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86화 (186/441)

# 186

힐통령 186화

68장 밟아죽이기(2)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샤린 시는 사시사철 날씨가 맑고 쾌청하다.

하지만 가끔씩 비가 오는 날이면 유독 먹구름이 많이 끼고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꽈르르르르르릉!

듣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천둥번개는 덤.

“흐음. 처음 왔을 때 먹구름이 좀 보인다 싶더니……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되나?”

카이는 구멍이라도 뚫린 듯 엄청난 폭우를 쏟아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미 초원 필드 중 지대가 낮은 곳은 물에 잠긴 상태.

‘이런 날씨에 사냥을 하는 놈들은 없겠지.’

미드 온라인의 캐릭터도 온도 차이를 느낀다.

용암 지역에 갈 때 보호복을 제대로 입지 않으면 화상 디버프에 걸려 지속적으로 체력이 빠진다.

그건 설산 지역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추위와 동상 디버프에 걸리지 않으려면 따뜻한 털 옷을 입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차가운 비를 많이 맞게되면 감기에 걸리니까 말이야.’

물론, 태양의 사제인 카이는 어떤 상태 이상에 걸리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걸리게되더라도 햇살의 따스함으로 디버프를 해제해 버리면 그만이다.

“뭐, 급한건 타이탄 놈들이니 알아서하겠지. 그나저나 감각이 좋아진 것 같긴 한데…….”

카이는 허리춤에 달려있는 칼을 스윽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고급 3레벨로 껑충 올라선 여명의 검법 스킬은 확실히 대단했다.

‘검이 가벼워.’

이전에도 검이 무겁다고 느껴질 정도의 무게는 아니었다.

하지만 팔에 납덩이를 둘러놓은 것처럼 가끔씩 움직임이 답답한 경우가 있었다.

‘이제는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아. 훤히 들여다보여.’

나무에도 결이있고, 고기에도 결이 있듯, 공기에도 결이 있었다.

결이 아닌 곳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면 당연히 바람을 탈 때보다 훨씬 큰 힘이 들어간다.

‘나는 여태까지 적의 어느 부위를 언제 공격해야 하는지만 신경쓰고 있었어,’

그건 카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저들이 그렇다.

누가 게임을 하면서 캐릭터가 장비한 무기 따위에 큰 신경을 쓰겠는가.

‘하지만 유하린은 나보다 스킬 레벨이 높아.’

그녀가 왜 천재라고 불리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는 검을 어떤 식으로 휘둘러야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그녀는 있나봐.’

그러니 무음(無音)의 검을 지닐 수 있었을 터.

‘이거 헬릭님한테는 정말 감사해야겠는걸.’

만약 그녀로 인해 스킬 레벨이 올라가지 않았다면 평생 고급 1레벨에 머물러있었을지 모른다.

‘검을 휘두르는건 팔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발목에서 일으킨 힘을 종아리, 허벅지와 골반 같은 통로를 이용해 검까지 실어날라야 한다.

그 사이에서 손실되는 힘이 크면 검의 위력은 약해지고, 느려진다.

‘반대로 그 힘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다면…….’

같은 내려치기라도 할지라도 그건 더 이상 같은 공격으로 치부할 수가 없게 된다.

‘초보자들을 상대로는 제대로 실험해 보지 못했어.’

애초에 자신에게 대항조차 할 수 없는 약자를 괴롭히는건 카이의 방식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강하게 나가지 않는 이상 타이탄을 밟을 수는 없기에, 카이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50명 정도 로그아웃시켰으니…… 이제 슬슬 위치는 파악했겠지.’

카이는 마치 헨젤과 그레텔처럼 흔적을 남기며 한 방향으로 이동했다.

마치 자신의 위치를 숨길 생각이 아예 없는 사람처럼 의도적으로 위치를 흘렸다.

“몇 명이나 오려나.”

지난번에는 150명이 왔었다.

‘골리앗을 먼저 처치하여 겨우 이길 수는 있었지만…….’

만약 골리앗이 몸을 사렸다면?

타이탄의 랭커들이 듀라한의 공격을 몸으로 받으면서까지 자신에게 달려들었다면?

‘생각해보면 위험한 순간이었지.’

그들이 조금만 다른 선택을 했어도 결과는 바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

자신이 있다.

평균 공격력 163짜리 검에서 적정 레벨의 평균 공격력 384의 검으로 바꾸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2배가 넘게 올라가는 공격력!

‘강인한 의지의 롱소드에 달려있던 불파(不破) 능력도 매력적이었지만…… 침묵하는 냉기의 롱소드에 달린 옵션들이 훨씬 전투적이야. 공격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지난번에 타이탄 길드와 싸울 때와는 지닌 스펙부터 다르다.

