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81화 (181/441)

# 181

힐통령 181화

66장 The Rich(1)

“2만 원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치킨 배달부에게 현금을 내민 한정우는 박스에 잘 포장된 치킨을 받아들고는 곧장 거실로 달려갔다.

“아직 시작 안 했나.”

적당히 기분이 좋아질 만큼 두근거리는 심장.

그는 괜히 한쪽 벽에 달려있는 시계를 힐긋 쳐다봤다.

‘방송 시작 시간은 오후 8시라더니, 바로 시작하지는 않네.’

NET미디어의 야심작, 48억이라는 쌩돈과 시청률에 따른 인센티브라는 괴물 계약의 산물.

자신이 일으킨 비르 평야 전투 영상이 잠시 후면 브라운관을 통해 전국에 방영될 예정이다.

치킨 박스를 뜯던 한정우는 패드를 통해 커뮤니티의 반응을 확인했다.

-왜 시작 안 함? 방송 시작 8시 아님?

└넌 월드컵 방송 예정 시간이 4시이면, 땡하는 순간 공 차는 거 봤냐?

└그렇지. 애국가도 부르고, 선수들 입장하고, 해설가들끼리 수다도 떨고 시작하지.

-아 진짜 너무 궁금하다. 연말에 이런 방송이라니, 집 밖에 못 나가겠잖아.

└괜찮아. 어차피 이불 밖은 위험해.

-그런데 전쟁 영상은 이전에도 제법 많지 않았나? 왜들 이리 호들갑이래?

└언노운 포함, 세계 10대 길드 중 6곳이나 참여한 대전쟁이야. 적군도 수만 단위라고 했으니 이전에 본 적 없는 꿀잼일 거다. 장담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을지도.

└애초에 적군 수만 명이 말이 되냐? 하여튼 한국인들 과장은 알아줘야 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한껏 기대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그 반대도 적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고작 전쟁 영상 아닌가요? 개싸움일 것 같은데.

-여태까지 내가 본 레이드 영상만 몇 개인데…… 언노운이라고 너무 특별 취급해 주네.

└랭킹 1위를 특별 취급해주지 그럼 누굴 특별 취급해주냐?

-전부 시끄러워. 오늘의 주시 포인트는 언노운의 얼굴이 공개될지, 안 될지다.

-언노운님 얼굴 보기 위해 본방 사수 대기 중인 팬클럽 회원 1人.

└222222

└3333

정우가 갓 튀겨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닭다리를 크게 한입 베어 무는 순간,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원래 이 시간에 방영하던 프로그램이 아닌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진행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제껏 본 적 없는, 볼 수 없던! 하지만 누구나 보고 싶었던! 미드 온라인 최초의 전쟁 영상과 함께 여러분을 찾아뵙게 된 권준혁.

-김주리예요.

깔끔한 정장을 갖춰 입은 두 명의 남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NET미디어에서도 이번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가 큰지, 두 명 모두 미드 온라인 방송 진행자로써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최상위급 인물들이었다.

말끔한 이미지와 입담도 입담이지만, 목소리가 좋기로 소문난 권준혁, 그리고 청순하게 생겼지만 게임 폐인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지닌 김주리 모두 팬층이 확고한 MC들이다.

김주리에게 고개를 돌린 권준혁이 입을 열었다.

-주리 씨. 평소에 미드 온라인은 좋아하시나요?

-어머, 그걸 진짜 모르셔서 물으시는 거 아니죠? 그렇죠?

조그마한 손으로 제 입가를 가린 김주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권준혁을 흘겼다.

이에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 권준혁이 손사래를 쳤다.

-하하하. 물론 주리 씨가 게임 폐인인건 압니다. 이미지 보호 차원에서 예의상 여쭤본 거예요.

-에휴. 저 이미 시집 다 갔어요. 저 같은 게임 폐인을 누가 데려가요. 히잉.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프로그램 진행을 시작한 권준혁이 재차 질문했다.

