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힐통령 188화
68장 밟아죽이기(4)
듣기만 해도 속이 쓰려오는 소리가 카이의 귓가를 울렸다.
띠링!
[강림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영구적으로 20개의 선행 스탯이 소멸됩니다.]
[당신의 몸에 강림시킬 선대 사도의 영혼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으으으으……!’
선행 스탯 20개.
힘, 체력, 민첩, 지능, 신성, 위엄을 포함하여 총 120개의 스탯이 사라졌다는 뜻!
속이 하도 쓰려서 당분간은 죽만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게 다…….’
번뜩이는 카이의 눈동자가 남아 있는 타이탄 길드원들을 훑었다.
이 상황은 전부 타이탄 탓!
복수를 다짐하는 카이의 눈앞으로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제1의 사도. 수호의 시미즈(활성화)]
[제2의 사도, 안식의 체란티아(활성화)]
[제3의 사도, 광휘의 패트릭(비활성화)]
‘내가 여기서 고를 수 있는 건가.’
안타깝게도 광휘의 패트릭은 비활성화인 상태.
카이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성물을 손에 넣은 선대 사도의 사념만 강림시킬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성검 프리우스를 손에 넣기 전까지는 패트릭을 불러오는 것이 불가할 터.
카이는 시미즈와 체란티아 두 사도 중에서 누구를 불러올지 잠시 고민을 했다.
‘시미즈는 별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방어 특화의 사도야.’
그녀가 남긴 성물 니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천사들의 찬가는 아군의 방어 능력을 대폭 강화해 주는 스킬.
‘한마디로 공격 능력의 유무를 알 수는 없어.’
그렇다면 안식의 체란티아는 어떨까?
‘체란티아가 남긴 성환 페트라의 경우에는.’
미묘하다. 굉장히 미묘하다.
이터널 레전더리 등급 반지인 페트라에 내장된 스킬은 영원한 안식.
선한 NPC들이 생명을 다해 죽을 때, 그들에게 사용 가능한 스킬이다.
‘NPC의 경험과 재능을 일부 획득할 수 있고. 그들의 영혼을 천사로 재탄생시켜 빛의 군단을 꾸릴 수 있는 능력.’
애석하게도 주변에서 죽은 선한 NPC는 여태 없었기에 사용해 보지도 못했다.
‘아무래도 시미즈보다는 체란티아가 낫겠지?’
덩치만 봐도 그렇다.
천상 여자처럼 가녀린 시미즈보다는 덩치가 우락부락한 체란티아의 공격력이 더욱 강해보이니까.
생각은 제법 길었지만 판단은 빨랐다.
“제2의 사도, 안식의 체란티아 강림.”
띠링!
[제2의 사도, 안식의 체란티아가 사용자의 몸에 강림됩니다.]
알림과 동시에 하늘에서 쏘아진 빛이 카이의 몸을 관통했다.
“크윽……!”
“뭐, 뭐야.”
그 강렬한 빛에 타이탄 길드원들이 눈을 가리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빛이 사라졌을 때, 카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색달라져 있었다.
‘뭐지?’
‘자폭…… 스킬은 아닌 것 같고.’
‘분위기가 조금 바뀌기는 했는데.’
그들이 생소한 기운을 느끼며 함부로 달려들지 못할 때.
카이 또한 신비한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해.’
마치 잠에 들기 직전처럼, 온몸이 허공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 상황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으하하하하! 역시 보는 눈이 있구나!
‘……체란티아?’
-시미즈 녀석. 지금쯤 제 소매를 물어뜯으면서 자네를 저주하고 있을 걸세.
걸걸한 목소리와 호탕한 억양.
안식의 체란티아다.
‘설마 강림 스킬의 효과가 이게 끝?’
카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침을 꿀꺽 삼킬 때, 체란티아가 말을 이었다.
-이거, 장난 두 번 쳤다가는 심장 마비로 죽겠군. 후배여. 잘 듣게나.
체란티아가 그답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시미즈는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싫어하여 그들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수호의 주문을 만들어냈네. 그녀가 수호라고 불리던 이유이지.
