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통령 태양의 사제-192화 (192/441)

# 192

힐통령 192화

코르도에서 오픈한 카이의 진료소는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진료소라? 흐음. 떠돌이 모험가가 뭐 얼마나 치료를 잘하겠냐만…….”

“있어서 나쁠 건 없지. 아픈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가보라고.”

“거, 제법 용한 구석이 있군 그래. 신관인가?”

“오오. 제법 시원하군 이거.”

주민들은 카이의 진료를 환영하기는 했지만, 반응 자체는 생각보다 싱거웠다. 그들의 시들한 반응은 카이가 고개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프리카나 화이트홀에서는 진료소를 열 때마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는데…….’

덕분에 선행 스탯도 한몫 두둑하게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설산의 마을에 살고 있는 이들은 생각보다 건강 상태가 청결했다.

‘게다가 크게 부상을 입은 사람도 없어.’

하나같이 청결하고, 건강하다.

그 때문에 전체적으로 호감도가 오르기는 했지만, 선행 스탯이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하긴. 내가 잘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한다고 무조건 선행인 건 아니지.’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베푸는 것. 그것이 바로 미드 온라인에서 인정하는 선행의 조건이었다.

‘자, 그럼…….’

카이는 그대로 진료소를 접었다.

비록 선행 스탯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으니까.

‘전체적으로 호감도가 올라서 이제 날 경계하는 사람은 몇 없어.’

그 말은 단서 찾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뜻!

카이는 적극적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흠. 사건이라? 설산에서는 하루하루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지.”

“외지인? 글쎄…… 주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하는 상단을 제외하고는 외지인이 마을을 방문한 적이 없는 것 같군. 지난 반년을 통틀어도 자네 정도일까?”

마을 주민들과의 대화에서는 딱히 단서를 얻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 모두가 일관된 반응을 보였다.

“최근에 나타난 사람을 먹는 몬스터라고? 끄응…….”

“크흐흠. 나는 잘 모르겠군.”

“설산의 해는 빨리 떨어지네. 자네도 얼어 죽기 싫으면 잠을 잘 곳 정도는 알아봐야 할게야.”

모두가 카이의 눈을 피하고, 말끝을 흐리며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뭐지?’

눈매를 가늘게 뜬 카이는 아담한 마을을 훑었다.

마을은 고작 높은 언덕에 올라왔다고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이런 소규모의 지역 사회가 무언가를 감추려고 한다…… 대체 왜?’

미드 온라인에서 몬스터란 곧 인간의 적이었다.

인간을 적대하고, 죽이는 그들은 힘없는 주민들에게는 공포의 대상!

그들을 사냥하는 모험가가 나타나면 주민들은 두 팔 들고 환영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말을 꺼내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분위기야. 이건 마치…….’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과 비슷했다.

머리를 벅벅 긁은 카이는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놀랍게도 마을마다 존재하는 여관이나 쉼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끄응.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당연히 돈이 있으니 여관을 찾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마을을 둘러보기보다 주민들만 찾아다니며 대화를 나눴다.

설마 잠 잘 곳을 구하라는 말이 이런 의미였을 줄이야.

‘몬스터 이야기를 꺼낸 후로는 주민들이 나와 말도 잘 섞지 않으려고 해.’

저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몰라도, 카이가 다가가기만 해도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이래서야 단서는커녕…….’

설산에서 잘 곳을 구하지 못해 얼어 죽을 판!

아무리 트리플 헤드 오우거의 가죽옷이 따뜻하다고 하지만, 설산의 새벽이 지닌 추위와 칼바람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끄응, 신출귀몰로 다른 마을의 여관에라도 가야 하나?’

카이가 낭패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한 여인이 그에게 다가왔다.

“저…… 모험가님. 혹시 잠자리를 찾고 계시나요?”

“예? 그렇습니다만…….”

고개를 돌리며 대꾸를 하던 카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 여인은…….’

진료소를 열 때 자신이 진료를 했던 손님이었기에 기억이 난다.

수척하고 여윈 얼굴은 누가보기에도 병자처럼 보였다.

그 때문인지 먼저 진료소를 찾은 주민들도 선뜻 그녀에게 차례를 양보할 정도였다.

‘하지만 신성력으로 치료를 해봐도 별다른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어.’

햇살의 따스함은 미드 온라인에 존재하는 최상위급 회복 스킬이다.

만약 그녀가 병에 걸렸었다면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정화되었을 터.

‘그냥 마른 사람이겠지.’

그것이 카이가 내린 결론이었다.

여인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동생이 집을 비운 상태라 방이 남아요.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하루를 묵으세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밤을 지샐 곳을 찾은 카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따라갔다.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흑색 통나무로 지어진 아담한 주택.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카이는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

‘이 기분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집.

