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힐통령 184화
67장 운수 좋은 날(2)
띠링!
[여명의 검법 스킬 레벨이 고급 2레벨로 상승하였습니다.]
[여명의 검법 스킬 레벨이 고급 3레벨로 상승하였습니다.]
단숨에 두 단계나 껑충 뛰어버린 스킬 레벨.
동시에 카이가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몸을 움찔거렸다.
‘……뭐지?’
슬쩍 두 손을 내려다보았지만 달라진건 없었다.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외형적인 부분이 바뀐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감각은 계속해서 소리쳤다.
자신은 달라졌노라고.
‘마치…… 힘 스탯을 한 번에 많이 올렸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야.’
겉모습이 바뀌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 커다란 것이 뒤바뀐 듯한 기분이다.
그것은 일종의 감각이었다.
지금 손에 검을 쥔다면 무엇이든 베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감각.
‘지금 당장 검을 휘둘러보고 싶어.’
근질거리는 마음은 자연스레 오른손이 검 손잡이를 움켜쥐게 만들었다.
강인한 의지의 롱소드.
히든 클래스로 추정되는 대장장이 플레이어가 만들어낸 말도 안 되는 검이다.
이 검을 처음 장착하게 된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느낌이 달라.’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익숙하던 검이 마치 새로운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이건 깨달음?’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성취한 깨달음은 아니다.
시스템의 도움을 통해 억지로 경지를 끌어올린 격이다.
때문에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무언가를 깨닫기는 깨달았다.
‘검이란 무엇일까.’
카이가 대번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검이란 사용하는 이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도구일 수도, 약자를 약탈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바로 적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라는 것이다.
“무기라면 적을 베어야지.”
스윽.
카이가 천천히 정원의 외곽을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헬릭이 경고했다.
“그, 그쪽은 위험하니라! 한 번 떨어지면 아무리 그대라도 죽음을…….”
헬릭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듯, 천공섬의 끝자락에 위치한 카이는 자신을 뒤흔드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면서 내려다보이는 구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스킬 레벨의 마스터는 곧 경지의 완성을 의미하지.’
검술이 고급 10레벨을 달성한다는 건, 검술의 극의를 깨우친다는 소리다.
‘판타지 소설이나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소드마스터와 똑같은 경지야.’
흔히 일당천, 일인 군대라고 묘사되는 절대적인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현재 검법이 고급 3레벨인 자신이라면 어떨까?
‘아직 검의 극의를 논하기엔 한참이나 멀었지만…….’
스윽.
카이의 사제복이 살짝 나풀거리는 소리가 허공을 통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더불어 청각이 예민한 엘프 정도가 아니라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의 소리도 함께 퍼졌다.
스릉…….
검이 뽑히는 소리였다.
‘정말 조용해. 나조차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야.’
검을 다루는 실력 자체가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진일보했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가볍게 검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가 검을 휘두르면서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유하린이었다.
‘그녀의 검은 부드럽고, 빨랐지. 그리고 조용했어.’
바람을 가르는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우웅!
아쉽게도 카이의 검은 아직까지 무음(無音)의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전의 검격이 샷건을 쏘는 것처럼 굉음을 토해냈다면, 지금은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을 쏘아내는 것처럼 조용했다.
파아아아아앙!
하지만 소리가 작아졌다고 위력이 약해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고작 스킬 레벨 두 개가 올라갔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뽐냈다.
뭉게뭉게.
반으로 갈라진 구름은 마치 이별한 연인들처럼 뒤도 돌아보지않고 반대쪽을 향해 흘러갔다.
“후우.”
갈라버린 구름 밑으로는 구름들이 더 있었지만 현재 수준으로 자를 수 있는 건 고작 하나.
하지만 멀리 있는 대상을 검이 만들어낸 풍압만으로 베어냈다는 건 굉장한 일이었다.
띠링!
[검에 대한 깨달음을 획득하셨습니다.]
[패시브 스킬, 검풍(劍風)를 깨우치셨습니다.]
“검풍이라…….”
여운에 잠긴 목소리를 뱉어낸 카이는 검을 소리없이 갈무리하며 스킬 정보를 확인했다.
[검풍(劍風)]
등급 : 유니크
정신을 집중하여 검을 휘두르면 강렬한 바람이 일어나 원거리의 적을 강타합니다.
물리 공격력의 50% 데미지.
(재사용 대기시간 없음)
‘지금 내 정신력으로는 많이 사용하진 못할 거야.’