-패트릭은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생각했네. 적들을 섬멸하여 사람들을 위협할 만한 여지 자체를 일절 남기지 않았지.
시미즈는 방어, 패트릭은 공격.
그렇다면 체란티아는?
-나는 고단한 삶에서 벗어난 지친 자들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고 싶었네. 기억하게. 나는 지친 자들의 후회와 미련을 베어내고, 영혼을 구제하는 자. 안식의 사도 체란티아일세.
동시에 들려오는 알림창.
띠링!
[체란티아가 사용자의 육신에 강림하였습니다.]
[그의 제한된 능력들 중 일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킬-빛의 군단을 획득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킬-정화하는 불의 파도를 획득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킬-망각의 검을 획득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킬(패시브)-체란티아의 신체를 획득하셨습니다.]
“이건…….”
머릿속에 물밀듯 들어오는 스킬들의 설명!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킬(패시브)-체란티아의 신체 효과로 모든 스탯이 300 상승합니다.]
모든 스탯 300 상승!
1시간짜리의 일시적인 능력이라고는 하나, 경악스러운 능력이다.
모든 스탯이 120개나 사라졌다고 찡찡된 것이 불과 몇 분 전인데, 단번에 모든 스탯이 1800이나 상승한 것이다.
‘물론 이건 일시적인 거지만…… 그래도 대단해. 이게 제한된 능력이라고?’
그렇다면 살아 있을 당시 체란티아는 대체 얼마나 강했다는 것일까.
살짝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떤 카이는 적들을 바라보았다.
‘스테미너 상태는 좋아.’
온몸에서 힘이 차고 넘친다.
체력 스탯이 대폭 상승하여 올라간 스테미너 때문인지, 체란티아의 영혼 때문인지는 모른다.
‘다만…… 확신은 있어.’
이 싸움, 절대 지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뼛속 깊이 아로새겨졌다.
카이는 왼손을 앞으로 뻗어내며 입을 열었다.
“정화하는 불의 파도.”
-파도라는 말이 뱉어짐과 동시에, 카이의 손바닥에서 불꽃의 해일이 흘러나왔다.
“무, 무슨!”
“마법?”
“젠장!”
그 갑작스러운 공격은 랭커들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
반사신경이 뛰어난 이들이라 불의 파도를 피하긴 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크윽! 적중당했어!”
“괜찮아. 마법 저항력도 높고, 추가적으로 화염 저항력까지 붙어있어. 게다가 포션…… 응?”
정화하는 불의 파도에 적중당한 두 명의 랭커들이 경악을 토해냈다.
“꺼,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고……?”
“미친! 인페르노랑 동급의 스킬이라고!?”
350레벨, 화염 특화 마도사 전용의 유니크 등급 스킬인 인페르노.
인터넷에 공개된 것만으로도 벌써 수십억에 경매가 진행 중인 역대급 스킬 북이었다.
‘하지만 인페르노는 1인 대상 공격인데…….’
‘그것과 똑같은 효과를 지닌 스킬을 이렇게 광역으로?’
‘캐스팅도 없이? 저렇게 손쉽게?’
‘대주교급 클래스의 정화가 아니면 이건 해제 못 해.’
경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두 명의 랭커는 온몸이 활활 타올라 로그아웃을 당하자 남은 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심지어 저 녀석은 쥐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사자.’
‘신중하게 움직이자고. 놈은 아직 여력이 남아 있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남아 있는 8인의 랭커들은 카이를 경계하며 천천히 포위망을 좁혔다.
‘……지금!’
기회를 엿보던 샌지는 카이의 자세에서 찰나의 빈틈을 발견하곤 그대로 달려들었다.
부우우웅! 훙! 후웅!
마치 용처럼 현란하게 꺾이는 샌지의 창!
그는 카이와의 거리가 5미터 정도 남자, 미련 없이 자신이 지닌 최고의 스킬을 사용했다.
“화룡의 창!”
화르르르르르륵!
샌지의 창에서 폭발적인 화염이 흘러나오며 대기의 온도를 높였다.
대상의 방어력을 약간 무시하고, 물리 공격력과 마법 공격력을 동시에 주는 공격. 그뿐만 아니라 적중에 성공하면 화상 디버프까지 걸어주는 최고의 스킬!
