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힐통령 189화
69장 왕의 명령(1)
[속보! 언노운 카이, 타이탄 길드와의 전쟁에서 승리!]
[다윗. 돌팔매로 거인의 이마를 깨부수다.]
[개인에게 무너진 세계 10대 길드. 과연 세력의 의미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건 카이가 바라다 못해 의도한 상황.
‘이걸 기사로 쓰지 않으면 펜대 놓고 기자 때려 쳐야지.’
이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방송을 켠 것도 카이였다.
빛의 군단을 사방에 둘러놓은 채 당당하게 일대일로 골리앗을 쳐부수는 언노운.
한 번이 어려울 뿐, 두 번은 어렵지 않았다.
손쉽게 골리앗을 처치한 카이는 길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업적은 즉각적으로 반영되었다.
띠링!
[누구도 믿지 못할 수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스페셜 칭호, ‘전장의 사신‘을 획득하였습니다.]
[전장의 사신]
등급 : 스페셜
내용 : 200명 이상의 플레이어와 결투를 하여 승리한 자에게 주는 칭호.
효과 : 적을 공격할 때마다 일정 수준의 스테미너를 회복.(이 효과는 칭호를 장착하지 않아도 적용됩니다.)
“오오…….”
전장의 사신!
이번에 타이탄 길드와 싸우면서 가장 부족함을 느꼈던 부분이 스테미너였다.
‘다른 부분은 경험이나 기술을 통해 커버가 가능해. 하지만 스테미너는 아니야.’
스테미너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움직임 자체가 굼벵이처럼 느려진다.
그 상태에서는 경험이고 기술이고 쓸모가 없었다.
때문에 카이는 앞으로 누군가와 싸움을 하더라도 장기전을 최대한 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장의 사신을 획득한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는 장기전으로 갈수록 내가 유리해지겠는데?’
자신은 체력 스탯 자체도 높은 편.
거기에 적중 시 스테미너까지 회복을 한다면……?
‘완전 좀비잖아?’
바퀴벌레, 혹은 좀비.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밟아도 쓰러지거나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
히죽히죽 웃는 카이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시간이 다 되었군. 시미즈에게는 오늘의 무용담을 자세히 들려줘야겠어. 또 보게나.
강림 스킬의 지속 시간이 끝나자 체란티아가 짧은 인사를 남긴 채 떠나갔다.
동시에 새롭게 생겨났던 체란티아의 스킬들도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강림 스킬이라…….”
선행 스탯 20개를 소모하는 터무니없는 스킬이다.
하지만 가격에 대한 값어치는 톡톡히 해내는지라 크게 아깝지는 않았다.
‘선행 스탯 20개가 아깝기는 해도,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지.’
특히 랭킹 1위인 자신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한 번 죽는 순간 랭킹이 10위권 아래로 쭈르륵 내려갈 것이 분명했다.
“턱 끝까지 쫓아온 유하린이나 다른 랭커들…… 진짜 밥만 먹고 게임하나? 에휴.”
카이(22세, 밥만 먹고 게임하는 폐인)은 고개를 흔들며 메시지 창을 띄웠다.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자신은 타이탄 길드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그것도 비급하게 기습을 한 것도 아니었고, 정면에서 다가가 그가 눈을 부릅뜬 상태에서 꽂아버렸다.
‘어떤 식으로든 날 엿 먹이려고 할 거야.’
그러니 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니, 가장 좋은 것은 그들이 자신을 엿 먹이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힘을 약화시켜야한다.
때문에 카이는 메시지 창을 통해 미네르바를 호출했다.
그녀의 답장은 빠르게 돌아왔다.
[미네르바 : 이봐요! 지금 본인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을 했는지 알고 있…….]
[카이 : 아주 잘 압니다. 방송은 봤어요? 나 잘 나왔을 텐데.]
[미네르바 : 지금 그게 말이라고…….]
카이의 태연함에 입을 쩍 벌리는 미네르바.
그녀의 그런 반응을 즐기던 카이는 자신의 목적을 꺼냈다.
[카이 : 지금 당장 타이탄 녀석들 독점 사냥터 접수 시작하세요.]
[미네르바 : 뭐라구요? 그런 짓을 하면 뒷감당을…….]
[카이 : 뒷감당이 왜 필요합니까? 타이탄은 이미 재기불능이에요. 확실하게 하는 것뿐이지.]