자신이 편의점에 들렀다가 오피스텔에 들어올 때면 늘 받는 느낌이었다.

여인이 문을 닫자 카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저…… 다른 가족 분들은?”

“부모님은 어려서 돌아가셨고, 저와 남동생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만…… 남동생은 현재 집을 비운 상태예요.”

“…….”

그 말은 한창 때의 여인과 단 둘이라는 뜻!

잠시 고민하던 카이는 그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혹시 제가 있는 것이 불편하시다면 저는 괜찮으니 말씀해 주세요.”

“아니에요. 오히려 모험가님이 와주셔서 너무나도 안심이 된답니다.”

서글픈 표정을 지어보인 여인은 카이를 올려다봤다.

“모험가님. 사람을 먹는 몬스터에 대해 묻고 다니셨지요?”

“예, 맞습니다.”

“혹시 그걸 묻고 다니시는 연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야 물론 몬스터를 처치하게 위해서이지요. 혹시 알고 계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카이가 당당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여인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알다마다요. 왜냐하면…….”

말끝을 흐린 여인은 입고 있던 외투를 조심스럽게 벗기 시작했다.

“자, 잠시만요! 지금 뭘 하시는……!”

카이가 황급히 제 눈을 가리며 소리치자, 여인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눈을 뜨고 이걸 봐주시겠어요?”

“저, 저는 아직…… 이런 건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확인한 후에!”

“……지금 대체 무슨 상상을 하시는 거죠?”

마치 벌레를 향해 말하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 이에 정신이 번쩍 든 카이는 실눈을 뜨며 눈가를 가리던 손을 치웠다.

“아……!”

시야에 들어온 그녀는 여전히 옷을 입고 있었다.

다만, 나시를 입고 있어서인지 양 쪽의 팔뚝이 훤히 보였다.

그런 그녀의 한쪽 팔뚝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건 칠흑의 문신.

모양은 뱀처럼 구불구불한 검은색의 무언가를 형상화하고 있었다.

“이 문신은……?”

시시각각 검은색의 흉포한 연기가 새어 나오는 기분 나쁜 문신이었다.

카이가 굳은 표정으로 묻자, 여인이 다시 외투를 입으며 설명했다.

“제 이름은 루나. 카이님이라고 하셨지요? 전 카이님이 찾으시는 몬스터와 만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저주에 걸리게 되었지요.”

“저주라고요?”

자신은 몬스터가 사람을 먹는다는 단서 하나밖에 들은 것이 없다.

‘애초에 어둠 추적자들이 지닌 단서도 그게 전부라고 했어.’

싸움의 흔적을 통해 그것이 파충류의 일종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설마 저주를 거는 몬스터일 줄이야.

카이의 머릿속에서 드레이크와 와이번이라는 선택지가 빠르게 사라졌다.

‘저주를 거는 건 웬만한 지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몬스터들의 지능은 보통 레벨과 비례하여 높아진다.

300레벨이 넘는 몬스터가 활동하는 설산 지역에서 몬스터들을 무시했다간 함정에 걸려 사망할 수도 있는 일. 하지만 마법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몬스터가 마법을 사용하려면 아예 마법사 클래스거나…….’

종족 특성으로 뛰어난 머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블리자드만해도 리자드맨 치고는 굉장히 똑똑하지만, 마법은 무리야.’

지금만해도 녀석에게 가끔씩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배우는 것은 5살짜리 아이보다 느린 편이었다.

‘적은 역시 드래곤인가?’

카이의 눈이 반짝이자, 루나가 말을 이었다.

“사룡의 그림자와 마주치고 받은 저주의 낙인이에요.”

“사룡의 그림자라고요?”

확실해졌다.

자신이 쫓던 몬스터는 드래곤이 맞았다.

“예전부터 설산을 돌아다닌다고 일컬어지는, 설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일종의 전설이지요.”

“그런데 실제로 만나셨잖습니까?”

“네. 어른들의 말씀에 따르면 수백 년 동안 잠에 들어 걱정 없다고 들었는데…….”

“……깨어난 거군요.”

“제 느낌일 수도 있지만, 아마 잠에서 막 깨어난 지금 극심한 배고픔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최근 다른 마을에서도 저주의 낙인을 받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거든요.”

“한 번 낙인이 찍히면 어떻게 됩니까?”

“……죽어요. 일종의 표식이거든요. 제가 자신의 먹잇감임을 설산의 모든 존재에게 알리는 거죠. 저를 건드리지 말라고 직접적인 경고나 다름없어요.”

“경고라.”

과연.