-미드 온라인에 대해서 잘 아신다면, 오늘 저희가 보여드릴 영상에 대해서 짤막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우선 다들 미드 온라인의 랭킹 시스템에 대해서 아실거예요.

-물론이죠. 최상급 랭커는 걸어 다니는 기업이라 불릴 정도잖아요. 요즘은 결혼회사 등급표에서도 최상위 랭커가 1급 신랑, 신부 감으로 꼽힌다고 하더군요.

-호호. 맞아요. 벌이도 좋고, 자택 근무라서 사랑하는 사람끼리 오래 붙어있을 수도 있으니 최고의 결혼 상대지요.

-그런데 갑자기 랭킹에 대해선 왜 말씀하신 겁니까?

-왜냐하면 오늘 공개해드릴 영상의 주인공, 언노운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거든요.

자리에서 일어난 김주리는 마치 기상 캐스터처럼 기다란 봉을 들고 화면에 떠오른 언노운의 스펙을 빠르게 정리했다.

-와…… 랭킹 1위라니…… 설명하신 것만 들으면 말 그대로 괴물이네요. 괴물.

-그렇죠. 최단 기간에 레벨을 이만큼이나 올렸고, 실력이 성장하는 속도 또한 발군이예요. 흔히 무언가를 빨리 배우는 사람을 두고 스펀지처럼 흡수한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언노운은 거대한 스펀지가 맞아요. 그것도 드넓은 바다에 빠진 스펀지죠.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라는 뜻이군요.

-이것뿐만이 아니예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언노운의 행보는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것들뿐이에요.

이어서 자료 화면들이 빠르게 떠올랐다.

-붉은 주먹 길드와 단신으로 벌인 싸움, 글렌데일 도시의 오크 토벌대, 아직도 깨지지 않는 최단 기록의 인던 공략, 한 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아오사 솔로 레이드는 물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세계 10대 길드의 아성마저 무너트린 플레이어예요.

-마치 영웅의 서사시를 읽는 기분이 들 정도로 대단한 일들뿐이네요.

-네. 심지어 이번에는 그를 주축으로 600명이 넘는 최상위급 랭커들이 모였어요.

-아아, 저도 대충 알고 있습니다. 전쟁을 위해서였죠? 어우 그런데…… 랭커들 숫자가 그 정도면 누가와도 다 이길 수 있겠는걸요?

권준혁이 감탄사를 터트리며 말하자, 김주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준혁 씨, 겜알못이죠?

-예, 예?

-게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줄여서 겜알못. 모르세요?

-에이. 제가 미드 온라인 방송만 벌써 1년 가까이 하고 있는데…… 남들보다는 잘 알죠. 크흠. 제가 알기로 랭커들이 같은 목적을 띄고 그렇게 모였던 사례는 없었던 걸로 압니다만?

-맞아요. 이번이 처음이죠. 하지만 상대는 무려 수만 명이나 되는 뮬딘 교의 암흑 교도들이예요.

-뮬딘 교!

어차피 대본대로 돌아가는 방송이라지만, 두 사람의 연기는 훌륭했다.

권준혁이 정말 화들짝 놀란 사람처럼 소리치자, 김주리가 입 꼬리를 살포시 올렸다.

-상위권 랭커들에 의해 꾸준히 언급되었던 단체지요? 미드 온라인의 절대적인 악. 과거에 태양교보다 대단한 성세를 누렸다는 단체예요.

-그런 곳에서 수만 명의 병력을 보냈다니…… 고작 랭커 수백 명이서 이길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건 영상으로 함께 확인하시죠.

서로 웃고 있는 김주리와 권준혁의 모습이 점점 줌 아웃되며 사라지고, 희미한 영상이 떠올랐다.

동시에 커뮤니티의 서버가 터질 정도의 반응들이 튀어나왔다.

-시작한다!