물론 그들은 저번과 수준이 비슷할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랭커라고 해도, 천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나처럼 단기간에 강해질 수는 없겠지.’

툭, 투툭.

“흥, 흐으흥.”

콧노래를 부르며, 손가락으로는 검 손잡이를 박자에 맞춰 두드렸다.

카이는 아무도 없는 사냥터에서 그렇게 외로움을 달래고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그가 함께 놀자고 불렀던 친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는 지난번보다 조금 많은가?’

200명 정도.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놈들까지 싹 다 긁어서 데려온 모양이네.’

타이탄 쪽에서도 이번 싸움에 사활을 걸었다는 것이 그들의 표정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장비를 보니 레벨이 조금 부족한 이들도 제법 보였다.

‘머릿수를 보고 위축이라도 받았으면 싶은 건가? 귀엽네.’

정말 귀엽게 느껴질 정도의 얕은 수다.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가볍게 목을 돌린 카이는 인터페이스 창을 켰다.

‘어디보자…….’

자신이 찾던 항목을 찾은 카이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

그릭 랜시는 미국 서부 시애틀에 사는 미드 온라인 플레이어였다.

한국이 화창한 오후일 때, 그가 사는 도시는 곧 다가올 일출의 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끄응. 언노운이 타이탄과 한판 붙는다니. 정말 빅 이벤트가 따로 없는데 말이지…….”

언노운, 카이가 샤린 시에서 타이탄 길드원들을 척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때문에 지금 당장 샤린 시로 가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언노운의 싸움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면 그 또한 최고의 경험이겠지.’

여태까지 그는 자신의 싸움을 실시간으로 공개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원체 솔로 플레이를 지향하는 덕분에, 그가 싸우는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아침에는 출근을 해야 하니 이제 그만 자야겠지.”

지금 당장 게임에 접속해 샤린 시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아낸 그릭은 한숨을 내쉬며 컴퓨터를 껐다.

‘핸드폰으로 뮤튜브나 보다가 자야겠어.’

불을 끄고, 이불을 폭 덮은 채 핸드폰을 들어 올린 순간.

그는 자신의 핸드폰이 토해낸 알림창 하나에 눈만 깜빡거렸다.

[hwj1004님께서 실시간 방송을 시작하였습니다!]

“hwj……1004……? 이게 누구 계정이더라.”

그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즐겨찾기로 지정해둔 사람들 중에 이 시간에 실시간 방송을 할 만한 사람은 없는데…….’

호기심에 저도 모르게 방송 시청을 누른 그릭의 눈이 커다래졌다.

“오, 마이 갓!”

시애틀의 적막한 새벽이 약간이나마 시끄러워졌다.

***

-지금 내가 꿈이라도 꾸는 거야?

└진정해, 넌 지극히 정상이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 거고. 그러니까 언노운이 이상한 거야.

-다들 왜 이리 호들갑이야? 평소와 같은 언노운이잖아.

└하긴, 평소에도 예측할 수 없는 놈이긴 했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네.

└뭐야. 그럼 그냥 평소의 언노운이잖아?

잠깐 동안 혼란에 빠져있던 유저들은 빠르게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그리고 열광했다.

‘언노운이 실시간 방송이라니!’

‘여태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걸 이 타이밍에 터트려주다니?’

‘아직 새해도 아닌데 이런 선물을 받을 줄이야.’

언노운이 실시간 방송을 켜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 여파는 굉장했다.

-야야, 이거 시청자 수 실화야?

-방송 켠 지 1분만에 52만 명? 심지어 계속 들어오고있으니 밀리언은 확정이네.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니까 이해는 되지만…… 무서울 정도의 영향력이긴 해.

-그나저나 타이탄 놈들 머릿수 뭐야? 이제 정말 자존심이고 뭐고 없는 건가?

-거의 200명은 되겠는데?

-아니, 길마라는 골리앗은 평소에 멋있는 척은 다하더니 앞에서 안 싸우고 뒤에서 뭐한대?

일반 유저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일 수밖에 없다.

상황만 놓고 보면 잔뜩 긴장한 타이탄 길드원 200명보다, 카이가 훨씬 차분해 보였으니까.

‘방송은 잘 나오는 것 같고.’

확인을 끝마친 카이는 그제야 시선을 앞으로 던졌다.

‘골리앗 녀석. 많이 창피할 거다.’

놈도 지금쯤 자신이 실시간 방송을 켰다는 것을 알아챘을 터.

하지만 녀석은 아직까지 앞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충격이 너무 컸나?’

지금 카이와 1대 1 대결을 해서 패배하면 정말 모든 것이 끝난다.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는 52만명은 물론, 내일이면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부하들 먼저 내보내서 보스 역할 좀 해보시겠다?’