고작 한 번을 사용했을 뿐인데 머리가 살짝 지끈거린다.
한계는 최대한으로 잡아야 다섯 번 정도일 터.
작다면 작은 횟수였지만, 변수를 만들어내기에는 충분한 횟수이기도 했다.
카이는 그대로 몸을 돌려 헬릭에게 다가가더니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헬릭님, 정말 감사합니다.”
“으, 응?”
아직 본인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지 못한 헬릭이 눈만 깜빡였다.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이냐?”
“헬릭님이 상자를 열어주신 덕분에 좋은 가르침을 얻게 되었습니다. 역시 태양신이십니다.”
“흐, 흐으응. 내가 뭐라고 했느냐. 나만 믿으면 된다고 했잖으냐.”
자신의 간식…… 아니, 지상 대리인이 존경심을 표하자 헬릭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누가 봐도 기분이 좋아진 듯한 모습!
“아니지. 이걸 겨우 말 몇 마디로 넘어가려는 건 도둑놈 심보 같습니다. 케이크를 각각 다른 맛으로 다섯 개 사드릴게요.”
카이의 선언에 헬릭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입을 쩍 벌렸다.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을 표한 그녀는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목소리를 힘겹게 뱉어냈다.
“다, 다섯 개나……? 그것도 각각 다른 맛으로 말이더냐? 나는 신이니라. 신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느니라.”
“거짓말이 아닙니다. 케이크 다섯 개. 그것도 각각 다른 맛으로. 약속드리겠습니다.”
카이가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헬릭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기쁨이 일렁거렸지만, 카이의 앞이라 체면을 지키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크, 크흐흥. 그럼 지금 당장 하계에 내려가 케이크를 사서…….”
“자, 그럼 케이크를 사러 가야하니 남은 일도 빨리 해치우지요.”
“응? 남은 일? 무슨 일이 더 남았느냐?”
“상자 세 개가 더 남았잖아요? 헬릭 님께서 열어주세요.”
카이가 최상급 무기 랜덤박스 세 개를 그녀에게 내밀며 웃었다.
“이것만 다 열면…….”
“어유, 바로 케이크 사러 가야지요.”
“기다리거라! 내 지금 당장 열어줄 테니!”
헬릭은 헤실헤실 웃으며 랜덤박스 세 개를 순식간에 개봉했다.
그녀가 기쁠 때마다 번쩍이는 금발의 머리카락은 빠르게 빛나며 광채를 터트렸다.
심지어 상자를 하나 열 때마다 휘황찬란한 빛이 번쩍이니, 흡사 클럽에 온 것 같은 기분!
‘유니크 두 개와 레어 하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카이는 그녀에게서 물건을 건네받았다.
롱소드 하나와 벨트 하나, 마지막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이었다.
‘우선 검부터.’
성능만 좋다면 자신의 새로운 애병이 될 터.
카이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정보를 확인했다.
[침묵하는 냉기의 롱소드]
등급 : 유니크
공격력 357~412
힘 +30
민첩 +20
공격 시 3% 확률로 상대방을 침묵 상태로 만듭니다.
적의 같은 부위를 세 번 공격하면 해당 부위의 속도를 10% 감소시킵니다(최대 3회 중첩).
한 때 북부 설산을 지배하던 빙제 율리시스가 즐겨 사용하던 것으로 유명한 검입니다.
착용 제한 : 레벨 315 이상, 힘 1000 이상,
내구도 100/100
꾸욱.
검을 들어 올린 카이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생각해보니 강인한 의지의 롱소드를 사용하기엔 내 레벨이 너무 높아지긴 했어.’
선행 스탯과 기타 사기적인 스킬들 덕분에 원체 강하다보니 신경을 쓰지 못했을 뿐.
강인한 의지의 롱소드는 80레벨 제한의 무기다.
물론 괴랄한 착용 제한을 들고 있기에 성능은 웬만한 150레벨 제한의 검과 비슷한 정도지만, 그래봤자 320레벨이 다되어가는 카이에게는 한참이나 못 미치는 수준이다.
‘차갑다. 그리고 단호해.’
혹자는 고작 검 손잡이를 쥐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카이는 정말로 그렇게 느꼈다.
‘마치 도도한 여성을 마주하는 것 같아.’
굳이 비유를 하자면 설은영 같은 검이라고나 할까.