-젠장! 왜 한국 시간 오후에 하는 건데? 이런 건 불 끄고 봐야 제 맛인데, 미국은 지금 대낮이라고!

└암막 커튼이라도 달던지.

-오오, 나 저곳 알아! 비르 평야다!

영상의 시작 부분은 드넓은 창공을 날아다니는 한 마리의 독수리가 보여졌다.

독수리와 점점 가까워지던 카메라는 이내 독수리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폭만 수백 미터가 넘는 수베르 운하!

그리고 흙과 모래,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비르 평야에는 천 명이 넘어가는 유저와, 수백 명의 엘프들이 모여 있었다.

-잠깐만, 랭커들 500명 정도라고 하지 않았어? 유저들만 천 명이 넘어보이는데?

└그러게. 길드 소속 아닌 유저들도 몇 백 명은 되어보이네.

-방송 사고인 건가?

-아무래도 좋고, 저런 숫자의 인간들이 질서 정연하게 모여 있는 게 그냥 멋있다.

-와, 위엄 보소. 내가 적군이면 저거 보고 그냥 도망간다.

그런 대군의 선봉에 서있는 플레이어!

바다의 폭군 세트를 장비하고 있는 카이는 세상을 아우를 듯한 위엄을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세는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두두두두두!

하얀 눈덩이로 뒤덮여 있는 피베즈 산맥이 새카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유저들의 군대가 초라하게 보일 정도의, 정말 엄청난 대군.

방송을 보는 이들은 먹던 야식조차 내려놓고 멍한 표정으로 키보드를 놀렸다.

-지금 장난해? 저거랑 싸운다고?

-와, 미쳤냐? 수만 명을 말로 들을 때랑 실제로 볼 때는 그냥 차원이 다른데?

-저거 이길 수는…… 아니, 싸움 자체가 성립되기는 하나?

-어어! 유저들 막 이탈한다! 로그아웃 하는데?

-아하. 이래서 유저들이 몇백 명 안 남았던 거구나?

순식간에 줄어드는 카이의 군대.

질서정연하게 서있던 대열의 여기저기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버렸다.

거의 반토막이 나버린 유저들의 숫자!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언노운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빠르게 무리를 재정비하고 펼쳐진 연설!

그와 함께 부여된 사기 진작 버프는 적군과의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였다.

-역시 난놈은 난놈이네.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것 같지만…… 그래도 응원한다! 예전부터 팬이었다고.

-하지만 미드 온라인의 대규모 전투는 현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전술도 중요하지만 머릿수가 이렇게 대여섯 배나 차이가 나버리면…….

시청자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언노운은 자신의 다리를 앞으로 한 걸음 크게 내딛었다.

동시에 사제복을 장착한 그는 아군에게 축복을 내린 뒤, 지휘를 시작했다.

-그렇지. 다리를 틀어막으면 적은 머릿수로도 대군을 상대…… 응?

-아니, 언노운 미쳤냐? 거기서 운하를 왜 얼려? 아니, 그리고 거길 또 왜 올라가?

-으아아아! 망했다! 적군들도 넘어오기 시작하잖아!

-저 놈 저거, 혼자 싸우는 것만 잘하지 전쟁은 쥐뿔도 못하네!

시청자들의 비난은 전쟁이 본격적은 궤도로 들어가면서 더욱 심해졌다.

-어이구, 이럴 줄 알았다. 일방적으로 밀리는데?

-이단 심판관들이 너무 강해. 유저들이 최소 열 명은 붙어야 제지 가능한 수준이야.

-언노운이 왜 이런 전투를 강행했는지 모르겠어. 다리를 틀어막고 수성전을 하면서 적군의 수를 갉아먹는 것만이 유일한 승리 방법이었는데…….

-응? 그런데 언노운이 이단 심판관 사냥에 나섰는데?

-그래봤자 시간 끌기…… 어?