[미네르바 : ……당신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요. 혼자 삼키기엔 너무 거대하니 나누는 거고요.]
[카이 : 아닌데요. 내가 직접 나이프질 하기엔 귀찮아서 이러는 겁니다. 타이탄 쪽의 사냥터를 프레이에서 먹으면 그곳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을 6대 4로 나눠드리겠습니다. 아, 물론 제가 6이고요.]
[미네르바 : 재주는 저희가 넘고, 돈은 그쪽이 챙긴다는 말인가요?]
[카이 : 말은 똑바로 해야죠. 재주는 이미 내가 넘었고, 그쪽은 돈만 쓸어담으면 된다는 겁니다. 지금 프레이 쪽에서 공격을 시작하면 타이탄 쪽에서는 누가 방어하러 올지 알아요? 100레벨의 아무개, 120레벨의 아무개, 아! 가끔 재수 없으면 180레벨의 아무개가 나오겠네요. 설마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자신이 없다는 건 아니겠죠?]
[미네르바 : …….]
카이의 도발에 미네르바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췄다.
‘쯧. 역시 미네르바는 생각이 너무 깊다니까.’
그렇다면 강제로라도 생각을 줄여줄 수밖에.
카이는 곧장 두 번째 패를 오픈했다.
[카이 : 아, 참고로 천화에게도 움직이라고 말할 거니까 경쟁은 알아서 하세요.]
[미네르바 : 뭐라구요? 그쪽에는 대체 왜 말하는 거죠?]
[카이 : 타이탄 그거, 혼자 먹으면 체합니다. 과식이에요. 아주 배가 불러서 터질 거라고. 그리고 재깍재깍 대답했으면 천화쪽에 일거리가 넘어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알았으면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아참, 이미 타이탄 녀석들 사냥터를 노리는 곳도 있을 거예요. 그건 알아서 감당하세요.]
[미네르바 : ……또 연락드릴게요.]
그제야 바빠 보이는 기색을 뿜어낸 미네르바가 사라지자, 카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도 정말 이러기 싫었다고.”
지금 카이가 하는 행위는 타이탄 길드의 주춧돌까지 싹 다 부숴버리는 행위이다.
두 번 다시 회생할 수 없는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셈.
‘하지만 이걸로 세상은 똑똑히 알게 되겠지.’
자신을 건드린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세계 10대 길드라고 하더라도, 괴멸에 준하는 피해를 입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세상은 이번 일을 통해 깨달았을 것이다.
***
카이는 미네르바를 마치 모범생 같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매우 신중해서 움직이는 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리지만, 막상 일에 돌입하면 능력 자체는 굉장해.’
타이탄 길드에서 관리하던 35개의 사냥터 중 절반은 그날부로 프레이의 관리 아래에 놓였다.
물론 가장 목 좋은 곳만을 골라서 차지한 것!
그게 불과 반나절 만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프레이 길드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곳을 내 멋대로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지.’
느긋한 마음을 품은 카이는 현재 바덴 성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듣기로는 아직도 공사가 한창이라고 하던데…….’
자신에게 줄만한 보상은 이미 준비가 된 모양.
바덴성으로 찾아가자 쑥대밭이 된 성의 서쪽과 북쪽은 예상대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다만, 영주의 성이 있는 중앙과 동쪽, 남쪽 지역은 별개의 세상인 것처럼 멀쩡히 돌아갔다.
카이는 곧장 하인드 백작의 성을 방문했다.
“오오. 바덴 성의 영웅이 오셨는가.”
꽈악!
카이의 몸을 강하게 부둥켜안은 노장, 하인드는 껄껄 웃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만한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염치없이 이제야 자네를 불렀네. 무례를 용서하시게.”
“아닙니다. 오히려 바쁜 와중에도 저를 잊지 않고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동한 참입니다.”
“이 사람 참 말을 예쁘게 하는군.”
[하인드 백작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대화 분위기는 당연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쪽은 도시를 구한 영웅.
한쪽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이제 보상을 줄 사람이었으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하인드 백작이 운을 띄웠다.
“자네에게 어떠한 보상을 줘야할지 여러 밤을 고민해 보았네.”
“경청하겠습니다.”
“돈이나 무구, 명성은 이미 자네에게 크게 필요치 않겠더군.”
맞는 말이다.