카이에게도 그리 나쁜 소리는 아니었다.

‘그럼 이 참에 감이나 좀 잡아볼까.’

부드럽게 검을 뽑아낸 카이는 마치 산보라도 가는 사람처럼 차분하게 걸어나갔다.

“……놈을 죽여.”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골리앗은 태연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카이를 쳐다보며 명령했다.

그와 동시에 200여명의 타이탄 길드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고 카이에게 달려들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가장 짜증나는 포지션 1위는 사제야.’

2위가 마법사고, 전사는 고작 3위에 불과하다!

그 사실이 카이의 발걸음을 사제에게 향하게 만들었다.

“놈이 사제를 노린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마라!”

“탱커들은 앞에서 벽을 쳐!”

“마법사들은 뒤에서 지원을! 그 사이에 전사들이 뒤를 돈다!”

4인 1조로 움직이는 타이탄 길드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한 번 패배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나본데?’

지난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기민한 움직임의 연속이다.

카이는 순식간에 자신의 뒤를 덮치는 전사들의 몸놀림에 작게 감탄했다.

“죽어라, 괴물 같은 새끼야!”

“거울이나 보고 말하시지.”

근육이 울퉁불퉁한 전사 하나가 제 몸집처럼 거대한 그레이트 소드를 강하게 내려쳤다.

그의 동작을 끝까지 쳐다본 카이는 이미 분석을 끝낸 상태였다.

‘동작이 형편 없어.’

공기의 결을 타기는커녕, 오직 두 팔의 힘으로 무식하게 검을 휘두른다.

‘맞을 턱이 없지.’

다음 순간 카이의 검을 쥐고있는 오른팔이 빠르게 튀어나갔다.

그의 오른팔은 고정된 몸과는 별개의 생물처럼 움직이며 그레이트 소드의 검신을 강타했다.

카앙!

“크, 크윽!?”

전사는 지난번에 상대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반응에 크게 당황했다.

‘이게 지난번의 그 언노운이라고? 아닌데?!’

겉모습만 똑같이 생긴, 전혀 다른 존재를 상대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 때는 카이도 자신들을 상대함에 있어 필사적이었다.

그건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카이는 유체화를 사용했어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대체?’

마치 통달한 사람처럼 무심한 눈으로 사방을 점한 전사들의 움직임을 꿰뚫어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최적의 타이밍에 최선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창, 차차차창!

그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타이탄 전사들의 공격은 맥없이 튕겨나갔다.

“젠장!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공격력도 이상해! 우리가 알던 그 카이가 아니다!”

“이 녀석…… 설마 지난번에는 힘을 숨긴 건가……!”

“무서운 놈! 독한 놈!”

카이는 굳이 그들의 오해를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방어적으로 전투에 임하며 고급 3레벨의 검술을 열심히 연습하는 중이었다.

‘공기의 결을 타고 휘두른다. 공기를 거스르지 않는다.’

둘은 마치 탱고를 추는 커플처럼, 한 몸처럼 움직여야 진정한 힘이 나오는 관계!

카이가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 그의 검은 마치 2배속으로 돌린 것처럼 빠르게 쇄도했다.

카아앙!

“커억!”

달려오던 전사 하나가 난데없이 튀어나온 카이의 검에 머리를 얻어맞았다.

‘이게 대체 무슨 속도…… 아니, 그게 전부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속도도 속도지만, 컨트롤이 대단하다.

투구의 이음새를 정확하게 절단하여 투구를 강제로 해제시켜 버린 것!

그 모습을 쳐다보던 주변의 전사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우, 운이겠지?’

‘어쩌다 한 번 정도 얻어걸린 걸거야.’

‘저런 행운이 계속해서 찾아들리는 없지.’

하지만 그들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카이의 검은 점점 더 빠르고, 정교해졌다.

‘이렇게. 이렇게.’

우웅, 우웅!

카이의 몸이 현란하게 움직일 때마다 그의 검은 빗방울들을 절삭하며 적들에게 날아갔다.

그때마다 파괴/해제되는 상대방의 장비들!

“후우우…….”

약 5분 가량의 연습을 마친 카이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을 괴물보듯 바라보는 전사들의 눈동자에서 한 가지 감정을 읽어냈다.

‘공포?’

왜일까 생각을 하다가도, 저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왜인지는 알 것 같다.’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실력의 소유자.

저들의 눈에는 자신이 그렇게 보일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이든 벨 수 있다.’

스스로가 풀 튜닝을 마친 스포츠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카이는 검을 길게 늘어트리며 주변을 스윽 돌아봤다.

그리고 확신했다.

‘나이트 오브 나이트메어는…… 지금은 필요치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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