전쟁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언노운의 손에 가장 강력하던 이단 심판관이 쓰러지고, 유저들과 엘프의 사기는 급격히 상승했다.

-이거 잘하면……?

-뮬딘 교의 본대는 철혈 기사단이 완전 묶어놓고 있어.

-언노운이 계속 이런 식으로 이단 심판관만 처치해주면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모든 이들의 예상을 박살 내려고 작정이라도 하듯, 언노운은 후퇴를 지시했다.

-에라이 멍청아! 기세를 탔을 때 몰아붙여야지!

-아이고, 망했네, 망했어.

-암 걸려서 더는 못 보겠네요. 방송 하차합니다.

-편집은 진짜 웬만한 영화 찜 쪄먹을 정도로 잘했는데, 전쟁 내용이 너무 부실…… 음?

우르르르.

처음에는 집 밖의 나무가 흔들린 것 같은 아주 조그마한 소음이었다.

처음에는 시청자들 중에서도 청각이 예민한 자들만이 겨우 들을 정도의 작은 소음.

하지만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영상에서 그 소리만 집중적으로 잡으며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 안 들려? 우르릉거리는……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한 소리.

-지진? 글쎄. 우리 집은 멀쩡한데?

└멍청아. 현실에서 말고 저 영상에서 말이야.

└어라, 그러고보니 조금씩 그런 소리가 커지는 것 같은 기분이…….

우르르릉, 우르르르르르릉!

소음이 점점 커져 굉음이 되어 모든 사람이 인식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유저와 엘프들은 이미 얼음판에서 물러나 뭍으로 올라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답답한 마음에 사이다를 콸콸 부어주기라도 하듯, 인어들의 군대가 아이스필드와 뮬딘 교를 박살 내버렸다.

“여기가 클라이막스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한정우는 그 뒤의 내용도 즐겁게 감상했다.

‘영상미 하나는 끝내주네. 특히 유저들이 다리를 통해 뮬딘 교의 본대를 강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야.’

커뮤니티에서도 벌써부터 움짤이 돌아다니는 장면이었다.

수백 억을 들여 만든 영화조차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

그것은 플레이어가 배우들처럼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오는 모습이었다.

플레이어들이 정말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우기에 나오는 치열함과 용맹함이었으니까.

2시간 30분이라는 긴 프로그램이 끝났지만, 여운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짙어져만 갔다.

“음…… 나중에 유료 결제해서 한 번 더 봐야겠어.”

비록 자신이 주인공인 영상이라지만 다른 길드의 주요 랭커들의 캐릭터도 잘 살아나도록 편집을 했기에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전투 도중에 피어나는 우정과 필사적인 랭커들의 모습, 죽어가는 동료를 향해 소리치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전우애까지!

막말로 스토리 하나 없이 싸움만 주구장창하는 영상일 뿐이지만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를 저런 식으로 자세하게 보여주자 손바닥마저 축축해진 상태였다.

띠리리리리리.

한정우에게 전화가 온 것도 그때였다.

입가심으로 콜라를 마신 한정우는 전화를 받았다.

“예, 한정우입니다.”

[안녕하십니까! NET미디어의 김인하 PD입니다. 혹시 프로그램 보셨습니까?]

“네. 잘 봤습니다. 정말 잘 만드셨네요. 덕분에 2시간 30분이 지났는데 화장실도 못 갔어요.”

[최고의 칭찬이십니다. 다름이 아니라 좋은 소식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좋은 소식이요? 뭡니까?”

한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김인하 PD의 기쁨에 겨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졌다.

[이번 프로그램, 1997년 이후로 나오지 않았던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시청률인 65.8%보다 살짝 못 미치는 63.4% 나왔습니다. 연속극도 아니고 파일럿 단일 프로그램이라는걸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결과예요.]

“……잠깐만요. 그 말씀은?”

멍한 표정을 짓는 한정우의 뇌리로 계약 내용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아니나다를까, 김인하 PD가 능글맞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부자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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