카이는 각도에 따라 푸른색과 은색을 번갈아 비춰주는 날카롭고 유려한 디자인의 롱소드를 쳐다보며 연신 감탄사를 흘렸다.
‘손잡이 부분조차 마음에 들어.’
얼음으로 꽃을 조각해놓은 손잡이 문양은 보고 있음에도 계속 눈이 갈 정도였다.
부웅, 부웅.
간단하게 검을 휘둘러 무게중심을 확인한 카이는 빙그레 웃었다.
‘길들이려면 노력 좀 해야겠어.’
물론 큰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조만간 거인 한 마리를 무너트리려면 검을 휘두를 일이 많아질 테니까.
카이는 검을 바꿔서 장비하고는 다른 아이템들도 살펴봤다.
[거인의 허리띠]
등급 : 레어(세트)
방어력 1171
마법방어력 1052
힘 +50
착용 제한 : 레벨 300이상, 힘 800이상, 체력 450이상.
내구도 100/100
“오, 거인 세트템인가.”
부위마다 힘 스탯이 주력으로 달려있는 세트 아이템으로, 총 여섯 부위로 이루어진 세트였다.
‘뭐, 성의 니케가 있으니 이 세트를 모두 갖출 이유는 없지만…….’
굳이 세트를 모두 모으지 않더라도, 부위에 달려있는 힘 스탯이 높은 편이기에 단일 부위로 사용해도 하등 문제가 없는 아이템이었다.
‘그럼 이제 마지막 유니크 아이템인가.’
카이는 유니크 아이템이라는 이름에 비해 살짝 촌스러워보이는, 보라색의 신발에 끝이 뾰족하게 올라와있는 신발을 들어올렸다.
[어릿광대의 신발]
등급 : 유니크
방어력 841
마법 방어력 841
민첩 +25
체력 +18
30분에 한 번, 교란 스킬을 사용하여 반경 5미터 이내의 장소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착용 제한 : 레벨 315이상, 지능 350이상, 민첩 350이상.
내구도 100/100
“음……?”
스킬의 설명을 읽던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니크 아이템인데 효과가 상당히 단순하다?’
그것도 보통 유니크 아이템이 아니다.
무려 태양신의 행운으로 뽑아낸 아이템이다.
게다가 저레벨 아이템도 아니고 무려 착용제한 315레벨의 장비.
‘대쉬 효과가 달린 아이템은 굳이 이게 아니더라도 많은데…….’
쇠뿔도 단김에 뽑아야 하는 법.
카이는 우선 거인의 허리띠와 어릿광대의 신발을 장비했다.
상의와 하의는 성의를 입고 있기에 다른 아이템으로 대체할 필요가 없지만, 벨트와 어깨 보호구, 신발이나 모자 등은 얼마든지 다른 아이템으로 바꿀 수가 있었다.
“흠. 꼴은 조금 우습지만…….”
순백의 사제복에 무식하고 커다란 거인의 허리띠를, 게다가 보라색의 어릿광대 신발까지 신자 외형은 정말 웃기기 그지없었다.
‘뭐, 중요한 건 성능이니까.’
카이는 자신을 구경하고 있는 헬릭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케이크…….”
“교란.”
스르르륵.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카이의 신형은 마치 순간이동을 하듯 헬릭의 뒤로 이동한 상태였다.
“……!”
대쉬 기술이 아닌 순간이동기!
비록 재사용 대기시간이 30분이라지만 이건 웬만한 유니크 등급의 스킬을 하나 얻은 것과 동일한 수준이었다.
‘아니, 잠깐……?’
게다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자신이 있던 장소에는 자신이 이동하기 전의 모습이 그대로 잔상처럼 남아있었다.
‘1…… 2…… 3…….’
그 잔상은 3초가 지나자 물감처럼 번지며 그대로 사라졌다.
‘상대방의 허를 찌를 수 있는 순간이동기와 더불어 잔상까지…….’
그야말로 미드 온라인에 존재하는 최고 수준의 유니크 장비!
카이는 그대로 헬릭에게 달려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오구오구, 우리 헬릭 님. 오늘따라 왜 이렇게 존경스러우실까?”
“뭐, 뭐하는 짓이냐. 어서 내려놓거라! 태, 태양신의 위엄이…….”
“너무 존경스러워서 올려다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조금만 더 올려다 볼 수 있게 해주세요.”
“그, 그런 뜻이었느냐?”
결국 카이에게 설득당한 헬릭은 비행기를 10분이나 더 타고 나서야 바닥에 내려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