카이는 햇살의 따스함으로 그녀를 치유할 수 없었던 이유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햇살의 따스함으로는 모든 병마와 상태이상을 치유할 수 있어. 하지만…….’

사룡씩이나 되는 존재의 저주는 완전 별개의 영역이다.

최소 스킬 레벨을 고급까지는 올려야 정화가 가능할까 싶은 수준.

‘아직 햇살의 따스함 스킬은 중급 7레벨이야. 고급이 되려면 멀었어.’

때문에 그녀에게 찍힌 저주의 낙인을 지워내지 못했을 터.

잠시 고민을 하던 카이는 재차 질문했다.

“사룡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사룡은…… 말 그대로 죽음을 관장하는 용이라고 일컬어져 왔어요. 본래 거주지는 설산이 아니었으나, 수백 년 전에 전설의 성기사인 패트릭 님에게 패배한 뒤 큰 상처를 입고 이곳까지 도망쳤다고 들었어요.”

“음?”

익숙한 이름에 카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패트릭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카이님도 태양교의 신관이시라면 알고 계실 텐데요?”

“물론 알지요. 다만 처음 듣는 무용담인지라…….”

“그 분의 무용담이야 셀 수도 없이 많으니 어쩔 수 없지요. 아무튼 사룡 시네라스는 큰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긴 잠에 빠져들었다고 들었어요.”

“사룡이라…….”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괴물의 정체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

‘레벨이 어느 정도 될까?’

사룡 시네라스.

이름에서부터 최소 500레벨은 넘을 것 같은 압도적인 위엄이 흘렀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대로 왕궁으로 복귀하여 베오르크 국왕에게 사실을 고하고 기사들을 지원받는 것.

둘째는 커뮤니티에 공지를 올려서, 지난 번 비르 평야 때처럼 유저들을 모집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전무후무의 스페셜 칭호를 위해 자신이 솔로 레이드를 시도하는 것이고.

‘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적으로 무리겠지.’

카이는 앞선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로 마음이 기울었다.

“아흑.”

그러던 찰나 루나가 제 팔을 부여잡으며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깜짝 놀란 카이는 그녀를 부축하며 황급히 물었다.

“갑자기 왜 이러세요. 팔이 많이 아프세요? 햇살의 따스함! 햇살의 따스함!”

“하아, 하아…….”

팔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고통에 루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렇게 5분 정도가 흐르고, 겨우 고통에서 해방된 루나의 눈가에 물방울이 고이기 시작했다.

“모험가님…… 저, 너무…… 너무 고통스러워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요.”

“…….”

“혼자였다면 진즉 목숨을 끊었을 텐데…… 며칠 전 저주의 대상을 죽이겠다고 남동생이 검과 도끼를 들고 집을 뛰쳐나갔어요. 저는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이라지만…… 그 아이는…… 제 동생은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어요.”

루나는 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앙상한 팔로 카이의 소매를 움켜잡았다.

“하룻밤 재워드리는 게 전부인 주제에 이런 부탁하는 건 무리인 거 알아요. 하지만…… 제발. 제발 제 동생을 무사히 집으로 데려와 주세요. 어차피 제가 살아나는 건 기대도 안 해요. 하지만 그 아이만큼은…….”

띠링!

[설산의 남매]

난이도 : A-

사룡의 저주를 받은 루나의 남동생은 사룡을 처치하여 저주를 풀겠다고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그가 집을 나선 것은 정확히 이틀 전.

그는 마을에서 가장 강한 전사이긴 하지만, 사룡을 상대하기에는 실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루나의 남동생을 따라잡고, 그를 무사히 집으로 데려오십시오.

퀘스트 보상 : 알 수 없음.

이후 루나는 기력을 잃었는지 그대로 고개를 떨구며 기절했다.

카이가 황급히 그녀의 머리를 받치자, 그녀의 눈가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그의 손바닥을 적셨다.

“……하아.”

기사들을 데려오고, 유저들을 끌어 모으는 것은 좋다.

그러한 행위들은 당연히 사룡 시네라스를 처치할 수 있는 승률을 훨씬 높여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그들을 데려오는 시간에도 루나는 이 끔찍한 고통을 혼자서 이겨내야 할 것이리라.

의지할 부모도 없고, 하나 남은 동생은 자신을 구한다고 사룡에게 홀로 찾아갔다.

카이는 그녀의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심정에 미약하게나마 공감했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게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가.’

자신이 루나와 그의 동생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시라도 빨리 시네라스를 죽이는 방법뿐이었다.

“후우.”

카이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거짓말 안 하고, 하룻밤 묵는 값치고는 말도 안 되게 비싸네요.”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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