 이벤트 재료 중에서도 가장 가격이 높은 재료였다.
“그, 그래 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지요! 다른 재료들은 구하기가 쉬운 편이니까요.”
남자는 순식간에 밝아진 안색으로 거래 창에 재료 아이템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성공적으로 거래가 끝나자, 그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뭘요. 오히려 죄송하네요. 다른 재료들도 구하려면 힘드셨을 텐데.”
“아니에요. 가격으로 따지면 제가 더 이득을 봤으니 오히려 죄송하죠.”
건네받은 밴시의 옷자락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던 남자가 말을 이었다.
“크리스탈 하트를 받으면 짝사랑하던 그녀에게 용기 내서 고백해 볼까 해요.”
“커플들이 많이 생기는 밤이죠.”
볼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고개를 들어올린 카이가 씨익 웃었다.
“하늘까지 분위기를 만들어주네요.”
“화이트…… 크리스마스.”
몽롱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던 남자가 당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굉장히 용기가 없는 편이예요. 항상 고백을 하고 싶어도, 계기가 필요하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늘 미뤄왔거든요. 이번에도 크리스탈 하트가 없으면 고백을 하지 말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고백할 수 있겠어요.”
“다행이네요. 조금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고백에 도움이 될 이야기 하나 들어보실래요?”
“경청하겠습니다.”
여자를 어떻게 사귀냐고 아버지에게 여쭤봤을 때 해주셨던 이야기다.
“여자는 자신에게 고백할 용기조차 없는 남자에게 자신의 남은 인생을 맡기지 않아요. 그러니까 당당해지세요. 그녀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커다란지를 꼭 전달하세요.”
“아……!”
카이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은 남자가 감동 받은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말투도 친절하시고, 인물도 훤칠하셔서 여자분들에게 인기도 많으실 것 같아요! 해주신 말은 꼭 잊지 않겠습니다! 꼭…… 꼭 그녀에게 제 진심을 전달하겠습니다!”
큰 용기를 얻은 남자는 밝은 인사를 남기며 떠나갔다.
“…….”
한정우, 22세, 모태솔로.
그는 연애를 글과 언어로 배운 남자였다.
***
“어, 어떻게 이렇게 일찍 돌아왔느냐?!”
“재료 구하는 게 뭐 힘들다고요.”
신출귀몰 스킬을 통해 천상의 정원으로 돌아온 카이는 빠르게 간식들부터 스캔했다.
“흠…… 딱 세 개만 드셨겠지요?”
“물론이니라! 나는 자비와 진실, 태양의 신.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할 것처럼 보이느냐?”
‘굉장히 그래 보이긴 하지만…….’
일단은 신이다.
사탕 하나를 더 먹겠다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터.
피식 웃은 카이는 헬릭에게 상자 두 개를 건네주었다.
기쁜 마음으로 상자를 받아든 헬릭은 아이답게 커다란 상자부터 뜯었다.
“오오……오? 이건 무엇이더냐?”
“헬릭님의 가르침이 내려온 오늘을 기리기 위해 인간들이 입는 옷입니다.”
“오오! 나처럼 예쁘구나!”
털로 이루어진 빨간색과 하얀색 옷이 마음에 든 듯, 헬릭은 곧장 그것들을 입었다.
“잘 어울리느냐?”
“예. 무척이요.”
생각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모습에 흐뭇하게 웃어 보인 카이는 그녀의 뒤로 돌아갔다.
“무엇 하는 것이냐?”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바닥까지 쓸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크게 쥐어 반으로 접고는 두 갈래로 묶은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쇠고리처럼 생긴 트윈 테일의 산타 소녀라…… 좋네요.”
열심히 스크린샷을 찍은 카이는 그제야 나머지 선물 상자를 가리켰다.
“저것도 뜯어보세요.”
“응!”
서둘러 남은 상자를 뜯은 헬릭의 눈이 태양처럼 번쩍번쩍 빛났다.
“크리스마스 스페셜 스플리트으!”
“메리 크리스마스, 헬릭님.”
“그대도 메리 크리스마스니라! 그대의 앞길에 행운이 있기를!”
띠링!
[헬릭의 축복(행운)을 부여받았습니다.]
[7일간 플레이어의 행운이 대폭 상승합니다.]
“…….”
떠오른 메시지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카이는 의자에 앉아 바닥에 닿지 않는 두 다리를 흔들며 스플리트를 맛있게 먹는 헬릭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