이미 지갑과 통장이 돼지가 되어버린 카이는 웬만한 것은 스스로 구할 수 있었으니까.
“혹시 나에 대한 소문을 들어보았나?”
“하인드 백작님의 소문이라면…….”
카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국왕의 왼팔이자 대영주. 귀족들의 경찰관.’
왕국의 백작이라고 다 같은 백작은 아니었다.
하나의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백작이 있는가하면, 다섯 개의 영토를 소유한 백작도 있었다.
‘라시온 왕국의 백작 중 가장 강력한 권력을 자랑하는 것은 바로 바덴 성의 영주인 하인드 백작이야.’
자신이 거쳐왔던 프리카 마을은 물론, 글렌데일도 그의 통치를 받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무려 서른다섯 개나 되는 도시와 마을을 통치하고 있는 대영주!
하인드 백작이 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국왕 폐하께 여쭈어보았네. 근래에 신흥 지역으로 떠오른다는 리버티아가 자네의 땅이라지?”
“예에…… 그렇습니다만.”
“리버티아 인근 도시 두 개의 통치권을 자네에게 줄 생각이네. 어떤가?”
“……도시의 통치권이요?”
카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통치엔 그다지 취미가 없는데…….’
사실 리버티아도 아인종들과 친하기도 하고, 자신이 손을 대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잘 살기 때문에 영주직을 수락한 것뿐이다.
‘하지만 인간들의 도시를 통치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무지막지하게 귀찮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귀찮음은 카이의 성장에 브레이크를 걸 것이 분명했다.
그러한 생각은 카이의 얼굴 위로 고스란히 떠올랐다.
이를 쳐다본 하인드 백작이 빙그레 웃었다.
“지금 분명히 귀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걸세.”
“아, 아뇨…… 그게…….”
잠시 그의 온화한 눈빛을 쳐다보던 카이가 백기를 들었다.
“후우. 맞습니다. 솔직히 전 통치에 크게 자신도 없고, 뜻도 없습니다.”
“하지만 난세는 영웅을 낳는 법이지. 최근 자네는 라시온 왕국 최고의 풍운아일세. 자네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일화와 무용담, 찬양이 끊이질 않아.”
“그것이 제가 영지를 통치해야하는 것과 크게 관련이 있습니까?”
“물론이지. 자네가 유명해지는 만큼 자네의 명성을 탐하는 자들은 많아질 걸세.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날들이 지겹도록 이어지겠지. 하지만 자네가 지닌 힘이 강력하다면 자네를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아.”
실제로 대영주의 자리에 올라선 이가 하는 말이다.
‘영토라…….’
확실히 자신이 이번에 타이탄 길드를 밟아버리면서 유저들 중에서 자신을 건드릴 이는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NPC는?’
아직 자신을 적대하는 뮬딘 교는 멀쩡하게 살아있는 상태였고, 제국과 왕국에 그들과 내통을 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는 것이 타르달의 의견이었다.
‘언제 나의 꼬투리를 잡아서 시비를 걸지 모르긴 해.’
그들이 자신을 깔볼 수 없는 힘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다는 뜻이다.
“음. 백작님의 말뜻은 모두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험가. 한 곳에 발이 묶인 채 영토를 관리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그 부분에 대한 편의는 내가 모두 봐주겠네. 전문 영지경영인을 붙여주고, 관리자들을 모두 유능한 인재들로 메꿔주지. 자네는 단순히 영주라는 간판만 달고 다니면 되네. 물론, 다달이 나오는 세금은 덤이라고 생각하게나.”
“오오……!”
이 정도라면 확실히 구미가 당긴다.
손댈 부분은 하나도 없이 챙기고 싶은 부분만 챙기는 셈이니까!
화색을 띄우는 카이에게 하인드 백작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수락한 것으로 알고 조만간 폐하를 통해 영지를 넘기도록 하겠네. 아, 그리고 자네가 저번에 가져왔던 아르센 남작의 추천장 말일세.”
“예.”
“본디 추천장을 가져오는 자들은 실력을 테스트해야 하지만…… 굳이 자네의 실력을 테스트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곧장 자네에게 걸맞는 임무를 하나 주고 싶은데, 괜찮은가?”
“물론입니다. 오는 임무 마다하지 않는 것이 모험가의 미덕이지요.”
자신감을 드러내는 카이의 눈앞으로 오랜만에 보는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띠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