‘이건 아무리 너라고 해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샌지는 확신했다.
왜냐하면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는 카이는 여전히 검을 뽑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카이가 자신에게 오른손을 뻗었을 때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불안은 곧 현실이 되었다.
“망각의 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카이의 손아귀에 보라색의 검이 잡혔다.
카이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휘둘렀다.
서걱!
“크윽!”
샌지의 어깻죽지를 살짝 베고 지나가는 검!
그 와중에 허리를 비튼 샌지가 카이의 공격을 회피해 낸 것이다.
‘젠장. 피하긴 했지만 공격력이 너무 강해. 우선 백스텝 스킬로 뒤로 빠진 후에…….’
자신이 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을 고민하던 샌지의 눈앞으로 알림이 떠올랐다.
[망각의 검에 적중당하셨습니다.]
[상태이상 ‘망각’에 걸리셨습니다.]
[5분 동안 스킬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무, 무슨!?”
자연스럽게 다리를 뒤로 놀려 백스텝 스킬을 사용하려던 샌지가 비명을 토해냈다.
백스텝 스킬이 사용되지 않으니 그는 자연스럽게 발이 꼬여 뒤로 넘어졌다.
‘정타를 허용한 것도 아니야. 그저 잠시 스쳤을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효과를 지닌 스킬이 있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하지만 그런 의문이 해소되기도 전에, 망각의 검은 그의 목울대를 관통했다.
“꺼르르륵……!”
“말했지. 난 끝까지 갈 생각이라고.”
“…….”
카이의 말에 무언가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온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샌지는 입을 열 수 없었다.
길드의 부마스터인 샌지가 당하자 랭커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골리앗을 제외하면 샌지가 우리 중에서 가장 강한데…….’
‘녀석이 단 두 방에 로그아웃이라고?’
‘무지막지한 공격력……!’
눈앞에서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동료들이 줄기차게 죽어나가자 남은 이들의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변했다.
까앙, 깡!
물론 그런 상황은 카이에게 있어선 호재였다.
‘이 기세를 몰아붙이자.’
카이의 오른손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스킬 사용, 빛의 군단!”
그 외침과 동시에 하늘에서 태양빛이 내리쬐며 수십의 천사들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빛의 군단……!’
그들을 바라보는 카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성환 페트라의 스킬을 이용하면 그도 언젠가는 만들 수 있는 군대이기 때문이다.
-안식의 이름으로.
-적들을 말살하리.
새하얀 로브 위에 순백의 갑주, 그리고 빛의 날개를 지닌 빛의 전사들은 순식간에 적들에게 쇄도했다.
스릉, 스르릉!
그들의 공격은 빠르고 매서웠다.
게다가 머릿수부터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타이탄의 랭커들이 체력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젠장!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만 해도 귀찮은데……!”
“이 녀석들. 싸움에 능숙해!”
세계적인 랭커들과 비교해도 크게 꿇리지 않는 천사들의 전투력!
카이는 그들의 싸움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골리앗에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끝난 것 같다. 너와 나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끝났어.”
카이는 현실을 부정하는 골리앗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그 한마디에 골리앗은 자신이 쌓아놓은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1년을 10년처럼 살았다…… 자는 시간, 먹는 시간을 줄이면서도 게임을 했다. 그런데…… 그런데 네 놈은 그걸 하루아침에……!”
“넌 끝까지 피해자인 척하는구나.”
카이가 검을 뽑았다.
그러자 어느새 타이탄의 랭커들을 모조리 처치한 빛의 군단이 허공을 부유하며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남길 말은?”
“……인생이란, 때때로 덧없군.”
“그건 네가 덧없는 인생을 살아와서 그런 거야. 타인을 짓밟고, 그들의 것을 약탈한 자의 최후가 보람찰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넌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다.”
“그 부분은 나랑 좀 맞네. 나도 너 재수 없어서 싫어.”
“하, 건방진 놈.”
짤막한 대사를 남긴 골리앗은 이빨을 꽉 깨물며 카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날, 타이탄 길드의 마스터가 카이에게 일대일 결투에서 패배하는 모습은 카이의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